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여성이 만난 하나님] 여성의 외침과 연대가 멋진 이유
113주년 3.8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등 여성노동정책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2021.03.08
113주년 3.8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등 여성노동정책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2021.03.08ⓒ김철수 기자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3월 8일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근로 여건 개선과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을 계기로, 유엔은 1975년 이날을 ‘세계 여성의 해’로 지정하여 기념하게 되었다고 한다. ‘세계 여성의 날’이 제정되기까지 여성들의 인권 유린과 노동력 착취라는 고통의 역사가 있었고, 이 같은 성차별적 악습을 묵인하지 않고 저항하는 외침이 있었다는 얘기다. 여성의 참정권을 다룬 영화 ‘서프러제트’(2015)는 20세기 초 영국에서 여성들이 참정권을 주장하기까지 얼마나 부당한 폭력과 버림을 당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어디 이 뿐이랴! 오늘날 여성들이 누리는 인권과 교육권도 과거 여성들의 외침과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프랑스의 올랭프 드 구즈Olympe de Gouges는 프랑스 인권선언에서 남성형 명사로 쓰인 ‘인간’이라는 단어들을 여성형으로 모두 바꿔,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1791)을 만들었다. 그녀는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 그렇다면 의정 단상에 오를 권리도 있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는데, 실제로 반혁명 혐의로 단두대에서 생애를 마감했다고 한다.

여성의 교육권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Mary Wollstonecraft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가정교사를 하면서, 딸도 아들과 동등하게 교육 받아야한다고 것을 주장하였다. 과거에 여성들이 이렇게 외치지 않았다면, 과연 현재 여성들이 자유롭게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었을까? 남성에겐 자연스레 주어지는 권리들이 왜 여성에겐 이처럼 외침과 저항 끝에야 주어지는 것일까?

17세기 교육신학자 코메니우스 J. A. Comenius는 “모든 인간이 소유한 평등한 본성이란 물방울 위에 물방울이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사람 위에 사람 없음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보기엔 이 말은 기득권을 누리는 남성이 먼저 실천해야 할 말 같은데, 현실에선 여성들이 동등한 자유와 권리를 부르짖고 있다. 해서 여성의 역사는 외침과 도전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여전히 전통과 문화라는 이름으로,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성차별적이며 불공평한 규범과 관습들이 너무도 많다. 안타깝게도 가부장제가 강하게 작동하는 조직과 교회일수록, 여성의 외침은 찾아보기 힘들며,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더 많이 통용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말은 남성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말에 길든 여성들이 동료 여성들을 공격하도록 만든 말일 뿐이다. 나는 여성의 역사는 저항의 역사요, 여성의 외침이야말로 인류 사회의 진보를 이룰 수 있는 멋진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여성들의 연대가 세상을 바꾼다!

여성의 외침에서 빠져선 안 될 요소는 바로 ‘여성들의 연대’이다. 성서를 보면, 여성들이 연대하여 모세에게 ‘상속법’을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수 27:1-11). 이 본문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에겐 전율과 도전을 준 말씀이다. 성서 본문을 설명하면 이렇다. 슬로브핫의 다섯 딸(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은 모세의 가나안 정복 후, 각 지파 중 남자 20세 이상의 남자에게만 땅을 분배하는 상속법으로 인해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지 못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에 슬로브핫의 다섯 딸은 모세와 제사장, 족장들과 온 회장 앞으로 나아가 자신에게도 기업을 달라고 요청한다. 그 이유는 아들이 없다고 해서 아버지의 이름이 삭제될 수 없음과 그녀들이 결혼하게 되면 대가 끊어지기 때문이었다(민 27:4). 모세는 슬로브핫 딸들의 호소를 무시하지 않고 하나님에게로 가져갔는데, 하나님은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다..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비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얻게 하되 그 아비의 기업으로 그들에게 돌릴지니라”(민 27:7)라고 응답하셨다.

호글라를 비롯한 슬로브핫의 딸들이 자기들의 몫을 측량하는 모습(민27:1~11), 그리스 사본인 여호수아의 두루마리 삽화, 12세기 이전
호글라를 비롯한 슬로브핫의 딸들이 자기들의 몫을 측량하는 모습(민27:1~11), 그리스 사본인 여호수아의 두루마리 삽화, 12세기 이전ⓒ바티칸 도서관 소장

슬로브핫의 딸들의 문제 제기로 새롭게 제정된 상속법은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 아들이 없는 사람은 딸에게 상속하고, 자식이 없거나 형제조차 없는 사람에게도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규정이 되었다. 가부장의 질서가 신적 질서로 자리매김된 시대임에도, 슬로브핫의 다섯 딸이 연대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모습은 21세기 오늘날에도 압권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지닌 남성들은 여성이 권리를 요구하며 소리를 내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린 남성들의 협력도 멋지다!

