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자라는 아빠] 아이를 위해 사라졌으면 하는 말들 ②

차별적 표현은 나에게 ‘자기 검열의 입마개’를 채웠다

*****아이를 위해 사라졌으면 하는 말들 ①에서 이어집니다.

내 직업은 '정신건강 사회복지사'입니다.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합니다. 구체적인 증상으로는 우울증, 공황장애, 강박증, 조현병 등을 앓는 분들과, 처한 상황으로 치자면 좌절, 상실, 불안정, 부적응 등을 겪고 계신 분들과 해당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증상을 다스리며 일상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상담을 하거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의 진료 일정을 잡아주곤 합니다. 자신 또는 주변 사람 누구 하나 다치겠다 싶을 정도로 병이 깊었을 땐 직접 집을 찾아가 치료를 받도록 돕기도 하지만, 보통은 상담실에서 만납니다.

장기적인 우울감을 호소하며 상담실을 찾은 사람 중에는 이혼이나 별거, 사별 등의 이유로 혼자 자녀를 양육하게 된 어머니 또는 아버지가 드물지 않습니다. 그중 많은 이들이 상담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나 때문에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갈까 봐 걱정되어서' 였습니다. 누구보다 힘든 건 자신일텐데, 자식 걱정이 치료의 동기가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식을 이 세상에 혼자 둘 수 없다는 것이 삶의 이유인 이 사람들을 만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떤 양육자로부터 "무기력해서 아이들을 잘 돌보지도 못하는데, 어디 가서 후레자식 소리를 들을까 봐 걱정"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 후레자식이요..." 어린 시절 뇌리에 새겨진 이 메스꺼운 단어의 어원은 '아비 없이 홀어미가 혼자 키운 자식'입니다. 보통은 교양과 버릇 없이 제멋대로 자란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많은 욕설이 그렇듯, 이것도 부모에 대한 욕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배우자를 상실한 양육자, 그중에서도 마음이 얇아져 세상 사람들 이목을 신경 쓰며 지내는 이들에게 두려움을 선사하는 말입니다. 완전히 잊고 지낸 그 말이 아직도 세상 한구석에서 악한 영향력을 뻗치고 있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하긴, '합죽이' 같은 말도 살아있는데, '후레자식'이 순순히 사라질 리가 없었습니다.

아이는 아빠의 거울.ⓒ사진 = 오창열

사별 후 20대 때부터 우리 두 형제를 혼자서 키워낸 어머니가 거의 유일하게 강조했던 건 예절이었습니다. 항상 '아비 없는 후레자식 소리 듣지 않으려면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는 당부가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바람은 '예의 바른 아이'였지만, 나는 '아비 없는 후레자식'에 방점을 찍어 '어머니를 욕 먹이는 짓은 하지 말자'로 받아들이고 말았습니다. 지혜로운 누군가가 내 생각을 바로잡아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누구에게도 도움 받지 못했습니다. 아무한테도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이런 생각이 주는 막연한 불편감은 '자기 검열의 입마개'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초등학생 시절 매 학기 통지표 마다 "매사에 소극적임"이라는 평가를 받은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 센스 있는 담임선생님의 경우에는 "내성적이다, 차분하다"라는 비교적 완곡한 표현을 적어주어 어머니에게 배달하기가 덜 민망했습니다. 그렇게 '후레자식'이라는 실체 없는 꼬리표로부터 도망치며 세상에 용납받는 삶을 좇던 나머지, 나도 모르게 사회복지사가 되어 남을 돕는 길을 걷게 되고 만 것일까요.

한부모 내담자가 우울증 때문에 양육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죄스러움과 슬픔을 토로할 때, 내가 위로와 지지를 건넬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내가 만난 몇 사람이라도 자신을 향한 비난의 언어나 자격지심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양육자와 아이들 마음 속에 자리 잡은 혐오와 괴로움의 언어를 희석시키다 보면,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도 조금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과장하자면, 상담실에서의 내 작은 애씀은 '아이가 살아갈 세상'과 가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처음으로 궁금해집니다. 한부모였던 나의 어머니는 젊어서 어떤 고민을 했었을까요. 과거로 돌아가 30대 시절의 당신을 만날 수 있다면 내가 귀 기울여 듣거나,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또 당신은 어떤 말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는지도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대답과 상관없이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어머니 덕분에 난 정말 멋지게 컸어요"

평소엔 가족 중에 가장 먼저 잠이 들지만, 어쩐지 오늘 밤은 쉽게 잠이 들지 않습니다.

이게 다 '합죽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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