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자라는 아빠] 아이를 위해 사라졌으면 하는 말들 ①

일상 속 ‘차별적 표현’ 이대로 괜찮을까요

하루 중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단연 자려고 누웠을 때입니다. 제일 반갑지 않은 시간은 기상 알람이 울릴 때고요. 아이는 정반대입니다. 아침에는 놀기 위해 눈이 번쩍 떠지고, 밤에는 노느라 자는 시간을 미룹니다. 아무리 놀아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아이를 여러 번 달래 불을 끄고 눕히는 게 일상입니다. 잘 시간이 가까워지면 "어떡해! 놀 시간이 없어!" 하면서 가끔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니, 놀이를 향한 절절한 마음이 너무 귀엽습니다.

자려고 누웠을 때가 또 좋은 이유는 어둡기 때문에 가족들이 서로의 말에 집중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하루 치 삶을 돌아보면 즐거웠던 것과 아닌 것이 섞여 있기 마련인데, 어떤 날엔 썩 유쾌하지 않은 생각과 기분이 잠자리까지 따라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나름의 수면 의식을 가집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하잖아요. 즐겁거나 의미 있는 순간을 떠올리며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나는 매일 밤 똑같은 운을 띄웁니다. '말로 하는 감사 일기'라고나 할까요.

나:오늘은 어떤 게 좋았을까? 각자 한 가지씩 말해 보~기.
수현:엄마, 먼저!
아내:난 한참 동안 신경 쓰였던 일이 오늘 끝나서 마음이 후련해. 넌?
난 지금 이때가 좋아.(딱히 할 말이 없을 때의 단골 레파토리 대답)
어린이집 친구가 편지 써 줬다고 하지 않았어?
아, 그게 좋았어. 아빠는 뭐가 좋았어?
(두뇌 풀가동)음... 아빠는 점심 때 먹은 제육볶음 반찬이 너무 맛있었어.

대단한 것 없이 거의 이런 식입니다. "이제 그만 자자"라는 아내의 말에 아이는 "합죽이가 됩시다, 합!"이라고 구령을 넣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슬쩍 놀랐습니다. 아이에게 '합죽이란 말은 쓰지 말자'고 하고 싶었습니다. 그건 사전적으로는 '이가 빠져서 입과 볼이 움푹 들어간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면서, 흔히 '언어 표현이 어려운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로 사용되니까요. 그때 순발력 좋은 아내가 먼저 짚어줍니다. 우리 부부의 팀웍은 '척하면 척'(!)입니다.

잠깐만, 수현아. 세상에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있잖아.
나, 알아. 그래서 신호등에 소리 나는 장치가 있다는 것도 알아.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 합죽이는 그런 사람을 놀리는 말이야. 안 쓰는 게 좋겠어.
그래, 알겠어.

아이는 곧장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합죽이가 됩시다, 합!" 대신, "말을 마칩시다, 끝!"으로 수정했습니다. 작은 촛불을 후~ 불어 끄듯 내가 새로운 구호를 속삭이자, 컴컴한 방이 완전히 조용해졌습니다.

수현이가 자는 시간이 자꾸 늦어지는 이유? 우리의 역작 '뱀사다리 게임'ⓒ사진 = 오창열

아니 그런데, '합죽이' 때문에 눈이 떠집니다. 내가 유치원 시절에 들었던 말 같은데, 3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아이의 입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 그만 세상에서 사라져도 될 것 같은 그 말은 어째서 아직까지 구전되어 오는 것일까요. 오래된 '차별적 표현'들을 정리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심지어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다문화 가족 아이는 "야! 다문화!"라고 불린다면서요. 휴거(휴먼시아 거지), 엘사(LH주택에 사는 사람), 기생수(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의 아이) 같은 폭력적인 멸칭(蔑稱, 경멸을 담아 부르는 말)도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치 못했습니다. '합죽이' 같은 닳고 닳은 말이 질기게 살아있는 와중에, 혐오 표현이 추가적으로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는 게 너무 분합니다. 놀림 받은 아이나 그들 부모가 입은 마음의 상처는 누가 책임지나요.

아이든 어른이든 살아가면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모멸과 비하의 언어를 피해 다녀본 사람이 어디 한두 사람일까요. 어린 시절의 나에게 '후레자식'(배운 데 없이 제풀로 막되게 자라 교양이나 버릇이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표현이 그랬듯, '휴거'의 영향권에서 상처를 받으며 지내는 아이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심란해집니다. 내가 아빠가 된 후로는 '아이가 살아가게 될 세상'이라는 안경을 쓰고 사회를 보게 되었는데, 이것도 전혀 남 일 같지가 않네요. 아이를 키우는 한 사람으로서, 어린이 언어세계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그게 뭐 어때서' 하고 눙치며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흔히 쓰는 언어에서 상처 받는 이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아이들은 자신과 다른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쉽게 받아들이니, 어른들이 가진 편견 역시 쉽게 흡수합니다. 양육자라는 창문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하니까요. 아무리 견고한 편견과 오해라 하더라도 처음엔 작고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이런 이유로 수현이가 밖에서 듣고 온 말에 관해 부지런히 대화하려고 합니다. 편견의 언어를 바로 잡고, 존중의 언어를 알려주는 것은 곧 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아이와 자라는 아빠] 아이를 위해 사라졌으면 하는 말들 ②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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