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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열전①] 롯데면세점 노동자 김금주 “1989년 4월 24일 입사했어요”

첫 직장서 32년 근무, 노조 위원장까지… “그만두는 날까지 노동자로서 당당하게 일할 겁니다”

김금주 롯데면세점노동조합 위원장이 30일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3.30ⓒ김철수 기자

김금주는 노동자다. 그는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3층에 있는 롯데면세점 담배·주류 코너에서 일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이용객이 줄어든 인천공항은 유령도시처럼 변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인천공항 이용객은 1년 전과 비교해 96% 넘게 줄었고, 운항 항공편도 70%나 감소했다. 함께 일하던 노동자들도 면세점에 소속되지 못한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하나둘 사라졌다. 롯데면세점 정규직인 김금주는 사람들이 줄어든 그곳에 여전히 출근하고 있지만, 최소한의 인력만으로 운영하는 상황이어서 판매와 계산 업무에 안내데스크 업무까지 겸하면서 화장실에 갈 틈조차 없다. 갓 스무 살을 넘어 가졌던 첫 직장인 롯데면세점에서 외국인 관광객과 국내 여행객 등을 상대로 판매직으로 일해온 김금주는 정년을 불과 몇 년 앞두고 있다. 그를 만나 노동자로 살아온 지난 32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1989년 4월 24일 롯데호텔 면세사업부에 판매 서비스직으로 입사했어요. 전문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이었습니다. 솔직히 면세점이 뭐 하는 데인지도 몰랐어요. 전문대 관광경영학과를 그해 2월에 졸업하고 취업을 못 하고 있었는데 친구와 함께 롯데월드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가 인사 담당하는 분이 이 정도 이력이면 면세점에서도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소개를 해줘서 일하게 됐어요.”

“언제부터 일하게 됐냐”는 질문에 그는 “1989년 4월 24일”이라고 정확한 날짜를 이야기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노동과 관련한 날짜를 마치 역사 속 기념일을 떠올리듯 정확한 날짜를 말했다. 지난 32년은 집안의 맏딸이라는 이유로 취업을 위해 전문대에 진학해 우연히 면세점 노동자로 일하게 된 그를 ‘진짜 노동자’로 탈바꿈시킨 시간이었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 면세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금주 롯데면세점 노동조합 위원장.ⓒ김금주 롯데면세점 노동조합 위원장 제공

김금주는 면세점 노동자인 자신을 자랑스러워한다. 그가 면세점 노동자로 일을 시작한 1989년은 면세점 업계의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해다. 1989년 1월1일부터 해외여행이 자유화됐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전면금지됐던 관광 목적의 해외여행이 그해부터 자유화되면서 해외에서 국내로 여행 온 일부 해외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영업했던 면세점은 관광산업의 활성화와 함께 성장을 거듭했다. 롯데면세점도 그가 입사하던 당시엔 롯데호텔에 소속된 면세사업부였지만, 매출이 늘어나면서 면세사업이 호텔사업 매출을 앞서게 되면서 법인이 분리됐다. 그가 노동자로 살아온 지난 32년은 면세점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는 “가장 일선에서 외국 관광객과 우리 국민을 만나면서 관광산업에 보탬이 된다는 자부심이 컸다”며 되돌아봤다.

노조에 파업 항의 전화 했던 김금주
파업에 찬성하고, 74일간 파업에 함께하다

그에게 노동자로 살아가는 자부심을 키워준 계기는 노동조합과 함께 경험한 롯데호텔 파업이었다. 입사하면 자동으로 노조에 가입하는 유니온샵(union shop)이었지만, 그는 한동안 자신이 노동자라는 사실도, 노동조합 조합원이란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 2000년 있었던 롯데호텔 파업은 그를 ‘진짜 노동자’로 만들었다. 노동자 정년 단축, 비정규직 확대 등 노동조건이 나빠지면서 롯데호텔 노동자들의 불만이 커졌다. 당시 비정규직 확대는 롯데면세점 소속 노동자들에게도 밀접한 이슈였다. 지금은 면세점에서 판매직으로 일하는 직원 대부분이 판촉사원이라는 이름으로 브랜드 업체에 고용된 신분이지만, 김금주가 입사하던 당시만 해도 정규직 노동자들이 그 역할을 맡았다. 김금주가 일해온 세월은 함께 판매직으로 일하던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현실을 목격한 과정이었다.

