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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위해 군부와 아웅산 수치 모두 물러나야 한다
2018년 9월 13일, 베트남에서 열리고 있는 '아세안에 대한 세계경제포럼'에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이 참석하고 있다. 그로부터 한달도 채 되지 않아 캐나다가 미얀마의 잔혹 행위를 이유로 지난 2007년 수치에게 부여했던 명예시민 자격을 박탈했다. 그 이후 국제사면위원회의 최고 명예상인 '양심의 대사'상을 비롯해 한국의 광주인권상 등 여러 단체로부터 수상이 철회됐다.
2018년 9월 13일, 베트남에서 열리고 있는 '아세안에 대한 세계경제포럼'에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이 참석하고 있다. 그로부터 한달도 채 되지 않아 캐나다가 미얀마의 잔혹 행위를 이유로 지난 2007년 수치에게 부여했던 명예시민 자격을 박탈했다. 그 이후 국제사면위원회의 최고 명예상인 '양심의 대사'상을 비롯해 한국의 광주인권상 등 여러 단체로부터 수상이 철회됐다.ⓒ사진=AP/뉴시스

편집자주:미얀마에서 지난 2월 1일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뒤 아웅산 수치와 민주주의민족동맹 당 지도부가 잡혀갔다. 이후 미얀마에서는 군사독재 반대와 아웅산 수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점점 확산돼 유혈사태로 번졌다. 하지만 아웅산 수치를 바라보는 시선이 고운 것만은 아니다. 아웅산 수치가 미얀마의 민주화에 기여를 한 것인지 문제를 제기하는 카운터펀치의 기사를 소개한다. 서방 언론으로 미얀마 문제에 이해가 깊지 못하다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다수 언론과 결이 다른 시각으로 접근했다.
원문: Coup Leaders, Aung San Suu Kyi Betrayed Democracy in Burma

지금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군사쿠데타다. 군사명령으로 정권을 찬탈해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참모총장을 비선출 통치자로 세웠는데, 이같이 부당한 행동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민주화에 대한 끝없는 논의에도 불구하고 미얀마는 이번 쿠데타가 일어날 때조차도 진정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예전 여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당수 아웅산 수치는 국가고문이 됐지만 그 이후로 미얀마에 의미있는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한 일이 거의 없다. 수치는 영국에 정착했다 1988년 귀국해 1989년부터 6년간 가택 연금을 당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 활동가에서 ‘민주주의의 아이콘’이, 그리고 결국 아무도 손댈 수 없는 개인숭배 대상이 됐다.

2016년 선거 이후 만들어진 ‘국가고문’이라는 직책은 수치에게 모든 정부 지도자들보다 높은 지위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였다. 민주주의민족동맹은 남편과 자녀들이 영국인이기 때문에 수치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여전히 정부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군부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를 정당화했다.

하지만 단순히 그래서 수치가 국가고문이 된 것이 아니다. 최근 뉴욕타임스 기사가 지적했듯, 수치는 과거 군부가 미얀마를 통치했던 것과 매우 비슷한 방식으로 민주주의민족동맹을 통제했다. 뉴욕타임스는 더 구체적인 얘기도 썼다. “사람들이 민주주의민족동맹을 개인숭배 컬트라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고집 세고 오만하다는 비판을 자주 받는 수치는 당을 꽉 쥐고 그녀를 따르는 이들에게 충성과 순종을 요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사’의 과거 업적을 추앙했던 이들은 인권과 민주화 운동의 상징 같은 그녀가 2016년 선거에 참여하자 크게 실망했다. 핍박받는 미얀마의 여러 소수 종족들이 선거에서 배제됐기 때문이다.

