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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의 수북통신] 왜 울었는지는 몰라도

한나는 아침 밥상머리에서 갑자기 백석의 시 여우난곬족이 생각나서 밥을 먹다가 스마트폰을 열고 시낭송을 들었다. 울음은 기어이 터져나왔다. 한나가 우니 한나의 남편은 ‘멍사 모르고(영문 모르고)’ 따라 운다. 꺼억꺼억 울면서 한나는, 시상에나 만상에나 우리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말이여, 다 잊어불고, 다 잃어불고 살어, 그러고들 살고 있단게, 그러고도 잘만 살고 있다고오.

울음의 이유라는 것이 분명한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 시나브로 생기는 것도 있지만 ‘급작키’ 생기는 것도 있어서, 이번 울음은 말 그대로 급작키, 그러니까 갑작스럽게 생긴 것 같으면서도 실은 늘 예비되어 있는 울음이라는 것을 한나는 알고 있다. 그래도 한나는 제 울음의 이유를 굳이 분석해봤다.

아직 어린 시인은 명절 때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간다. 아버지의 외가를 우리는 진외갓집이라고 했는데 백석의 진할아버지집이 바로 진외갓집일까. 아버지의 외갓집, 엄마의 외갓집, 할아버지의 외갓집, 할머니의 외갓집... 세상의 외갓집들이 궁금하고 그리워서 내가 울었던 것일까.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라는 마을에 사는 고모와 고모의 딸 이녀와 열여섯에 사십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토산이라는 마을에 사는 또다른 고모와 고모의 딸 승녀와 고모의 아들 승동이와 육십리라는 이름을 가진 해변가 큰골이라는 마을에 사는 과부가 된 고모와 고모의 딸 홍녀와 고모의 아들 홍이와 배나무접(내 생각에는 배나무에 접붙이는 일인 듯)을 잘하고 술 자시고는 토방돌을 뽑는 주정을 하고 오리치기를 잘하는 삼촌과 사춘동생들과... 이런 사람들이 없는 세상에 사는 것이 서러워서 내가 울었던 것일까. 진외가도, 이러이러했던 고모들과 저러저러했던 사춘들도 없이 ‘살어가는’것이 너무도 쓸쓸하여, 너무도 ‘기가 맥혀’....생각하면 ‘기맥히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진가.

전남 담양 영산강 상류 하천가 붉은 수수가 푸른 하늘 아래 여물고 있다. (2011.9.14)
전남 담양 영산강 상류 하천가 붉은 수수가 푸른 하늘 아래 여물고 있다. (2011.9.14)ⓒ뉴시스

수년 전에도 한나는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본 한 장면 때문에 그날도 급작키 올라오는 울음을 터뜨린 적이 있었다. 방송국에서 주선하여 한국에서 일하는 아빠 혹은 남편 몰래 본국의 가족이 찾아오게 한다. 가족들이 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고향의 가족들이 보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외국에서 온 노동자가 말한다.

당연히 보고 싶죠. 딸, 아들, 아내, 부모님, 친척들, 이웃 사람들 다 보고싶죠.

먼 나라에서 온 그에게도 우리나라 시인 백석처럼, 제 아들딸, 아내, 부모, 형제, 할머니,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신리 고모와 고모딸 이녀와 토산 고모와 고모 딸 승녀와 고모 아들 승동이와 육십리 고모와 고모 딸 홍녀와 고모 아들 홍이 같은 보고 싶고 그리운 친척들과 다정한 이웃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가 친척들과 이웃들을 말할 때 한나는 60년대에 객지로 돈 벌러간 아버지가 생각났고 그러자 목울대가 갑자기 꿈틀하더니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한나의 아버지는 객지에서 편지를 보내올 때 가족뿐 아니라 꼭 동네사람들 안부까지를 물었다.

윗집 바깥어르신이 편찮으시다더니 시방은 좀 어떤지 궁금하구나. 큰집 소는 이제쯤 몸을 풀었는지 모르겠구나. 아랫집 아무개는 뜻하는 바 상급학교 진학을 이루기를 바란다고 전해주거라... 이제쯤 강물도 풀려 냇가 버들개지에도 움이 트고 검은골 너른들에도 못물이 그득 들어차겠구나...

나중에 곰곰 생각해보니 텔레비전 앞에서의 그 울음의 이유가 단지 아버지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외국에서 온 노동자가 고향에 있는 가족과 친척과 이웃들을 그리워했듯이, 우리나라에서도 가족뿐 아니라 일가, 이웃들의 안부를 물었던 시대가 있었지. 우리에게도 고향의 산천을 그리워하던 때가 있었지. 아아, 그런 시대가, 그런 때가, 그런 사람들이 있었지, 있었지.

그래서 울었다는 것을 하나는 알았다. 언젠가 그런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서. 우리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 세상에 누가 알까 싶어서.

최근에 한나는 칠십줄의 사진가와 함께 그가 유년을 살았던 옛집에 동행했다. 집은 영산강에서 가까운 강마을에 있었는데 사진가가 세살에서 열세살까지 살았던 집이라고 한다.

여기가 육십년 전에 우물이 있었어요. 우물 바로 옆엔 감나무가 있었고.
우물은 그 형태조차 남아있지 않고 문짝 떨어져 나간 야외 화장실의 변기가 마당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다.

문을 열어놓고 누워 있으면 집 뒤 울창한 대나무밭에서 쏴아, 하고 대바람이 방안으로 밀려왔어요.
밀려왔어요, 라는 사진가의 말을 근처 비행장에서 날아오는 소음이 덮는다.

뒷꼍 시렁 위에 만낫 것들이 가득 올려져 있었어요.
뒷꼍엔 장독과 옛살림들이 여저기저기 나뒹군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이라고 할 수도 없는 집을 돌아 나오는데, 울음이 터져 나오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우물을 메우고 감나무를 베어내고 살림들을 함부로 내던져놓고 산 세월이 육십년인 것만 같아서였을까.

서울 송파구 일대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
서울 송파구 일대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김슬찬 기자

한나는 또 그날 사진가와 함께 갔던 사진가의 옛집에서 치받쳐 올라왔던 울음의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는, 나는, 지난 육십 년 동안, 지난 삼십 년 동안 무얼 바라고, 무엇을 하며, 무슨 생각으로 살아왔던 것일까. 속으로 자꾸만 울음은 올라오는데, 귀가하는 길 양켠에 끝없는 아파트 행렬이 꿈속의 달걀귀신 모냥으로 한나를 따라온다. 아파트만큼이나 많은 아파트 광고 프랑카드도 함께 따라온다. 아하, 지난 육십 년 동안 우물 메우고 감나무 베어낸 자리에 아파트 지으며 살아왔구나, 그리워할 일가친척, 이웃, 고향산천도 다 잊어불고, 다 잃어불고 아파트만 바라고, 아파트 시세만 생각하는 세월이었구나, 내가 살아온 세월이 그런 세월이었구나. 한나는 그것 하나만은 확실히 알았다. 자꾸만 치받쳐 오르는 울음의 이유를 한가지로 말할 수는 없다 하여도, 그것 하나만은.

공선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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