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옥의 수북통신] 어떤 지옥도

한나는 어렸을 때, 어머니한테 자꾸자꾸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어린아이를 어린아이로 보지 말라. 어린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쎈 것’을 원하는 자들이다. 독한 것을 원하는 인간의 본성은 어린아이시절부터 이미 생겨나 있다. 그래서 어린 한나는 옛날이야기 해달란다고 어머니가 진짜 옛날이야기, 아주 옛날 옛적에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깊은 산골에... 이러면 어머니 입부터 막았다. 그런 이야기 말고 다른 거를 원했던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냐, 바로 전쟁 이야기. 인공때 이야기 해달란 말여어. 어머니는 마지못해 인공때, 말하자면 어머니가 겪었던 전쟁시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바로 요맘때여, 먹을 것이 암 것도 없지. 산천에 쑥은 지천이어도 곡식이 없어, 멀건 쑥국만 먹고 억지로 잠을 자지만 배가 고파 잠이 오나. 새들도 잠을 못자고 호르르, 호르르, 울어쌌지. 배고픈 이야기, 새 이야기가 너무 길다. 한나가 기다리는 건 ‘스펙타클’한 진짜 전쟁 이야긴데. 것도 아니라면, 손에 식은땀 나는 이야기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엄마의 배고픈 이야기는 지루하기만 하다. 한나가 기다리는 진짜 전쟁 이야기, 진짜 ‘쎈’ 이야기는 언제 나오나, 말하자면, 캄캄한 밤중에 시커먼 산사람들이 조용히 나타나... 그것도 아니면, 토벌대가 들이닥쳐 닥치는 대로 총칼로 들쑤시며 사람들을...

그러나,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어머니에게는 어린 자식이 자꾸 ‘그때, 인공때’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다른 누구도 아닌 어머니의 아버지가 바로 그때, 인공때 산사람들한테 먹을 것을 줬다고 토벌대한테 죽임을 당하지 않았나. 철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인간의 자식들이란 게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종자’인가. 말하자면, 끝없이 더 더더더, 를 갈급하는 속성이 인간 내면에 이미 장착되어 있는 것인가. 어머니 돌아가신지도 한참 되었고 한나 또한 장성한 자식을 둔 초로의 이 시점에사 가슴을 친다. 아무리 어렸다손치더라도 그리도 고통의 공감능력이 바닥일 수가. 아이고, 어머니이!

옛날 비디오 가게가 성업이던 시절, 비디오 빌리러오는 사람들이 지난번 거보다 더 쎈 거 없어요? 하던 것을 기억한다. 한나도 젊은 시절 만화 가게를 한 적이 있는데, 무협지 빌리러 온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쎈 거 찾는 사람들은 다음번엔 더 쎈 거, 그 다음번엔 더더 쎈 것을 주문했다. 그러고 보니 세상은 늘 더, 더더, 더더더, 쎈 거를 찾아왔던 것 같기도 하다. 더 약한 것, 더 부드러운 것, 더 순한 것, 더 작은 것, 더 고요한 것, 더 희미한 것...이 아니라 더 쎄고, 더 강하고, 더 독하고, 더 크고, 더 시끄럽고, 더 확실한 것을 찾는 쪽으로. 광주에는 ‘비움박물관’이란 공간이 있다. 아주 오래지 않은 시절에 보통의 가정집들에서 썼던 생활물건들이 빼곡히 저장, 진열되어 있다. 갈 때마다 한나는 놀라곤 하는데, 아주 오랜 옛날부터 3,40년 전까지 흔히 쓰이던 그 물건들이 정말 작고, 소박하고, 그리고 한나에게는 왠지 고요하게 느껴지던 것이었다. 기실 그 물건들이란 한나에게도 익숙하다. 한나네도 80년대 초반까지도 플라스틱 바가지가 아니라 박바가지를 썼다. 박바가지가 깨지면 무명실로 꿰매 쓰는 건 당연했다. 꿰매고 엮고 짜고 다듬어 쓰는 것이 생활도구들이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작고 고요하여 그 곁에 있으면 착해지는 기분이 든다. 밥상들은 또 어쩌면 그리도 작은지. 밥상이 작으니 그릇도 작다. 큰 것은 오직 밥그릇, 국그릇이다. 한나는 실은 그런 밥상에서 그런 밥을 먹고 싶었다. 소반에 간장종지 하나, 순한 물김치 하나 놓고 밥은 고봉밥으로 먹고 싶었다. 그러나 요즘은 어딜 가도 밥을 조금만 준다. 사람들은 밥은 안 먹고 다른 것을 먹는다. 밥은 살찐다고 안 먹는다고 한다. 밥같이 맛나고 순한 것이 없을 터인데, 밥은 한사코 안 먹고 딴 것을 찾는다. 밥 말고 딴 거, 더 달고, 더 맵고, 더 기름지고, 하여간 더 쎈 거.

좀 산다 싶은 사람 집에 가보면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집 같다. 광고에 나오는 가전기기를 다 갖추고 있다. 그 물건들은 하나같이 우람하다. 가정집인데도 영업집 같다. 호텔 같다. 밥은 한사코 싫어서 병아리 모이만큼 먹고 다른 것은 열심히 찾아먹는 사람들이라 거대한 탱크 같은 냉장고 안에는 대형마트에서 ‘카트떼기’ 해온 식재료들로 채워져 있다. 혹은 코로나시대라 ‘온라인쇼핑떼기’ 한 것들로. 그런 것을 먹고 대형 가전제품들로 살림을 하고 사는 사람들은 이제 웬만큼 시끄러운 것도, 웬만큼 화려한 것도, 웬만큼 요란한 것도 다 시들한듯하다. 당대의 가장 쎈 것이 무엇이랴.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을 보면, 전날 ‘5·18민주화운동을 모욕한 신문사 처벌 청원합니다’라는 청원 글이 게시됐다. 매일신문은 지난 18일 자사 홈페이지에 5·18 당시 계엄군이 한 시민을 둘러싸고 진압봉으로 내려치는 장면을 묘사하는 그린 만평을 게시했다.ⓒ매일신문

그래서 그런 그림을 그렸겠지. 하도 쎄고 하도 독한 세상을 살아서. 쎄고 독한 것에 중독되어서. 그래서 1980년 5월에 대한민국 군인들이 대한민국 민간인을 총개머리판과 몽둥이로 후려치고 군홧발로 지근지근 짓밟는 사진을 그대로 본떠 만평이랍시고 실었겠지. 죽임을 당하고 있는 사람의 고통을 고가의 부동산을 가져 종합부동산세를 내야하는 부자의 고통과 동일시 할 수 있는 것은 죽임 당하는 사람의 참혹한 모습이 고통으로 여겨지지 않아서겠지. 누군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도 그리 고통스럽게 느껴지지 않아서. 너무나 쎈 것들을 봐오다 보니, 웬만한 것은, 더구나 사진 같은 간접이미지로는 고통은커녕, 연민도 느껴지지 않아서.

프란시스코 고야 ‘전쟁의 참화’ 중 36번 판화ⓒ자료사진

어머니한테 더 쎈 이야기를 졸랐던 어린 한나가 세월이 한참 지난 뒤 가슴을 치고 있는 와중에도 세상은 더, 더더, 더더더, 쎄고, 강하고, 독한 쪽으로 몰려가고 있다. 작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사람들 쪽보다 거짓말도 큰소리치면서 하는 사람들 쪽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을 보면, 한나는 문득 중세시대의 도상(圖像)들이 떠오른다. 톱에 잘리는 고문을 당하는 순교자의 그림을 보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냈던 지옥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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