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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시각장애 1급이 보는 IT 혁신, 아직 갈 길 먼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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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몇 번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집으로 배송해주는 온라인쇼핑이 주요한 소비 행태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시각장애인이 사용하기에는 장벽이 있다. 시각장애인은 웹 사이트에 기재된 내용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화면낭독기’ 프로그램을 통해 유통기한 등 상품 정보를 얻는데, 음성 전환이 불가능한 형태로 상품 정보를 올려놓는 경우가 태반이다.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조현영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 책임연구원(시각장애 1급)은 웹과 모바일의 시각장애인 사용성을 평가하는 일을 한다. 기업 측이 센터에 접근성 인증을 요청하면 장애인으로 구성된 사용성 평가단과 비장애인으로 구성된 기술성 평가단이 심사한다. 조 책임연구원과 같은 사용성 평가단은 심사 대상 사이트에서 상품 결제와 정보 확인 등 서비스 이용이 가능한지 확인한다.

조 책임연구원은 “국가표준인 한국형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을 바탕으로 과업 수행 여부를 점검한다”며 “예를 들면 시각장애인이 쿠팡에서 마스크를 검색해 특정 제품 상세정보를 확인하고 장바구니에 담은 후 결제해보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증 심사를 중심으로 쇼핑과 뱅킹 등 주요 이슈에 대한 실태조사도 진행한다”며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평가단이 토론하고 조사 대상을 정한다. 지난해에는 시각장애인도 재난지원금 신청이 가능한지 살펴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센터는 최근 온라인 쇼핑몰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장애인 사이에서는 온라인 쇼핑이 일상이 됐지만, 시각장애인 접근성은 미흡하다.

센터가 11번가·G마켓·인터파크 등 온라인 쇼핑몰 9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모든 쇼핑 웹 사이트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서 상품 상세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상세정보를 이미지로 제공하면서, 음성전환 프로그램이 인식할 수 있는 ‘대체 텍스트’를 입력해놓지 않은 탓이다. 이미지에 대한 대체 텍스트가 없으면, 시각장애인은 “상품 이미지”나 “상품 상세 참조” 따위의 멘트밖에 듣지 못한다.

조 연구원은 “식료품 원산지, 영양성분, 보관방법, 유통기한 등 물건을 살 때 누구나 기본적으로 궁금해하는 것도 시각장애인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18일 법원은 조 책임연구원 등 시각장애인 963명이 2017년 SSG닷컴·롯데마트·이베이코리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규정된 장애인의 웹 사이트 이용 차별 금지를 어겼다는 취지에서다. 재판부는 각사가 원고에게 10만원씩 위자료를 지급할 것과 6개월 이내에 상품 정보를 화면낭독기로 전달할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을 명령했다.

이번 판결은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권과 기업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된다. 그간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권 침해에 대한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지는 사례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조 책임연구원도 온라인 쇼핑의 시각장애인 차별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은 적이 있지만, 기각당했다.

그는 “10여년 전 쿠팡에서 화면낭독기를 통한 결제가 원활하지 않아 고객센터에 문의했는데, 굉장히 상투적인 답변이 와서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다”며 “당시 인권위도 기업 측의 접근성 개선 계획을 얘기하면서 진정을 기각했다”고 전했다.

온라인쇼핑뿐만이 아니다. 새롭게 등장한 신기술은 대체로 시각장애인을 표용하기 위한 개선이 더디다.

