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만 잘 됐어도…학교 급식실서 ‘집단산재’ 발생

학교 급식실 조리사 폐암 사망 산재 첫 인정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다가 폐암으로 사망한 조리사가 산재를 인정받았다. 학교 급식 노동자의 직업성 암이 인정된 첫 번째 사례다.

환기 시설이 불량한 작업환경에서 기름을 사용한 튀김, 볶음 및 구이 요리를 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고인뿐만이 아니었다. 고인이 폐암 말기를 판정받고 한 달 뒤 함께 근무하던 조리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다. 노조는 한 학교에서 고인 등 노동자 4명의 집단산재가 발생했다며 사업주인 경기도교육청에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조 연맹·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는 6일 서울 서대문구 광산빌딩에서 ‘급식실 폐암 사망 산재 최초 인정, 수수방관 교육 당국 규탄 및 학교 급식실 직업 암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기지부 조합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마트노조 대회의실에서 ‘급식실 폐암 사망 산재 최초 인정, 수수방관 교육당국 규탄 및 학교급식실 직업암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04.06ⓒ김철수 기자

A 씨는 수원의 K 중학교에서 2005년 3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조리 실무사로 일했다. 12년간 학생들의 점심을 책임졌던 그는 2017년 4월 폐암 3기를 판정받았다. 그는 암이 임파선까지 전이돼 수술도 받지 못하고 1년 뒤 폐암으로 사망했다.

근로복지공단 수원지사는 지난 2월 A 씨가 업무상 질병으로 사망했다고 인정했다. 전문조사 심의 결과에 따르면, A 씨는 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사로 근무하면서 폐암의 위험도를 높일 수 있는 고온의 튀김, 볶음 및 구이 요리에서 발생하는 조리흄(cooking fumes)에 낮지 않은 수준으로 노출됐다. 국제암연구소는 2010년 조리흄을 폐암 위험요인으로 인정했다.

A 씨 측 김승섭 노무사는 “(A 씨가 진단받은) 비소세포암은 흡연 관련 폐암이 아니다. A 씨는 흡연 경력, 유해시설 거주, 가족력 등 (폐암 원인과 상관이) 없었다. 2016년 4월까지 건강검진에서도 특별한 이상소견은 없었다. 작업환경 외에 다른 이유를 찾지 못했다”라고 부연했다.

공단 조사 결과, 해당 급식실 조리사 4~5명은 1인당 100인분 이상을 담당하고 있었으며 주 2~3일간 튀김, 볶음 및 구이 요리를 수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2016년 2학기 식단표를 검토한 결과 총 84일의 조리일수 중 81%(68일)가 튀김, 볶음 및 구이 요리를 하는 날이었다.

이선웅 직업환경전문의(화성 향남 공감의원)는 “특히 기름을 사용한 조리가 폐암을 일으킨다. A 씨는 4일에 하루 빈도로 (기름을 이용한) 많은 양의 요리를 12년간 수행했다”라고 말했다. 김 노무사는 “조리 시 요리용 삽을 이용해 고개 숙인 상태에서 저어주는 작업이 많다. 집중적으로 조리 연기 흡입하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기지부 조합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마트노조 대회의실에서 ‘급식실 폐암 사망 산재 최초 인정, 수수방관 교육당국 규탄 및 학교급식실 직업암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04.06ⓒ김철수 기자

바로 환기 시설 개선했다면…

A 씨의 사망을 막을 기회가 있었다. K 중학교 급식실에서 노동자들이 쓰러지기 시작한 건 2016년 여름이었다. 튀김 작업을 하던 조리사 2명이 근무 중 구토, 어지러움 등을 호소하며 치료를 받았다.

이에 근무자들은 후드와 공조기 등 환기 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조리 연기가 정체되는 상황을 알리고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환기 시설이 개선된 건 그로부터 1년여 뒤. A 씨에 이어 또 다른 조리사 B 씨가 쓰러진 직후다. B 씨는 2017년 5월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져 뇌경색으로 평생 장애를 갖고 살게 됐다. 그는 지난해 산재를 인정받았다.

박화자 학비노조 경기지부 수석부지부장은 “이틀이면 수리될 걸 1년 만에 고쳤다”라며 분통한 마음을 드러냈다.

전국 급식실 환경은 K 중학교와 다르지 않다고 노조 측은 강조했다. 노조는 “전국 급식실에서 1인당 100명에서 많게는 200명까지 식수를 담당하고 있다. 타 공공기관의 2배가 넘는다. 일주일에 2일 이상 튀김, 볶음 및 구이 요리가 조리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노조에서 지금까지 확인한 폐암 진단 조리사는 경기도만 8명에 달한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경기지부 조합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마트노조 대회의실에서 ‘급식실 폐암 사망 산재 최초 인정, 수수방관 교육당국 규탄 및 학교급식실 직업암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04.06ⓒ김철수 기자

이런 상황에서 경기도교육청은 실태조사조차 나서지 않고 있다. 노조는 K 중학교 사례를 인지한 2017년부터 경기도교육청에 관내 전체 학교에 대한 공기 질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요구했으나 경기도교육청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게 노조 설명이다.

심지어 노조가 파주의료원 예산을 사용해 관내 20여 개 학교에 대한 공기 질 조사를 위해 경기도교육청에 협조공문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으나, “부서 간 떠넘기기 행정으로 6개월 넘도록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라고 노조는 지적했다.

최진선 학비노조 경기지부장은 “경기도교육청은 급식실 식중독 사고와 친환경 재료에는 관심을 가질지언정 아이들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무시로 일관한다”라고 질타했다.

학교 급식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논의해야 할 각 교육청의 산업안전보건위원회(산보위)는 설치조차 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노조는 비판했다.

교육서비스로 분류돼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예외 사업장이던 학교 급식실이 지난해 산안법 개정으로 전면 적용 대상이 되면서 각 교육청은 산보위를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17개 시·도 교육청 중 11개만 운영 중이고, 교육부를 비롯한 충남·경남·전북·울산·경북 교육청은 설치하지 않았다.

노조는 ▲급식실 공기 질 전수조사 ▲급식소 인력 늘리기 ▲산보위 실질적 개최 등을 촉구하며 학교급식종사자 직업성 암 환자 찾기 사업과 집단산재 신청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교육부와 각 교육청의 산보위 미설치 등 법 위반 사항에 대해 고소·고발에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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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영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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