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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귀천의 일과 법] 세계 여성의 날과 여권통문의 날

3월 8일은 1977년 유엔이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고, 우리나라도 1985년부터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왔는데, 2018년에는 양성평등기본법을 개정하여 3월 8일을 여성의 날로 하는 것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즉, 양성평등기본법 제38조 제1항은 “범국민적으로 양성평등 실현을 촉진하기 위하여 매년 3월 8일을 여성의 날로 하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1년 중 1주간을 양성평등주간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미국 노동자들이 궐기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1908년 3월 8일 미국의 1만 5000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노동환경 개선, 여성의 선거권 쟁취를 위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당시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하루 12~14시간씩 일했지만 임금은 남성의 절반밖에 받지 못했고, 선거권도 갖지 못했다. 따라서 당시 여성들은 생존권과 참정권을 절박하게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의류산업 여성노동자들의 조직화 등 여성들의 폭넓은 연대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3시 스톱(STOP) 조기퇴근시위에서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등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3시 스톱(STOP) 조기퇴근시위에서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등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철수 기자

한편, 양성평등기본법 제38조 제2항을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이 발표된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매년 9월 1일을 여권통문(女權通文)의 날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성의 날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여권통문의 날은 생소할 수 있다. 여권통문의 날 지정에 관한 양성평등기본법 일부개정에 관한 정부의 2019년 10월 31일 보도자료에 따르면 여권통문의 날은, 우리나라 최초 여성권리선언으로 한국 여성운동의 시작점이 된 여권통문이 선언된 날을 기념하고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다. ‘여권통문’이란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에서 이소사, 김소사(‘소사(召史)’는 기혼여성을 일컫는 말이다.)의 이름으로 선언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으로, 여성의 교육권, 직업권, 참정권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즉, 첫째, 문명 개화정치를 수행함에 여성들도 참여할 권리가 있으며, 둘째, 여성들도 남성과 평등하게 직업을 가질 권리가 있고, 셋째, 여성도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였다. 이는 자연스럽게 여권운동으로 이어졌다(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즉, 단지 선언에만 그치지 않고 이후 국내 최초의 여성단체(찬양회)와 한국여성에 의한 최초의 여학교(순성여학교) 설립 등으로 이어져 실천력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혹 이목구비와 사지 오관(四肢五官)의 육체에 남녀가 다름이 있는가. 어찌하여 병신처럼 사나이가 벌어 주는 것만 앉아서 먹고 평생을 깊은 집에 있으면서 남의 제어만 받으리오.” 이는 여권통문에 나오는 문장이다. 남녀평등에 기반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노동자들이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했다면, 우리나라 여성들은 그보다 약 10년 전에 이미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권과 참정권을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들의 외침이 이후 여성노동자 조직화의 실천으로 이어졌다면 1898년 9월 1일 조선 여성들의 선언은 여성단체와 여학교 설립의 실천으로 이어졌다. 그 시대 여성들의 절박한 외침과 요구는 담대하고 아름다운 연대와 개척의 역사를 만드는 도화선이 된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 이후, 특히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는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극심한 노동착취에 시달리던 여성 공장노동자들이 민주노조운동의 주축이 되어 강건한 연대 정신을 보여줬다.

여권통문의 날 소개한 여성가족부 홍보 이미지
여권통문의 날 소개한 여성가족부 홍보 이미지ⓒ여성가족부

미국 여성 노동자보다 10년 전 먼저
경제활동 참여권과 참정을 요구한 우리 여성들
여성 구직자나 노동자 여전히 성차별 피해
OECD 회원국 중 남녀 임금격차 비율은 부동의 1위

현재 우리나라 여성노동자들의 상황은 어떠한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이라 함)이 1988년부터 시행되어 어느덧 30년이 넘었고, 여성 고용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성 구직자나 여성 노동자들은 여전히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성차별의 피해를 받고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모집‧채용, 임금, 임금 외의 금품, 복리후생, 교육‧배치‧승진, 정년‧퇴직 및 해고에서의 성차별 금지 규정과 각 규정 위반에 대한 형벌 규정을 두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이들 규정 위반을 이유로 형사처벌이 이루어지는 사례는 별로 많지 않고, 고용상 성차별 사건에 대한 입증의 어려움, 형사처벌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소극적인 태도 등으로 인한 한계가 있다.