슬로브핫 다섯 딸의 용기가 어디에서 나왔을까 궁금하여 찾아보니, 아버지 슬로브핫의 가정교육에서 비롯되었을 거라 추정하기도 한다(메리 에반스). 그 당시 결혼과 상속은 현재와 미래 후손을 먹여 살리기 위한 필수 요소였으며, 기업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복과 관련되었기에, 아버지 슬로브핫은 다섯 딸에게 가정교육을 통해, 용기를 북돋아 주었을 테고, 아버지가 죽자, 마침내 다섯 딸이 모두 한 마음으로 연대하여 모세 앞에 나아가 요청할 수 있었으리라 추측하게 된다. 슬로브핫 다섯 딸이 모세와 두령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존경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걸 보면(4절), 아버지 슬로브핫은 주체적이며 용기 있는 딸들로 키울 만큼 멋진 아버지였지 싶다.

또한, 슬로브핫 딸들의 문제 제기가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가부장적 질서와 규범을 깨는 새로운 상속법 제정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모세가 보여준 열림과 겸손의 리더십도 큰 몫을 했다. 모세 역시 남성적 신관과 가부장적 여성관에 갇혀, “어디서 여자가 땅을 달라고 해!”라며 즉각 거절할 수도 있었을 턴데, 슬로브핫 딸들의 요청을 외면하지 않고 하나님께 그 사연을 가져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모세라는 인물의 됨됨이와 신앙, 그리고 리더십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된다.

예수는 당시 인간으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여성들과 늘 함께 했다. 그림은 이탈리아 화가 자코포 바사노가 그린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의 집에 계신 예수.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를 따르던 여성들이다.
예수는 당시 인간으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여성들과 늘 함께 했다. 그림은 이탈리아 화가 자코포 바사노가 그린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의 집에 계신 예수.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를 따르던 여성들이다.ⓒ기타

물론 성서는 모세의 온유함과 충성스러운 성정을 언급한 바 있다(민 12:3-8). 하나님이 인정하는 리더의 모습은 홍해를 가르며 기적을 행하는 능력의 종으로서의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 앞과 사람 특히, 여성에게 열려있는 모세의 모습에 있다고 해석하게 된다. 추적해보면, 모세가 태어날 당시, 애굽의 바로 왕이 “남자 아기를 죽이라”는 명령으로 인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지만, 엄마 요게벳과 누이 미리암, 히브리 산파들, 바로의 딸의 헌신과 돌봄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기에, 모세가 여성에게 호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추측도 가능해진다.

만약에 모세가 다섯 딸의 요청을 거절했다면, 회막 문에 모인 이스라엘 지파 남성 대표들과 기업을 나눠 갖는 아버지 형제들의 분노와 응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위에 언급한 성경 본문은 모세처럼 여성의 하나님에 대해 열려야 더 크신 하나님의 공의와 지혜를 잘 드러낼 수 있으며,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여성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여성의 편이시다!

슬로브핫 딸들의 사연을 들은 하나님의 응답에서 인간의 성 편견과 사회문화적 한계를 뛰어넘는 공의의 하나님을 엿볼 수 있다. 사실, 아들과 딸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지 않은가! 아버지 슬로브핫이 가부장 시대에서 얼마나 간절히 아들을 원했을지 짐작이 간다. 슬로브핫 딸들의 외침은 오늘날에도 가족이나 교회가 행복할 수 있다면 기꺼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도록 요구 받는 여성들에게, 가부장의 하나님과 여성을 지으신 하나님 사이에서 어떤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야 할지 용기와 도전을 준다.

물론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외치는 일은 현실적으로 만만치 않다. 권력과 지식을 독점한 남성 중심의 사회나 교회에서 여성의 외침은, 왕따를 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으며 쫓겨나는 일도 왕왕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성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여성의 편이 되신다고 믿는다. 어느 드라마를 보다가, “권리 위에서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말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쓰지 않는 사람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던가. 현대사회는 여성의 인권과 자기 결정권, 노동권과 남녀평등 사상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다. 대한민국 헌법과 국가인권위원회법, ‘남녀고용평등과 일에 관한 법률’과 ‘여성 평등 기본법’은 법적으로 여성을 보호하며 남녀평등 실현을 위해 제정된 것이다.

남성적 신관과 가부장적 질서가 우세했던 모세 시대에도 슬로브핫의 다섯 딸이 상속을 요구하면, 하나님이 ‘옳다’고 편을 들어주시고 그에 따라 새로운 상속법이 제정되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더 당당하게 여성의 자율과 권리, 필요와 소신을 외쳐야 하지 않을까. 여성의 외침은 단지 여성만을 위한 게 아니라, 모든 인간의 존엄과 정의를 지켜내는 일이며, 궁극적으론 평화와 인간성을 도모하는 길이다. 이것이 여성들의 외침과 연대가 멋진 이유이다.

강호숙 박사(기독인문학연구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