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보] 열여덟의 성착취 기록은 ‘평범한 여고생’ 이야기였다

“누군가에겐 교복이 방패가 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교복이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18살의 성 착취 기록이 나왔다. 강그루(필명) 작가의 책 『악취』 다. 반년의 조건만남 경험 이후 자신에게 났던 악취가 실은 가해 남성들의 것이란 사실을 강 작가는 십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또래인 그의 이야기를 쫓아가며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었다. 강 작가처럼 가정폭력을 경험했던, 집에 가기 싫어하고 외로워했던, 돈을 빨리 많이 벌고 싶었던, 내 친구들. 책은 평범한 여고생의 이야기였다.

강 작가는 “내 악취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또 다른 향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 이후 ‘성매매 대상자’로 처벌받던 아동·청소년이 ‘성 착취 피해자’로 보호받도록 법이 바뀌었지만, 가해 남성보다 피해 아동·청소년을 향하는 손가락질은 그대로다. 강 작가는 그런 세상을 향해 “정말 18살이던 저만 잘못한 건가”라고 따져 물으면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라며 고립돼 있을 피해 아동·청소년에게 손을 내밀었다.

강 작가는 지난 일주일 동안 인터뷰 질문을 꼭꼭 씹어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간 서면 답지를 지난 26일 보내왔다.

ⓒ글항아리

“솔직히 말해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미성년자 성 착취 피해자의 말하기에 주목했다. 스스로 피해자라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탓에 말하기는 어렵다. 강 작가도 2018년 십대여성인권센터 주최로 열린 미성년자 성 착취 관련 전시회 〈오늘〉에서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에요”라는 포스트잇을 보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을 피해자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피해 아동·청소년도 성 구매 남성처럼 범죄자로 처벌했던 법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개정 전 법은 자발성을 기준으로 성매매 유입 아동·청소년을 ‘피해자’와 ‘대상자’로 구분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한편 대상자를 처벌하도록 했다. 아동·청소년을 성매매 주체로 여기는 태도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법 개정 전이라 많이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도 당시 제가 겪은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되짚어보고 또 되짚어봤다. 그 과정이 가장 어려웠다.”

피해 아동·청소년을 비난하는 여론도 말하기를 주저하게 했다. “랜덤채팅 앱 관련 미성년자 성범죄 기사의 댓글을 본 적이 있다. 모두 아이들과 관계를 맺은 성인 남성들 대신, 미성년자인 아이들에게 ‘까졌다’, ‘걸레다’ 등의 욕을 하더라. 그때 사회적 고립감을 느꼈다. 마치 제가(아이들이) 가해자가 된 것 같았다. 제가 그 일로 피해를 준 건 내 자신뿐인데 사람들은 뭐 때문에 내게(아이들에게) 화가 난 걸까, 억울함에 속상했다.”

이후 ‘정말 나만 잘못한 건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내가 왜 그렇게 된 걸까?’ 등의 의문이 떠나지 않았고, 그 답을 찾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강 작가다. 어딘가에서 자신처럼 괴로워하고 있을 이들에게 ‘나도 그랬어’라며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1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우리의 연대가 너희의 공모를 이긴다'에서 참석자들이 함께 연대의 의미로 끈을 잇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공대위는 텔레그램 상에서 여성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성착취를 한 조주빈(박사) 등 공판이 예정된 이날 가해자들을 향해 반성하고 사죄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학교와 공공기관, 직장 곳곳에서 온라인 성폭력 문제에 경각심을 가지고 지침에 반영함으로써 피해자를 지원하는 감수성을 사회적으로 제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2020.6.11ⓒ뉴스1

하지만 여전히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비난의 댓글들이 자꾸 떠올랐다. 그런 그를 움직인 건 또 다른 피해자의 말하기였다. 강 작가는 전시회 〈오늘〉에서 만났던 미성년자 성 착취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자꾸 떠올라서 글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전시회를 봤을 때 죄책감이 들었다. 가해 남성들이 성 욕구를 채우려고 어떻게 아이들을 설득하고 설득해서 범죄에 가담하게 하는지 잘 알고 있는데도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를 잠깐 포기했을 때였는데, ‘내가 용기를 낸다면, 한 명의 아이라도 그런 일을 겪지 않을 수 있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더는 자책만 하지 않고 뭐라도 하기 위해서 글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전시회를 통해 피해 아동·청소년을 도와주고 가해 남성들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는 점을 깨닫기도 했다. “전시회를 알게 되면서 관련 아이들을 도와주는 단체(십대여성인권센터 등)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전시회를 보며 ‘세상 사람들 모두가 비난만 하는 게 아니구나. 어른들이 잘못한 거라고 말해주는 사람들도 있구나’ 알게 됐다. 그 일을 계기로 용기를 얻어 출판사에 여러 번 투고했다.”

