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돌아왔다? 바이든과 중남미

조 바이든ⓒ사진=

편집자주: 바이든은 1972년 정계에 입문한 이래 미국의 중남미 외교의 일선에 있었던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물론 오바마 정권 하에서 부통령으로 있을 때도 그랬다. 그랬던 바이든이 이번에는 대통령으로 돌아왔다. "공화당보다 민주당의 중남미 정책이 낫겠지," 혹은 "민주당이니까 좌파 정권에게 더 호의적일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카운터펀치의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Biden and Latin America

2020년 11월 8일. 오전 늦게 워싱턴 D.C. 전역에서 환호성과 자동차 경적이 울려퍼졌다. 언론에서 조 바이든의 대선 승리가 확실시된다고 발표한 것이다. 백악관 건너편에 있는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 광장에는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대놓고 인종차별, 성차별, 외국인 차별을 했던 대통령의 패배를 자축했다.

고위급 공무원들과 정부 계약을 따낸 기업 간부들이 사는 워싱턴 D.C.의 부촌에도 안도감과 기쁨이 넘쳤다. 드디어 미국이 트럼프 이전 시대의 ‘정상적’이고 예측가능한 정치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외교정책 관련 엘리트들은 의기양양했다. 창피했던 미국의 모습이 곧 사라지고, 국가 지도자들이 전통적인 동맹들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미국이 다시 각종 국제기관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게 될 테니 말이다.

워싱턴 D.C.의 외교정책 관련자들 사이에서는 미국-중남미 관계에 대한 기대가 특히 크다. 바이든이 부통령 시절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중남미 지역에 훨씬 신경을 많이 쓰며 여러 국가 원수들과 개인적인 친분도 쌓았기 때문이다. 애틀랜틱이 기사 제목에서 말했듯, “조 바이든의 ‘리셋’은 중남미에서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중남미의 독립성을 키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도 바이든의 당선이 좋은 소식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트럼프의 중남미 정책은 끔찍했다. 베네수엘라에 가해진 살인적인 경제제재, 쿠바에 대한 통상금지령 강화, 인종차별주의자인 브라질의 극우 대통령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는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오바마 정권의 중남미 정책은 나았을까? 오바마-바이든 시대에 중남미의 수많은 좌파 정권들이 우파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오바마 정권이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를 모색했지만 동시에 좌파 정권을 전복하려는 쿠데타를 가능케 했다. 오바마 정권은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무역과 해외투자를 지지하고, 마약과 안보 프로그램의 군사화를 장려했으며, 참혹한 인권 침해로 악명 높은 우파 정권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렇다면 바이든은 앞으로 어떤 중남미 정책을 펼칠까? 지금까지의 발언과 인사를 보면 오바마 정권의 중남미 정책을 그대로 부활시킬 태세다. 과연 그렇게 할까? 아니면, 트럼프 정책의 일부, 특히 초당적 지지를 받았던 몇몇 정책을 유지할까? 그것도 아니면 오바마 정권과 트럼프 정권의 정책들이 가져온 불행한 결과로부터 교훈을 얻으려 할까? 바이든의 과거 외교정책들을 짚어나가면서 생각해 보자.

6,400명의 민간인 죽인 미국의 ‘플랜 콜롬비아’의 1등 공신

바이든이 미국의 중남미 정책에 처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건 2000년대 초반 그가 상원의원이었을 때다.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을 이끌던 바이든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플랜 콜롬비아’의 구상과 예산 확보를 주도했다.

원래 플랜 콜롬비아는 마약과의 전쟁에 참여하는 콜롬비아 군과 경찰을 훈련시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바이든은 2000년 8월, 안드레스 파스트라나 당시 콜롬비아 대통령와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콜롬비아에서 인권이 보장되고 원조금이 콜롬비아 내전에 쓰이지 않는 한 미국이 계속 플랜 콜롬비아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 원조가 콜롬비아 좌파 FARC을 상대로 한 ‘테러와의 전쟁’에 쓰이고, 콜롬비아 군이 6,400여 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사실이 결국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은 플랜 콜롬비아를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성공적이었던 미국의 외교정책 중 하나’라며 극찬했다.

