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오세훈 후보님, 비강남은 어느 동네 이름인가요?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입만 열면 사고를 치고 다니는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 사고는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다. 그 사람 철학이 그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나오는 말들이다.

하도 친 사고들이 많아서 일일이 검토하기도 버겁다. 그래서 그의 숱한 헛소리들(특히 “용산참사는 철거민들의 폭력 행위 때문에 발생했다”는 취지의 발언)에 대해서는 민주노총이 남긴 한 줄 논평, “욕도 아깝다”로 평가를 대체한다.

다만 이 칼럼에서 한 가지만 따로 짚어보려고 한다. 지난달 29일 열린 TV토론회에서 오 후보가 수차례 ‘비강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대목이다. 그날 SNS에 비강남이라는 단어가 떠돌기에 나는 가수 비 씨와 강남 씨가 콜라보로 무슨 콘서트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고 오 후보가 자꾸 서울을 강남과 비(非)강남으로 구분 짓더라는 거다.

서울이 ‘강남과 나머지들’ 뭐 이렇게 구성됐다는 이야기인데, 이건 또 무슨 무례한 용어 선정인가? ‘서태지와 아이들’, ‘이치현과 벗님들’, ‘인순이와 리듬터치’, ‘강병철과 삼태기’, 뭐 이런 종류의 작명 센스인 건가?

구성원의 평등을 중시하는 나는 원래부터 ‘서태지와 아이들’ 류의 이름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들조차 그룹 이름을 ‘서태지와 비서태지들’, ‘이치현과 비이치현들’, ‘인순이와 비인순이들’, ‘강병철과 비강병철들’이라고는 짓지 않았다. 무례도 적당해야 참고 넘어갈 것 아닌가?

한 줄 요약의 위험성

행동경제학에는 인지적 유창성(cognitive fluency)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 말은 ‘사람의 뇌는 문제를 쉽게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어려운 설명과 쉬운 설명 중 본능적으로 쉬운 설명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해답이 어렵고 복잡하면 뇌가 그것을 해석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제시된 해답이 간단하면 뇌는 그것을 해석하는 일에 에너지를 거의 소모하지 않는다. 그래서 뇌는 본능적으로 간단하고 쉬운 설명을 좋아한다.

문제는 이런 인지적 유창성이 대표적인 뇌의 오류 중 하나라는 데 있다. 인간의 뇌는 간단한 해답을 종종 진실이라고 착각하는데,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조선시대에 어떤 이유로 국가적으로 농사를 망쳤다. 이러면 당연히 농사를 망친 이유를 잘 분석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복잡한 분석을 싫어한다. 이때 임금이 나서서 “다 짐이 부덕한 탓이로다”라고 한 마디 하면 사람들이 대번에 설득이 된다. 그래서 해법이랍시고 나온 게 임금이 신에게 고사를 지내는 것이다.

이런 예는 어떤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형편없는 경기력을 보이며 조별예선에서 탈락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팬들 사이에서 떠돌았던 가장 설득력 있는 패인은 “이 모든 게 장현수 때문이다”였다.

나는 축알못이지만, 적어도 이 여론은 완전히 틀렸다. 4년을 준비했는데도 부진했던 국가대표팀의 실패가 어찌 수비수 한 명 때문이었겠는가? 게다가 문제의 원인을 이렇게 단순화하면 오류가 고쳐지지 않는다.

이 논리대로라면 장현수 선수만 빼면(실제 장 선수는 다른 불미스런 이유로 국가대표 자격을 영구박탈 당했다) 국가대표팀은 승승장구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리가 있나? 최근 벌어진 국가대표 한일전에서 한국 대표팀은 장현수 선수를 빼고도 일본에 치욕적인 0대 3 패배를 당했다. 이게 바로 인지적 유창성이 낳은 오류다.

서울의 문제를 비강남 문제로 치환하면?

