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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핵발전소를 너무 사랑한 사람들
바나나 자료사진
바나나 자료사진ⓒ뉴스1

“바나나 3개 먹은 수준” …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내부 보고서가 환경단체에 유출되면서 경주 월성원자력발전소 부지 내 지하수가 심각하게 방사성물질(삼중수소)에 오염됐다는 논란이 일자, 한수원 측이 내놓은 1페이지짜리 반박자료에 적혀 있던 내용이다.

한수원은 올해 1월 월성원전 주변 주민 소변에서 측정한 삼중수소 농도가 미미한 수준이라며 바나나의 방사선량과 비교했다. 원전 전문가라고 불리는 교수들은 한술 더 떴다. 정 모 카이스트 교수는 “월성 주변 지역 주민의 삼중수소로 인한 1년간 피폭량은 바나나 3~6개, 멸치 1g 내외”라며, 주민·환경단체 및 일부 언론이 제기하는 삼중수소 누출 논란은 청와대를 겨냥한 검찰의 월성원전 수사를 ‘물타기’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수의 언론은 이 주장을 그대로 기사로 옮기면서 삼중수소 누출 논란을 ‘괴담’이라고 주장했다.

그래, 무한 양보해서 괴담으로 치부해도 되는 일이라고 치자.

방사성 물질이 발견되어서는 안 되는 ‘비방사성지하수처리계통’(터빈건물 맨홀)에서 충격적인 농도인 리터(L)당 71만3천 Bq(베크렐)의 삼중수소 고인물이 발견되고, 같은 지점에서 여러 차례 실험했을 때 이보다 더 높은 농도의 고인물이 형성되는 걸 확인했다는 한수원 내부 보고서 및 원자력 안전 규제 전문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답변에 대한 우려를 설레발이라고 치자. KINS 검사원이 2019년 6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진행한 월성원전 정기검사에서 방사성물질이 바다 등으로 누출됐음이 확인됐다는 보고가 당신들 말대로 괴담이라고 쳐 보자. 2012년 월성원전 1호기 여과배기설비 시공 과정에서 발생한 차수막 손상 사고로 사용후핵연료저장수조로 유입됐어야 할 사용후핵연료가 수년 동안 지속해서 (가늠하기 어려운 양이) 자연환경으로 누설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여러 전문가 및 KINS 검사원의 지적을 무시해도 될 일이라고 치자. 방사성물질 누출 논란이 일자 규제 전문 기관에서 과도하니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한 기준치를 들먹이며 삼중수소 누출·오염에 대한 우려를 괴담으로 치부하려 했던 한수원의 대응도 어쩔 수 없는 반응이라고 치자.

원전 인접 지역에 살다가 남편은 직장암, 아내는 갑상샘암, 아들은 발달장애(자폐증), 장모는 위암 등으로 온 가족 구성원이 고통받는 ‘균도네 가족’이 피해보상 요구 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가 2심에서 패소하게 된 원인이라 할 수 있는 한 전문가 설명처럼 “원전 5km 이내 거주하는 여성에게서 갑상샘암 발병률이 원전 30km 밖에서 거주하는 여성보다 2.5배 높다는 연구 결과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긴 하나, 원전에서 나온 방사선의 영향인지는 인과관계가 밝혀진 게 아니다”라고 치자.

그런데, 원전 인접 지역에 살다가 암에 걸린 수많은 주민은 어떻게 할 건가.

618명의 갑상샘암 피해자로 구성된 공동소송인단 중 90여 명이 월성원전 반경 10km 이내에서 최소 5년 이상 거주한 주민이라는 사실도 괴담으로 치부할 것인가? 동(東)경주 17개 어촌계 해녀 종사자 162명 중 갑상샘암 환자가 24명(14.8%)에 이르고 유방암·위암·자궁경부암 환자가 5명(3.1%)이라는 경주시월성원전·방폐장민간환경감시기구의 조사는 대한민국 의학의 묘기라고 주장할 것인가? 갑상샘암 수술로 완전히 쉬어버린 소리로 “내 아들, 딸, 손자 다 같이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온 가족이 갑상샘암에 걸렸다) 왜 우리를 죽이려고 하나. 살 수 있게끔 해 달라” 호소하는 월성원전 인접지역 주민 오순자(72) 씨의 목소리도 괴담으로 치부할 것인가?

월성원전 인근 주민 오순자 씨<br
월성원전 인근 주민 오순자 씨ⓒ민중의소리

월성원전 삼중수소 누출 논란에 비판적인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12.4년 사이에 절반가량이 핵분열을 일으키는 불안정한 물질 삼중수소는 방사성물질이라고. 월성원전과 같은 중수로 원전에서 엄청난 양이 뿜어져 나오는 삼중수소는 자연계에 극미량만 존재하는 물질이라고. 자연환경으로 배출된 삼중수소가 생태계에서 식물의 광합성 등으로 유기물화 되고, 수소와 삼중수소를 구분하지 못하는 인간의 몸이 이를 의심 없이 받아들여, 몸을 구성하는 유기물로 축적됐을 경우, 오랫동안 우리 몸에 머물며 내부 피폭 또는 핵종전환으로 DNA 등을 파괴할 수 있다고. 이렇게 몸에 축적될 수 있는 삼중수소의 농도 및 위험성을 일시적인 소변 검사로는 측정할 수 없고, 그 위험을 다른 물질에 잘 붙지도 않는 바나나의 칼륨 등과 비교하는 건 매우 적절치 않다고. 한수원이나 국내 친원전 전문가들이 기준으로 삼고 있는 국제방사성방호위원회 방사선 방호기준은 저선량방사선이 인체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있고, 이 기준에 근거한 예측치와 실제 암 발생 건수를 비교하면 사례에 따라 100배에서 1000배의 차이가 나타난다고.

한수원과 친원전 전문가, 다수 언론의 주장대로라면 원전은 너무나 깨끗하고 안전하며 경제적인 최고의 발전소다. 하지만 왜 유독 원전 인근에 암 환자가 많을까. 그것도 방사능 누출 문제와 직결된 갑상샘암 환자가. 또 왜 우리나라에서는 간담을 서늘케 하는 원전 사고가 잇따라 발생할까.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아찔한 일까지. 왜 대다수 국가는 원전을 줄이고 있는 것일까. 독일, 이탈리아 심지어 우리나라에 중수로 원전을 수출한 캐나다에 핵발전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프랑스까지.

좁은 땅덩어리에 너무 많은 원전이 세워져 있어서 전 세계에서 원전 밀집도가 1위인 곳. 그간 모든 정권에서 폭탄 돌리기로 떠넘기기 급급한 핵폐기물 저장소가 해안가에 진주 목걸이처럼 늘어져 있는 곳.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에 대한 충격과 공포로 세계가 불안에 떨고, 낙진이 한반도로 불어와 방사능비가 내리는 것 아니냐며 많은 국민이 걱정할 때,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원자력 수출 계약을 맺었다며 착공식에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내는 곳. 각국에서 원전을 줄이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상황인데, 원전 하나 폐쇄하려고 하니 감사원장과 검찰이 나서서 정부의 정책을 흔드는 곳. 핵발전소를 좋아하다 못해 핵발전과 사랑에 빠져버린 건가.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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