집에서 쫓겨나 판자촌을 만드는 과정에서 콜롬비아 군경의 손에 학살된 가족 얘기를 하며 한 여성이 울부짖고 있다. 플랜 콜롬비아가 시행된 이후 콜롬비아 군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이 6,400여 명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콜롬비아 흑인들과 원주민, 그리고 진보 인사들이 특히 큰 피해를 봤다.ⓒ사진=인터넷 캡쳐

오바마의 첫 임기(2009~2012) 동안 바이든은 중남미 정책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2009년 온두라스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이를 지지해 쿠데타의 성공을 이끌어내고, 축출된 좌파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의 복귀를 적극적으로 반대했으며, 군부가 2009년 말에 실시한 대선 또한 지지한 것은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이었다.

어쨌든 온두라스 때문에 오바마 정권에 대한 중남미의 기대가 오바마 재임 첫해부터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중남미의 우려대로 오바마 정권이 조지 W. 부시의 중남미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을 것이라는 게 점점 분명해졌다.

바이든의 활약은 오바마의 두 번째 임기 직전부터 진정한 빛(?)을 발한다. 우선 온두라스에서 억압적이고 부패한 쿠데타 이후의 정권들을 유지하는 데 톡톡한 몫을 했다. 그가 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방문한 중남미 국가 중 하나도 온두라스였다. 2012년 당시 온두라스의 대통령은 포르피리오 로보였는데, 그는 2009년 대선 승리 이후 온두라스의 군사화에 박차를 가하고 원주민 거주지의 탄광과 댐 사용권을 팔아치웠다. 또, 그의 임기동안 수십 명의 민주화, 인권 및 토지권 활동가들과 언론인, 변호사들이 살해됐다. 그럼에도 2012년 ‘시민 안보’ 정상회의에 참석한 바이든은 ‘진정한 영광’이라며 모든 참석자 중 로보 대통령에게 가장 따뜻한 인사말을 전했다.

바이든은 오바마의 두 번째 임기(2013~2016)동안 중남미를 14번이나 방문했다. 2014년 중반, 부모나 동반자 없이 국경에 도착하는 어린이 불법이민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오바마가 골치를 썩고 있었다. 이에 바이든이 이민어린이들이 특히 많았던 온두라스와 과테말라, 그리고 엘살바도르를 방문해 불법이민을 차단하면 원조를 주겠다며 ‘미국의 중미관여전략’을 고안해냈다. 미국의 안보를 위해 중미 3국이 경제적 번영, 안보강화, 통치구조의 안정화를 추진하면 원조를 준다는 것이었다.

바이든은 부통령으로서의 최고의 업적으로 꼽히는 중미관여전략을 플랜 콜롬비아에 비교했다. (물론 전혀 다른 의미에서이지만) 실제로 이 둘은 매우 비슷하다. 첫해에 중미관여전략에 할당된 7억 5000만 달러의 거의 절반이 정체가 불분명한 ‘중미 지역안보 이니셔티브’에 들어갔다. 이 이니셔티브 역시 시위의 과잉진압과 활동가 살해를 자행한 3국의 국가 공권력을 지원했다. 2016년에 온두라스 군이 유명한 원주민 권리 활동가이자 환경 운동가인 베르타 카세레스를 살해한 후, 수십 명의 미국 의원들이 오바마에게 미국의 온두라스 안보 지원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오바마는 이를 거부하고 온두라스가 미 의회가 정한 인권 기준을 준수하고 있다며 원조를 전혀 줄이지 않았다.

