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대 총학생회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 하나가 세간의 관심을 끈 모양이다. 24일 『뉴스핌』의 보도에 따르면 19일 서울대 총학 자유게시판에는 ‘서울대 총학의 선택적 분노에 박수를 보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고 한다.
내용인즉슨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관련 의혹에 대해서는 규탄 성명과 촛불집회를 주도했던 서울대 총학생회가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자 딸의 입시비리 의혹에서는 왜 침묵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 글 이후에도 “조국 때는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이번에는 채점 교수가 진술하는데 다들 뭐하냐?”, “친일 왜구 방패 서울대 총학으로 바꿔라”, “선배들과 대한민국을 욕보이지 말라”는 글이 연이어 게시됐다.
이번 사태 외에도 비슷한 논란이 최근 꽤 있었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 총학 게시판은 최근 정치인들의 자녀 관련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각종 비판과 조롱글로 도배됐다. 2019년 조 전 장관을 규탄하며 촛불집회까지 벌였던 서울대 총학이 일부 보수 정치인들 의혹에 대해서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이중성을 보인 탓이다.
그런데 나는 이 보도를 보면서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한국 사회가 진지하게 서울대 해체(해체든 폐지든 상관없다)를 고민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서울대 총학생회의 편향이 못마땅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왜 조 전 장관은 비판하고 보수 정치인은 감싸느냐?”라는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건 그들의 정치적 선택이고, 총학생회는 늘 이런 정치적 선택을 해왔다.
내가 이 사태를 보면서 서울대 해체를 떠올린 것은 서울대가 한국 사회 공동체에 기여하기는커녕 공동체에 위해를 가할 확률이 훨씬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질문을 던져보자. 그들의 보수화가 한국 사회의 공동체를 위한 것인가?
물론 그들은 “그렇다”고 주장하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천만의 말씀이다. 단언컨대 서울대 보수화는 기득권 네트워크의 한 단면이다. 서울대를 나왔는데 세상이 기득권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그 세상은 결코 자신들에게 유리하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보수를 지지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보수를 지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공동체를 위해 아무런 일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되레 이기적 사회를 부추기는 국립대라면, 국가가 이를 지원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게다가 그들에게 서울대 프리미엄이라는 막대한 기득권을 안겨줘야 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나는 한국 사회가 이 질문을 회피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이 공부를 잘 하나?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행동경제학과 게임이론에서 종종 다루는 공공재 게임(public goods game)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준 뒤 공공금고에 얼마를 기부할 것인가를 묻는 게임이다. 많이 기부하는 사람일수록 공공을 위한 신념이 강하고, 적게 기부하는 사람일수록 공공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 인간이다.
실험을 해보면 평범한 사람들은 받은 돈의 40~60%를 기부한다. 인간은 공공을 위해 기꺼이 이 정도를 희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실험에서 밝혀진 코미디 같은 사실이 하나 있다. 행동경제학자인 제럴드 마웰(Gerald Marwell) 뉴욕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1981년 위스콘신 주립대학교 경제학과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이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낸 기부금은 받은 돈의 20%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여러 공공재 게임의 중 가장 낮은 기부율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40~60%를 기부하는데!
이게 무슨 뜻일까? 간단하다. 공부를 잘 할수록 공공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만 챙기는 이기적 인간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위스콘신 대학교는 미국 국공립 대학 중 알아주는 명문이다. 노벨상 수상자도 21명이나 배출했다. 이런 명문대학교 경제학과 학생들은 일반인에 비해 절반도 공공을 위해 기부하지 않는다.
사실 이건 조금만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결론이다. 인류는 수만 년 동안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그 공동체 안에는 분명 재능이 출중한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사냥을 잘 하거나, 요리를 잘 하거나, 쇠를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거나 하는 등의 재능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출중한 재능을 누구를 위해 사용했을까? 당연히 공동체를 위해 사용했다. 이건 수만 년 동안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불변의 진리였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한국 사회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치나? “너 공부 열심히 해서 꼭 국가와 공동체에 덕을 끼치는 사람이 돼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 본 적 있나? 그렇지 않다. 우리가 그들에게 하는 말은 “너 공부 열심히 해서 꼭 너 혼자 잘 먹고 잘 살아야 해”라고 가르친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공부를 잘 하겠나? 당연히 개인의 성공에 관심이 지대한 사람이 공부를 잘 한다. 어렸을 때부터 남보다 자기만 아는 사람이 공부를 열심히 할 이유를 더 잘 찾는다.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이 서울대학교를 간다.