소심하게 조금씩 겨우 나왔던 수치에 대한 비판은, 싹트기 시작한 미얀마 민주주의에 대한 세계적인 찬사에 완전히 묻혔다. 수치가 과거 군부와 손을 잡고 사실상 미얀마의 최고 통치자가 되자마자 다국적 재벌들, 특히 서양 다국적기업들이 그때까지의 경제제재 때문에 거의 개발되지 않은 미얀마의 천연자원을 노리고 양곤으로 몰려들었다.

정당한 문제제기가 많았지만 다 덮였다. 수십 년간 투쟁해 온 미얀마 국민의 의지를 상징하는 한 여성이 잔인한 군부로부터 기적적으로 쟁취해낸 ‘민주주의의 승리’에 대해 흠을 잡기 싫어서였다. 하지만 치밀하게 사전 조율된 낭만적인 장막 뒤에는 인종학살이 벌어지고 있었다.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난민수용소의 한 로힝야족 난민이 지난 14일 자신의 휴대전화에 에 촬영된 구 다르 파인 마을의 집단매장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AP 통신은 미얀마 구 다르 파인 마을에 아직까지 보고되지 않았던 호행야족 학살 집단매장지 5곳 이상이 있음을 로힝야 난민들과의 인터뷰 및 이들이 촬영한 휴대전화 동영상을 통해 확인했다. 2018.2.1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난민수용소의 한 로힝야족 난민이 지난 14일 자신의 휴대전화에 에 촬영된 구 다르 파인 마을의 집단매장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AP 통신은 미얀마 구 다르 파인 마을에 아직까지 보고되지 않았던 호행야족 학살 집단매장지 5곳 이상이 있음을 로힝야 난민들과의 인터뷰 및 이들이 촬영한 휴대전화 동영상을 통해 확인했다. 2018.2.1ⓒ사진=AP/뉴시스

로힝야족에 대한 살인, 강간과 대학살은 미얀마에서 수십 년간 이뤄졌다. 지난날 미얀마 군부가 로힝야 무슬림에 대한 ‘인종청소’를 자행할 때에는 그들의 잔혹한 만행이 완전히 간과되거나 그냥 미얀마 인권문제로 뭉뚱그려졌다.

2016~17년에 대학살이 더 심해지자 미얀마의 여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과 수치 개인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뤄져야 할 문제제기들이었다. 정부군과 지방 민병대의 손으로 이뤄지는 로힝야 대학살의 최근 사건이 막 불거지기 시작할 때 수치와 민주주의민족동맹은 이를 그저 종족간의 갈등으로 취급하며 모든 관련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그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설명이었다.

(주로 방글라데시로 간)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면서 로힝야족은 국제적으로 언론에 계속 등장하는 문제가 됐다. 로힝야족의 고통이 끔찍한 제목의 기사로 매일 찾아왔다. 유엔과 국제인권단체들이 강간과 살인 사례들을 기록했고 무슬림 57개국의 노력으로 헤이그에 있는 유엔 국제사법재판소에 미얀마의 대학살이 고발됐다.

수치와 민주주의민족동맹은 종족주의와 현실 정치를 우선시해 국제적 비판에 꿋꿋하게 반발하면서 공개적으로 자기 정부와 군을 옹호했다. 지난 12월 유엔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수치는 로힝야 대학살을 “1940년대부터 종족 간 갈등이 발생했는데 그 악순환의 일부”일 뿐이라고 증언했다. 수치는 그것으로도 부족해 국제 수사관과 인권단체의 ‘성급함’과 섣부른 판단을 비난했다.

수치는 많은 인권 전문가들이 ‘21세기 최악의 대학살 중 하나’라고 부르는 로힝야 사태를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함으로써 “인권과 민주주의의 수호자에서 잔인성에 대한 변명자”로 추락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우리는 미얀마에게 민간통치으로의 복귀를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인종이나 민족, 종교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의 권리를 존중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도 요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좋은 출발점이 될 만한 게 있다. 바로 미얀마의 모든 민주주의 운동에서 수치를 배제하는 것이다. 수치에게는 충분한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안타깝게도 실패했다.

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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