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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내나는 삶] 노동자에 대한 일상화 된 차별과 배제
2020년 10월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열린 '전태일 50주기 주모의 달 선포식'에서 노동자들이 추모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2020.10
2020년 10월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열린 '전태일 50주기 주모의 달 선포식'에서 노동자들이 추모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2020.10ⓒ김철수 기자

많은 사람이 잘사는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제성장’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지상 과제인 듯하다. 지난해부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많은 나라의 경제 활동을 비롯한 일상생활이 제한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방역에 노력을 기울여 경제 활동 제한을 줄이며 일상생활을 유지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K-방역의 우수성과 우리의 경제성장을 자랑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선진국이라고 자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사회는 그 사회에서 누가 어떻게 차별받고 배제되는지를 통해 규정된다. 우리 사회에는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있고, 이 재난으로 일터에서 가장 먼저 쫓겨난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은 이전보다 더 열악한 조건에서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한다. 여기에는 K-방역의 우수성도, 자랑할 만한 경제적 안정성도 찾아볼 수 없다. 무수히 많은 사회적 약자들, 특히 노동자들이 차별받고 배제되는 사회가 우리 사회이다. 한 사회의 잔인성과 야만성은 이들이 차별당하고 배제되는 정도에 비례한다.

문화적 차별

나는 1990년 천주교 예수회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했고, 1992년부터 가톨릭 노동청년회(지오세) 회원들을 만나 그들의 삶의 애환을 들었다. 우리 사회는 노동을 천한 일 정도로 여긴다. 당연히 천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천한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학교에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가르치지만 많은 사람이 이런 천한 노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이런 문화 속에서 노동자는 당연히 열등한 존재이다. 이것이 우리 문화 안에 존재하는 차별 문화다. 내가 만난 가톨릭 노동청년회의 투사들은 이런 열등감을 극복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노동자를 차별하는 세상의 관점이 아닌 ‘노동의 신성함’이란 관점에서 노동을 이해했고, 다른 동료 노동자들을 해방시키고자 가톨릭 노동 청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의 모습. 2020.6.15
사진은 서울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의 모습. 2020.6.15ⓒ뉴스1

제도적 차별

문화적 차별 외에도 노동자는 제도적으로도 보호받지 못한다. 50년 전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며 근로기준법을 불태웠다. 법은 있되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노동 착취로 이어졌다. 이런 제도적 차별은 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1997년 말 도래한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마치 일반적인 고용형태인 양 노동 현장에 자리를 잡았다. 이 때문에 불안정한 고용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제 어림잡아도 천만이 넘는다.

이들은 노동자 중에 더 천한 대접을 받는 노동자이다. 자본은 법을 무시하고 갖은 술수를 써 가며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했다. 그런데 불법을 행한 것에 대한 형량은 너무도 약하다. 결국 자본은 벌금을 조금 내고 엄청난 이익을 챙기는 것을 선택한다. 이런 상황에서 법은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제도가 아니라 자본가가 안심하고 어길 수 있게 해주는 제도가 된다.

또 우리 사회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에도 매우 인색하다. 기업들은 위험한 공정은 외주 하청을 준다.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런 위험한 공정에서 작업할 것을 강요받기 때문에 산업 재해의 대부분이 이들에게서 발생한다. 매일 6~7명의 노동자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죽음의 외주화’이다. 노동자들과 피해자 가족들은 최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청원했는데 국회에서 이 법이 제정되는 과정과 최종 법안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노동자를 위한 국가는 없는 듯하다.

차별받는 청년

이처럼 노동에 대한 존중이 없고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청년들은 양질의 일자리가 보장된 대기업과 공기업의 정규직으로, 그리고 공무원으로 취직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런데 양질의 일자리가 보장된 직업을 구하는 건 이미 대학 진학 때 결정되는데, 고가의 사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는 수입이 적은 노동자의 자녀들은 명문 대학에 진학하기가 쉽지 않다.
설령 진학한다 하더라도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부모의 사회적 관계망(부모 찬스)을 통한 혜택을 받을 수도 없다. 그러니 양질의 일자리가 보장된 직업을 구하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기’에 가깝다. 청년들에게 미래를 위한 기회는 균등하지 않고 차별적이다.

이주노동자 자료사진
이주노동자 자료사진ⓒ민중의소리

노동차별과 인종차별에 함께 노출된 이주노동자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오랜 무시와 차별로 인해 우리 사회엔 노동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3D 업종은 열악한 노동조건이 더해져 오래전부터 노동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업종은 노동시장 가운데서도 최악의 노동문제가 집중된 곳이다. 이런 자리를 이주노동자들이 메우고 있다.

그러니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차별과 함께 인종차별이라는 이중 차별을 당한다. 한 예로, 지난 12월 20일 캄보디아 국적의 여성 이주노동자 속헹 씨가 한 농가의 기숙사라고 불리는 움막과 같은 비닐하우스 내 시설에서 간경화로 사망했다. 한 인간을 살 수 없는 조건에서 살도록 방치한 잔인함과 차별적 우월 의식이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우리는 같은 인간을 국적과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 이하의 삶을 살도록 강요한 우리 사회 문화와 잔인한 인간성에 대해서 반성해야만 한다.

이처럼 노동자들은 이 사회를 위해 엄청난 기여를 하지만 차별과 배제로 삶의 풍요로움을 빼앗긴 채 좌절을 강요받고 있다. 개개인의 존엄을 잃어버린 사회는 목적과 목표를 잃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방향을 잃은 사회는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가 모든 사람들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고려하고, 그들이 최선의 삶을 찾도록 지지할 때 ‘사회적 우정’과 모든 사람에게 열린 ‘형제애’가 비로소 가능해짐을(‘모든 형제들’ 94항 참조) 강조하며 우리에게 차별과 배제가 없는 세상을 만들라고 요구한다.

김정대 예수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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