온두라스의 환경운동가 베르타 카세레스의 살해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원주민이 그녀의 포스터를 들고 있다. 카세레스는 아구아 자르카 수력발전댐 건설 반대 운동과 관련된 활동 과정에서 살해됐다. 2016.3.16.ⓒAP/뉴시스

그로부터 6년이 지났고 미국은 중미관여전략에 30억 달러 이상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미국 회계감사원도 2019년에 인정했듯, 미국의 원조가 발전을 가져왔다는 징후는 하나도 없다. 3국의 빈곤율과 범죄율은 여전히 중남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고, 정부 고위층의 부패는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바이든은 중미뿐만 아니라 남미의 여러 나라에도 깊이 관여했다. 바이든은 브라질을 4번 방문했으며 좌파인 지우마 호세프 당시 대통령과도 친했다고 한다. 그런데 2016년 8월, 호세프 대통령은 브라질에서 가장 부패한 정치인들이 제시한 허위 혐의를 바탕으로 논란 많은 재판 후 탄핵됐다. 브라질 국민 다수는 이것이 우파 미셰우 테메르 당시 부통령이 앞장선 ‘의회 쿠데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이든은 호세프가 축출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테메르를 만났다. 그리고 얼마 안 돼 브라질 국민이 “경제적,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브라질의 헌법을 따랐고, 권력이양 절차를 충실히 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반발 일었다. 호세프의 축출 직전에 미국 하원의원 50여 명이 공개서한을 통해 “미국 정부는 브라질의 대통령 탄핵 과정을 둘러싼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브라질에게 헌법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준수하라고 촉구해야 할 것”이라며 오바마 정권의 태도에 항의했다.

오바마 정권의 온두라스 정책과 브라질 정책은 기존 정권들의 접근방식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미국은 중남미에서 기회만 있으면 좌파 정권의 기반을 뒤흔들고, 아무리 정통성 없고 끔찍한 인권 침해를 저지르는 정권일지라도 그것이 친미 우파 정권이기만 하면 따뜻하게 품어 안는다.

오바마가 처음으로 당선되기 몇 해 전부터 중남미에 좌파 정권이 많이 들어서면서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이 확연하게 줄어들었었다. 조지 W. 부시는 베네수엘라와 아이티의 쿠데타를 지원하고 우파 정치운동을 지원하는 ‘민주주의 촉진’ 프로그램들에게 충분한 자금을 제공하며 이 ‘분홍물결’을 되돌리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하지만 중남미 유권자의 대다수는 신자유주의에 맞서고 빈곤 퇴치에 초점을 맞춘 좌파에게 표를 던졌다.

2009년 1월 오바마가 처음 취임한 직후와 2017년 1월오바마가 퇴임한 직후에 중남미 정권들의 좌우 성형이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지도다. 여기서 빨간색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좌파 정권, 검정색은 미국이 지지한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우파 정권, 파란색은 미국의 이해요구를 저해하지 않아 미국의 지지를 받는 선출된 우파 정권이다. 이 두 지도를 비교하면 중남미의 분홍 물결과 이에 대한 미국의 복수가 확연히 보인다.ⓒ지도=브라질와이어

그러나 오바마 집권 이후 얘기가 달라졌다. 세계 금융위기와 맞물려 발생한 경제적 충격과 공격적이고 비민주적일 때가 많은 우파의 반격으로 중남미가 오른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오바마 정권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파의 정권 탈환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우선 파라과이부터 보자. 파라과이에서는 2012년에 우파가 파라과이의 초대 좌파 대통령을 미심쩍은 혐의로 기소해 탄핵했다. 미주 인권위원회는 ‘용납되지 않는’ 절차를 통해 너무 급하게 이뤄진 탄핵재판을 인정하지 않았고, 좌우를 막론한 수많은 중남미 정부가 파라과이 주재 대사를 소환해 이에 항의했다. 또, 남미공동시장(Mercosur)과 남미국가연합(UNASUR)같은 지역기구들은 파라과의의 회원 자격을 정지시켰는데, 유독 오바마만 미국이 이끄는 미주기구(OAS)에서 비슷한 처분을 막고, 브라질에서 호세프가 제거될 때 그랬듯 민주적으로 선출된 페르난도 루고를 제거한 우파 정권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의 좌파 정권이 어려운 국가재정을 메우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 오바마 정권이 나서서 아르헨티나에 대한 미주개발은행과 세계은행의 지원을 막았다. 이후 페르난데스의 2015년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꼽혔다. 중남미 순방을 해도 아르헨티나는 절대 가지 않았던 오바마가 2016년 드디어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을 때, 그는 “아르헨티나가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 아래 중남미와 세계에서 전통적으로 점했던 리더의 역할을 되찾고 있다”고 있다며 새로 취임한 우파 대통령을 극찬했다. 국제은행들이 아르헨티나에 돈을 줄 수 있도록 조치한 이후에 말이다.

