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후]김비 소설가 “나는 기필코 자유로울 겁니다...퀴어 만세!”

연극 장르에 도전한 김비 소설가, ‘물고기로 죽기’로 퀴어와 인간, 행복과 자유를 말하다

14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김비 소설가가 민중의소리와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2021.03.14.ⓒ김세운

[공연후]막이 내린 후, 어떤 한 장면이라도 관객 가슴을 깊게 파고든 공연이 있다면, 그것은 좋은 공연이다. 좋은 공연은 막이 내린 후에도 긴 생명력을 갖는다. 그 건강한 생명력이 허공을 떠도는 것이 아니라, 활자로 정착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기획이 시작됐다. 그 생생한 감동과 날 선 이야기들을 조금이나마 묶어 두기 위해서다. -편집자 주-

한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다양성' 수용 여부다. 학벌, 지역, 인종, 개성 등을 포함해 소수자에게 시민들이 얼마나 열린 태도를 보여주는지는 그 사회의 수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한국의 생태계는 얼마나 건강할까.

최근 벌어진 아픈 죽음들은 한국이 병들어 있는 사회임을 보여줬다. 지난 2월 8일, 2월 24일, 그리고 3월 3일. 이은용 작가, 김기홍 퀴어인권활동가, 그리고 변희수 하사가 세상을 떠났다. 한 달 사이 벌어진 세 죽음이었다. 그리고 세 사람 모두 트랜스젠더였다.

트랜스젠더들의 부고 소식이 전해지는 동안 '성소수자의 늙음'을 주제로 한 다원예술 '물고기로 죽기'가 무대에 올랐다. 창작진은 희곡을 준비하고, 회의하고, 움직임을 만들고, 음악을 붙이고, 무대를 구성하는 기간 내내 세 죽음을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변희수 하사의 죽음 다음 날인 지난 4일 첫 무대가 올랐다.

무대가 끝나갈 무렵에 한 50대 여성이 홀연히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33명의 관객은 '그녀가 누구인지' 궁금한 듯 바라봤다. 수줍은 듯 그러나 무대가 익숙한 듯 이 여성은 담담히, 하지만 강단지게 말했다.

"나는, 사람입니다. 숨을 쉬고,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갑니다. 두 다리로 걷고, 두 팔이 있고, 말하고, 웃고, 웁니다. 아, 그건 사람의 조건이 아니겠군요. 두 다리나 두 팔이 없어도 사람이고, 말하거나 웃고 울지 않아도 사람입니다. 사람은 몸 하나이거나, 생식기 하나이거나, 이름 하나이지 않습니다. (중략)"

이어 그는 "나는, 혼란의 바다속에서 온 힘을 다해 헤엄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한 뒤 출연진(황순미·양대은 배우)과 함께 두 팔을 들어 올리며 "퀴어, 만세!"라고 외쳤다. 이 외침은 마치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죽지 마'라는 메아리 같았다. 무대엔 박수가 쏟아졌다.

무대 위로 걸어 나왔던 여성은 희곡 '물고기로 죽기'를 쓴 소설가 김비(51)씨였다. 트랜스젠더이기도 한 그는 수많은 작품을 써왔다. 하지만 전혀 다른 장르인 희곡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 해본 장르라 떨리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뭘 좀 알았으면 두려워했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뭘 몰라서 겁이 없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웃었다.

이번 작품에 합류하게 된 것은, 알고 지낸 지 오래된 연분홍치마 김일란 감독이 소개해준 두 사람 때문이었다. 바로 정은영 연출과 고주영 기획자였다. 한겨레 연재 글 '김비의 달려라, 오십호(好)' 중 '나에게 오십은 '트로피'였다'라는 김비 작가의 글을 본 창작진은 바로 '이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만남이 성사됐다.

이후 창작진과 김 작가는 '성소수자의 늙음'을 주제로 다양한 회의와 논의를 거쳤다. 김 작가는 희곡이나 연극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렉처 퍼포먼스로 갈 것인지, 픽션으로 갈 것인지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결국 논픽션, 유서의 형태로 희곡의 큰 줄기가 잡혔다.

"유서는 삶을 중간에 그만둔 사람이 아니고 70~80년 평생을 다 늙어서 이 세상과 이별하는 이야기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창작진이 유서를 말씀하셔서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연극 '물고기로 죽기'의 한 장면. 김비 작가가 공연 마지막 부분에 함께 출연했다.ⓒ원준혁 (c)연극연습 프로젝트

비·성소수자 앞에 놓인
나이 들어가는 몸...'크게 다르지 않다'

'물고기로 죽기'는 몸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정상·비정상의 경계를 가르고 소수자를 배제하는 말도 안 되는 사회 구조에 욕을 날려주기도 하며,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인 자유와 행복을 외치기도 한다. 통쾌하다.