오세훈 후보가 TV토론 내내 강조한 것이 강남과 비강남(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나는 이 표현을 혐오한다)의 격차였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그는 비강남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유세 현장에서도 그는 “강남과 비강남 지역 격차를 줄이는 것이 서울시장의 책무”라고 주장했다. 이 말은 오 후보 머릿속에 강남-비강남 프레임이 매우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는 정말 궁금하다. 강남과 비강남의 어떤 격차를 어떻게 줄이겠다는 거냐? 강남, 서초, 송파구를 제외한 나머지 22개 구의 빌딩 평균 높이를 강남처럼 높이나? 22개 구 집값을 강남처럼 치솟게 하나? 22개 구도 강남 일대처럼 사교육 천국으로 만드나? 아니면 강남에 즐비한 고급 룸살롱을 서울 다른 구로 막 옮기고 그러나?

다 말이 안 되지 않나? 이게 말이 안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22개 구에는 각 지역의 특성이 있고, 그곳 민중들에게는 자기만의 삶이 있다. 당연히 그 속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실로 다양하다. 이 복잡한 문제들을 “전부 다 비강남이어서 생긴 문제”라고 한 마디로 퉁을 쳐버리니 “강남 따라 하면 다 풀린다”는 어처구니없는 해법이 나오는 것이다.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2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깨비시장 앞에서 열린 선거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다른 이야기를 하나만 더 해보자. 오세훈 후보는 TV 토론 기조연설에서 “서울의 마지막 기회의 땅, 용산을 대한민국의 라 데팡스(La Defense)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이 프로젝트가 “강북 전체를 변화시킬 100만 평의 선물이다”라는 것이었다.

자, 이 발상 또한 강남을 라 데팡스(La Defense)로 바꿨을 뿐 “비강남은 강남 따라 하면 다 된다”는 그의 철학에 기반을 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진짜 궁금하다. 용산을 대한민국의 라 데팡스(La Defense)로 만들면 강북 전체가 왜, 어떻게 변한다는 건가? 용산을 개발하면 노원구민들도 막 행복해지나? 노원구에서 용산 전자상가까지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오세훈 후보의 머릿속에는 노원구도 비강남, 용산구도 비강남, 은평구도 비강남이다. 이렇게 퉁을 쳐버리니 “용산을 개발하면 강북 전체가 변화한다”는 황당한 결론이 도출되는 거다.

더 웃긴 점은 오 후보 스스로 용산을 “서울의 마지막 기회의 땅”이라고 불렀다는 거다. 그러면 용산을 개발한 뒤 나머지 21개 구(강남 3구 + 용산구 제외)는 그냥 망하라는 거냐? 용산이 ‘마지막’ 기회이니 나머지 21개 구에는 남은 기회 자체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렇게 ‘마지막 기회의 땅’ 용산을 개발한 다음에 나머지 21개 구민들에게는 뭐라고 할 건가? “지금부터 서울의 가장 큰 문제는 용산과 비용산의 격차입니다” 뭐 이럴 건가? 아니면 “비강남인 용산을 개발했으니 비강남 시민들은 다 행복한 거 아닌가요?” 이럴 거냐고?

25개 구에 산재한 1,000만 서울 시민의 삶을 세심히 들여다보지 않고 문제를 강남-비강남 프레임으로 치환해버리니 이런 일이 생긴다. 오 후보의 머리는 단순해서 강남-비강남 한 줄로 문제를 다 해석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생각이 단순한 건 죄가 아닌데, 그 단순한 생각으로 서울시장을 하려는 건 큰 문제다.

‘비강남의 강남화’가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목표라면, 그쪽 당 다음 대통령 후보의 목표는 ‘전국의 강남화’쯤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스럽다. 시민을 ‘강병철과 삼태기’처럼 ‘강남과 비강남’으로 나눈 다음, 열심히 살고 있는 삼태기에게 “강병철처럼 되란 말이야! 너는 왜 강병철이 못 되는 거야!”라고 강요하는 건 공포 영화에 가깝다.

그리고 내가 진짜 걱정하는 대목은, 이 공포 영화가 아직 개봉도 안 했다는 점이다. 아, 나는 이 무서운 영화가 개봉될까봐 진심으로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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