그러나 오바마의 발언은 매우 호도적이다. 아르헨티나는 페르난데데스 정권과 페르난데스의 남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정권 하에서 중남미에서 확실한 리더 역할을 했었다. 미국의 미움을 받으면서 말이다. 아르헨티나의 좌파 정권이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와 손잡고 남미 지도자들과 협력해 워싱턴 D.C.에 위치한 OAS에 맞서고, 미주자유무역지대처럼 미국이 추진하는 신자유주의적 지역통합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2008년에 UNASUR를 설립한 것이다. UNASUR는 안보와 인프라 분야에서 큰 진전을 이뤘고 회원국 간의 갈등 중재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아르헨티나 빈곤층이 음식과 옷, 돈으로 바꿀 수 있는 물건들을 찾기 위해 쓰레기를 뒤지고 있다. 한때 농업 부국이던 아르헨티나는 1930년대부터 누적된 여러 문제로 오랜 경제 위기를 겪었다. 그런데 2003년부터 12년간 이어진 좌파의 집권으로 노동자와 농민이 크게 나아졌고 경제도 급속히 성장했다. 그러나 우파인 마크리 집권 4년만에 빈곤율은 다시 35%까지 치솟았고 물가상승률은 50%를 넘어셨으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그리고 IMF 구제 금융 지원을 받게 됐다.ⓒ사진=인터넷 캡쳐

그러나 마크리와 테메르의 우파정권이 들어서자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UNASUR를 강화하려던 전임자들의 정책을 뒤집었다. 아르헨티나는 친미세력이 장악한 콜롬비아, 칠레, 페루와 멕시코 4개국으로 구성된 태평양동맹에 참관국 자격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태평양동맹은 자유무역과 해외 투자,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의 교역 증진에 초점을 맞춘 오바마 정권의 야심작이었다. 바이든도 2013년 월스트리트 기고문을 통해 “중남미에서 가장 유망한 일 중 하나”라며 태평양동맹을 홍보했다. 하지만 중남미 전문가들은 다 잘 알고 있었지만 바이든과 오바마가 하지 않은 말이 있다. 미국이 지원하는 태평양동맹이 중남미 국가들을 이간질하고 UNASUR같이 진보적이고 독립적인 지역통합 프로젝트를 약화시키기 위한 조직이라는 사실 말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중남미에서 체제를 전복하려한 세 번째 축인 베네수엘라였다. 오바마와 우고 차베스는 2009년 트리니다드 정상회의에서 친밀한 만남을 가져 미-베네수엘라 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조지 W. 부시가 그랬듯 오바마도 베네수엘라 정부와의 건설적인 대화를 피하고 공공연하게 베네수엘라 정부를 비판했다.

2013년 차베스의 사망으로 진행된 대선에서 미국 정부만 차베스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선거부정 증거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런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베네수엘라의 우파는 크게 힘을 얻고 대선 결과에 불복, 격렬한 폭력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2014년에도 반대파를 살해하고 불을 지르고 총을 쏘는 등 각종 폭력이 우파 시위에 만연했지만, 오바마 정권은 이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시위를 진압하는 좌파 정권만 비난했다.

2015년 1월, 바이든과 마두로가 호세프 대통령 취임식에서 서로를 따뜻하게 맞이해 또 한번 미-베네수엘라 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에 불을 지폈다. 불과 한 달 전에 오바마가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발표했기 때문에 희망이 더 컸다.