인기 드라마 SKY캐슬이나 펜트하우스에서 명문대 진학을 노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묘사되는지 보라. 그냥 드라마 이야기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드라마들이 히트하는 이유는 그게 허구가 아니라 이 사회의 단면이기 때문이다.
눈을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고?
예나 지금이나 서울대 학생들이 자랑하는 슬로건이 있다.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는 것이다. 자뻑 충만한 낯 뜨거운 슬로건이 아닐 수 없는데, 나는 이 슬로건이 이제 정말로 걱정스러워졌다.
그들의 주장처럼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물었을 때 관악을 봤다고 치자. 그 미래는 “내가 1등이다”라는 선민의식에 가득 찬, 출세 지향적이고 이기적이며, 기득권 수호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차지다. 공공의 안녕은 안중에도 없다. 대한민국에서 유일무이한 최고 학교이기에 그들의 네트워크를 견제할 세력도 없다. 그게 내 조국의 미래라면 정말로 절망스럽지 않은가?
내가 알기로 2000년 처음으로 비운동권이 서울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이후 20년 중 거의 15년 가까이 비운동권이 그 학교 총학생회를 휩쓸었다. 최근 7, 8년 사이에는 아예 운동권 후보가 출마조차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사실들이 무엇을 의미하나? 그들은 더 이상 사회나 공동체 문제에 관심이 없다. 공공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생각도 없다. 2019년 서울대 생협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했을 때 당시 한 총학생회 간부가 메신저를 통해 “생협 X같네”라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졌는데, 나는 그 사실을 듣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미 그 학교 총학생회는 그런 존재였다.
“그들 중에는 생각이 올바른 이들도 있지 않겠느냐?”는 반론은 물론 옳다. 잘 찾아보면 당연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반적으로 이기적인 사람들로 가득한 국립대학교의 존재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다른 명문대학도 다 그렇지 않느냐?”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서울대는 다른 그 어떤 대학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압도적 지위를 갖고 있다. 게다가 이 학교는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공공의 자산으로 운영되는데 가장 반공공적이고, 민중의 세금으로 운영되는데 가장 반민중적이다. 조국의 미래를 물으면 관악을 보라는데, 그 관악에는 이기심만 가득할 뿐 공동체를 향한 희망이 없다.
그렇다면 이 학교를 그대로 놔둬야 할 이유가 도대체 뭔가? 그래서 말한다. 이 지긋지긋한 기득권을 당장 해체하자. 그리고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공립대학교에서는 이기심이 아니라 이타심을, 개인이 아니라 공공의 정신을 가르치자. 이것이 우리의 교육을 정상화시키고 공동체의 가치를 새롭게 다지는 초석이 될 것이라 나는 굳게 믿는다.
**사족:“교육적 관점에서 서울대를 해체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이 나올까봐 덧붙인다. 나는 교육 문제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이 칼럼도 서울대 해체의 교육적 관점을 논한 글이 아니다. 하지만 교육적 관점에서 당연히 여러 반론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대를 해체하면 연세대나 고려대가 그 바통을 이어받을 것 아닌가?”라거나, “교육 경쟁력이 하락하면 어떻게 할 거냐?” 등의 반론이 그것들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뛰어난 전문가들이 고견을 피력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 매우 공감했던 교육 전문가의 글을 아래에 소개한다. 2019년 『오마이뉴스』에 실린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서울대가 특별한 이유 3가지, 사라져야 할 이유 8가지’라는 글이다.
민중의소리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후원회원이 되어주세요.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정기후원은 모든 기자들에게 전달되고, 기자후원은 해당 기자에게 전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