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요즘 어떤 음악 들어요”라고 묻는다면

재즈 피아니스트 임보라의 세 번째 음반 [여음]

요즘 어떤 음악을 듣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 때마다 날마다 들은 음반을 페이스북에 정리해서 올린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내가 듣는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상에는 음악 말고도 즐길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는 자신의 취향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들어왔던 음악, 좋아하는 스타일의 음악만 듣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악을 찾아 듣지 않는다. 다른 이들이 많이 듣는 음악을 들을 뿐이다. 음반 단위로 음악을 듣지도 않는다. 싱글 단위로 듣는다. 그래서 음반 리뷰를 쓸 때마다 이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옛날 사람의 습관 같은 것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음반 리뷰를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뮤지션들은 아직 음반을 만들어 발표한다. CD를 만들지 않고 온라인으로만 발표하는 추세이지만 어쨌든 정규 음반이라는 포맷은 아직 살아있다. 정규 음반은 뮤지션의 특정 기간과 음악 세계를 집적한 결과물이다. 그 안에 뮤지션의 시간과 노력과 표현 욕구가 응집되어 있다. 음반은 어떤 이야기를 어떤 소리로 담아내려 하는지, 얼마나 많은 이야기 혹은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를 하려는지 보여주는 결정체이다. 음반을 들으면 뮤지션의 과거와 현재를 파악하고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재즈 피아니스트 임보라ⓒ사진 = 임보라 페이스북 갈무리

재즈 피아니스트 임보라의 음반 [여음]는 그의 세 번째 정규 음반이다. 2013년 정규 1집 [Wordless Picture Book], 2016년 정규 2집 [우리는 이렇게 가로로 앉아서]를 발표한 후 4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이번 음반은 기타리스트 이수진, 베이시스트 정상이, 드러머 한인집이 참여했다. 음반에는 이미 발표했던 곡을 다시 편곡한 3곡과 신곡 4곡을 담았다.

임보라는 음반의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서로 다른 스타일을 대비시켜 연결한다. 음악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동력은 임보라가 연주하는 키보드와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며,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와 드럼의 돌출이다.

첫 번째 곡 ‘비 오는 소리’는 빗방울처럼 떨어지며 번지는 피아노와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들려주며 임보라 음악의 서정성을 이어간다. 그런데 이번 음반의 키워드는 도전과 서정이라고 해도 될 만큼 임보라는 과거와 다른 사운드를 배출한다. 두 번째 곡 ‘변명’, 세 번째 곡 ‘까마귀 나는 밀밭’, 네 번째 곡 ‘Voyager 1’으로 이어지는 전반부 곡들은 록킹한 사운드와 일렉트로닉한 사운드를 배합하고 곡의 굴곡을 선명하게 부각시킨 선 굵은 연주를 제출한다. 예전의 임보라가 임보라의 전부가 아니라고 주창한다.

포스트록의 어법이 느껴지는 ‘변명’의 드라마틱한 배열을 주도하는 악기는 드럼이다. 드럼의 비트가 달라지고 일렉트릭 기타가 조응할 때, 곡은 듣는 이들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고흐의 대표작인 ‘까마귀 나는 밀밭’을 모티브로 한 ‘까마귀 나는 밀밭’은 ‘변명’에서 직조한 사운드의 파장을 이어 음울과 불안의 서사를 들려준다. 한 예술가의 그림 안에 살아있는 감정이 다른 장르 예술가의 작품으로 연결될 때, 음악과 미술의 경계는 무너진다. 6분 10초의 긴 곡을 끌고 가는 감정은 모두에게 내재한 불안과 슬픔이다. 꿈틀대는 밀밭과 요동치는 하늘, 신음하듯 나는 까마귀를 빌어 생의 고통을 고백한 고흐의 목소리는 임보라의 곡으로 살아나 공명한다. 우수를 배가시키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임보라 음악의 서정성을 놓치지 않는다. 음악의 스타일을 바꾸더라도 임보라의 음악에는 쉽게 공명하게 된다. 오래 공명하게 된다.

그리고 무인탐사선 보이저1호를 소재로 한 곡 ‘Voyager 1’은 아득한 우주를 표현한 듯한 인트로와 멀고 먼 신호처럼 날아오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곡의 무드를 주도한다. 임보라의 키보드와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보이저1호가 감당해낸 고투의 드라마를 변화무쌍하게 연출했다.

임보라에게 예상할 수 없었던 사운드를 선보인 곡들은 임보라 안에 또 다른 임보라가 있음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만 같다. 음반을 듣는 일이 가장 즐거워지는 순간은 이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를 감행하고 만족스럽게 완성할 때이다. 비 오는 날과 변명과 까마귀 나는 밀밭을 누비는 임보라의 영혼은 우주까지 이르며 한 사람의 예술가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음악으로 말한다. 한 장의 음반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아우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재즈 피아니스트 임보라 세 번째 음반 '여음'ⓒ사진 = 임보라 페이스북 갈무리

반면 1집 음반의 타이틀 곡이었던 ‘Waltz for me’를 다시 연주한 ‘Waltz for me’, ‘마음의 색’, ‘Free Fallin’’으로 연결되는 후반부는 임보라 음악이 견지해온 유려하고 부드러운 서정성을 이어간다. 연주자들의 연주는 매순간 멜랑콜리하게 느껴질 만큼 매끄러운 멜로디를 앞세운다. 소박한 앙상블이 빛나는 곡들에는 음반의 전반부와 대비되는 아름다움이 흐른다.

음반의 전반부가 더 좋다고 할 수도 있고, 후반부가 더 좋다고 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다 좋다고 할지도 모른다. 임보라는 굳이 나누고 우열을 가릴 필요가 없을 만큼 완성도 높은 곡들로 자신의 과거와 오늘을 취합했다.

맨 처음 질문으로 돌아갈 때다. 요즘 어떤 음악을 듣느냐고 묻는다면 임보라의 음반을 듣는다고 답하고 싶다. 사실 워낙 들어야 할 음반들이 많기 때문에 한 장의 음반을 두 번 이상 듣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음반 리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면 음반을 듣고 또 듣는다. 그리고 음반의 성취와 가치에 귀를 가까이 댄다. 이 음반으로 인해 풍요로워진 시간과 윤기 더해졌을 영혼을 생각한다.

나만 그 축복을 받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임보라가 음악을 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음악 안에서 안전하게 자유롭고 불안하며 편안하다. 아직도 음악은 모든 것이 가능한 둥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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