“입사 직후 롯데면세점 명동본점 루이뷔통 매장 등에서 근무했어요. 당시엔 입접 브랜드도 롯데면세점 직영사원들이 판매했는데 1995년인가부터 판촉사원이라고 해서 그 브랜드에 속한 직원들이 판매사원으로 투입됐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거였는데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이라 속수무책으로 있었던 것 같아요.”

1990년 롯데면세점 명동본점 루이비통 매장 근무 당시 동료들과 찍은 사진. 사진 제일 왼쪽이 김금주다.ⓒ김금주 롯데면세점 노동조합 위원장 제공
1991년 동료들과 함께한 생일 모임, 사진 제일 왼쪽이 김금주.ⓒ김금주 롯데면세점 노동조합 위원장 제공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노동자들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롯데호텔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최대 과제로 내걸고 파업에 돌입했다.

“2000년 6월 9일부터 8월 21일까지 74일 동안 파업을 했어요. 당시 파업이 노조 활동의 시작이었습니다. 파업을 앞두고 찬반투표를 했어요. 롯데면세점 명동 본점에서 일하던 시절이었는데 점장이 나를 불러서 ‘지금 파업 찬반투표 하고 있는데, 조합에 전화해서 왜 이러냐 불만을 얘기해달라’고 했어요. 점장이 말하는데 그 자리에서 거절하기 힘들었습니다. 머뭇거리는데 ‘김금주 씨가 해주면 좋겠다’고 거듭 요구했어요. 정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노조에 전화했습니다. 기분이 너무 찝찝했어요.”

그렇게 시작된 롯데호텔 파업은 우리 사회 전체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2000년 6월 분단 이후 최초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온 세계의 시선이 쏠리던 때였지만, 롯데호텔 파업은 쟁쟁한 소식들을 제치고 신문 1면에 등장할 정도로 뜨거운 이슈였다. IMF 외환 위기를 빌미로 비정규직이 전 사회적으로 늘어나던 시점에 벌어진 투쟁이어서 당시 시민사회단체들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대했다. 특히 롯데호텔은 외환 위기 당시 다른 기업과 달리 큰 흑자를 기록했지만, 오히려 노동자들의 정년을 단축했고, 비정규직을 크게 늘렸다. 이런 현실은 비정규직 확산이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로 느끼게 했다. 결국,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의 고용불안으로도 이어지게 됐고, 정규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조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최대 과제로 내걸고 파업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사회적 관심이 큰 사건이었던 만큼 당시 정부에선 사태를 조기에 마무리 지으려고 무리하게 공권력을 투입하는 악수를 두었다. 파업 21일째였던 2000년 6월 29일 새벽 4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36층, 37층 연회장과 식당에 모여 농성 중이던 노조원 1100여 명을 경찰이 강제로 해산한 뒤 연행했다. 임산부를 포함한 여성 노동자가 400여 명이나 함께 있었지만, 경찰은 대테러부대인 솔개부대를 동원해 진압했다. 사회기간시설이 아닌 서비스업 시설에 경찰력을 동원해 파업을 강제로 진압한 건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2000년 6월29일 새벽 롯데호텔 파업 노동자들을 강제진압하는 경찰들. MBC 뉴스 보도화면ⓒMBC 뉴스 캡쳐

“6월 29일 새벽에 진압당해서 저랑 동료 20여 명이 함께 구로경찰서 유치장으로 끌려갔어요. 점심에 밥이 나왔는데 스티로폼으로 포장된 도시락에 80프로는 흰밥, 20프로는 단무지가 들어있었어요. 너무 형편없고, 황당해서 짜장면 시켜달라고 말했어요. 돈은 우리가 내겠다고··· 그랬더니 형사들이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라구요. 그때 짜장면이랑 탕수육을 시켜 먹으면서 내가 뭘 잘못해서 여길 왔나 생각했어요. 이 투쟁에서 꼭 이겨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74일 동안 정말 열심히 싸웠다.
파업에 동참하면서 ‘내가 정말 노동자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해 여름 서울 중구 을지로 아스팔트를 뜨겁게 달궜던 거리투쟁과 점거 농성, 그리고 연행 당시 벌어진 경찰의 폭력 진압과 사내 성희롱 문제를 고발하고, 징계 조치를 얻어내는 등 파업을 통해 세상과 회사를 바꾼 싸움은 김금주에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그는 “74일 동안 정말 열심히 싸웠다. 파업에 동참하면서 ‘내가 정말 노동자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내가 정말 노동자구나”하는 깨달음이 김금주에게 안긴 가장 큰 변화는 당당함이다. 흔히 사람들을 상대하는 서비스업 노동자들은 간도 쓸개도 다 빼주고, 자존심은 버려야 하는 직종이라고 말하곤 한다. ‘감정노동’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자신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늘 웃으며 밝은 태도와 표정을 강요받는다. 하지만 노동자로서 자존심과 당당함이 없다면 감정노동은 자신을 무너뜨리는 과정이 될 뿐이다. 그는 노동조합 대의원 활동 때문에 사측에 찍히면서 모두가 맡기 꺼리는 ‘고객 클레임’ 업무를 담당하면서 그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른바 ‘진상 고객’만을 상대해야 하는 고객 클레임 업무는 감정노동 가운데서도 가장 최고의 노동강도를 자랑하는 까다로운 업무다.

