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억류 한국케미호, 95일만에 풀려나...동결자금·핵합의 진척 영향인듯

“선원들 건강 양호”...이란 당국, 당초 문제 삼은 환경오염 사안 사법 처리 안 해

이란에 3개월 넘게 억류돼 있던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호'가 9일 새벽(현지시각) 풀려나 이란 반다르압바스항 인근 라자이 항을 출항하는 모습. 2021.04.09ⓒ사진 = 외교부

이란 정부가 9일 3개월 넘게 억류했던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호'와 해당 선박 선장을 풀어줬다.

외교부는 이날 오전 "1월 4일부터 이란 당국에 억류되어 이란 반다르압바스 항 인근 라자이 항에 묘박 중이던 우리 국적 선박(한국케미호)과 이 선박 선장에 대한 억류가 오늘 해제되었다"고 밝혔다.

외교부에 따르면, 한국케미호는 이날 오전 5시 50분(현지시간) 현지 행정절차를 마친 후 출항했다. 현재 이 선박에는 13명의 선원(한국 5명, 미얀마 5명, 인도네시아 1명, 베트남 2명)이 탑승하고 있다. 외교부는 "선장 및 선원들의 건강은 양호하며, 화물 등 선박의 제반 상황도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화학 운반선 한국케미호는 지난 1월 4일 호르무즈 해협 인근을 항해하다, 기름을 유출시켜 환경을 오염시켰다는 혐의(이란 해양환경법 위반)를 받고 이란 혁명수비대에 의해 억류됐다. 당시 선박에는 20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다.

이란 당국은 지난 2월 2일 선장을 제외한 19명의 선원들에 대한 억류를 해제했다. 선장과 선박의 경우엔 해양 오염과 관련한 사법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는 이유로 남겨뒀다. 풀려난 선원들 중 9명은(한국 2명) 귀국했으며, 이후 선박 관리를 위해 2명의 선원이 한국케미호에 탑승했다.

이날 그간 묶어뒀던 선장과 선박까지 억류 해제 한 것이다. 한국케미호는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 항구에서 선체를 점검한 후 이후 행선지를 정할 계획이다.

정부는 해당 선박 억류 직후부터 선원과 선사에 영사 조력을 해왔다. 1월 4일 외교부·국방부·해양수산부가 한국케미호 사건과 관련해 상황실을 설치했고, 1월 6일엔 주이란 한국대사관 직원 3명이 선원 대표를 만나 상황을 확인했다. 다음날인 7일, 고경석 아프리카중동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한국 정부 협상 대표단이 이란을 방문해 이란 당국과 대화를 나눴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도 사흘 뒤인 10일 이란을 찾아 세이에드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부 차관, 마흐무드 헤크마트니아 이란 법무부 차관 등 주요 이란 당국자들과 만나 조속한 억류 해제를 요청한 바 있다. 이후로도 한-이란 당국자 간 대화는 계속됐다. 이날 외교부 당국자에 따르면, 양국은 해당 사안과 관련해 매주 서너 번 정도 소통했고, 우리 측은 해양오염 사안으로 장기간 억류하는 것의 부당함을 지적해왔다고 한다.

10일부터 12일까지 이란을 방문한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이 마흐무드 헤크마트니아 이란 법무부 차관을 만나 우리 선박 억류사건 해결 및 국내 이란 원화자금 활용 등 양국 간 관심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2021.01.12ⓒ사진=외교부

현재 한국과 이란 사이에는 미국의 대 이란 제재로 인한 '동결 자금' 문제가 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인 지난 2018년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탈퇴를 공식 선언하고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복원한 바 있다. 이 경제 제재에 한국 정부도 동참하고 있어, 국내 은행의 이란 중앙은행(CBI) 명의 계좌에 있던 원유 결제 대금 등 대규모 자금이 동결됐다.

앞서 이란 당국은 한국케미호 억류 사유가 '환경 오염' 때문이며, '동결 자금'과는 별개의 건이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도 표면적으로는 이 주장을 받아들였지만, 자금 문제에 대한 이란 측 불만을 감지하고 이를 풀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해 왔다

우선 이란 제재 상황 속에서도 허용되는 의료기기 수출 등 인도적 교역을 확대했다. 또 동결자금으로 이란의 국제기구 분담금 대납, 코로나19 백신 구입 비용 대납하는 등 방안에 대해 미국, EU 등 관련국과 직접 협의하고 실제로 추진해 왔다. 관련해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의 동결 자금 문제 해결 노력이 이란에도 전해졌고, 최종적인 긍정적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란과 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중국 등 JCPOA 당사국은 지난 6일부터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담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긍정적인 결론이 나올 것이라는 예측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JCPOA가 진전되면 동결자금 문제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 유관국과 협의를 해왔다"며 "외신을 보면 관련해 대화에 진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태 해결의 기류는 지난 5일(현지시간)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무부 대변인 발언을 통해서도 감지됐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한국케미호) 사건과 관련된 모든 조사가 선장과 선박을 돕는 방향으로 진행됐다"면서, "사법부도 해당 사건에 대해 긍정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해 억류 해제가 가까워졌음을 예상케 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란 당국은 결과적으로 한국케미호의 환경오염 문제에 대해 사법 절차에 돌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선사와 이란 항만청 간의 합의가 이뤄졌다"라며, "이란 국내법적 절차가 종료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정부는 이란 당국이 주장한 환경오염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날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국영 IRNA 통신과 인터뷰에서 한국케미호 억류 해제에 대해 "조사 결과 선박과 선장이 과거 지역 내에서 위반 사항이 없었기 때문에 사법부가 석방을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국 정부와 선사 측의 진지한 석방 요청도 사법부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해당 선박이 이란 해역에서 어떠한 문제를 일으켰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결국 이란 측은 한국 내 동결자금 해제, 국제사회와의 JCPOA 협상 진척 과정에서 한국케미호를 계속 억류하는 것이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우호관계를 유지해 온 나라이면서, 미국의 우방인 한국의 선박을 풀어주는데 이 시점을 적기로 본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한국케미호가 억류 해제 되고 동결 자금 문제에 진전이 있는 등 양국 관계 복원 가능성이 높아지자, 정세균 국무총리가 직접 이란을 방문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국무총리실은 이날 정 총리가 오는 11일부터 1박 3일 간의 일정으로 이란을 방문해 양국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한다고 전했다. 대한민국 총리가 이란을 방문하는 것은 44년만의 일이다. 정 총리는 국회의장 시절인 지난 2017년 8월 이란을 방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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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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