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미국은 복종을 강요하기 위해서라면 경제적 이익도 포기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 8월20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이란의 핵협정 불이행 의혹 문제를 논의한 후 안보리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트럼프 미 행정부는 19일(현지시간) 유엔의 대이란 제재가 모두 복원됐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전 세계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러한 미국의 선언은 불법이라며 거부하고 있다. 2020.9.20ⓒ사진=AP/뉴시스

편집자주: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노암 촘스키(91) MIT 명예 교수에 대한 설명이 굳이 필요할까? 역대 인물 중 학문적으로 여덟 번째로 자주 인용되는 석학인 촘스키는 활발한 정치적 평론과 행동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미국의 폭력적인 외교정책, 미국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엘리트, 그리고 이에 편승하는 언론을 신랄하게 비판해 온 촘스키를 미국 진보지 트루스아웃이 인터뷰했다. 바이든의 외교정책에 대한 촘스키의 평가는 어떨까? 장문의 인터뷰를 두 번에 걸쳐 전한다.
원문:Noam Chomsky:Biden’s Foreign Policy Is Largely Indistinguishable From Trump’s

촘스키 인터뷰:바이든과 트럼프의 외교정책은 그놈이 그놈이다

질문: 이란과 관련해서는 별 희망이 없어 보인다. 바이든이 버락 오바마 정권에서 가학적인 이란 제제를 고안해낸 당사자인 리처드 네퓨를 이란 부특사로 임명하기까지 했다.

촘스키: 바이든은 거의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트럼프의 이란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이란 문제를 말할 때 쓰는 용어나 말투조차 바뀌지 않았다. 그러니 트럼프 정권 때 지금의 이란 정책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보는 것이 좋다.

트럼프는 다른 참가국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UN 안보리결의안 2331호를 어기며 이란 핵협정(JCPOA)을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UN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결의안 2331호를 유지하고 UN의 이란 제재를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하자 미국은 멋지게 자기 헤게모니를 과시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이 그들에게 헛소리하지 말고 대이란 제재를 연장하라고 한 것이다.

트럼프는 굉장히 가혹한 새로운 제재를 부과했고 다른 국가들에게도 이를 엄수하라고 강요했다. 이란 핵협정을 더 엄격한 협정으로 바꾸자는 미국의 입장을 이란에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이란 국민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 도래하자 이란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원조를 막음으로써 이란 국민을 궁지에 몰고 갈 새로운 기회도 열렸다.

이란은 2020년 초에 더 이상 핵협정을 준수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2018년에 먼저 일방적으로 이란 핵협정을 탈퇴했던 미국이 협상을 하고 싶으면 이란이 먼저 핵협정을 다시 준수해야 한다며 배짱이다.

예전에도 내가 몇 번 한 얘기지만, 이란 핵협정을 개선할 수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중동에 ‘핵무기 없는 지대’를 형성하는 것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가로막는 하나의 장벽이 있다.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국제회의에서 이 제안이 나올 때 마다 거부권을 행사한다. (가장 최근에 이를 거부한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였다).

그 이유는 잘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의 주요 핵무기가 사찰되는 일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을 인정한다면 미국이 해마다 이스라엘에게 보내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원조가 미국 법에 저촉될 것인데, 공화당도 민주당도 이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것도 대중적 압력이 없으면 절대로 논의되지도 않을 주제 중 하나다).

지난 2021년 2월 22일, 이스라엘 디모나 시 근처에 있는 시몬 페레스 네게브 핵연구센터가 대대적인 공사 중이라는 사실이 위성 사진으로 잡혔다. 오랜 비밀 시설로 이스라엘 핵무기의 탄생지인 이 시설에 이렇게 큰 공사가 이뤄진 것은 수 십 년만인 것으로 알려졌다.ⓒ사진=AP/뉴시스

트럼프는 이란 정책 때문에 미국에서 비판을 받는다. 민간인인 이란 국민들을 고통에 빠뜨려서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이란 정부가 무릎을 꿇지 않기 때문이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의 전쟁과 이라크 침공 등이 미국 내에서 비판받고, 반세기에 걸친 탄압과 테러에도 불구하고 쿠바가 굴복하지 않자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쿠바 정책을 바꾼 오바마가 칭찬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것이 세계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진정한 헤게몬의 특권이다. 외국의 비웃음은 아무렇지도 않고, 누군가가 ‘독립적인 사고방식들의 (동질적인) 무리’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던 미국 대부분의 지식인층과 정치인들의 지지는 굳건히 믿을 수 있는 것 말이다.

어쨌든 바이든은 트럼프의 이란 정책을 고스란히 이어 받았다. 거기다가 한 술 더 떠서 네퓨를 이란 부특사로 임명한 것이다. 네퓨는 ‘제재의 기술’이라는 저서를 통해 “취약하지 않은 지점은 피하면서 취약한 지점만의 고통을 조심스럽고 조직적이며 효과적으로 증가”시키는 제재를 고안하는 ‘올바른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확실히 헤게몬의 이란 부특사로 네퓨는 최적의 선택이다.

