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실 같은 노래에 묶은 다섯 뮤지션의 마음

이소·크로크노트·김뜻돌·니들앤젬·여유와 설빈이 참여한 포크 컴필레이션 음반 [실]

연대에 대해 노래하는 음반인 줄 알았다. ‘무너져도 좋으니, 위태로워도 좋으니 당신이 쥔 실과 내가 쥔 실을 엮어 나가자’는 음반 소개글 때문이었다. 개개인으로 파편화된 현대 사회라거나,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려버린 신자유주의 사회라는 원인을 상정하고, 그럼에도 손을 잡자고 손잡고 헤쳐가자고 노래하는 음반이라고 단정해버렸다. 그런 노래들을 듣고 싶었나 보다. 촛불정부에 대한 기대가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끝나지 않는 코로나19 팬데믹에 질려버린 탓이었을까. 그래서 서로 기대고 함께 헤쳐 나가는 노래, 너무 뻔한 노래라도 들으면서 힘을 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실 컴필레이션 음반 [실]은 연대에 대한 노래 모음집이 아니다. “아직도 위태로운 실 한 올을 쥐고 홀로 살아가는 누군가”에 대한 노래 모음집이다. 음반에 참여한 다섯 팀의 싱어송라이터, 이소, 크로크노트, 김뜻돌, 니들앤젬, 여유와 설빈은 기타를 튕기며 노래한다. “어린 나를 만나 얘길 할 수 있다면/나는 제일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라고. “가방에 우산을 넣어둔 채로/내리는 비를 맞았어”라고. “나는 개요”라고 노래하고, “나는 땅으로 떨어질 거야”라고 노래한다. “오늘은 비가 오려나/내일은 또 흐리려나/괜찮은 날도 있었고/묵묵한 밤도 보냈다”라는 노랫말에 이르면 누구든 누추하고 군내 나는 자신의 지난날을 만나지 않을 수 없다.

아니다. 노래의 사연들이 반드시 지난날이라는 법은 없다. 누군가에게 어떤 날은 지나가지 않은 현재이다. 생각할 때마다 아프고 힘든 현재. 그래서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재. 왜 그렇게 어리석었는지,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 묻고 또 물으며 스스로 자책하고 원망하는 현재.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질 때, 사람은 스스로를 갉아먹고 자신을 추락시킨다. 과거와 단절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어렵다. 문제의 원인을 찾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되지 않는 일은 깔끔하게 포기하면 좋으련만, 자기 자신에게 단호하고 명쾌해지는 일이 가장 어렵다. 자신을 바꾸는 일은 세상을 바꾸는 일만큼 힘겹다.

포크 컴필레이션 음반 '실' 커버 이미지ⓒ사진 = 미러볼뮤직 누리집

컴필레이션 음반 [실]은 그렇게 실처럼 가는 사람들, 어디에도 자신을 묶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음반이다. 슬로우 템포로만 노래하는 다섯 팀의 뮤지션들은 어떻게 하자고 권하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이야기 하거나,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일이 노래의 전부이다. 냉정하게 바라본 자신을 토로하고, 자신이 빗방울이라며 노래할 뿐이다. “날아온 돌이 나라는 돌이 작은 돌멩이만 같아도/사람은 과거에 두고 온 마음을 기억해”라고 고백할 따름이다.

그래서 노래를 듣다 보면 슬프고 처연해진다. 그렇다고 마음이 하염 없이 가라앉지만은 않는다. 이소가 기도하듯 노래할 때 이디라마가 연주하는 오르간이 노래의 슬픔을 정갈한 손수건처럼 닦아주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목소리와 두 악기가 나누는 교감은 고해성사처럼 밀려온다. 이소는 자신을 위로하는 듯한 노래로 듣는 사람들까지 다 괜찮다고 두둔해준다. 다들 그렇다고 말하지 않는 노래가 오직 한 사람의 “어린 나”를 위로해 모든 사람을 위로한다.

물방울처럼 번지는 기타 연주에 맞춰 노래하는 크로크노트의 곡 ‘기억의 우산’도 프로그래밍한 현악기 사운드와 기타 사운드로 “고장 나버린 나”를 다독인다. 감정을 계속 끌어올리는 연주의 연출은 노랫말을 반복하는 투명한 목소리의 후렴구에 힘을 불어넣는다. 음반 수록곡은 다섯 곡 뿐이지만, 모든 수록곡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고르게 아프거나 깊다.

가장 거칠고 사이키델릭하게 연주한 김뜻돌의 ‘개’ 역시 음반의 정직한 태도를 이으며 찌른다. 물컹거리는 연주는 무너진 내면의 반영이다. 이 노래는 선뜻 소리 내 절망하지 못하는 이들의 비관을 신랄한 노랫말로 대변함으로써 좌절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운다. 수많은 나, 수많은 기억 가운데 꼭꼭 숨겨왔던 자신을 호출해 공명하게 하는 노래의 연속이다.

예술은 절망을 헤치고 나갈 때, 혹은 스스로를 극복할 때만 빛나지 않는다. 예술은 성공보다 실패와 좌절의 편에 선다. 예술은 절망을 절망으로 기록해 인식하게 하고, 인간을 정직하게 비추면서 자신을 온전히 만나게 돕는다. 그런 사람, 그런 인생이라고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은 가치가 없어 보이는 것들을 옹호하는 일이다. 올바름을 가르기 전에 존재 자체를 껴안고 존재의 밑바닥을 응시하며 혼자 들썩이는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고 받아 적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제각각의 실패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부끄러운 존재이다. 그래서 아니, 그럼에도 연민하고 존중해야 하는 존재이다. 올바르거나 멋지기 때문이 아니다. 애쓰기 때문이다. 애쓰다가 실패하고 어리석은 자신을 인정하면서 아프기 때문이다. “인생이 연극이었나” 싶으면서도 날마다 자신의 배역을 연기하기 때문이다.

타이틀곡인 니들앤젬의 ‘Raindrop’은 그런 자신이 부르는 기도와 참회의 노래처럼 들린다. 여유와 설빈의 ‘마음을 과거에 두고 온 사람’은 다른 네 곡의 노래를 부르고 듣는 이들에게 보내는 잔잔한 응원처럼 다가온다.

20분 남짓한 노래 다섯 곡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닿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세상에는 이 노래를 듣지 못한 채 자신의 삶을 바쁘게 살아갈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래도 행여 이 노래를 만나게 된다면, 세상의 어떤 노래는 자신을 위해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노래는 당신을 외면하지 않는다. 어떤 노래는 지금 당신의 편이다. 부디 노래가 흐르는 동안 만큼은 외롭지 않고 힘들지 않기를. 다른 음악들도 그렇겠지만 한국의 포크 음악은 여전히 사람을 탐구하고 위로하며 인간학으로서의 예술을 이어가는 중이다. 덕분에 들을 노래가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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