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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밥신세에서 필수노동자로①] 마스크 쓰고 필수업무하는 노동자의 재발견

취재 : 최지현·남소연·이승훈, 사진 : 김철수, 일러스트레이션 : 신지현

코로나19 이후 재난상황에서도 노동을 멈출 수 없는, 멈춰서는 안 되는 필수노동자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부각됐습니다. 필수노동자의 개념부터 필수노동자의 현실, 지원과 보호를 위한 우리 국회와 정부 및 지자체의 노력,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필수노동자 관련 연구보고서를 작성한 전문가의 의견까지 소개해드립니다.

① 마스크 쓰고 필수업무하는 노동자의 재발견
② 필수노동자라지만, 노동자도 되지 못하는 이들
③ 정부도, 지자체도, 국회도 팔 걷어붙였지만…갈 길은 멀다
④ 이승윤 교수 “보이지 않는 ‘그림자 노동’ 존중해야 ‘진짜 노동존중’”

하얗게 센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른 중년의 여성들이 거리로 나섰다. 3월 25일 일일 파업에 나선 요양보호사들이다. 치매나 중풍 등으로 혼자서는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들을 요양시설 등에서 전문적으로 돌보는 노동자들이다. 그런 이들이 “일하다 죽을까봐 나왔다”며 ‘하루멈춤’을 선언했다.

고령화 사회에 진입할수록 요양보호사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누구나 돌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요양보호사가 대표적인 ‘필수노동자’로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필수노동자’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요양보호사의 노동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요양보호사들은 기저귀 갈기, 목욕시키기, 청소, 빨래, 식사 준비 등으로 노동 강도가 높지만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툭하면 잘리는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도 ‘필수업무’로 인해 자리를 비울 수 없는 현실, 반발했다가 쉽게 해고를 당할 수 있는 현실에 대부분의 요양보호사들은 ‘하루멈춤’ 파업에도 마음 편히 참여할 수 없었다.

‘하루멈춤’에 참여한 이들마저도 코로나19 방역수칙 탓에 모여 있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각자 부당함을 호소해야 했다. 이들은 “필수노동자가 해고가 쉬운 노동자라는 뜻이냐”고 성토했다. “코로나 정국에 요양보호사를 필수노동자라고 하는데, 해고는 쉬워졌다”는 것이다. 어느 한 요양보호사는 “자식도 못 하는 이 일을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요양보호사들은 설움에 눈물을 훔쳤다.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요양사들이 지난 3월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일대에서 열린 3.25 요양노동자 하루멈춤 집단행동을 통해 처우개선과 고용안정 보장을 촉구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2021.03.25ⓒ김철수 기자

코로나19 계기로 뒤늦게 조명 받기 시작한 필수노동자

요양보호사처럼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반드시 집밖으로 나와서 일을 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요즘 ‘필수노동자’로 불리고 있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물건을 집 앞까지 전해주는 배달기사, 국민의 발이 되어주는 버스 운전사, 가족과의 만남조차 단절된 요양병원 어르신을 돌보는 간병사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필수노동자’로 콕 집어 부르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코로나19였다. 사실 이들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전에는 그야말로 ‘찬밥신세’였던 터라 사회적 조명을 받지 못했을 뿐이었다. 강규혁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위원장이 ‘하루멈춤’ 파업에서 “과연 정부에서 이들을 필수노동자로 대접을 단 한 번이라도 해봤느냐”며 분통을 터뜨린 이유다.

게다가 이들은 ‘필수’ 업무를 한다는 이유로 아파도 쉬지를 못했고, 부당함에 맞서 파업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철도노동자들이 파업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도 출퇴근길에 문제가 없었던 것 역시 바로 이 때문이었다. 우리가 필수노동자를 평소에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살았던 배경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작 필수노동자들에게 ‘필수’는 부정적인 개념으로 여겨졌다.

