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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숙 칼럼] 고 김기홍의 빛나는 꿈을 기억하자

‘논바이너리(성별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 사람) 트랜스젠더’ 김기홍 제주퀴어문화축제 공동조직위원장이 지난달 24일 세상을 떠났다. 김기홍 님은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에 왜 먼저 가는지 이렇게 적었다.

“너무 지쳤어요. 삶도, 겪는 혐오도...동지들이 있고, 애인이 있고, 가족이 있어도, 친구·동료가 있어도 계속 고립되어 있어요. 그래서 떠나요 .지켜주는 사람이 있어도 난 갈 곳이 아니, 막아주는 곳이 없어요.”
-고 김기홍의 마지막 편지

이런 선택이 아프고 쓰린 이유는 여전히 이 땅에 혐오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김기홍 님은 누구보다도 열렬히, 그러나 즐겁게 성별 이분법과 이성애 중심주의에 맞서 싸우려고 했다. 주류적인 삶 외에는 인정하지 않는 세상은 그를 포함한 성소수자들에게 눈앞에서 보이지 않게 유령처럼 살라고 강요했다.

김기홍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김기홍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녹색당

일상이 저항의 연속이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젠더 교란을 수행한 일상을 자주 적곤 했다. 짧은 치마를 즐겨했던 김기홍 님은 (섣부른) 젠더 판단을 놀리듯, 그만의 복장과 머리 모양을 하고 시장과 공항과 화장실 등에 가 사람들의 표정과 반응을 관찰하곤 했다. 여성인지 남성인지 복장과 외모로는 판별하기 어렵게 하여, 젠더에는 여성과 남성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게 한 것이다. 그들이 ‘성별은 두 개만이 아니구나. 누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외모로 판단할 수 없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구나. 굳이 두 개로 판단하려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매일 매일 싸울 수는 없는 법. 아니, 일상이 싸움이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고인이 세상을 뜨기 얼마 전인 2월 19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국민의당 안철수 예비후보가 서울 퀴어문화축제와 관련해 “안 볼 권리”를 운운하며, 축제를 서울 시내 한복판인 서울 광장이 아닌 주변부로 옮겨 개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부할 권리’라니, 이 또한 얼마나 주류적 발상인가. 비트랜스젠더 이성애자들은 광장(중심)을 사용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구석에서 모여 눈에 띄지 않게 하라는 것 자체가 차별 아닌가.

이에 대해 그는 페북에 “우리는 시민이다. 시민. 보이지 않는 시민, 보고 싶지 않은 시민을 분리하는 것 그 자체가 주권자에 대한 모욕”이라고 적었다. 2018년 나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퀴어 축제의 의미에 대해 “퀴어 축제는 퀴어들의 존재를 보여주는 가시화 전략”이라고 말한 바 있다. 숨으라고 강요하는 세상에 드러내는 것 자체가 저항이다.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이라는 빛나는 꿈

김기홍 님의 페북 계정 이름은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상큼한 김선생’이다. 그는 플루트 연주자이자 음악 선생이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자신의 직업을 좋아한다는 사실과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2018년 지방선거엔 제주녹색당 비례대표,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엔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며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없애기 위해 만방으로 뛰어다녔다. 그의 꿈은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이었다. 서울, 제주, 대구 등 여러 퀴어 축제에서 그를 만났을 때, 어느 때보다 빛났던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트랜스젠더는 혐오 살해의 주요 타깃이 되곤 한다. 미국에서도 트랜스젠더여서 살해 당한 경우가 많았으며, 많은 퀴어활동가들과 시민들이 그/녀들의 죽음을 계기로 싸웠다. 그리고 그 싸움은 인권운동의 지평을 넓혔다.

최근 몇 년 간 한국 사회에도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가 심각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달 9일 발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65.3%가 지난 12개월 동안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차별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결과에서 한국 사회의 혐오와 차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기홍 님의 꿈과 죽음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일이 또 하나의 투쟁인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김기홍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김기홍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녹색당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존엄하다는 가치가 현실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일상이 변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차별의 폭력을 예방하는 법이 필요하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찬반으로 묻고 조용히 구석에 숨죽여 있으라는 요구가 얼마나 야만적인 차별인지를 깨닫게 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누구나 원하는 모습으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받으며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편협한 성별 이분법과 이성애 중심주의가 더 이상 성소수자의 삶을 갉아먹지 않도록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한다.

나아가 우리는 ‘다르게 젠더화된 존재’를 인정할 뿐 아니라, 성별 이분법의 억압이 우리 모두에게 강요한 젠더 규범성을 깨뜨리기 위한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 ‘그’라는 대명사에 대하여:고 김기홍님을 기리는 글을 쓰며 ‘그’란 대명사를 쓸 것인지 여부에 대해 고민했다. ‘그’가 언론에서 쓰일 때, 여성과 남성을 통틀어 지칭하는 단어인 동시에 남성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해서다. 이는 영어의 ‘man’이 사람인 동시에 남성을 의미하듯, 남성중심적 세계가 만들어낸 용어다. 이 글의 ‘그’는 사람을 통칭하는 용어임을 밝혀두며, ‘남성’의 지칭대명사로 오독하지 않기를 바란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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