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보] “죽은 개도 인생의 일부인 걸요” 나이 든 반려견을 사랑한다는 건

웹툰 ‘노견일기’ 정우열 작가

‘내 묘비엔 이렇게 새기면 좋을 것 같아. 세상을 위해 별로 한 일은 없으나 개 한 마리는 정성껏 돌본 사람.’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은 이 한 문장에 깊게 공감할 것이다. 북실북실 털 난 강아지를 몇 개씩 되는 별명으로 불러가며 귀를 닦아주고, 양치질을 해주고, 발톱을 깎아주다보면 ‘이 조그만 게 뭐라고 이렇게 품이 들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못내 북실북실한 털에 코를 박고 내가 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정우열 작가의 이 같은 독백은 반려견과 함께 일생을 보내고 있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현재 그가 기록하는 일상의 파트너는 올해로 18살이 된 반려견 ‘풋코’다. 이름을 고민하던 때 마침 책장에서 눈에 띈 철학자 미셸 푸코의 이름에서 ‘푸코’라는 어감만 따왔다.

'노견일기' 풋코ⓒ'노견일기', 정우열 작가 인스타그램

긴 다리, 복슬복슬한 몸, 큰 귀, 생각을 꿰뚫어보는 듯한 까만 눈동자까지. 풋코를 쓰다듬은 손으로 풋코를 그리니 캐릭터에 애정이 묻어나지 않을 수 없다. 단행본도 어느덧 4권 째, 그립톡이나 무릎담요 등 다양한 굿즈도 제작됐다. 지난해 9월에는 SBS ‘동물농장’에도 출연해 ‘공중파 개스타’가 됐다.

까칠하고 시크한 ‘올드독’에서 북실북실 ‘풋코’ 그리기까지
10년 차 제주생활… 동물 복지 갈 길 멀었지만
“제주가 주는 행복 없이는 살 수 없게 됐어요”

지난 2004년 정치비평만화를 그리며 만화가를 시작한 정우열 작가는 ‘올드독’ 캐릭터로 사랑받았다. 반려견 폭스테리어를 모티브로 한 ‘올드독’ 캐릭터는 특유의 까칠하고 시크한 톤으로 정치, 사회, 문화, 생활 등 다방면에서 작가의 입을 대신해 그의 페르소나로 통한다. 이 캐릭터로 ‘올드독, 날마다 그림’, ‘올드독의 맛있는 제주일기’, ‘올드독의 제주일기’ 등의 책을 냈다.

“꼭 페르소나로 삼으려고 의도한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저 당시엔 캐릭터라고 하면 귀여움으로 어필하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나이든 반려견에게서 힌트를 얻어 좀 까칠한 캐릭터를 만들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름도 ‘올드독’이라고 지었어요. 그 캐릭터의 입을 빌어 제 생각을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페르소나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정우열 작가의 캐릭터 '올드독'과 '노견일기 4' 단행본.ⓒ올드독, 동그람이

2012년 제주로 이사한 그는 어엿한 10년 차 제주도민이다. ‘올드독의 맛있는 제주일기’, ‘올드독의 제주일기’ 등은 모두 제주도에서 두 반려견과 함께하며 펴낸 책이다. 제주로 이사온 이유 역시 거창하지 않았다. 개들과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기 위해서이다.

“개들과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기 위해서, 그 땐 그게 제게 제일 중요한 관심사였어요. 친구들 중엔 제가 제주도에서 적응하지 못할 거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전 서울에 자주 다녀가면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결국 지금은 서울에 자주 가진 못하고 있죠. 풋코가 나이 들어갈수록 다른 사람에게 돌봐달라고 부탁하기가 조심스러워거든요. 다행스럽게도 제주도 생활은 꽤 만족스러워서, 특별히 서울이 그립다거나 자주 가고싶다거나 그렇진 않아요.”

하지만 제주도는 마냥 사람과 개에게 이로운 자연만을 내어주는 곳은 아니었다. 인간에게 쾌적하고 이롭게 조성된 공원과는 딴판이라고 작가는 강조했다.

“개를 데리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꿈을 꾸며 제주도에 온 사람을 많이 알아요. 저도 그랬고요. 분명히 그런 점도 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운 점도 많이 있어요. 이를테면, 자연이란 건 도시에 조성된 공원과는 전혀 딴판이라는 걸 몰랐죠. 오름이나 숲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진드기가 언제든지 개와 사람의 피를 빨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드물긴 하지만 뱀이 나올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하죠.”

정우열 작가와 풋코.ⓒ제공 = 정우열 작가

제주도와 개를 함께 생각해보자면, 으레 조그만 집과 빽빽한 도시를 벗어나 드넓은 해변에서 실컷 뛰어다니는 자유로운 풍경 같은 게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함께 보호받고 사랑받는 개만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실제로 웹툰 에피소드에도 반려동물을 데리고 갈 수 없는 카페와 식당에 대한 이야기, 유기견과 관련한 이야기가 왕왕 등장한다.