미국의 쿠바와 이란 정책은 제국주의 세력이 지배 아래 있는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들여다 볼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준다. 쿠바는 1959년 해방을 쟁취한 이후부터 미국의 일방적인 폭력과 고문의 표적이 됐다. 미국의 행동이 진정으로 가학적인 수준이 되어도 미국의 엘리트층은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국무부의 초기 문서에 따르면, 피델 카스트로의 죄는 미국이 미주지역을 장악할 권리를 선포한 1823년의 먼로 독트린이래 일관되게 유지된 미국의 미주 정책을 “성공적으로 거부”하는 것이었다.

이란도 마찬가지다. 1979년 민중 봉기로 미국이 군사쿠데타로 의회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세운 독재자가 무너지면서부터 말이다. 이스라엘은 샤의 폭정과 극심한 인권 침해가 이뤄지는 동안 이란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래서 샤가 축출될 때 미국과 마찬가지로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사실상 이스라엘의 대사였던 유리 루브라니는 봉기를 진압하고 샤를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병력으로 복귀시킬 수 있다. 의지가 강하고 무자비하며 잔인한 정예부대면 가능하다. 만 명 정도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미국도 동의했다. 지미 카터 당시 미 대통령은 나토의 로버트 E. 허이저 장군을 이란으로 보내 이란군에게 이 일을 맡아달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이란군은 성공가능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로널드 레이건 미 정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이란을 침공했다. 레이건은 후세인이 처음에는 이란 국민에게, 나중에는 이라크의 쿠르드족에게 화학무기를 쓴 다음에도 그를 지지했고, 이란에게 그 책임을 돌리고 미 의회의 비난 성명을 막으면서 후세인을 보호했다. 그리고는 걸프만 미 해군을 직접 투입해 후세인을 지원했다. 그러다가 이지스함 빈센스(USS Vincennes)이 명확히 표시된 상업 영공에서 이란 민간 여객기를 격추해 290명을 죽였다. 빈센스호는 격한 환영 속에 미국으로 돌아갔고, 미국은 여객기의 격추를 명령했던 지휘관과 미사일을 발사했던 비행 장교에게 미국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무공 훈장인 명예 훈장(Medal of Honor)를 수여했다.

1988년 7월, 추모자들이 이란 테헤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미국이 격추한 민간 항공기 655편의 희생자들에 대한 합동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미국은 여객기의 격추를 명령했던 USS 이지스함 빈센스의 지휘관과 미사일을 직접 발사했던 비행 장교에게 미국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무공 훈장인 명예 훈장을 수여했다ⓒ사진=AP/뉴시스

미국에 맞설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란은 사실상 굴복했다. 미국은 이란을 가혹하게 제재하는 한편 후세인에게 많은 보상을 줬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의 핵 엔지니어들을 미국으로 초청해 핵무기 생산에 대한 고급 훈련을 제공했고, 화학무기로 비옥한 농업지대를 훼손한 이라크가 시급하게 필요로 했던 농업 원조도 제공했다.

또, 밥 돌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이끄는 고위급 사절단을 이라크로 보내, 미국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지 못하니 이라크에 대한 비판이 나오더라도 이를 무시해 달라고 당부했고 국영 방송인 보이스 오브 아메리카(VOA)를 통해 그런 비판에 맞서겠다고 후세인을 안심시켰다. 1990년 4월의 일이었다.

몇 달 후, 후세인은 명령을 무시하고 (혹은 오해해서)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그 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아니, 똑같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미국에 ‘맞선’ 대가로 이라크도 이란과 마찬가지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이 이라크에게 가혹한 제재를 가했고, 대통령령과 법률을 통해 이란 경제의 기반이 되는 석유 부문에 대한 투자도 제재하기로 했다. 유럽이 반발했지만, 미국의 영토를 뛰어넘는 제재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제재를 피할 길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 기업들도 피해를 봤다. 일례로 이란이 미국 에너지 회사 코노코에 10억 달러에 이르는 계약을 제안했는데, 클린턴이 개입해 이를 막았다. 보통의 경우, 특히 에너지와 관련된 문제는 18세기 영국에 관한 아담 스미스의 다음 말을 따른다. “사적 경제를 지배하는 ‘인류의 주인’들이 정부 정책를 만드는 입안자들이며, 이들은 (영국 국민을 포함한) 남에게 아무리 심각한 영향을 미쳐도 자기 이해관계를 앞세운다.” 예외는 드물다. 그런데 예외가 있을 때에는 배울 점이 많다.

쿠바와 이란이 바로 그렇다. 의약, 에너지, 농화학, 항공기 등 미국의 주요 사업 부문들은 쿠바와 이란 시장에 진출해 쿠바와 이란의 국내기업들과 손잡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런데 국가 권력이 ‘인류의 주인’들의 이해와 요구를 무시하고 미국에 반항하는 세력을 처벌한다는 더 ‘중요한’ 목표를 따르기로 한 것이다. 미국이 재계의 압력을 이기고 경제적 이익을 포기해 가면서까지 쿠바와 이란을 예외로 만들어 버리는 상황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시간상 이만 생략한다.

민중의소리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후원회원이 되어주세요.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정기후원은 모든 기자들에게 전달되고, 기자후원은 해당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정혜연 기자 응원하기

많이 읽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