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소극장을 채운 삐라와 폭격 소리...전쟁 실체를 보여준 연극 ‘코스모스:여명의 하코다테’

극단 골목길의 연극 '코스모스:여명의 하코다테'ⓒ김봉진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소극장 '예술공간 혜화'는 미군의 공습 포탄 소리로 쿵쿵 울렸다. 미사일 같은 것이 매섭게 땅에 내리꽂히는 소리와 돌무더기가 쿵쿵 무너지는 듯한 소리는 지금 이 현장이 전쟁의 중임을 알게 했다. 극단 골목길 박근형 연출가가 새롭게 선보인 연극 '코스모스:여명의 하코다테' 무대였다.

이번 무대는 1945년 일본으로 징용돼 끌려온 조선인의 역사와 미국 공습에 피해를 본 일본 민간인들의 역사를 중첩시키며 전쟁의 현장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작품의 뿌리는 박근형 연출가의 지난 경험에서 시작됐다. 박 연출가는 '연출의 글'을 통해 과거 일본 아오모리에서 만난 뒷골목 선술집 할머니 두 분의 이야기를 언급했다. 박 연출가는 조선말을 하는 박근형과 젊은 일행들을 본 할머니 한 분이 눈물을 흘리며, 1940년대 징용으로 끌려온 조선 사람을 그리워했다는 일화를 전했다.

박 연출가는 이 이야기에 상상력을 덧붙였다. 낯선 땅, 낯선 언어, 낯선 노동으로 가득한 일본에서 청춘을 흘려보내야 했던 수일의 삶과 수일이 만났던 일본 사람들의 삶으로 무대를 채웠다.

1945년 일본 홋카이도 탄광에서 징용으로 일하던 수일이 '홋카이도 공습'으로부터 소년수 토모를 구하고, 토모의 고향 아오모리에서 토모의 누나 마유미와 선술집 사장 노리꼬를 만나는 과정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삶의 냄새를 만나게 하는 과정이었다.

가령, 시기가 어수선하여 조선인을 경계하던 마유미와 노리꼬는 수일이 동생 토모를 구해준 은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경계를 해제한다. 또 시뻘건 폭격이 곧 수일과 노리꼬 일행이 있는 아오모리에 떨어진다는 '공습 예고' 전단에 이들은 다 함께 오들오들 떤다. 노리꼬는 동생 같은 마유미를 챙기고, 마유미는 아픈 동생 토모를 챙긴다. 수일은 자신이 조선인이기 때문에 마유미 ·토모와의 동행에 피해가 갈 거라고 동행하지 않는다.

극단 골목길의 연극 '코스모스:여명의 하코다테'ⓒ김봉진

이렇듯 연극 '코스모스'는 인간과 인간의 만남 사이에서 발생하는 반가운 파열과 따사로운 인연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사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연극은 이것들이 전쟁으로 무너지고 사라지는 모습도 보여준다. 전쟁은 인류애를 갉아먹는다. 감정과 정서를 병들게 만든다. 무대 위엔 그 아픈 증거가 가득하다. 고향을 찾아 조금 회복된 듯 보였던 토모는 결국 전쟁 트라우마로 넋을 놔버린다. 결국 이어지는 공습 예보에 토모와 마유미는 노리꼬와 이별을 하게 된다. 토모와 마유미가 떠난 후 폭탄이 떨어지기 직전까지, 수일과 노리꼬는 술 한잔 기울이고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며 마작에 집중하려 안간힘 쓴다. 그것이 전쟁 앞에 놓인 인간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인 것처럼 보인다.

정신적·육체적으로 망가진 토모를 보며 누나는 말한다. "누가 너를 이렇게 망가뜨린 거니." 새까맣게 타버린 동생을 안고 우는 누나의 모습은 아오모리의 선술집, 조선의 여느 골목길, 전쟁 피해의 사각지대 등에서 발생했을지 모를 망각된 역사를 재현시킨다. 연극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구분보다, 전쟁의 원형과 폭력의 잔인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말한다. 전쟁 앞에 모든 인간은 불쌍하다고, 전쟁은 안 된다고 말이다.

박근형 작·연출, 배우 강지은·김수현·성노진·오순태·이호열·이봉련·안상완·홍수민 출연. 지난 12일 서울 대학로 예술공간 혜화에서 개막된 이 연극은 오는 28일까지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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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운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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