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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에도 분류작업 여전히 택배기사 몫... “장시간 노동 변함 없어”
21일 서울 서초구 CJ대한통운 강남2지사 터미널 택배분류 작업장에서 택배기사들이 택배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2020.10.21
21일 서울 서초구 CJ대한통운 강남2지사 터미널 택배분류 작업장에서 택배기사들이 택배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2020.10.21ⓒ국회사진취재단

지난해 잇따라 발생한 택배노동자 과로사로 인해 국내 대형 택배3사(CJ대한통운, 한진, 롯데)는 분류인력 투입을 약속했다. 작년 10월 국내 1위 택배사업자인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 5명당 1명꼴인 분류인력 4천명을, 한진과 롯데택배는 8~9명당 1명꼴인 각각 1천명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택배기사 장시간 노동의 원인으로 지목된 분류작업 인력을 충원해 노동강도와 노동시간을 줄이겠다는 목적이었다.

택배사들의 이러한 ‘약속’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의무’가 됐다. 지난해 12월 정부와 국회, 택배사업자, 종사자, 소비자, 화주 등이 참여해 출범한 사회적 합의기구는 1차 합의안을 통해 분류작업에 대한 책임이 택배사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택배사들로서는 분류작업 업무를 위해 분류인력을 투입하거나 분류작업을 하는 택배기사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택배사들이 처음 분류인력 투입을 약속한 지 5개월가량이 흐른 현재 택배기사들은 분류작업에서 벗어났을까.

11일 사회적 합의기구 관계자에 따르면 3월 초 기준 택배3사의 분류인력 투입 현황은 CJ대한통운 4,153명, 한진과 롯데 각각 200명이다. 택배3사는 사회적 합의기구 1차 합의 이후 매일 국토부에 분류인력 투입 현황을 보고하고 있다.

CJ대한통운만 애초 약속한 분류인력 투입을 마친 셈이다. 한진과 롯데는 투입 인력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시범사업장을 선정해 200명을 우선 투입했다. 자동화 설비인 ‘휠소터(지역자동분류기)’를 갖추지 못한 두 택배사의 경우 5명당 1명의 분류인력이 필요한 CJ대한통운과 달리 2명당 1명꼴의 분류인력 투입이 필요하다. 따라서 1천명의 분류인력을 투입하기에 앞서 시범사업장 운영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양사는 시범사업장 운영 결과를 토대로 오는 5월까지 분류인력 투입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택배노조 자료사진
택배노조 자료사진ⓒ김철수 기자

실무점검단, 분류인력 투입 현황 점검 내용 살펴보니

CJ대한통운의 경우 약속된 분류인력(4천명) 투입을 완료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택배기사들이 분류작업에 노동시간을 투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합의기구가 택배사들의 분류인력 투입 현황을 점검하기 위해 구성한 ‘분류인력 투입 실무점검단(실무점검단)’이 지난달 2일과 3일 불시 현장점검을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4천명 이상을 투입했다는 CJ대한통운의 주장과 달리 여전히 택배기사들이 분류작업에 투입되고 있었다.

한 실무점검단 관계자는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 5명당 1명꼴인 분류인력 4천명을 투입했다고 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여전히 분류인력이 부족했다”며 “분류인력 1명이 택배기사 8명~9명의 분류작업을 담당하는 대리점도 있었다. 분류인력 1명이 최대 택배기사 11명의 분류작업을 담당하는 곳도 확인됐다”고 말했다.

택배사와 분류인력 인건비를 나눠 부담하고 대리점이 비용 절감을 위해 정해진 분류작업 시간보다 짧게 분류인력이 운용되기도 했다. 실무점검단 관계자는 “대리점들이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분류인력 운용시간을 줄이는 사례도 있었다”면서 “보통 분류작업은 7시에 시작돼 오후 1~2시까지 이어지지만, 실제 분류인력 운영 시간은 오전 8시부터 낮 12시까지였다”고 설명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분류인력 투입은 장시간 노동 문제 해결이 핵심이다. 택배기사는 하루 평균 14시간, 주당 71시간 일한다. 법에서 정한 과로사 인정 기준 ‘주 64시간 노동’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리고 하루 14시간 노동 중 절반을 분류작업에 매달린다.