“시골엔 평생을 1m도 안 되는 줄에 묶여서 살아가는 개들이 허다하고, 반대로 거리에 방치되어 아무런 돌봄도 없이 새끼를 낳고 또 낳는 개들도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그 중 적지 않은 수가 개장수에게 잡혀가거나, 도로에서 차에 치어 다치거나 생명을 잃기도 하고요. 동물복지에 관한 감수성을 얼마간 가진 사람이라면, 제주도에서의 삶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는 일일 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계속 제주도에서 살아가는가, 작가는 “저와 풋코가 여기서 살면서 변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자유롭게 달릴 수 있는 해변, 한적하고 조금은 적적한 사람들 사이의 거리 같은 것들 속에서 행복을 맛보았고, 이제 그게 없이는 행복해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느껴요.”

정우열 작가와 풋코, 소리.ⓒ제공 = 정우열 작가

‘내 개의 마지막 겨울일까 싶어 분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이 든 반려견과의 일상 기록한 ‘노견일기’

그가 연재하는 ‘노견일기’는 3년 전 네이버 ‘동물공감’ 공식 포스트 ‘동그람이’에서 시작한 웹툰이다. ‘열 다섯 살 먹은 개와 제주도에 살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만화에는 작가가 반려견 두 마리의 일생을 지켜주며 깨달은 마음이 담담한 톤으로 담겨있다. 단행본, 굿즈, 방송 등 풋코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노견일기’는 처음부터 대외적으로 거창한 목적을 갖고 시작한 작품이 아니다.

“풋코가 나이 들어가고, 제 곁을 떠나가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반려견과 함께 살아간다는 게 그냥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개를 키우며 알게 됐어요.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많지 않은 거죠. 그래서 풋코를 그릴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습니다.”

'노견일기' 웹툰ⓒ웹툰 '노견일기'

이 웹툰의 주인공은 작가와 풋코 둘인데, 당연하게도 둘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는 늘 풋코에게 말을 건네고, 나름의 답까지 받는다. 강산이 두 번 변할 만큼의 시간을 보낸 덕에 가능한 그들만의 소통이다.

“저는 풋코의 작은 움직임이나 소리만으로도 뭘 원하는지 어떤 상태인지 대체로 알죠. 풋코는 제가 일을 할 건지, 밖에 나갈 건지, 자기를 데려갈 건지 두고갈 건지 제 움직임으로 알아챕니다. 하지만 서로 모든 걸 알고 있는 건 아니에요. 18년을 함께 살았지만 어떤 때는 풋코가 뭘 원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아마 풋코도 비슷한 생각을 할 때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풋코와 둘이 살기 전엔 ‘소리’까지 총 세 가족이 함께했다. 소리가 풋코의 엄마다. 소리는 태어난 직후 1년 간 다른 집에서 살다가 작가에게 왔고, 풋코는 강아지 때부터 함께했다. 소리는 작가와 2003년부터 2014년까지 12년 동안 작가의 곁에 있다 뇌종양으로 먼저 떠났다. 두 반려견과 제주 생활을 한 지 2년이 채 안됐을 때였다. 천방지축 강아지였던 풋코도 어느 새 18살이 됐다.

“소리에겐 미안한 점이 많아요. 병으로 갑자기 잃어서 그렇게도 할 테고, 강아지 때부터 제가 키운 개가 아니어서 제게 온전히 마음을 내어줄 수 없었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그에 비해 풋코에게는 별로 미안하지 않아요. 소리를 잃고 배운 점도 많아서, 후회하지 않도록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거든요.”

소리와 풋코.ⓒ제공 = 정우열 작가

‘노견일기’는 제목 그대로 노견과 함께 하는 삶을 담백하게 보여주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바로 이 점에서 웹툰의 가치는 빛난다. 혹여 ‘노견일기’에서 드러난 일상이 작가의 전부가 아니라 하더라도, 전부와 일부라는 단어를 들어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아주 크고 깊은 사랑의 시선을 함께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웹툰은 한 화 한 화가 작가에겐 후회하고 싶지 않아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순간의 기록이 되고, 독자에게는 경험해본, 또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랑의 복기로 다가온다.

