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세상읽기] 선거의 풍경

한동안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재보궐 선거가 끝이 났습니다. 결과를 놓고 셈을 하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우리를 위한 선거였지 그들을 위한 선거가 아니었는데, 돌아보면 결과는 늘 그들의 잔치로 귀결되었다면 너무 지나친 이야기일까요? 선거와 관련된 연작을 그린 미국 화가 조지 칼렙 빙햄 (George Caleb Bingham/1811~1879)은 정치인이기도 했던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마을 선거 The County Election 1852 oil on canvas 96.5cm x 132cmⓒSaint Louis Art Museum

조그만 마을의 선거일입니다. 투표하기도 전에 술에 취한 사람이 곳곳에 있습니다. 맨 오른쪽 남자는 술에 취해 고개도 못 들고 있습니다. 무릎이 구멍 난 바지를 입은 것으로 봐서는 사는 것이 녹록하지 않은 것 같은데, 하긴 정치인이 바뀐다고 내가 입고 있는 구멍 난 바지가 바뀔 것도 아니지요. 성서에 손을 얹고 서약하는 사람은 그래도 진지함이 있지만, 그 옆에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며 명함을 내미는 입후보자의 얼굴과 표정은 지금 선거의 후보자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시골의 선거일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빈부와 계급에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모두가 한 표를 행사하는 축제이기도 합니다. 빙햄은 선거는 이렇게 열린 곳에서 사람들의 뜻을 모은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빙햄은 꽤 유명한 초상화가가 될 때까지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독학으로 화가의 경지에 오른 다음 시의원을 역임한 후 45세에 파리로 건너가 그림 공부를 했으니까 대단한 의지의 소유자였습니다.

선거 유세 Stump Speaking 1853 oil on canvas 108cm x 147.3cmⓒSaint Louis Art Museum

빙햄은 선거와 관련된 작품을 3점 제작했고 이 작품이 두 번째 작품입니다. 연단에 오른 후보자는 유권자들을 향해 간절하게 자신의 주장을 전하고 있습니다. 반쯤 숙인 몸과 펼친 손바닥 위에 올려 놓은 손으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전달하고 있는 모습에서는 열기가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 작품 속에는 유독 눈에 띄는, 흰옷을 입은 세 사람이 보입니다. 화면 오른쪽, 사람들 사이에 모자를 쓰고 앉아 후보자의 유세를 차갑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구시대의 상징입니다. 날카롭게 깃이 선 옷과 앉은 자세는 지금 후보자의 유세 내용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연단에 서서 열변을 토하고 있는 후보자는 현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당장 지금을 바꿔 보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지요. 빙햄은 후보자 뒤에 앉아 노트에 무언가 적는 사람으로 자신을 끼워 넣었습니다. 마지막 흰옷의 주인공은 연설대 앞에 앉아 동전을 가지고 노는 아이입니다. 아이는 유세 내용에 관심이 없습니다. 미래를 상징하는 아이는 자신과 관련된 경제적인 이익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지요. 빙햄의 예언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요?

배심원 평결 The Verdict of the People 1854 oil on canvas 116.8cm x 139.7cmⓒSaint Louis Art Museum

작은 마을의 배심원들이 심사숙고 끝에 내린 평결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모여든 사람들의 숫자를 보면 이 평결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어떤 내용인지 짐작이 됩니다, 화면 왼쪽에서 수레를 끌고 등장하는 흑인의 입에는 미소가 걸렸습니다. 대놓고 크게 웃고 싶지만, 주변 상황을 살필 수밖에 없는 분위기입니다. 오른쪽에 햇빛을 받고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아마 그들은 배심원 판결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당시 미국의 상황을 염두에 두면 배심원의 평결은 노예제 반대와 금주법 확대에 관한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자유를 확대하고 무절제의 폭음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빙햄 자신도 이런 주장에 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빙햄이 이 작품을 통해 의도했던 것 중 하나는 지역적인 문제를 전국으로 확대하고자 했던 것이었고, 결과만 놓고 보면 그의 의중은 성공한 셈입니다.

개척지의 고단한, 그러나 유머가 있는 일상을 묘사한 빙햄의 초기 작품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후기에 이르러 대중들부터 잊혀집니다. 1930년대 혹심한 경제 공황이 지나고 옛날에 대한 향수가 유행하면서 다시 빙햄의 작품들이 재조명을 받았고 오늘날에는 19세기 가장 위대한 미국 화가 중 한 명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선거가 끝났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눈을 부릅뜨고 약속한 것을 지키는지 지켜 보는 일입니다.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 선거는 늘 ‘그들만의 잔치’가 되겠지요.

민중의소리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후원회원이 되어주세요.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정기후원은 모든 기자들에게 전달되고, 기자후원은 해당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선동기 미술에세이스트 응원하기

많이 읽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