“코로나19로 각종 이용시설 방문에서 필수 절차가 된 QR코드 사용도 시각장애인에 대한 고려 없이 설계됐다. 스마트폰 화면에 QR코드가 생성됐는지 음성으로 알려주지 않는다. 화면 내용을 음성으로 듣는 동안 15초가 지나는데 그러면 QR코드가 사라진다. 이제는 여러 음식점에서 일반화된 키오스크도 시각장애인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가 많아서, 하루는 웹툰을 보려고 했는데 음성 전환이 전혀 안 되더라. 지금은 이미지로만 구성돼있는데, 시각장애인도 즐길 수 있는 방식이 제공되면 좋겠다”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 사용성평가단 조현영 씨가 서울 마포구 상암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 사용성평가단 조현영 씨가 서울 마포구 상암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조 책임연구원은 센터를 운영하는 한국시각장애인협회에 지난 2004년 입사했다. 입사 당시에는 시각장애인 재활통신망 ‘넓은마을’ 운영 관리를 보조하면서 회원가입 상담과 공지사항 게시 등 업무를 맡았다. 이후 2010년 센터 내 평가단에서 일하게 됐다.

센터에 자리를 잡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자체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텔레마케팅 교육을 받아, 학습지 아웃바운드 텔레마케팅 업무를 해봤으나 적성에 맞지 않았다. 아이들을 좋아해 보육교사 교육 과정을 거쳐 어린이집 보조교사로도 일했지만, 시각장애의 한계를 넘기는 쉽지 않았다.

조 책임연구원은 “텔레마케팅, 어린이집 보조교사, 사무보조 등 여러 일을 해봤는데, 마음에 맞는 일을 찾기 쉽지 않았고 장애에서 오는 제약도 있었다”며 “재취업을 준비하던 중 협회 구직 소식을 듣고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목표를 묻는 말에 대한 조 책임연구원 답변에는 자부심이 묻어있었다. 그는 “거창한 건 없고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주어지는 일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며 “시각장애인이 정보 접근이 막혀 받게 되는 불이익과 차별 줄일 수 있도록 각자 위치에서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비스나 제품을 개발할 때 설계 단계부터 시각장애인 접근성을 고려하면 좋겠다”며 “기술 개발이 다양한 계층을 포용하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조 책임연구원은 2018년 LG유플러스가 ‘고마워, 나에게 와줘서’라는 제목으로 제작한 스마트홈 광고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조 책임연구원이 AI 스피커 도움을 받아 당시 돌이 지나지 않은 아들 유성이를 돌보는 모습이 담긴 1분 53초의 영상은 유튜브에서 현재 1,300만 이상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AI 스피커는 음성으로 가전제품을 조작할 수 있도록 도와줘 시각장애인에게 유용하다. 조 책임연구원은 “요새는 TV·세탁기·에어컨 등 가전제품을 터치식으로 만드는데, 버튼과 달리 손의 감각으로 조작키 위치를 찾기 어려워 시각장애인에게는 오히려 불편하다”며 “AI 스피커와 연동해놓으면 목소리로 작동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해 대통령이 주재하는 혁신성장 보고대회에서 AI 스피커 활용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

3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AI 스피커 활용에서 아쉬운 점도 있다. AI 스피커와 가전제품을 연동하는 과정을 시각장애인 혼자서는 해낼 수 없다는 점이다.

조 책임연구원은 “기기에서 와이파이 버튼을 찾기도 어렵고, 연동 과정에서 알림표시가 깜빡이냐고 묻는데 시각장애인은 확인을 할 수가 없다”며 “AI 스피커 연동은 편리한 기능이기는 하지만, 사용을 하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시각장애인 혼자 연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 사용성평가단 조현영 씨가 서울 마포구 상암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 사용성평가단 조현영 씨가 서울 마포구 상암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두려웠던 출산·육아, ‘긍정 에너지’ 남편이 용기 줘”
“너무 일찍 철들까 안쓰럽던 아들, 이젠 기특하고 고마워”

조 책임연구원 병명은 망막색소변성증이다. 진행성으로 조 책임연구원은 19세에 장애등급을 받은 이후로 서서히 시력을 잃어갔다. 현재는 불빛만 보이는 정도다.