“제가 특별히 다른 사람보다 사랑이 많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제 삶과 제 일이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킬 수 있길 바랍니다. 나와 다른 존재의 고통에 공감하고, 가진 것을 나누고, 모자란 부분은 서로 보태며 살아가는 것, 어려운 때에 서로 위로와 용기를 주는 것, 함께 버텨주는 것, 그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정우열 작가와 풋코, 소리.ⓒ제공 = 정우열 작가

때로는 쓰고 말하는 행위로써 확신하게 되는 마음도 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사소한 결심도 그렇다. ‘내 개의 마지막 겨울일까 싶어 분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담담하지만 솔직한 작가의 고백을 읽어낸 독자가 얻어가는 건 ‘다시 사랑할 용기’다. 그래서일까. 각 에피소드 댓글 란에는 만화의 내용과 관련한 독자들의 반려견 이야기가 즐비하다. 독자들은 반려견과의 만남과 이별, 그에 따른 애틋함, 두려움, 또는 슬픔 등이 자신을 괴롭혔다고 말하면서도 ‘평생 기억하고 사랑하고 싶다’라고 용기내어 말한다. 이에 작가도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고 한다.

“제가 경험한 걸 먼저 경험한 분도 계시고, 저보다 훨씬 용감한 분들도 계세요. 그래서 댓글을 보고 느끼는 점도 많고요. 그리고 독자들이 서로 위로하고 공감하시는 것도 감사해요. 가끔은 제가 잘 못 그려도 독자들께서 보완해주시리라 믿고 그리는 경우도 있어요.”

풋코와 소리.ⓒ제공 = 정우열 작가

‘개와 함께 사는 일은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채식·그린다이빙·동물 복지… 개에게서 배운 ‘인간다움’

‘개도 다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는 거지. 고양이도 돼지도 소도 닭도 전부 다. 그렇지 풋코?’

그가 풋코에게 건네는 말을 읽고 있다보면, 단순히 그 마음이 풋코라는 존재에 갇힌 사랑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주변으로 유연하게 스며드는 사랑, 이것이 개로 인해 변한 지점이다. ‘개와 함께 사는 일은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라는 글귀로도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작가는 고기를 먹지 않은 지 11년이 되었고(해산물, 유제품, 동물복지계란만 먹는 채식주의자다), 유기견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기 위해 노력한다. 동물 복지, 환경 보호 등을 풋코에게서 배웠다. 개를 통해 인간다움을 쌓아나가게 된 것이다.

“제 개의 행복을 생각하다보니, 다른 개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고양이와 소와 돼지와 닭을 염려하게 되었습니다. 코끼리와 돌고래와 북극곰의 삶은 어떤가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다시, 동물들을 걱정하면서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가지지 못한다면 말이 되는 걸까 고민하게 되었고요. 결국 개에게서 출발해서 종의 구분 없이 모두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니, 따지고 보면 전부 개에게서 배운 것이죠.”

정우열 작가와 풋코.ⓒ제공 = 정우열 작가

그는 제주에서 ‘부캐릭터’로 프리다이빙 강사직을 병행하고 있다. 직업이라기보단 취미에 가깝다고 한다. 이 역시 환경을 해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자연과 생명을 위한 ‘그린다이빙’을 지향한다.

“그린다이빙은 바다 환경을 좀 더 생각하면서 하는 다이빙을 말해요. 작게는 해양생물을 만지거나 채집하지 않고, 해양쓰레기를 만나면 외면하지 않고 줍는 다이빙이죠. 좀 더 크게는, 지구 환경 전반을 생각해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지양한다거나, 육류나 해산물을 적게 먹고 채식을 지향한다거나 하는 활동도 그린다이빙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제게 다이빙을 배운 학생 중 한 분이 그린다이빙이 뭐냐고 묻길래, ‘지속가능한 바다의 미래를 고민하고 생명다양성을 존중하는 다이빙’이라고 답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종과의 교감을 ‘근사한 것’으로 귀하게 여기고, 관계 맺음으로서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그에게 ‘인간다움’은 지속가능한 세상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뻗어나갈 예정이다. ‘죽은 개 생각 좀 그만 하고 사는 게 좋지 않을까요?’라는 조언에 ‘하지만 죽은 개도 제 인생의 일부인걸요.’라고 대답할 수 있는 용기와 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렇기에 그는 늘 그렇듯 자신의 개를 최선을 다해 지키고, 그 순간을 기록할 것이라 전했다.

소리와 풋코.ⓒ제공 = 정우열 작가

“‘노견일기’는 풋코가 제 곁을 떠나고, 그에 대한 제 생각을 만화로 표현해서 정리할 때까지 그릴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까지 쉬지 않고 쭉 지속할 자신은 없고요, 힘들 땐 좀 쉬는 시간을 가지고, 다시 연재하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특히 풋코가 제 곁을 떠나기 얼마전부터는 아마 만화를 그릴 여력이 없을 테니까요. 앞으로 풋코와는 하루하루를 꾹꾹 눌러 담아 지내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 해요. 현실적으로는 매일 새로운 일에 쫓기고 있지만, 같이 있는 시간을 끊임없이 인식하고 대충 흘려보내지 않도록 애쓸 생각입니다.”

“우선은 날이 따뜻해지고 있으니, 조만간 바쁜 일을 끝낸 다음 해변으로 캠핑을 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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