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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가보안법은 어떻게 일상의 자유를 짓누르나

국가보안법(국보법)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일반 시민들은 정치나 사상 관련법이고, 일상생활과는 거리가 있다고들 생각한다. 조금 나이가 있는 이들은 과거 민주화를 위한 활동가들이나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하기 위해 악용되었다 정도는 기억하고 있지만, 이 역시 특별한 이념이나 정치 소신을 지닌 이들에게 적용되는 법이라는 인식은 그리 다르지 않다.

국제사회와 UN 인권위에서조차 철폐 요구가 있었지만, 일부에서는 지금은 국보법이 과거처럼 악용될 것 같지는 않고 어차피 사문화되어 있어서 굳이 문제 삼을 것은 없다고도 이야기한다. 촛불정부라고 일컬어지는 현 정부나 거대 여당인 민주당의 지향점을 본다면 국가보안법 철폐에 적극적일 것 같지만, 사실 그리 능동적이지는 않다.

국보법의 가장 문제 조항인 7조의 찬양·고무죄를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보법 일부 개정안이 이규민 의원을 위시한 김용민·김남국 등 민주당 의원들과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 김홍걸 무소속 의원 등 15명의 의원에 의해 작년 발의되었다. 이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됐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개인 의원의 의정 활동으로 치부하면서 당의 중점 법안으로 처리하지 않고 있다. 물론 국보법 철폐도 아닌 일부 개정안조차 이렇게 수동적인 것은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의 아픈 기억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국보법은 사문화되었고 정치사상범에나 적용되기에 이처럼 방치라 해도 좋을 만큼 수동적인 대처가 괜찮을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달 23일 국회 앞에서 국가보안법 7조부터 폐지운동 시민연대 주최로 국가보안법 7조 폐지 발의법안 의결 촉구 3,000인 선언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지난달 23일 국회 앞에서 국가보안법 7조부터 폐지운동 시민연대 주최로 국가보안법 7조 폐지 발의법안 의결 촉구 3,000인 선언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시민연대 제공

이명박, 박근혜 시절 북한 찬양 ‘가능성’만으로
교사들 처벌한 국가보안법 7조

예를 들어 국보법 7조의 고무·찬양죄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교사들에게 적용되었다. 단지 북한에서 발간된 책자를 지니고 있다는 것만으로 처벌 대상이 되었고, 법원은 소유했다는 것 하나로 북에 대한 찬양을 전파했을 “가능성”을 주요한 양형 이유로 들었다. ‘가능성’뿐이었다.

경찰이나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북측에 대한 긍정 표현만으로 그 누구도, 얼마든지 잡아들일 수 있는 법이 국보법이다. 내가 속한 수의학 분야만 해도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서 권장하는 보조수의사 체제와 이를 위한 교육 관점에서는 북측이 우리보다 더 바람직한 체제이다. 남은 6년제 수의사 제도만이지만. 북은 3년에서 6년의 다양한 교육 체제를 갖추고 있어서 최소한 외형적으로는 우리보다 유연하고, 국제 기준에 맞는 교육 체제다.

조류인플루엔자나 구제역,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남북 공동방역을 위한 북과의 협력사업 과정에서 북측의 자료를 확보해 위와 같이 객관적 언급을 했을 때, 정부와 법원이 마음만 먹으면 마치 교사들을 처벌했듯이 표현을 문제 삼아 언제든지 나를 처벌할 근거로 사용할 수 있다. 국보법 때문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 때 국정원 ‘원세훈 특명팀’에 의해 자행된 민간 사찰 내용이 일부 밝혀진 바 있다. 30여명의 사찰 대상자 명단에 나도 올라 있었지만, 이러한 사찰 대상자에게 붙여졌던 이름이 ‘종북좌파연계 불순활동혐의자’였다는 것은 흥미롭다. 단지 정부 정책에 반대 입장이란 것 하나로 종북좌파 연계 불순 활동 혐의자가 된 셈이다.