그런 ‘필수’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전환된 건, 코로나19라는 재난에 모두가 맞닥뜨리면서다. 필수노동자는 말 그대로 없어서는 안 될 노동자로 분명히 각인됐다. 코로나19 확산 속 택배노동자들의 파업에 응원 물결이 일었던 것이 단적인 예다. 보건·의료 인력 확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마찬가지다.

필수노동자 지원 논의는 코로나19에 따른 피해가 심각한 국가인 영국과 미국에서 먼저 시작됐다. ‘락다운(Lockdown)’을 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일상이 멈추게 되는 경험을 일찍 한 국가들이다. ‘멈춤’으로써 ‘멈추지 못하는’ 노동을 비로소 보게 된 것이다.

전통적인 복지국가보다 영미권의 자유주의 국가에서 필수노동자가 주로 논의된 것이 특징인데, 이들 국가가 선진국이라서 앞장선 것이 결코 아니었다. 코로나19 확산에 대비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뒤늦게 수습에 나선 것이었다. 영국 정부의 경우 필수노동자에게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봉쇄 등 예외적인 상황에서도 자녀의 대면교육을 보장함으로써 육아부담 없이 근로를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반면 실업급여, 유급병가 등 사회안전망이 비교적 튼튼하게 갖춰져 있고 고용이 안정돼 있는 국가의 경우에는 코로나19 확산에도 필수노동자를 더욱 보호를 할 수 있었다. 필수노동자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 화두로 특별히 떠오르지 않은 국가의 경우 이러한 배경 때문이었다.

이를 연구한 이승윤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영국과 미국에서 필수노동의 논의가 먼저 나왔다는 건 그동안 여기가 약한 고리였다는 의미다. 그러다가 재난이 덮치니 문제가 터지게 된 것이다”며 “아마 문제가 터져도 ‘나 몰라라’ 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놔두면 사회 전체에 위협이 되고 불편을 주니까 공공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내에서 필수노동자의 논의가 활발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필수노동자들의 현실은 의료인의 과로와 소진,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망, 배달노동자 사고사망, 돌봄노동자의 감염, 콜센터 노동자들의 고위험 노출과 감염 등의 문제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상병수당은 미국과 우리나라만 없다. 그런데 최근 쿠팡에서 열이 나도 일하러 나왔던 노동자가 감염돼 코로나19가 확산됐다. 우리나라는 그제야 상병수당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고, 우리 사회의 유지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다”며 필수노동자를 처음으로 청와대 공식석상에서 언급했다. 문 대통령의 대책 마련 지시 이후 고용노동부는 ‘필수노동자 안전 및 보호 강화 대책’을 내놓았고, 국회도 부랴부랴 필수노동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입법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보다 먼저 움직인 곳은 다름 아닌 기초단체였다. 당장 마주한 대책 없는 현실에 필수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하면 될지 고민했던 것이다. 지난해 9월 서울 성동구의회는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고, 그에 따라 성동구청은 올해 2월 ‘성동구 필수노동자 실태조사 및 지원 정책 수립에 관한 연구’(책임자 이승윤 교수) 보고서까지 냈다. 필수노동자에 관한 체계적인 분석이 이뤄진 건 이것이 사실상 처음이다.

ⓒ일러스트 신지현

너도 나도 보호하자는 필수노동자, 과연 누구인가

이처럼 사회 전체와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필수노동자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확대됐다. 그러면서 ‘누구를’ 지원해야 하는지 선별하기 위해 필수노동자를 찾기 시작했다. 수많은 노동자들 중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필수노동자로 볼 수 있을까가 논의의 핵심 쟁점이 된 것이다.

최근 국내외에서 논의된 필수노동자의 주된 개념은 필수업종으로 지정된 산업에서 종사하거나, 봉쇄 및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에서 대면업무가 불가피한 노동자로 좁혀진다. 필수노동자를 지칭하는 용어는 필수노동자(Essential worker), 최전방노동자(Frontline worker)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특히 ‘필수노동자’는 경제·사회적인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우에 주로 지칭되며, ‘최전방노동자’는 감염병 확산과 같은 재난 시에 대면업무의 불가피성을 강조할 때 주로 불리는 용어다.