하지만 2015년 3월, 오바마는 마두로 정권이 ‘미국의 국가안보와 외교정책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 규정하고 경제 제재를 가하는 행정명령을 내려 쿠바와의 관계 개선에 불만이 많던 매파와 같은 편에 섰다. 쿠바보다 베네수엘라를 더 큰 위협으로 생각하는 것은 조지 W. 부시 때부터 더 심해졌다. 베네수엘라의 진보적인 좌파 정권이 다른 국가의 진보운동을 지원하고 중남미 통합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자금이 원유 때문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하에서도 전혀 나아지지 않은 미국의 중남미 개입

도널트 트럼프는 2016년 대선운동을 하면서 미국의 제3국 개입을 부정적으로 얘기할 때가 많았기 때문에, 트럼프가 이전 대통령들에 비해 중남미의 내정에 덜 간섭하지 않겠냐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도 오바마와 똑같았다.

트럼프는 취임전에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라이벌이었던 마르코 루비오를 여러 번 만나더니, 이 쿠바계 강경 우파 상원의원을 중남미 정책의 실질적인 최고 고문으로 삼았다. 트럼프의 전략은 단순했다. 핵심 중남미 외교정책 자리에 자기 측근을 열심히 꽂는 루비오의 도움으로 중남미 좌파, 특히 쿠바와 베네수엘라, 그리고 니카라과에 대한 공격을 강화해 플로리다의 우파 쿠바계의 지지를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었다. 2020년 대선에서 핵심 주인 플로리다의 선거인단 표를 가져가기 위한 전략이었다.

2017년 초여름, 트럼프는 이미 오바마의 정책을 뒤집고 쿠바 여행과 쿠바에 송금하는 것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베네수엘라로 눈을 돌렸다. 우선 군사적으로 개입하겠다고 협박하고 오바마의 2015년 제재와 똑같은 제재를 가해 베네수엘라를 국제금융시장에서 배제하며 경제적으로 옥죄기 시작했다. 국제유가 폭락으로 국가 재정이 이미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 할 때에 맞춰서 말이다.

미국의 경제제재와 체제 전복 노력이 커질수록 베네수엘라 민중의 삶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해졌고 민중의 분노는 점점 커졌다. 사진은 반미 벽화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베네수엘라 여성의 모습이다. 베네수엘라에는 이런 벽화가 상당히 많다.ⓒ사진=인터넷 캡쳐

그러다가 2019년 초, 트럼프 정권은 베네수엘라의 체제전복 노력을 배가했다. 베네수엘라군의 쿠데타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은 루비오와 몇몇 정부 관료들, 그리고 베네수엘라에서 망명한 강경파 반정부 인사들이 모여 마두로를 무너뜨릴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래서 돌아가면서 하는 1년 임기의 국회의장이 갓 된, 국민 인지도가 10%도 안 되는 극우 초선의원 후안 과이도가 자신이 임시 대통령임을 선언한다.

정작 베네수엘라 야권은 놀랐지만, 마두로의 2018년 대선 승리를 인정하지 않던 미국은 즉시 과이도를 대통령으로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곧이어 중남미의 우파 정권들이 그 뒤를 이었고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유럽 국가들도 과이도를 인정했다.

그러나 미국의 공개적인 부추김과 추가 제재에도 불구하고 기대했던 베네수엘라 군의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의 오판이었다. 마두로에 대한 반발을 말도 안 될 정도로 과대평가한 것이다. 다급해진 미국과 콜롬비아 우파정권, 그리고 OAS의 사무총장은 대놓고 베네수엘라 군에게 ‘군사적 행동’이 필요한 때라고 계속 압력을 가했으나, 베네수엘라 군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마두로 지지자들이 분개하며 결집했다. 마침내 4월에 과이도가 직접 베네수엘라 군에게 무기를 들라고 선동했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과이도 정부’의 자금 유용이 폭로되면서 과이도의 가치는 곤두박질 쳤다. 미국에서 빼고 말이다.

2020년 2월, 과이도는 트럼프의 새해연설장에 초대받아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 모두의 기립박수를 받았고 다음날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공동기자회견도 가졌다. 당시 민주당에서는 한국전쟁 종전 촉구 법안을 발의한 로 칸나와 진보를 대표하는 유색 하원의원 4인방 중 한 명인 소말리아 난민 출신의 일한 오마르 하원의원 등 한줌도 안 되는 의원들만 트럼프의 정책이 베네수엘라의 경제적, 정치적 위기를 악화시키고 국민의 삶을 극도로 피폐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을 했다.