또한 지난 총선 후 국보법 철폐를 ‘상상’한다는 것만으로 나는 조중동의 집중 비난 대상이 되었다. 그런 발언을 했다는 것에 심지어 일부 진보인사도 조심해야 한다고, 경솔하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다시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상상조차 허락되지 않는 금기가 있다는 것을.

이렇듯 국보법은 특별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정치사상법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속들이 들어와 작동하고 있으며, 우리들의 자유로운 생각이나 시도를 억압하는 악법이 국보법이다. 더 나아가 국보법 철폐는 우리 사회에서 상상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조금 돌려서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에서 진보라고 불리는 민주당은 유럽 기준에서 보면 상식적 보수당 수준이다. 반면 국내에서 소위 보수정당이라 불리는 국민의힘당은 친일세력의 기득권을 이어오면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집단일 뿐 보수정당은 결코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당과 같은 상식적 보수당에 대응하면서 상호 견제 및 보완을 통해 사회 발전을 같이 견인할 진보정당이 왜 자리잡지 못하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군이 70년이 넘도록 우리 땅에 주둔하고 있고, 전시작전권도 없이 분단을 고착화하는 합동군사훈련이나 강요받는 현실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보다 진보적 가치를 구현하려는 정당이라면 남북 현실 타개에 대한 고민은 필수적이다.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 선고를 받았으나 내란선동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9년을 선고받고 8년째 복역 중인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 선고를 받았으나 내란선동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9년을 선고받고 8년째 복역 중인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사진공동취재단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과 통진당 해산 사태 대표적 국보법 사례
국제앰네스티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주요 사건으로 규정

밀란 쿤데라의 소설 ’농담‘이 연상되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과 통진당 해산 사태는 국보법이 적용된 대표적 사례로서, 국제앰네스티는 2015년 연례 인권보고서를 통해 해당 사건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대표적인 사건으로 규정했다. 설령 일부 구성원에 대한 조치는 있을 수 있다 한들, 멀쩡한 정당을 한 순간에 해산시키는 사회가 우리의 현주소다. 이렇듯 사회 다양성을 포함해 진보적 사유와 상상마저 불가능하게 하는 사회 문화의 바닥에는 늘 국보법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가 경제력에 있어서 50배가 넘고, 군사력에 있어서 10배도 넘는 남측이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위해 이토록 상상조차 해서는 안 되는 절대적 인간 말살법이 금기처럼 존재해야 하는가. 냉전이 끝난 지도 오래되었다.

21세기 한반도에서는 남북 간의 소통과 화해로 평화를 안착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러한 시도를 국보법이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랜 시간 동안 우리 사회에 군림해 오다 보니 이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그 불편함을 못 느낄 정도로 내면화 과정을 거친 듯하다. 우리는 무의식적인 자기 검열과 함께 그 폐해에 대하여 스스로 기억하고 상기하지 않으려 억압함으로서 직면하기를 두려워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군사독재시절에 일종의 인간도축법처럼 사용되었던 국보법의 뿌리는 일제가 독립군을 처벌하던 치안유지법이며, 일제의 치안유지법의 주요 조항, 조문을 그대로 베꼈음은 알려진 바와 같다. 100년 적폐 친일세력의 대표적 살상 무기로 작동하면서 그 자체로 적폐가 된 국보법이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 사람들의 자유의지와 상상을 차단하고 국가 권력에 종속시키는 역할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100년 적폐 청산 일환으로서 진보·보수의 구분을 넘어서는 시대적 요구다. 적폐 청산을 외친 촛불 시민들의 염원으로 탄생한 현 정부에서 이러한 악법을 철폐시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책임 회피이자 직무 태만이며, 민족 앞의 죄인이 되는 것이다. 국보법 철폐의 첫걸음으로 발의된 개정안이 작년에 처리 못했고, 논의되었던 금년 2월에도 처리되지 못했다. 여전히 여당의 중점 법안에 들어있지 않지만 최소한 금년 4월경에는 국회에서 처리되어야 한다. 촛불의 지지를 받고 있는 민주당이 민족과 역사, 그리고 촛불 시민 앞에 죄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희종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교수 · 생명정치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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