그러면서도 필수노동자는 국가별로 상황이나 문화에 따라 다르게 정의된다. 심리상담가가 필수노동자로 포함되는 곳은 미국이다. 우리나라에선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문을 닫아야만 했던 헬스장의 직원이 미국에선 필수노동자에 포함된다. 반대로 IT 기술을 기반으로 배달업계가 급격히 커진 우리나라에선 배달노동자가 필수노동자로 꼽히지만, 다른 나라에선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재난의 유형에 따라서도 필수노동자는 더 다양하게 꼽힐 수 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와 같이 감염병이 확산되는 재난일 경우에는 필수노동자 중에서도 대면업무를 하는 최전방노동자가 먼저 보호돼야 한다. 홍수와 같은 자연재난, 화재, 붕괴와 같은 사회재난 등 다른 유형의 재난에서는 최전방노동자가 달라질 수 있다.

최근 국회 입법 논의 과정에서 나타난 쟁점 역시 필수노동자 정의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였다. 지난 2월 16일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전문위원은 검토 의견을 통해 “필수업종 범위를 정하는 경우 다양한 재난 유형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밝혔고,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도 “오히려 필수노동자 정의를 명확히 할 경우 역차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필수노동자 지원위원회(가칭)’를 통해서 재난 때마다 필수노동자 범위를 정하는 방향으로 쟁점을 좁혀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의사는 필수노동자에 포함되는 걸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이 교수는 “의사도 필수노동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보호가 필요하냐는 건 다른 얘기”라며 “가치가 훨씬 낮게 평가된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정책 차원에서 보호와 지원이 별도로 필요한 노동자를 필수노동자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에 비하면 의사는 이미 최우선적으로 보호되고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한 전기와 수도를 공급하는 분야에서 일하는 사무직 노동자는 필수업종에 속하지만 대면하지 않고도 일을 할 수 있다. 반면 혼자서는 거동이 어려운 어르신이나 어린아이를 지원하고 돌봐야 하는 노동자는 필수적이면서도 대면업무가 불가피하다. 이 중에서 보호와 지원이 더 필요한 노동자를 선정해야 한다면 누가 될까. 감염 위험에 더 노출되고 노동 강도가 더 높은 후자일 것이다. 공공의 개입을 통해 보호해야 될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구분되는 셈이다.

이승윤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가 지난 3월 30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교수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3.30ⓒ김철수 기자

필수노동자 선별이 아닌 전반적인 노동환경 개선으로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이 교수는 “이렇게 재난이 닥치면 ‘누가 제일 어려운가’를 선별해서 재난지원금을 주는 방식의 최대 단점은 불안정한 노동자들끼리 ‘누가 더 불안정한지’를 경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필수노동자’라는 것은 재난 시 정책을 만드는 데 있어 필요에 의해 구분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전국민고용보험과 같은 사회안전망 확충과 전반적인 노동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밖에 없다. 재난이 없을 때에도 늘 열악했던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에서 ‘필수노동자’를 따로 구분 짓는 것을 경계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재난 상황에 대한 대응의 측면에서의 잠정적인 보호나 지원이 아니라, 필수업무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지지하고 있다는 인식 위에 필수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의 노동이 정당하게 평가되고 보호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필수노동자가 수행하는 업무가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음에도 역설적으로 많은 필수노동자는 기존 근로기준법의 적용에서 전부 또는 일부 배제돼 있다”며 “필수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필수노동자’라는 이름이 아니라, ‘노동법’의 적용이라는 보편적인 보호”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필수노동자에 대한 지원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입법에 찬성하는 것과는 별도로, 필수노동자에게 노동법의 보편적 적용을 위한 국회 및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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