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에 식당에서 “음식이 아니라 폭력”이라고 외친 동물권 단체 활동가들이 업무방해 혐의로 법정에 섰다. 이들은 도살장뿐 아니라 돼지·소·닭 등 동물의 ‘살점’을 소비하는 식당 역시 ‘현장’이라며 비폭력 직접행동의 이유를 변론했다.
서울남부지법 약식1단독은 3일 동물권 직접행동 단체 디엑스이(DxE) 은영·섬나리(활동명) 활동가의 업무방해 혐의 첫 번째 변론기일을 열었다.
두 활동가는 2019년 12월 25일 서울 영등포구 대형쇼핑몰의 한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동물해방 관련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쳐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각 벌금 50만 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으나, 이에 불복한 이들이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사건 당시를 촬영한 영상을 살펴보면, 30여 명의 디엑스이 활동가들은 쇼핑몰 내 실내동물원, 식당가 등에서 ‘크리스마스에는 해방을’이라고 개사한 캐럴을 합창하며 ‘방해 시위’를 했다. 방해 시위는 동물 착취가 일상이 된 사회를 낯설게 하는 비폭력 직접행동의 일환이다.
검찰은 특히 패밀리레스토랑의 방해 시위를 문제 삼았다. 활동가들은 식당 내 손님들을 향해 “음식이 아니라 폭력”이라고 말했다.

향기 활동가는 “다들 사랑하는 사람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있나. 당신의 접시 위 동물도 그러고 싶을 것”이라며 “누구도 동물이 생존할 권리, 동물답게 살 권리를 빼앗을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신이 사랑을 느끼는 동물을 떠올려봐라. 개고기, 고양이고기를 판다면 소비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크리스마스 같은 기념일엔 육식 소비가 더 급증하는 현실도 지적됐다. 은영 활동가는 “기념일엔 도살장에 피가 더 넘쳐 흐른다. 그 피가 이곳에 흐른다면 모두 폭력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동물의 고통과 분리된 현실을 꼬집었다.
이날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은영 활동가는 국회, 도살장 앞이 아닌 식당에서 방해 시위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레스토랑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며 동시에 동물의 끔찍한 현실이 다시 한번 처참하게 가려지는 공간”이라며 “(방해 시위는) 어느 식당 하나의 폐쇄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은폐되며 평생의 삶에서 철저히 고통받는 동물들의 현실을 마주하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죽기 위해 태어난 동물들은 “권리의 이름이 붙여질 수조차 없는 현실”에 놓여있다며 그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의제는 공론장에서 다수에게 쉽게 공감되지 못하고 무시된다”라고 지적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발해 크레인에 올라간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이동권 투쟁을 위해 지하철 선로를 가로막은 장애인들을 언급하며 “더 나은 사회로의 변화를 위한 무수한 시민 불복종과 직접행동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의 ‘불성실 기소’가 지적되기도 했다.
검찰은 공소장에 두 사람이 ‘왜 고기를 먹느냐! 동물을 사랑합시다! 다 여러분의 반려동물이다!’라고 외쳤다고 적시했는데, 법정에서 당시 영상을 확인한 결과 이같이 말한 사실이 없었다.
재판부는 이날 변론을 종결할 수 없다며 검찰에 사실관계를 다시 조사하라고 말했다. 검찰은 다음 기일에서 공소장 변경을 신청하겠다는 취지로 답했다.
한편 디엑스이 활동가들은 재판이 끝난 뒤 서울 양천구의 모 백화점 정육코너에서 방해 시위를 벌였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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