그중 몸에 대한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다. 육체라는 옷을 입고 태어난 인간에게 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고기로 죽기'가 단순히 여자·남자의 몸이라는 이분법적 경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몸은 어떤 척도로 구분 짓기엔 너무 광활하다. 하여 물고기였거나, 물고기가 될 수밖에 없었거나, 물고기를 꿈꾸는 극 중 두 배우는 경계를 지우고 몸의 근원으로 나아간다.

두 배우의 언어와 몸은 세월을 묵묵히 견뎌내는 몸을 생각하게 만든다. 늙어가는 비성소수자의 몸은 늙어가는 성소수자의 몸과 무엇이 다를까. 늙어가는 몸은 세대 불문, 남녀노소 불문하고 우리 모두의 고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같이 엄마 자궁 혹은 물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의 늙음'을 주제로 했다지만, 이건 그냥 '사람 이야기'다.

"몸은 당연히 계속 이어지는 고민인 것 같다. 작품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몸에 대한 고민이 '여자가 돼서 행복했어' 이런 류는 아니란 걸 아실 거다. 오히려 늙은 몸이 되고 나니까, '여자의 몸이란 뭘까' '인간의 몸이란 뭘까' '생식기란 과연 정말 고정불변의 것인가'라는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근데 그건 비단 제가 맞닥뜨리는 질문만이 아니라 보통 비트랜스젠더·비성소수자 분도 분명 맞닥뜨리는 고민일 거다. 몸에 대한 고민은, 물론 다른 고민이긴 하지만, 똑같이 늙은 몸 앞에 중년의 몸 앞에 선 고민은 전 그렇게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극 '물고기로 죽기'의 한 장면.ⓒ원준혁 (c)연극연습 프로젝트

트랜스젠더,
누구보다 먼저 낭떠러지 보게 되는 존재

'물고기로 죽기'는 성소수자라는 명확한 주제와 색깔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작품 속을 들여다보면 형식과 내용 면에서 매우 입체적이다.

특히 내용 면에서 그렇다. 김 작가가 젊었을 때 겪었던 내밀한 이야기부터, 사회에 부딪혀야 했던 강철같은 사유들까지 다양하다. 또한 현실과 이상향, 절망과 희망, 괴물과 물고기 등 상징과 환원을 자유롭게 오간다. 작품은 하나의 절망의 시이자, 희망을 갈구하는 선언문 같다.

상연 시간이 흘러갈수록 인간답게 살고 싶은 한 인간을 만나게 된다. 덩달아 느껴지는 것은 이 인간을 받아주지 않는 거대한 사회 구조다. 그 구조 속에 숨어 있는 혐오 세력의 얼굴이 무대에 재현되자, 보내고 싶지 않았던 세 얼굴들이 오버랩 됐다. 공연 준비 기간, 세 죽음에 관한 소식을 맞닥뜨려야 했던 창작진에게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김비 작가도 마찬가지다. 그는 "일반 사람이 느끼는 죽음에 대한 어떤 고통 혹은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 혹은 분노와는 결이 분명히 다를 것 같다"고 말했다.

"왜냐면 저희는 언제나 궁지에 몰려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이었고, 외부에 노출되면 항상 이렇게 추궁을 당해야 하는 입장에 서야 하는 사람이었다.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성소수자에게 죽음은 항상 곁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는 아마도 항상 죽음을 생각하고 산다기보다 그만큼 많이 이 사회로부터 밀쳐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누구보다 먼저 낭떠러지를 보게 되는 거다. '아냐, 이럴 리 없어' 하고 돌아오지만 이 사회라는 것, 이성의 사회, 비성소수자 사회가 밀치면 또 그 낭떠러지를 보는 수밖에 없다. 아마 가장 바깥에 있는 존재가 트랜스젠더가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올해 51살이 됐다고 말한 김비 작가는 그 이전에도 트랜스젠더와 성소수자의 죽음을 목격해 왔지만, 그때마다 사회의 변화된 모습이나 반성하는 자세를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남자고 여자고를 떠나서 같이 공존하는 사람으로서 최소한 지켜야 할 예의가 있지 않나"라며 "이 사회는 이 사람과 공존하겠다는 다짐조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다. 반성은 고사하고 계속 없는 취급을 하고 지우기에 급급하다"고 말했다.

"이런 얄팍한 사회를 계속 반복해서 보게 되면서 미안한 이야기지만 좀 회의적인 생각, 비관적인 생각을 자꾸 갖게 된다. 어떻게 수십 년이 지났는데 이렇게 똑같을 수 있을까,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 안타깝고 속상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젊은 친구들의 생각은 조금 훨씬 더 열린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큰 위안이 되긴 한다."