실제 분류인력이 투입된 이후에도 택배기사들의 노동시간은 단축되지 않았다. 분류인력이 투입되기 전인 7시에 출근해야 하며, 분류인력 운용이 끝나는 시간 이후 추가 분류작업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과로사대책위 관계자는 “결국 택배기사들은 분류인력 투입 전과 변함없이 오전 7시에 출근해 분류작업에 나서야 한다”면서 “분류인력이 부족한 곳의 경우 분류작업도 함께 해야 한다. 노동강도는 조금 완화되겠지만 결국 노동시간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진과 롯데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범사업장이 선정돼 운영 중이지만 분류인력의 업무가 분류작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업무인 사례가 있었다.

롯데와 한진 서브터미널을 직접 점검한 실무점검단 관계자는 “분류작업 투입 노동자를 대리점 소장들이 논의해 배치하고 있는데, 상당수가 분류작업과 직접 연관되지 않은 업무에 투입되고 있었다”면서 “간선차량에서 하차된 택배물량을 스캐너로 찍는 핸디작업이나 해당 물량을 컨테이너벨트로 옮기는 치환작업 등에 투입됐다”고 강조했다.

핸디작업의 경우 분류인력이 투입되기 전까지 별도의 인력이 운영되지 않다가 택배물품 분실을 줄이기 위해 새로 생긴 업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 치환작업은 기존에 대리점 소장들이 돌아가며 맡아왔던 업무다. 사실상 대리점 소장들이 분류인력에 자신의 업무를 떠넘긴 셈이다.

과로사대책위 관계자는 “실제 시범사업장으로 지정된 현장 택배기사들에게 확인한 결과 ‘분류인력 투입 후에도 노동시간에 변화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사회적 합의기구 논의에서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택배사 측은 이 같은 사실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입장이다. 롯데택배 관계자는 “사회적합의기구 내에서 합의된 내용대로 시범사업장을 운영 중”이라며 “분명 본사가 분류인력으로 현장에 투입했지만, 대리점이 인력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다른 업무를 지시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또 이 관계자는 택배기사들이 장시간 노동을 지속하고 있는 데 대해 “대리점이 분류인력을 운용하는데 있어 시간을 잘 조율 한다면 충분히 노동시간 단축도 가능하지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류센터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물류센터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뉴시스

사회적 합의 이행점검단 점검 결과...
“대리점 소장, 본인이나 가족 분류인력 등록 꼼수도”

실무점검단과 별개로 택배노조와 진보당 등으로 구성된 ‘사회적 합의 이행점검단(이행점검단)’이 직접 현장을 확인한 결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꾸려진 이행점검단은 올해 5월까지 전국에 있는 서브터미널 300여곳을 대상으로 점검활동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날 기준 서울·경기와 강원, 부산 등 전국의 약 70여곳의 서브터미널에 대한 점검을 진행했다.

주요 점검 내용은 택배사와 대리점의 사회적 합의 이행 여부다. 점검 결과 합의 내용 위반 사례는 대부분 CJ대한통운에서만 확인됐다. 롯데와 한진의 경우 일부 시범사업장으로 선정된 서브터미널에만 분류인력이 투입 중이기 때문이다.

이행점검단 관계자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은 본사와 대리점이 분류인력 인건비를 부담하기로 했지만, 일부 대리점들은 여전히 택배기사에 비용을 전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대리점이 본사로부터 분류인력 비용을 지원받았음에도 분류인력을 고용하지 않는 사례도 확인했다. 이 경우 대리점 소장은 본인이나 가족들을 분류인력으로 등록해두는 꼼수도 있었다.

이행점검단으로 활동 중인 남희정 택배노조 서울지부장은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1차 합의안이 마련됐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며 “대리점마다 차이는 있지만, 아직도 많은 택배기사가 분류인력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사례가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또 남 지부장은 “그나마 분류인력을 운영 중인 곳들의 경우 대리점 소장이 자신을 분류인력으로 등록해 운영되는 경우도 허다했다”면서 “대리점 소장이 분류작업을 제대로 하겠나. 결국 택배기사들은 하는 분류작업을 거드는 정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택배사 측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협의가 이뤄진 내용대로 인력을 충원했다. 이후엔 현장별로 상황이 다른 곳의 경우 차츰 개선해나가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면서 “구체적인 내용은 사회적 합의기구 논의가 진행 중인 만큼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윤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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