“오빠(남편)랑 연애할 때 매년 고양시 꽃박람회 갔다. 호수공원에 여러 꽃을 꾸며놓는다. 처음에는 꽃이 구분되고 모양도 보였는데 해가 갈수록 형태가 퍼지고 색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걸 느꼈다. 평소에도 ‘아, 이제는 이 정도 거리에서는 구분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되는 상황이 생겼다.”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했다. 점자를 익히기 시작한 건 연합회에 입사하면서다. 그때만해도 조 책임연구원은 앞이 완전히 보이지 않는 전맹은 아니었다. 그는 “같이 일하던 팀장님이 진행성인데 아예 안 보이게 되면 어떻게 할 거냐며 점자를 혹독하게 가르쳐줬다. 주말 간에 점자책을 읽어오라고 하기도 했다”며 “그때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조 책임연구원은 연합회에서 남편 최정일 씨를 처음 만났다. 최 씨는 시각장애 3급을 앓고 있다. 비장애인과 결혼하길 원했다던 조 책임연구원은 최 씨의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배려심에 ‘이 사람인가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최 씨 가족도 비장애인 가족보다 조 책임연구원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깊다.

아들을 임신했을 때 조 책임연구원은 사실 두려웠다고 한다. 조 책임연구원 남편 최정일 씨도 시각장애를 앓고 있어 이들 부부에게 출산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조 책임연구원은 “가장 두려운 건 장애가 유전되는 거였다”며 “우리 부부가 다른 부모처럼 잘 보살펴주지 못하고 짐이 될까 하는 걱정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불안이 앞설 때 남편이 용기를 줬다. 조 책임연구원은 “오빠가 ‘괜찮다’,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며 “혹시 눈이 불편한 아이가 나와도 우리가 겪어봤으니까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알고 있어서 필요한 걸 해줄 수 있다고 힘을 줬다”고 말했다.

조 책임연구원은 제왕절개를 하고 깨어나자마자 아기 손가락, 발가락이 다 있는지부터 물었다고 한다. 다행히 유성이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출산 이후 육아는 현실이 됐다. 앞이 안 보이는 조 책임연구원의 첫 아이 육아는 여느 엄마가 겪는 것보다 큰 어려움이 따랐다.

조 책임연구원은 “아이가 우는데 왜 우는지를 모른다. 경험이 없기도 하고 눈도 안 보이니까”라며 “모유 수유도 입에 물리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분유를 줄 때도 안정적으로 아이를 안아서 꼭지를 물리고 젖병을 세워야 하는데, 모든 게 두렵고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출산 초기 시어머니가 같이 살면서 많이 도와줬다. 남편도 지금까지 특유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유성이를 돌봐주고 있다. 유성이가 아빠를 너무 좋아한다”고 전했다.

조 책임연구원 출근 시간은 7시 25분. 활동보조인 도움을 받아 길을 나서면, 헬스키퍼로 일하는 남편이 유성이를 돌보다가 출근 전 등원시켜주고, 시어머니가 하원을 맡는다.

유성이는 어느덧 5살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엄마를 보호할 줄 아는 어린이가 됐다. 주말 집에서 가까운 부평 공원에 나들이 갈 때, 길에 장애물에 있으면 엄마를 잡아당긴다. 집에 서랍이 열려 있으면 엄마, 아빠가 혹여나 부딪히지는 않을까 시키지 않아도 밀어 넣어 둔다.

조 책임연구원은 “엄마가 눈이 안 보이는 걸 유성이가 안다. 처음에는 유성이가 너무 일찍 철드는 건 아닌가 싶어 안쓰러웠는데, 지금은 기특하고 고맙다고 생각하려 한다”고 말했다.

조현영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 책임연구원은 2018년 LG유플러스가 ‘고마워, 나에게 와줘서’라는 제목으로 제작한 스마트홈 광고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조현영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 책임연구원은 2018년 LG유플러스가 ‘고마워, 나에게 와줘서’라는 제목으로 제작한 스마트홈 광고의 주인공이기도 하다.ⓒLG유플러스

조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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