말하기 과정에서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해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고 강 작가는 말했다. “아이들이 이 점을 꼭 알아줬으면 한다. 저도 그랬지만, ‘나는 이제 끝났어’, ‘모두가 비난만 할 거야’라고 자책하면서 피해를 경험해도 아무에게 말하지 못하고, 자포자기하면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아니라는 점을 꼭 알아줬으면 한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n개의 성착취, 이제는 끝내자!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근본적 해결을 원한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03.26.ⓒ뉴시스

촘촘한 성 착취의 늪
안 빠진 게 행운이다

조건만남은 평범한 얼굴로 강 작가를 찾아왔다. 그가 18살이던 당시 아빠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가정폭력을 경험했다. 동생이 학교폭력을 당했는데, 선생들은 동생이 전학 가길 바랐고, 몇 가해자 부모들은 자신의 직업을 들먹이며 부끄러운 줄 몰랐다. 아빠는 항상 ‘돈이 없으면 반드시 불행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돈을 빨리 많이 벌고 싶었고, 외로웠다.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고 싶은 마음에 기술직 자격증 학원에 다니고 싶었다. 그러나 돌아온 말은 ‘공부나 해’였다. 학원비를 벌기 위해 몰래 아르바이트하려고 했지만, 부모님 허락 없이 불가능했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 공개하기’ 서비스를 이용했다. 사용자가 먼저 구직자에게 연락할 수 있는 서비스다.

첫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용 그루양 맞나요? 구인 사이트에서 이력서 보고 연락했어용 *^^*” 기쁜 마음에 서둘러 “맞아요!”라고 보내니 답장이 왔다. “대학생 오빠들이랑 한 시간 데이트하고 3만 원 용돈 받는 거예요. 돈이 더 필요하면 스킨십하고 2만 원, 잠자리하고 7만 원 더 받을 수 있어용 *^^*”

데이트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앞으로 닥칠 위험을 고려하기엔 지금 당장 너무 간절했다. “이번 주 토요일 저녁 7시 가능할까요?” “좋아용~*^^* 그루양, 그래도 그날은 데이트니까 치마 입고 와요. 교복도 좋구요” 가정에서 물리적·정서적·경제적 폭력을 경험한 아동·청소년은 성 착취 피해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미성년자 성 착취의 핵심은 ‘그루밍’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드는 등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 착취하는 수법이다. 지난 2월에서야 아동·청소년을 성적으로 유인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이 통과됐다. 법 개정으로 경찰의 위장 수사도 허용됐다.

강 작가는 성 구매 남성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고민도 들어주고 듣고 싶은 말도 해줬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주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려 포장을 해오는가 하면, 멋진 선물을 주기도 했다. 그는 사랑받고 있다고 착각했고, 정신적으로 의지하기 시작했다.

그는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좋은 말만 말했다. “그래도 맛있는 걸 사주고 (섹스해) 드라이브를 시켜주고 (섹스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줘 (그리고 섹스해) 관계할 때만 그렇지 그거 빼고는 (미성년자인 나와 섹스하려고) 잘해줘” 하지만 강 작가가 성관계를 거부하자 이들의 얼굴은 돌변했다.

텔레그램에서 여성 70여 명을 성착취한 '박사' 조주빈 씨는 법정에서 10대 피해자가 돈을 받고 자발적으로 성매매했다고 주장했다.ⓒ민중의소리

강 작가는 아동·청소년이 ‘성 착취 피해자’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술과 담배를 예시로 들었다.

