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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굶어 죽지 않고 자연사 하는 게 소원” 그 할아버지, 지금 괜찮으실까?
책 ‘동자동 사람들’
책 ‘동자동 사람들’ⓒ빨간소금

“굶어 죽지 않고 이대로 살다가 죽고 싶어. 자연사하는게 소원이야,”

햇볕이 들지 않고, 화장실 조차 없는 집에서 70대 할어버지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이웃집 할아버지는 천장에 큰 구멍이 났지만, 수리를 못해 그대로 살고 있었다. 2007년 추석을 얼마 앞두고, 당시 모 정당 대선후보를 취재하며 찾았던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모습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이후에도 그곳을 두 어 번 찾은 기억이 나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선거를 취재하면서 였다. 동자동 쪽방촌은 가난과 빈곤을 상징하는 지역처럼 여겨졌고, 선거 때가 되면 진보정당은 물론 빈곤문제 해결에 관심없던 보수정당의 후보들까지 좋은(?) 사진을 남기기 위해 꼭 찾는 명소가 됐다.

그동안 동자동 쪽방촌엔 수많은 공약이 뿌려졌고, 각종 단체가 지원 사업을 벌이며 수많은 생필품을 제공했다.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해마다 쪽방촌을 찾았다. 하지만, 동자동 쪽방촌과 그곳 사람들은 여전히 ‘사회적 버려짐’을 경험한다. 범죄와 질병으로 일상이 파괴되며, 도움의 손길에도 인격과 자존감 박탈을 경험한다. 사람으로서의 필요와 욕망, 세계 안에서의 위치와 존재 방식은 부정 당한다.

“굶어죽는게 아니라 자연사가 소원”이라던 할아버지는 지금 괜찮으실까? 왜 돌봄은 계속 실패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두고 젊은 연구자 정택진은 집요하게 고민했고, 쪽방촌 주민들의 ‘지금, 여기의 모습’을 담아낸 기록인 책 ‘동자동 사람들’을 출간했다.

가난을 쓰고, 기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타인의 고통과 가난을 쓰는 일은 괴로웠다. 타자의 고통을 지적 유희의 재료로 소비하는 것은 아닌지, 이론적 기여, 학문적 참여, 지적 개입 등 그럴싸한 수사를 앞세워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닌지 계속해서 내 자신에게 물어야 했다. 무엇을 쓰는지, 왜 쓰는지, 어떻게 쓰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증명해야 했다. 벽장을 마주하고 난 오멜라스의 시민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지, 또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해야 했다. 그러면서 점차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고 회피하는 것이야말로 연구자이자 저자로서 책임을 방기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이제 그 답을 찾는 일이 오롯이 내 몫으로 남았다.”

이런 고민을 거쳐 그는 쪽방촌 사람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기록했다. 일하고 싶어도 아픈 몸 때문에 일할 수 없고, 경제적인 지원을 받아도 일상적인 돌봄을 받을 수 없는 그들. 기초생활 급여로는 생활을 할 수 없어 약물 불법 거래나 명의 도용 범죄에 빠지고, 여성은 성폭력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항상 머리를 짧게 자른다.

기초생활수급, 무연고 사망과 장례, 물품 지원 활동, 저렴 쪽방 사업과 같이 주민의 삶에 개입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동자동 쪽방촌을 정의한다. 하지만, 저자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20여 년 간 형성된 다양한 모습의 제도적·비제도적 개입은 주민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환경’이 되었다면서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물리적 공간’보다 쪽방촌의 ‘사회적 삶’이라고 강조한다.

서울 동자동 쪽방촌 풍경
서울 동자동 쪽방촌 풍경ⓒ사진공동취재단

쪽방촌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시도는 경제적 측면을 넘어 주민들의 ‘사회적 삶’에 대한 개입이기도 하다. 개입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 ‘우리’에 대한 감각, 정치적 연대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의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킨다. 이 책은 쪽방촌을 위한 여러 개입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겪는 가난과 고통의 풍경을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그려내고자 하는 시도다.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가난은 계속 바깥으로 밀려난다. 무관심도 한 몫 하지만, 곪은 상처에 섣불리 메스를 들이댈 수 없다는 섬세한 자기 윤리가 작동한다. 하지만 그 결과 가난은 더 밀려나고, 더 기괴한 재현과 사건이 되어 살을 도려내고 만다. 『동자동 사람들』은 서사화의 위험을 위태롭게 감당하면서 쪽방촌 주민들의 ‘지금, 여기의 모습’을 담아낸 문화기술지이다”라고 평가했다.

또 조 교수는 “동자동에서 연결을 만들어내는 절박한 노력들은 삶의 고단함과 취약함을 들쑤신다. 돌봄은 계속 실패하지만, 그럼에도 계속된다. 이 책이 생명의 존엄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가 닿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김원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이 책은 가난/돌봄에 개입하는 다양한 형태의 실천 과정에서 동자동 쪽방촌 사람들이 맺는 연결을 ‘사회적 버려짐’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 역작이다. 권리의 언어로 제도화된 개입이 역설적으로 또 다른 ‘버려짐’이었음을 현장 연구를 통해 탁월하게 밝혀낸다”라고 평가했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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