14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김비 소설가가 민중의소리와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2021.03.14.ⓒ김세운

경계 위에서 태어난 사람,
근원에 대한 질문...그리고 물과 물고기

극 중 물고기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물고기는 성별을 뛰어넘고, 남녀를 가로질러 헤엄친다. 분명한 것은 물고기는 자유롭게 헤엄치는 존재이고, 그렇게 헤엄쳐야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마치 인간처럼 말이다. 김비 작가는 물고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저 같은 사람, 경계 위에서 태어난 사람, 경계 위에서 만들어진 사람들 같은 경우는 그 근원을 궁금해할 수 밖에 없다. '왜 나는 저렇게 자연스러운 몸,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자연스럽게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그런 몸이 아니었는가' 라는 생각. 이게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가라는 그 근원에 대한 질문을 항상 하게 된다. 모든 생물이 마찬가지겠지만 근원은 물이다. 물고기고. 근원에 대한 질문을 항상 하기 때문에 물고기를 (작품에) 가져온 게 가장 첫 번째인 것 같다."

"그리고 극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생식기 모양이 변한다거나, 환경에 의해서, 물론 후세를 잇기 위한 방편이긴 하지만, 어쨌든 변화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혼재해서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물고기는 굉장히 자유로운 느낌인데, 인간만 맨날 동물의 왕인 것처럼 그러면서 그거 하나 극복하고 있질 못하고 있다. 앞으로 세대는 훨씬 자유로운 존재가 돼야 한다는 것, 그래야 자기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주어진 경계를 뛰어넘어야 할 때 훨씬 자기 존재의 의미를 잘 찾을 수 있는 미래 세대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존재로 물고기가 적절했다."

무대가 종료된 후, 다 같이 물고기처럼 평온하게 헤엄치는 세상을 상상해 보게 된다. 호르몬, 염색체에 얽매이지 말고 플랑크톤이든, 송사리든, 상어든, 범고래든 어떤 삶에 귀 기울여 주고 토닥거려 주며 고민을 공유해 보는 세상을 말이다. 무대에서 물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작품 속에서 배우는 "이번 물고기 생이 좋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 생에도 물에서 태어나, 물고기가 되는 삶을 꿈꾼다고 말한다. 유서 형식인데도 생(生)의 향기가 더 강하다. "왜 물고기로 '살기'가 아니라 '죽기'냐"고 묻자 김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이게 유서의 형식이고 떠난다는 측면이기도 하다. 제가 70, 80살이 돼서도 그때도 근원을 궁금해하고 자유와 행복이 뭔지 계속 궁금해하겠지만, 저는 아마 이 사회가 규정하는 사람에서 여전히 밀려난 존재로 살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물고기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가 죽었을 때 여성이 죽었어, 이렇게 생각해주면 고맙지만, 그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텍스트가 마지막에도 '나는 물고기로 돌아갈 거다'라고 썼다. 더 이상 인간이 만든 규정이나 무엇도 아닌 하나의 물고기로 돌아가서 다시 태어날 거라는 이야기를 하게 된 것 같다."

14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김비 소설가가 민중의소리와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2021.03.14.ⓒ김세운

앞으로의 글쓰기

김비 작가는 웹진 '젠더·어펙트'에 연재 중인 '강철과 이슬의 집' 이후엔 우울한 이야기가 아닌 행복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그는 "'강철과 이슬의 집'은 몸이라는 것과 부대끼면서 싸우는 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제 젊은 시절의 딜레마, 자해의 그 어떤 욕망, 살해의 욕망, 그런 것들을 털어놓고 나면 그 이후엔 좀 할머니처럼 제가 한겨레 칼럼에도 적었지만 아이들에게 읽어줄 수 있는 그런 좀 행복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물론 트랜스젠더가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고, 꼬리 달린 아이가 나올 수도 있고, 팔이 세 개 달린 아이가 나올 수도, 머리에 뿔이 달린 아이들이 나올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그 사람이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적고 싶은 게 제 소원이다."

김비 작가는 1998년 단편소설 '그의 나이 예순넷'으로 데뷔했다. 이후 2007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플라스틱 여인'이라는 작품으로 당선됐다. 이 밖에 '못생긴 트랜스젠더 김비 이야기', '개년이',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등 다양한 작품을 썼다. 남편인 박조건형 작가와 함께 쓴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길을 잃어 여행 갑니다', '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등도 있다. 현재 한겨레에 '김비의 달려라, 오십호(好)'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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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물고기로 죽기'의 한 장면.ⓒ원준혁 (c)연극연습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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