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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광주를 추억할 수 없게 만드는 정재일 음악의 힘

글쎄, 글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이런 음악을 들으면 걷잡을 수 없어진다. 음악에 빨려 들어가 버리는 탓이다. 21곡에 이르는 곡의 숫자와 길이는 울울창창한 숲처럼 우거진다. 음반을 플레이하면서부터 그 숲에서 걷고 헤매며 듣는다.

들리는 것은 음악이다. 하지만 음악이 담지한 소리는 음표의 높낮이와 박자, 화음만이 아니다. 사람들의 목소리이다. 사람들이 만들어 온 역사의 소리이다. 역사가 꿈틀대는 소리, 역사가 사람들을 가격하고 얻어맞은 사람들이 신음하는 소리. 한숨 짓고 비명 지르고 통곡하는 소리이다. 싸우고 죽고 사라진 인간들의 드라마. 누군가는 음악으로 듣을 소리의 모음이지만, 음악에 담은 이야기를 안다면 무겁게 들을 수밖에 없는 음악이다.

이는 정재일의 음반 [psalms]이 “2020년, 5.18 40년에 헌정하는 음악을 위촉받”아 시작한 작업인 탓이다. 이 음반의 모든 곡들이 그 작업의 결과물은 아니다. 정재일은 “장민승 작가의 시청각 프로젝트(audio visual project) ‘둥글고 둥글게(round and around)’의 작업을 이어”나가며 만든 곡들도 함께 담았다.

정재일 앨범 '시편(psalms)' 커버 이미지. 2021.02.23
정재일 앨범 '시편(psalms)' 커버 이미지. 2021.02.23ⓒ사진 제공 = 유니버설뮤직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그 전(1979년 부마 민주항쟁)과 그 후(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 이르기까지의 대한민국을 사진과 영상 그리고 문서의 아카이빙으로 담아”낸 작품은 당연히 우리를 1980년대로 끌고 간다. 도착한 곳은 부산과 마산에서 시작해 광주를 밟고 피어난 시간들이다. 어떤 의미로 만든 것인지 알고 있는 곡들은 ‘항쟁의 도시에서 움튼 역사’라는 프레임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 아니, 곡의 비감하고 장중한 질감은 모든 이탈의 가능성을 봉쇄한다.

이 음반의 힘은 바로 그 봉쇄와 단절에서 나온다. 이 음반이 끝날 때까지 음악을 듣는 이들은 광주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 당시에 그 곳에 있었거나 있지 않았거나, 광주를 알거나 모르거나 반드시 광주로 모여들어야 한다. 그 시간과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정재일은 시간이 흘렀다고, 이제는 국가기념일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절대 돌아오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은 영원히 아프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사라진 시간을 꾸역꾸역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21곡의 노래는 묵묵히 그 사람들을 가리키고 입을 다문다.

정재일은 바로 그 사람들의 시선으로 노래한다. 이 음반은 그 날 이후 청춘을 잃어버린 사람들, 가족을 빼앗긴 사람들, 삶이 바뀌어버린 사람들, 삶이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만가(輓歌)이다.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아프다. 만드는 사람은 미어지고 듣는 사람은 무너진다. 그러나 이 아픔이야말로 잊지 말아야 할 감각이다. 그는 오래 불러온 노래, 익숙해진 노래가 대신하지 못하는 통증을 고통스럽게 복원한다. 40년의 시간이 흐르며 이 감각을 잊고 외면한 것은 아니냐고 묻는다.

작곡가 겸 음악 감독 정재일. 2021.02.23.
작곡가 겸 음악 감독 정재일. 2021.02.23.ⓒ사진 제공 = 유니버설뮤직

정재일은 통증의 감각을 되살리고 전이시키기 위해 “고대 기독교 전통의 합창곡 형식”을 빌려오고, “아카펠라를 중심으로 절규하고 탄식하는 정은혜의 구음”을 가미한다. “일렉트로닉 음향”을 덧붙인다. 그리고 “현악 앙상블을 함께 구성”했다. 찬트(chants,성가의 한 형식)의 어법은 특유의 영적인 질감으로 40년의 시간을 넘어선다.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 사라져 가는 기억과 흔적을 대변하는 노래의 영롱한 질감을 표현하는데 찬트는 더할 나위 없다. 구음 역시 마찬가지이다. 남도의 곡진한 정서를 대변하는 육자백이의 구음이 더해지며 정재일의 음악은 남도 땅의 오랜 설움에 다가선다. 서로 다른 장르의 어법은 회상과 복원, 쟁투와 위로라는 상반된 역할을 말없이 수행한다.

정재일이 음악을 구성하는 방식은 이것만이 아니다. 정재일은 음악의 제목과 구약성서의 시편을 연결한다. 첫 번째 곡 ‘26.9’는 “이 목숨을 죄인들과 함께 거두지 마소서. 살인자들과 함께 이 생명을 거두지 마소서”라는 시편 26편 9절과 함께 들어야 한다. 두 번째 곡 ‘22.21’을 들을 때는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해주십시오. 주님께서는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들의 뿔에서 구원하셨습니다”라는 시편 구절을 읽어야 한다. 이처럼 시편 구절이나 성경과 함께 듣는 곡들은 참담했던 사건의 비극성을 더 시리게 대변한다. 광주의 비극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에게 기도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비극이라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정재일은 5월 이후의 사회과학이 밝혀 놓은 성찰 대신 예술의 길을 간다. 예술의 길은 감각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고, 감각과 마음을 기록하는 일이며, 감각과 마음을 재현하는 일이다. 비극으로 뭉개져버린 마음을 맨 처음 순간으로부터 오늘로 온전히 데려오는 일이다. 지나간 시간 속에서 낡고 변색되어 버린 감각의 원형을 찾아내 현재의 언어로 전달하는 일이다. 그 사이에 쌓인 상흔까지 추적해 붙잡아 오는 일이다.

어떤 곡들은 고요하고, 어떤 곡들은 처연하며, 어떤 곡들은 처절하다. 시편으로 제목을 붙인 숫자 제목의 곡들이 고요하고 비감하다면, 성경에서 따왔을 것으로 보이는 제목의 곡들은 드라마틱하다. ‘be not depart from me’에서 구음이 스며드는 순간이나, ‘why do you stand afar’에서 일렉트로닉 음향을 밀어붙였다가 구음으로 잇는 순간은 압도적이다. ‘his days are like a passing shadow’의 긴장감과 쓸쓸함은 음악으로 구현할 수 있는 인식과 감각의 절정이다.

‘memorare’는 음반의 주제의식을 압축한 명곡이다. 통곡이 음악이 되었다고 해야 할 곡들이 음반에 그득하다. 정재일은 차별적인 구성과 탁월한 사운드 메이킹으로 당시를 살아낸 사람들의 삶과 마음에 다가선다. 그 시간의 격동과 충격과 상처를 되살리며 여전한 흉터와 피딱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살아왔다고 증언한다. 잊지 말라고 기억하라고 요청한다. 알아들은 이들의 심장이 욱신거릴 정도로 강력한 요청이다.

우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시대에서 정태춘&박은옥의 ‘5.18’의 시대를 거쳐 정재일의 [psalms]의 시대로 왔다. 예술이 늪에 빠진 혁명을 구원하지는 못해도, 어떤 노래는 역사를 추억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우리는 더 아파도 된다. 아니 더 아파야 한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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