김금주 롯데면세점노동조합 위원장이 30일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3.30ⓒ김철수 기자

“노동조합 대의원을 하면서 회사에서 클레임 담당(2003년 9월~2007년 6월까지)을 했어요. 당시만 해도 고객이 클레임을 걸면 일반적으로는 회사 관리자가 사건 경위는 아랑곳 않고 무조건 직원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라는 분위기였죠. 근데 직원이 불친절해서 클레임을 건다는 고객이 있을 때 저는 최대한 직원 편에 서서 일처리를 했어요. 그랬더니 직원들이 너무 고마워하더라구요. 또 불만이 많은 이들을 상대하는 일이어서 힘들었지만, 보람도 있었어요. 당시 나를 버티게 해준 건 자존심이었어요. 돌아보면 그 당시에 노조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솔직히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입니다. 하지만, 항의하는 고객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일할 수 있었던 건 노동자로서 자부심 덕분이에요.”

롯데면세점 노조 조합원 최미숙은 이런 당당함이 김금주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한다. “30년을 알고 지낸 사이라서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만 늘 변함없이 곧은 생각과 불같은 성격을 지녔어요. 그리고, 어디에서든 당당한 것이 제일 큰 장점입니다. 회사에서도 힘들 텐데 항상 불의에 앞서 일하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실천하고 있는 모습이 좋아요.”

2018년 민주노총 가입 두고 사측과 충돌
회유 공작, 위원장 음해, 제2노조까지

2000년 파업이 끝나고 그해 10월에 노동조합 선거에서 그는 면세점 소속 대의원으로 뽑히면서 본격적으로 노조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롯데호텔 노조에서 여성 부위원장 등을 맡았다. 면세사업부가 독립되면서 2007년 롯데호텔 노조와 분리돼 롯데면세점 노조가 새롭게 세워진 이후 부위원장을 맡았고, 그때부터 노동자 김금주는 노조 상근자로 나섰다. 2016년엔 노조 위원장이 됐다.

2018년 3월 열린 롯데면세점 노동조합 대의원대회 모습. 김금주 위원장은 자신과 최미숙 조합원을 제외한 나머지 조합원의 얼굴을 가려달라고 요청했다. 지금은 롯데면세점 노동조합을 탈퇴한 조합원들이 행여나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해서 한 말이다.ⓒ김금주 롯데면세점 노동조합 위원장 제공

하지만, 노조 위원장이 된 뒤 김금주와 롯데면세점 노동조합엔 위기가 찾아왔다. 2018년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가입을 추진하면서 사측과 마찰이 컸기 때문이다.

“노동절 등 행사 때 상급단체는 없었지만, 항상 민주노총 대오에 함께했어요. 면세점 내에 입점한 브랜드 기업 노동조합이 민주노총 소속이었는데, 이들과 함께 면세점 협의회를 만들어 함께 활동하는 등 교류가 있었어요. 때문에,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 가입할 때, 저는 사실 당연한 절차로 여겼습니다. 2018년 단체협상에 들어가기 전 경영지원팀 담당자가 조합 사무실에 와서 호봉제를 연봉제로 바꾸자고 요구했어요. 더는 기업별 노동조합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가입을 추진하게 된 거예요.”

