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당신이 누린 특권들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 다른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 이성애자라는 용어의 뜻을 모른다.
□ 나는 당연히 이성을 좋아하고 이를 의심해본 적이 없다.
□ 내가 느끼는 성별과 몸이 달라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다.
□ 사귀는 사람을 여자친구나 남자친구라고 소개하는 것이 당연하다.
□ 내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공개하는 것을 걱정해본 적이 없다.
□ 내 주변에 성소수자인 사람(레즈비언, 게이, 트렌스젠더 등)은 아무도 없다.

만약 위의 체크리스트에서 체크한 문항이 많다면, 당신은 시스젠더(생물학적 성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이자 이성애자로서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의 특권은 VIP가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이 아니다. 어두운 피부색 때문에 받게 될 따돌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 정신과 진료 경험에 대한 낙인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 새로운 곳에 갈 때 휠체어 이용이 가능한 곳인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 이 모든 것이 바로 특권이다.

즉, 정체성과 관련된 차별과 폭력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는 것 자체가 곧 특권인 것이다. 우리 각각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각 개인의 성정체성, 성별, 인종, 외모, 정신질환, 장애 등에 따라 경험하는 현실은 매우 다를 수 있다.

갑자기 ‘특권층’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니 ‘나는 그걸로 이득을 본 적도 없고 다른 사람을 차별한 적도 없어!’ 하는 생각과 함께 저항감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시스젠더와 이성애자의 특권은 당연하게 여겨져서 스스로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마치 없어져야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맑은 공기처럼 말이다. 성소수자여서 겪게 되는 불편함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이득을 보는 셈이다.

더불어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차별하지 않더라도, 문제 해결을 위해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면 차별을 유지하는 데 역할을 하고 있을 수 있다. 차별은 목격자들의 침묵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제2회 부산 퀴어문화축제 .2018.10.13ⓒ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누군가는 ‘나는 특권층이니까 성소수자를 차별해도 되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특권은 차별할 권리를 뜻하지 않는다. 이는 존재에 대한 차별이 계속 발생하는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자, 결국에는 평등을 위해 해체되어야 할 개념이다.

다른 누군가는 ‘지금이 편한데 내 특권을 굳이 포기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거꾸로 이렇게 생각해보자. 당신은 성정체성이 아닌 다른 이유로 받을 수 있는 차별에 대해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가. 또 어떤 이들은 ‘성소수자들은 비정상적인 존재가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성정체성을 정상이나 비정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조차도 특권이자 차별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불편함을 느꼈다면,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경험하는 것은 불편함 그 이상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 자신의 정체성을 편안하게 공개하는 성소수자들도 있으나, 많은 경우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숨기는 것을 택한다. 이는 성소수자임을 드러냈을 때 받게 될 차별이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택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싶은 기본적 욕구를 지니고 있다. 이 욕구가 계속 채워지지 않으면, 마음속에 불행이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그리고 쌓인 불행은 자신이 곧 문제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이는 결국 심각한 심리적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더는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또 세상의 편견에 맞서기 위해, 혹은 그 밖의 다양한 이유로 성소수자들은 자신을 드러내기로 선택한다. 하지만 커밍아웃한 많은 성소수자들이 신체적, 정신적 폭력 피해를 경험한다. 가족과의 관계가 단절되기도 하고 생계 수단을 잃기도 한다. 최근 우리 곁을 떠난 변희수 전 하사도 용기 있게 자신을 드러냈으나, 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강제 전역 조치를 당했다.

직접적인 폭력 피해를 경험하지 않더라도 다른 성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차별을 목격하거나 알게 되는 것 자체로도 정신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차별은 성소수자들로 하여금 ‘성소수자는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인 거 알지? 그러니까 너도 들키지 않게 조심해야 해’와 같은 사회적인 경고 메시지를 내재화하게 하고, ‘성소수자인 티가 나지 않게’ 자신의 말과 행동을 계속 검열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계 모드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한다.

1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제 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퀴어축제 참가자들이 손을 잡고 있다. 2019.06.01ⓒ김철수 기자

성소수자의 현실이 당신의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면, 이제 당신은 자신의 특권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장 거리로 나가 사회운동에 참여하라는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바로 할 수 있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먼저 자신도 모르게 미묘하고 은근한 방식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거나 고유한 정체성을 존중하지 않는 언행인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너는 전혀 트랜스젠더 같지 않아서 몰랐어’, ‘동성에 대한 호감은 잠깐 생겼다가 사라질 수도 있대’와 같은 말이나, 성소수자 이슈에 관한 이야기를 회피하거나 모든 성소수자가 불행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태도 등이 이에 포함된다.

마이크로어그레션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기 위해서는 마이크로어그레션과 반대되는 행동들을 하면 된다. 이성애자 및 시스젠더 중심 사회에서 자신이 지닌 특권을 기꺼이 인정하기, 성소수자 차별 문제를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할 인권의 문제로 인식하기, 이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기. 그리고 다양한 성소수자들의 경험을 자신의 관점에서 판단하지 않고 무지개 색깔보다 더 다채로운 인생의 결들이 존재함을 받아들이는 것도 이에 해당된다.

물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가 차별의 영향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따라서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차별적인 언어를 쓰거나 행동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럼 빠르게 반성하고 누구든 소외시키지 않는 평등한 말과 행동이 무엇일지 고민하면 된다. 우리 모두는 지금 이 순간부터 조금씩, 천천히 평등으로 나아가는데 힘을 보탤 수 있다.

*** 편집자주:글쓴이는 여러 상담사들과 함께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상담사 모임’을 하고 있다. 이들을 비롯한 심리상담사 600명은 최근 연이은 성소수자의 죽음을 추모하고 사회 변화를 위해 연대하겠다는 뜻을 담은 성명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를 지난 10일 발표한 바 있다. 또 온라인에 메모장 공간을 열고 성소수자들에게 보내는 연대의 메시지를 모아 게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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