“어른이 먼저 학교 앞에 찾아가 교복 입은 아이에게 담배와 술을 팔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학교생활 힘들지? 이거 하면 스트레스 풀려’, ‘한 번 해보고 별로면 하지마’, ‘어른 되면 어차피 다 하는 거야’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니코틴·알코올 중독자가 됐다면, 사람들은 누가 잘못이라고 말할까. ‘아이들도 동의했으니 처벌해야 한다’고 말하는 어른이 있을까. 오히려 어른을 강하게 처벌하고 아이들을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지 않을까.”

“성 착취도 똑같다. 어른이 먼저 교복 입은 아이에게 접근해 ‘용돈 필요하지?’, ‘그냥 남자친구 만나듯 데이트만 하면 돼’, ‘필요한 거 없어?’, ‘일단 나와 보고 아니다 싶으면 안 나와도 돼’라며 성관계를 맺었다면, 그건 어째서 아이들도 범죄자가 되나. 왜 어른보다 아이들이 더 많은 비난을 받나. (피해 아동·청소년이) ‘돈 받았으니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성인이 부모 동의 없이 자신의 사업장에 아이를 고용했다면 어떨까. 그 과정에서 아이가 다치거나 부당한 일을 당했다면, 그때도 ‘돈 받았으니 부모 동의 없이 일한 너도 처벌받아’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루밍 당하는 아이들 대부분이 애초에 상처가 많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라도 누군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를 치며 공감해주고, 칭찬해주고, 용돈이라며 돈을 주고, 안아주면 그걸 관심이고 사랑이라고 느낀다. 우선은 성 구매 남성들부터 없어지길 바라고, 아이들에게 상처 주지 않는 어른들이 더욱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너무 오랜 시간 아파하지 않길”

책을 다 읽고 나니 강 작가가 단단한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10년간 자신을 쫓아다닌 악취와 마주하고 오히려 구덩이에서 나올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일을 구하고, 여행을 다니고, 독립도 했다. “힘든 순간들도 있겠지만 다시 배우고 수정해가면서 꾸준히 도전하고” 싶다는 강 작가다.

성착취반대여성인권공동행동 회원들이 1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2018 성착취반대 여성인권 공동행동 기자회견을 열고 성매매방지대책 재수립 및 전담체계 구축과 제대로된 성착취범죄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2018.9.19ⓒ뉴스1

“저는 사실 무른 사람이다. 쉽게 상처받고 그 상처 속에 빠져 혼자 끙끙 앓기도 한다. 이런 자신이 싫어서 단단해지려고 눈 질끈 감고 이것저것 많은 시도를 했다. 성인이 된 이후엔 아르바이트도 안 해본 일이면 지원해서 해보기도 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속으로 덜덜 떨고 긴장해서 친구들이 ‘찌질이’라고 놀리기도 한다. 하지만 주변 도움을 받고 배우면서 도전한 일을 무사히 끝냈을 때 느끼는 행복이 좋았다. ‘오 나 이제 이것도 할 줄 아네?’, ‘오 무사히 집에 돌아왔네’ 하는 경험들이 쌓여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도 도전하면서 살고 싶다. 제 이야기로 책을 쓰게 된 도전이 무사히 끝났으니, 이제 또 다른 이야기로 글을 쓰고 싶다. 꼭 글이 아니더라도 제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그 과정의 마무리를 더 잘 해내고 싶다. 과정에 있을 상처나 힘든 일보다 ‘어떻게 잘 해낼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 묻고 배우며 해냈을 때 느끼는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강 작가는 소원을 묻자 “더는 이 세상에 가정폭력, 학교폭력, 성 착취, 성폭력 등 여러 폭력과 학대, 범죄 등을 겪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라며 “소소하게는 제 책이 누군가에게,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도움이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강 작가가 책에서 자신과 같은 경험을 했을 이들에게 전한 말로 마무리한다.

“다들 너무 오랜 시간 증오하고 자책하고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왜 그랬지?’, ‘그 방법밖에 없었나?’ 등 과거의 수많은 물음표에 답을 주기 위해 너무 오랜 시간 현재의 자신을 쏟아붓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차라리 지금의 내게 물음표를 만들어서 ‘지금 무엇을 할지’, ‘지금부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당장 뭘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서 한발 한발 바깥으로 나오자고 끌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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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영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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