핵심 간부라고 할 수 있는 롯데면세점 각 영업점을 대표하는 대의원들이 모여 서비스연맹 가입에 동의했다. 3월 전체 조합원 대상 설문조사에선 조합원 400여 명 가운데 67.5%가 상급단체 가입 찬성했고, 찬성 조합원 가운데 85.1%가 민주노총을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설문을 바탕으로 4월 25일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서비스연맹 가입을 결정했다.

그런데 4월 23일부터 25일까지 예정된 대의원대회 며칠 전부터 민주노총 가입을 막기 위해 사측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점 점장, 부점장, 노무 담당 매니저, 영업점 과장 등이 각 지점을 돌며 대의원들을 상대로 민주노총에 가입하면 안 된다면서 잘 생각해보라며 회유가 있었다는 의혹이 일었다. 대의원대회와 조합 간부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온 4월 25일부터 익명 게시판엔 민주노총과 김금주 위원장을 비난하는 글들이 무더기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민주노총은 정치투쟁만 하고, 제가 민주노총 가입을 추진하는 이유가 민주노총에서 한 자리 차지하려는 속셈이라는 글도 올라왔어요. 너무 어이없는 내용이 쏟아져 나와 대응하는 것조차 버거웠습니다. 나를 잘 아는 이들은 믿지 않았겠지만, 잘 모르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어요.”

롯데면세점 노동조합도 대응에 나섰다. 대의원을 비롯한 노조 간부들을 상대로 사측이 상급단체 가입을 반대하며 회유한 사실과 관련해 진술서를 받아 서비스연맹과 함께 부당노동행위로 신고했다. 하지만, 조사는 지지부진했다. 서비스연맹 가입 한 달 만인 5월 24일엔 제2노조인 ‘우리가치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300여 명이던 조합원 두 달 만에 단 2명으로
“2명이 남아서 3년 동안
노동조합을 지키고 있습니다”

“제2노조로 가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 분위기였어요. 조합원들이 ‘위원장님 못 버틸 것 같아요’라며 하소연했어요. 나로서도 ‘가지 말라’고 붙잡기 힘들었어요. ‘미안하다’며 많은 조합원이 떠났습니다. 저는 혼자서라도 남아 싸우겠다며 버텼고, 당시 회계감사를 맡았던 최미숙 조합원이 노동조합을 함께 지키겠다며 남았어요. 그렇게 단 2명이 남아서 3년 동안 노동조합을 지키고 있습니다.”

김금주 롯데면세점노동조합 위원장이 30일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압력 때문에 노조를 탈퇴한 조합원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닦고 있는 김금주 위원장. 2021.03.30ⓒ김철수 기자

300여 명이던 조합원은 그렇게 민주노총 가입 두 달 만에 2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김금주는 “최미숙 조합원이 남아 노동조합을 지킬 수 있었던 것만도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2명은 노동조합 설립 최소요건이다. 그를 위해 남아준 단 한 명이 노동조합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남은 힘이었던 셈이다. 최미숙 조합원은 조합에 남게 된 이유에 대해 “분노와 억울함 그리고 위원장으로 노동조합을 지키겠다는 한 사람을 믿어 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꼭 견뎌보겠다는 각오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김금주는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노조를 탈퇴한 조합원들도, 그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김금주에게도 당시의 기억은 여전히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당시 조합원들과 연락도 하고, 회사 간부들 눈을 피해 몰래 멀리서 얼굴을 보기도 합니다. 꾸준히 웹자보를 만들어 직원들에게 문자로 보내요. 직원 중엔 ‘버텨줘서 고맙다’며 답신을 보내는 이들도 있어요.”

제2노조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면서 롯데면세점 분위기는 달라졌다. 처음엔 회사측에서 제2노조가 추진한 야유회에 경품을 제공하는 등 노사화합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단체협약은 사측의 요구대로 흘렀다고 김금주는 말했다. 노동자들이 싸워서 얻어냈던 복지와 각종 혜택은 회사가 노동자에게 내린 시혜처럼 여겨졌고, 이를 후퇴시켜도 아무도 무어라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결국, 2020년 임단협에선 2018년 김금주 위원장 등이 막아내려 했던 연봉제가 도입됐다. “감시를 안 하니 망가지는 느낌이에요. 노조의 역할을 아는 직원들이나, 과거 노조 활동을 함께한 직원들은 노조가 바뀌면서 회사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압니다. 그 전이 좋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회사가 무서워서 행동에 나서진 못해요.”

