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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세상의 유령들에게 바치는 시크릿 아시안 맨의 위로

형용사와 부사가 문제다. 음악글을 쓸 때, 특히 음반 리뷰를 쓸 때면 더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음악은 마음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마음을 담고 마음을 두드리는 일, 그것이 음악의 숙명이다. 예술은 마음을 쓰다듬거나 폭발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리듬과 멜로디, 화음과 사운드를 편성해 마음을 움직일 때 음악이 어떻게 운동하는지, 그 때마다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하고 설명해야 한다. 형용사와 부사를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인상 비평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인상비평에서 그치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비평은 감상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가 건네고 싶은 것이 특정한 정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더군다나 몇 개의 형용사와 부사를 편애하며 돌려막는 게으른 비평가가 되고 싶지 않다. 내가 쓰는 음반 리뷰는 예전에 썼던 형용사와 부사로부터 도망치려는, 그러나 계속 붙잡히는 실패의 기록이다.

밴드 시크릿 아시안 맨(Secret Asian Men)이 5년만에 내놓은 정규 2집 [Ghost]를 들으면 간절하다, 쓸쓸하다, 영롱하다 같은 형용사가 계속 떠오른다. 음반의 첫 곡 ‘내 곁에만’의 노랫말부터 그렇다. “이젠 그만 외로웠으면/따스한 손길 너무 그리워/이젠 그만 슬펐으면/행복한 우리 이루고 싶어”라는 가사는 쓸쓸하고 간절하다. ‘C913’의 노랫말 “머물러 있지마/그래서 아프잖아/머물러 있지마”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시크릿 아시안 맨의 노래는 외로움과 절망으로만 간절하지 않다. 함께 하고 싶은 마음으로도 간절하다. “날 조금 놓아도 괜찮을 거야”라는 기대도 있다.

반면 ‘When Did You See It Coming’은 낙담에 가깝다. 서로 미워하지 않기를 바라는 ‘If You Don't’의 현실 인식은 부정적이다. 바다에서 길을 잃었다고 노래하는 타이틀 곡 ‘Eyes On Sea’의 상황도 녹록치 않다. 그래도 노래의 주인공은 자신을 꺼내달라고 말한다. “소중했던 그 모든 것들/잃고 싶지 않아 붙잡고 싶게 돼”라고 삶의 의지와 미련을 드러낸다. “쓸쓸해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라고 노래하는 사람은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오래 쓸쓸함에 머물렀을까. “함께했던 소중한 기억들/보답하고 싶었어/날 항상 기다리고 기다려주어서 고마워”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영어 가사와 한국어 가사를 번갈아 사용한 곡들은 누구든 느끼고 생각했을만한 이야기들을 이어간다. 살만하다고 생각했다가, 힘들다고 생각하고, 그러다 고마워지기도 하는 삶의 이야기들이 생활의 언어로 이어진다. 진지하고 솔직하지만 남다르지 않은 노랫말을 다른 음악으로 만드는 것은 시크릿 아시안 맨의 사운드이다. 음반 소개글처럼 “신스와 프로그래밍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무드를 만드는” 음악은 느리고 영롱하다.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드럼 같은 밴드 악기가 움직이지만, 음악의 정조는 신시사이저와 프로그래밍을 통해 완성된다.

음악의 뼈대를 이루는 것은 일렉트릭 기타, 어쿠스틱 기타, 신시사이저가 제시하는 멜로디이다. 멜로디를 펼쳐 놓는 느린 호흡이며, 멜로디를 감싸는 안개 같은 톤이다. ‘When Did You See It Coming’을 비롯한 곡들을 이끄는 기타 리프는 목소리의 잔잔함만큼 내밀한 호흡으로 음악을 선도한다. 담백한 리프들은 곡의 조촐한 구성과 조응하며 한 사람의 내면 고백을 자연스럽게 발현시킨다.

독백 같은 이야기가 마음에서 솟아올라 퍼져나가듯 물결치는 사운드의 울림은 음악의 무드 뿐 아니라 진정성까지 담지한다. 진정성을 표현해내는 사운드는 절망과 희망이 섞여있는 한 사람의 마음에 공감할 뿐 아니라 이를 아름다움으로 치환할 수 있게 한다. 자신이 경험했거나 경험하지 못했거나 무관하다. 이 만큼의 아름다움과 완성도를 갖춘 작품은 경험과 무경험의 차이를 무화시킨다. 같은 상황과 감정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더 강력하게 작동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도 유사한 감정을 끌어낸다. 그것이 아름다움이 만드는 설득력이다.

시크릿아시안맨의 정규 2집 앨범 'Ghost' 커버 이미지
시크릿아시안맨의 정규 2집 앨범 'Ghost' 커버 이미지ⓒ사진 = 시크릿 아시안 맨 페이스북 갈무리

음반은 길지 않다. 아니 짧은 편이다. 30여분 정도의 짧은 음악을 들으며 음악에 빠져 들었다가 나올 때는 “여전히 세상에는 존재하지만 내 곁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유령 같은 존재라고 느껴져 앨범 타이틀을 ‘Ghost'로 하였”다는 시크릿 아시안 맨 허세정과 김연종의 말을 되뇌게 된다.

이번 음반의 테마가 ‘위로’라는 설명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세상에 유령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유령처럼 사라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위로가 필요하지만 위로받지 못하는 사람들, 가난하고 고독하고 아프고 처절한 사람들이 흔하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 규모는 커지고 삶의 질은 좋아졌다는데,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비롯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이 우울한 현실을 떠올리며 음반을 들으면 노랫말도 사운드도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노골적으로 시대를 노래하지 않는 작품에도 세상의 그림자가 깃든다. 삶은 누구에게나 힘든 것이지만, 모든 고통이 운이나 개인의 탓은 아니다. 요즈음 우울함을 토로하는 노래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노래의 끝에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지 날마다 두렵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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