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리뷰] 2021년 버전으로 새롭게 탄생한 파우스트의 엔딩, 국립극단 연극 ‘파우스트 엔딩’
연극 ‘파우스트 엔딩’
연극 ‘파우스트 엔딩’ⓒ국립극단

고전 ‘파우스트’를 만날 것이란 생각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객석에 앉았다. 고전소설에 푹 빠져 소설집을 끼고 살던 시절에도 완독에 성공하지 못한 ‘파우스트’였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숨소리도 멈춘 채 무대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막이 오른 ‘파우스트 엔딩’은 신선하고 쉬웠다. 관객의 문법으로 이야기를 끌어간 조광호 연출의 감각이 돋보였다. 덕분에 관객은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파우스트’를 만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고전을 읽으며 고개를 갸우뚱했을 사람이라면 이 작품의 원작과 다른 세 가지 포인트는 더욱 반가울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멸망이 시작되고 난민들이 파우스트가 있는 최후의 도시로 몰려든다. ‘파우스트 엔딩’의 시작이다. 무대는 세상 모든 지식이 모여있을 것만 같은 파우스트 박사의 연구실이다. 책과 서류와 도면으로 가득 찬 연구실은 오랜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다. 연구실 벽에는 천문학과 연금술을 연상시키는 도면이 드리워져 있다. 연구실은 다시 거리가 되고 거리는 페허가 되었다. 정적이 감도는가 싶더니 이내 들개 무리들이 눈에 불을 켜고 도시를 배회한다. 인간의 온기는 없고 누군가 죽고 나면 승냥이들처럼 달려들어 남은 것들은 가져간다.

드디어 등장한 파우스트 박사는 평생 학문에 매달렸지만 결국 아무 것도 완벽하게 아는 것이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학문 연구의 한계를 느낀 파우스트는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삶의 허무로 가득찬 파우스트 앞에 나타난 악마 메피스토는 매력적인 제안을 한다. 젊은 시절의 열정을 되돌려 주겠다는 것과 자신을 하인처럼 이용해도 된다는 것. 단 조건을 건다.파우스트가 “멈추어라, 너무나 아름답구나”라는 말을 하게 되면 자신이 그의 영혼을 갖겠다는 것이다.

연극 ‘파우스트 엔딩’
연극 ‘파우스트 엔딩’ⓒ국립극단

이제 파우스트는 자신이 몰랐던 속세를 향해 나간다. 그 속세에서 파우스트가 처음 부딪치게 되는 것은 젊은 남자에 대한 욕망과 호기심이다. 이 작품의 첫 번째 포인트는 여기다. 이미 여러 공연을 통해 성별에 관계없이 배역을 정하는 젠더 프리가 자주 시도되고 있다. ‘파우스트 엔딩’ 역시 아예 파우스트를 여성으로 바꾸어 버렸다. 파우스트는 젊고 건강한 청년 발렌틴에게 끌려 그를 찾아가고 발렌틴의 여동생 그레첸을 만난다. 파우스트는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그레첸을 보호하고 아기를 돌보기 위해 결혼을 결심한다. 이 작품이 쓰여진 당시를 생각한다면 이 모든 설정은 불가능하다. 원작 파우스트가 연출가의 눈을 통해 재해석되어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졌기에 가능한 설정이다.

두 번째 포인트는 죽음을 맞이하는 파우스트의 선택이다. 완전한 인간, 완벽한 인간을 꿈꿔 온 파우스트의 욕망은 계속된 실패와 파괴를 낳게 된다. 더 일찍 더 완벽한 힘을 갖기 원하는 파우스트의 제자들의 욕망은 광기로 변한다. 권력을 가진 이들은 페허가 되어가는 세상에 대한 책임은 뒤로 한 채 도망가버린다. 버려진 사람들과 도시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된다. 파우스트는 완벽한 창조물인 호문쿨루스를 향해 드디어 “멈추어라, 너무나 아름답구나”를 외친다. 신은 파우스트를 구원하려 하지만 파우스트는 구원을 거절하고 원작과 다른 지옥행을 선택한다.

세 번째 포인트는 2021년 첫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 ‘엔딩’이란 점이다. 신은 잊을 만하면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이 문장은 작품 전제를 아우르는 질문이기도 하고 대답이기도 하다. 파우스트가 죽는 순간까지 한 것이 방황이라면 우리 역시 그 방황의 과정에 있을 것이다. 역으로 우리 모두 노력을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그 모든 노력과 그 모든 방황의 ‘엔딩’이 우리의 선택에 대한 책임이 되고 있는지 묻고 있다. 신의 구원과 가호가 함께 했던 원작과 다른 2021년 파우스트의 선택은 여성 파우스트의 등장과 함께 무척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연극 ‘파우스트 엔딩’은 국립극장 70주년 기념 레퍼토리로 제작되어 2020년 4월 공연 예정이었으나 주인공 김성녀 배우의 부상과 코로나 19로 공연이 연기되었다가 다시 관객과 만나고 있다. 뮤지컬과 연극을 넘나들며 독보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연출가 조광화가 재창작과 연출을 맡아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파우스트 역에 배우 김성녀가 깊은 내공의 연기를 선보인다. 간교한 악마 메피스토 역에 배우 박완규가 열연한다. 젊고 우직한 청년 발렌틴 역에 배우 장재호가, 선하고 아름다운 그레첸 역에 배우 신사랑이 캐스팅되어 무대에 오른다.

연극 ‘파우스트 엔딩’


공연장소:명동예술극장
공연잘짜:2021년 2월 26일∼3월 28일(화요일 쉼)
공연시간:평일 19시 30분/주말 및 공휴일 15시
러닝타임:120분
관람연령14세(중학생)이상
원작:요한 볼프강 폰 괴테
재창작, 연출:조광화
스태프:무대 정승호/안무, 움직임 심새인/음악 변지민/퍼펫 문수호/조명 정태진/의상 홍문기/분장 채송화/소품 노주현/음향, 영상 김석기
출연진:김성녀, 박완규, 신사랑, 장재호, 김세환, 권은혜, 김보나, 고애리, 박경주, 강현우, 이원준, 김진, 박성민, 박용환, 변상문, 이종혁, 전주일

이숙정 객원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