결과만 놓고 보면 민주노총 가입을 추진해 노동조합이 위기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다. “민주노총 가입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금주는 “단 한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잘라말했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연봉제 전환 등 사측의 공세에 대해 전 조합원의 문제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했는데, 당시 노동조합 활동이 전임자와 소수의 조합간부의 판단과 결정으로 이루어져 역공을 당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당시 경험은 롯데면세점 노조가 놓인 현실을 정확히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00년 74일 파업이 롯데면세점 직원들의 고용안정과 질 좋은 복지를 가져다주었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그 시절을 생각도 하기싫다면서 민주노총이 우리를 이용만 했다면서 사측의 논리에 젖어 있는 직원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당시 경험으로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같은 상황을 함께 했어도 그 기억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걸 새삼 느꼈어요.”

12년 만에 노조 상근자에서 현장으로
“동료들이 저와 같이 밥만 먹어도 불이익받는 분위기였어요”

조합원이 2명에 불과한 소수노조가 되면서 김금주의 삶도 변했다. 2007년 노조 부위원장을 맡으면서 노조 상근을 시작했던 그는 2019년 12년 만에 다시 인천공항 제2터미널 롯데면세점에서 일하게 됐다. 코로나19가 악화되면서 인천공항을 오가던 공항리무진 버스가 사라져 출퇴근조차 버거웠다. 12년 만에 돌아간 현장은 낯설었지만, 김금주는 “남편이 공항까지 직접 태워주는 등 많이 도와줬기에 버틸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롯데면세점 노동조합엔 사측의 탄압으로 최미숙 조합원(왼쪽)과 김금주 위원장 단 두명의 조합원만 남았다. 사진은 2019년 열린 서비스연맹 수련회에 참가한 롯데면세점 노조.ⓒ김금주 롯데면세점 노동조합 위원장 제공

“업무시스템이 바뀌어 있어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거나, 밥을 같이 먹어도 동료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어서 도와줄 사람도 없었어요. 동료들에게 피해를 안 주려고, 아예 ‘저 혼자 밥 먹을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선언했어요. 그렇게 그때부터 2년 가까이 혼자서 밥을 먹습니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인력이 줄면서, 다른 동료들도 혼자 먹는 상황입니다. 점심시간을 쪼개 노조 소식지를 만들고, 휴일을 이용해 조합 활동을 합니다.”

단 2명이 이뤄낸 기적
롯데면세점 사측 부당노동행위로 기소

조합원이 단 2명에 불과한 소수노조. 현장에서 근무하며 없는 시간을 쪼개서 하는 노동조합 활동이지만, 열심히 싸우고 있다. “조합원을 잃어버렸으니 재산을 탕진한 집안이랑 다를 바 없지만 저는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조합원이 2명이라 연간 타임오프가 23~25시간 정도라 조합활동시간이 부족하긴 하지만 반대로 2명이 지키는 노조라도 노동조합 깃발 아래서는 못할 게 없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최미숙 회계감사와 함께 끝까지 해 볼 생각입니다.”

이런 김금주의 각오는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다. 2018년 민주노총 가입 과정에서 저질렀던 롯데면세점의 부당노동행위에 맞서 소송을 벌였고, 지루한 기다림 끝에 지난해 말 5명이 기소된 것이다. 오는 4월 26일엔 첫 공판이 열린다.

“진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당시 대표이사와 롯데면세점 법인은 빠진 채 점장과 임원만 다섯 명 기소된 것이지만, 의미가 커요. 부당하게 회유와 협박을 받았다고 진술서를 써줬던 노조 간부들을 사측이 압박해 진술서를 무효로 돌리고, 증언에 나선 이들을 해보지도 않았던 업무로 순환 발령하는 등 온갖 불이익을 주던 상황을 이겨내고 얻는 결과거든요. 2명이 남아서 해내리라고, 회사도 생각 못 했을 것이고, 저도 생각조차 못 했어요.”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여겨졌던, 회사를 상대로 한 부당노동행위 신고가 기소돼 재판까지 이어지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당연한 일을 기적처럼 여겨야 하는 현실이 오히려 노동자들이 살아가고 있는 진짜 현실을 보여준다. 코로나19 위기 상황 속에서도 그런 노동자들의 현실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재벌 총수들의 임금과 배당금은 크게 올랐지만, 노동자들은 임금이 줄어들고, 일자리에서 쫓겨나고 있다. 면세점 노동자들도 이런 위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