공기업과 은행의 채용과정에서 합격권에 들어간 여성 지원자들을 떨어뜨리기 위해 면접점수를 조작하여 탈락시킨 사건, 유명 주류회사에서 1950년대 후반 창사 이후 결혼하는 여직원을 예외 없이 퇴사시키도록 하면서 퇴사를 거부하는 여성에게는 근무환경을 적대적으로 만들거나 부적절한 인사조치를 통해 퇴사를 강요한 사건, 방송사에서 남성아나운서는 정규직으로 채용하지만 여성아나운서는 비정규직으로만 채용한 사건, 제약회사 채용 면접에서 ‘여자들은 군대 안 가니까 남자보다 월급 적게 받는 것에 동의하냐?’고 질문한 사건... 최근 몇 년간 언론을 장식한 채용 성차별 사건들이다. 여성들은 남성들과 동등하게 혹은 더 우수하게 학업을 마치고, 취업시장에 도전하지만 취업을 위해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직, 간접적인 채용성차별에 의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되는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취업이 되더라도 결혼,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해 노동시장에서 배제되는 좌절을 다시 겪게 된다. 특히 여성의 고용률은 결혼·임신·출산·육아 등의 경력단절이 발생하는 30대 후반을 기점으로 M자형의 모양을 보이는데, OECD 회원국 중 30대 여성 고용률이 갑자기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곳은 한국과 일본뿐이라고 한다. 최근 모 병원장이 임신을 이유로 퇴사를 종용해 유산의 위험을 느낀 직원이 퇴사하자 ‘입사할 때는 임신 계획이 없다고 하더니, 몰래 임신한 사기꾼’이라고 말했다고 하는 일화는 왜 30대 여성 고용률이 하락할 수밖에 없는지, 왜 우리나라 출산률이 세계 최저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우리나라 여성 고용률은 20대 후반이 가장 높고, 이어서 40대 후반, 50대 전반 순으로 높다. 출산, 육아 등으로 인해 30대, 40대에 경력이 단절되었던 중장년 여성노동자들은 40대 후반, 50대 전반에 비로소 저임금 일자리에 불안정고용형태로 다시 취업하게 되는 것이다.

비정규직 여성일자리 중 특히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일자리에 여성이 집중되어 있다. 2019년 8월 기준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근로자는 주로 여성(73.3%) 임금근로자로 이루어져 있다. 초단시간 근로자의 경우 유급휴가, 주휴수당, 퇴직금 등을 받지 못하며, 산재보험을 제외한 사회보험을 적용받지 못하고,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 관한 법률’상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등 노동법 및 사회보장법의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한다. 특히 여성 집중 업종인 보건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중요성은 코로나 19 사태이후 두드러지게 부각되었지만 이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는 여전하다.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2018년 제8차 한국정부 심의 최종 견해에서 “OECD 국가 중 가장 심각하게 성별임금격차가 지속되는 것에 대한 우려, 초단시간 노동자의 여성비율이 70.2%이고 그들이 노동법과 사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과 일정 기간 이상 고용보험에 가입한 사람에 한해 보장이 이루어지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다.

2019년 8월 31일 서울 종로구 북촌문화센터에서 열린 '이름 없는 북촌 여성들의 외침, 여권통문'에서 관계자가 여권통문 글자에 색칠을 하고 있다. 이 행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인권선언 '여권통문' 발표 121주년을 기념하며 개최됐다.
2019년 8월 31일 서울 종로구 북촌문화센터에서 열린 '이름 없는 북촌 여성들의 외침, 여권통문'에서 관계자가 여권통문 글자에 색칠을 하고 있다. 이 행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인권선언 '여권통문' 발표 121주년을 기념하며 개최됐다.ⓒ뉴스1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 남녀 임금격차 비율은 오랫동안 부동의 1위이다. 2019년 남녀 임금격차 비율은 32.5%로 OECD 회원국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수준의 여성 고등교육 이수율을 보이고 있는 국가인데 최하위 수준의 남녀임금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이례적인 사례라고 한다. 또한 대졸 여성들의 취업률이 OECD 최저수준이라는 점에서도 이례적이다. 노동시장에서는 저학력 여성들의 경제활동 기회가 더 많고, 그 결과 여성이 저임금 노동시장에 집중되어 성별임금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중소기업의 경우 남녀간 직접적인 임금차별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여성들이 주로 중소기업에 고용되어 있다는 점도 성별임금격차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대기업의 경우, 직접적인 임금차별은 없다 하더라도 승진과 배치에서의 차별로 인해 고임금을 받는 관리직이나 임원급에 해당되는 여성이 적어서 결국 남녀 임금격차가 커진다.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이 이러하기에 123년 전 한국의 여성들이, 113년 전 미국의 여성들이 외쳤던 남성과 동등한 노동권과 생존권 보장의 요구는 2021년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계속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 19라는 악재가 덮친 지금의 현실은 저임금, 비정규직, 소규모 사업장에 집중되어 있는 여성노동자들에게 더욱 어두워 보이지만 과거부터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결국 여성 연대의 힘을 통해 길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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