1992년 열린 롯데면세점 송년회에서 장기자랑을 하고 있는 김금주와 동료들. 사진 제일 오른 쪽이 김금주다.ⓒ김금주 롯데면세점 노동조합 위원장 제공

“공항이 유령도시처럼 변했어요. 이용객들이 사라지고, 노동자들도 사라지고 있어요. 롯데면세점의 경우 브랜드 입점 업체와 계약한 판촉 직원들이 피해를 입고 있어요. 열악한 입점 업체들은 노동조합도 없기에 그냥 회사가 나가라고 하니 그만두고 있어요. 조선족 동포 노동자들도 많았는데, 이분들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이들도 많아요. 이렇게 노동자들은 사라지고 있지만,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배당금 224억 원으로 유통기업 가운데 배당금 2위를 기록했고, 연봉도 150억 받았대요. 롯데마트, 롯데하이마트 등 유통계열사들은 폐점에 복지제도 축소했고 롯데면세점은 임금동결에 근로시간 단축으로 실질적으로 임금삭감을 감내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교수도, 과학자도, 기술자도 다 노동자인데,
우리는 아이들이 자라서 마치 모두가
기업인이 될 것처럼 생각하고 가르쳐요.
노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노동자로서 자부심을 배우지 못한 채
사회로 나와요.”

이런 현실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노동자’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고, 노동자 부모들도 자식들에게 당당하게 “노동자가 되어라”라고 말하지 못하는 현실부터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아이들이 자라날 때부터 교육을 통해 노동자로서 자부심이 필요하다고 김금주는 강조했다.

“아이들 교육이 문제에요. 아이들은 커서 대부분 노동자가 됩니다. 교수도, 과학자도, 기술자도 다 노동자인데, 우리는 아이들이 자라서 마치 모두가 기업인이 될 것처럼 생각하고 가르쳐요. 노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노동자로서 자부심을 배우지 못한 채 사회로 나와요. 부당한 일을 당해도,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해도 어떻게 대처할지 모릅니다. 저도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고, 서른이 훌쩍 넘어 직접 부딪히며 알게 됐어요.”

김금주는 자신의 아이들이 노동자로 살아갈 미래는 자신이 걸어온 시간과 달랐으면 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아이가 대학진학을 하지 않고, 게임 특성화고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았다. “큰 아이가 올해 24살이에요. 게임고등학교를 나와 게임 스토리 작가를 하고 있어요. 만약 제가 노조활동을 안 했다면 대학진학을 포기한다고 했을 때 갈등이 심했을 거예요. 대학을 포기하고, 자신이 하고픈 걸 한다고 했을 때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전 게임고등학교라고 하면 프로게이머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게임스토리 작가가 하고 싶다는 거예요. 저보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 훨씬 잘 아는데, 제가 뭐라고 말하겠어요.”

김금주 롯데면세점노동조합 위원장이 30일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3.30ⓒ김철수 기자

노동자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김금주는 조합원이 단 2명에 불과한 소수노조지만 지금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32년 전 멋모르고 시작한 노동자의 삶은 이제 정년을 코앞에 두고 있다. 김금주가 걸어온 삶에 대해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김금주처럼 살면 이 사회가 참 공평하고 정의롭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살아오고 경험한 지금의 사회와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더더욱 굳이 가지 않아도 될 힘겹고 험한 길을 가고자 하는, 양심과 소신에 충실한 하루하루를 생활하고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집안의 큰 딸로서, 한 남자의 반려자로서, 두 아이의 엄마로서의 개인적인 삶과, 사회적 약자도 존중받고 행복할 수 있는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는 실천적인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삶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멋진 사람입니다.”

멋진 삶을 살아온 김금주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언제나 당당하게 일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동료 노동자들이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많이 위축됐어요. 쫄지 말고, 당당하게 일하자고 말해주고 싶어요. 정년이 몇 년 앞으로 다가왔는데, 일을 그만두는 날까지 노동자로서, 노조 위원장으로서 당당하게 일할 겁니다. 대학 졸업하고 롯데면세점이 첫 직장이라 퇴직하면 정말 온전히 저한테 집중해서 쉬고 싶어요. 우선은 제주도에 가서 3년 정도 살다 오자고 남편이랑 얘기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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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술 기자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