민주당 주류는 이외에도 많은 면에서 트럼프의 중남미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민주당 주류는 중미에 대한 경제적 원조 삭감과 불법 이민자에 대한 무자비하고 미개한 대우는 항의했지만 억압적이고 부패한 중미 정권에 대한 ‘안보 지원’의 증가는 항의해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콜롬비아나 온두라스, 과타멜라와 볼리비아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인권 침해는 모른 체하면서 트럼프가 지지했던 우파 정권의 모임, 그 유일한 목표가 베네수엘라의 체제 전복인 ‘리마 그룹’은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미국이 노골적으로 군사적 행동(군부 쿠데타)을 하라고 부추겼음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 군은 지금까지 쭉 마두로 좌파 정권에 충성하고 있다. 미국의 이런 행동은 베네수엘라 국민의 분노를 일으켜 득보다는 실이 훨씬 컸다.ⓒ사진=인터넷 캡쳐

바이든을 포함한 거의 모든 민주당 정치인들이 2019년에 일어난 볼리비아의 군사 쿠데타를 비난하지 않았고, 민주당의 일부는 오히려 거짓 근거로 대선 과정을 문제 삼음으로써 좌파인 에보 모랄레스를 축축할 명분을 줬던 OAS 선거 참관단을 극찬했다. 상원에서는 유일하게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그리고 하원에서는 진보적인 몇몇 의원만 볼리비아의 군사 쿠데타와 이를 가능케 했던 트럼프 정권, 그리고 OAS를 비판했다.

민주당 주류는 또한 중남미에서 커지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에 강력하게 대응하려는 트럼프의 정책도 대부분 지지했다. 트럼프는 ‘미주성장계획(America Crece)’을 고안해 중국 투자자들을 몰아낼 목적으로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DFC)를 새로 설립해 민간 부문의 에너지 및 인프로 프로젝트에 재정 지원을 제공했다.

미주성장계획은 화웨이와 같은 중국 기업들이 중남미 텔레콤 네트워크에 진출하는 것을 막는 것에 현재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례로 에콰도르는 중국을 텔레콤 네트워크 시장에서 배제한다는 조건으로 DFC로부터 중국에 대한 부채 상환 자금을 지원 받기로 했다.

이런 움직임에 민주당은 만족하는 듯하다. 민주당은 미국의 먼로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는 사실에 아직 불만을 표한 바 없다. 민주당은 미주성장계획이 인프라 및 서비스에서 공공부문 주도의 투자 가능성을 사실상 무시하고 모든 발전은 민간 주도로 이뤄져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모델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에도 아직 불만을 표한 바 없다.

대통령으로 돌아온 바이든, 다시는 중남미 일에 개입하지 말라

어쨌든 트럼프는 물러났고 바이든의 시대가 왔다. 바이든의 대중남미 정책은 어떤 모습일까?

바이든은 취임하자마자 트럼프의 가장 악명 높은 조치 중 일부를 재빨리 취소했다. 그는 기후에 관한 파리 협정에 재가입하고 이슬람 국가로부터의 이민 금지 조치를 폐지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전 세계의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중남미에 관한 한, 바이든이 전면적으로 트럼프의 정책을 바꾸겠다는 징후는 아직 없다.

유럽연합이 과이도를 더 이상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정권은 과이도를 계속 인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로 조만간 해제할 계획이 전혀 없다. 쿠바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9일 바이든 정권은 쿠바 정책을 바꾸는 것이 중요한 의제는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밝혀 바이든이 오바마의 국교정상화 정책을 부활시키고 쿠바에 대한 경제 전쟁을 멈출 것이라는 희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바이든이 재도입하려는 오바마 정책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정책들이다. 일례로 바이든은 대선 기간 동안 자신이 2015년부터 추진한 ‘미국의 중미관여전략’과 굉장히 유사한 ‘중미 민중과 손잡고 안보와 번영을 촉진하기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수십 개의 시민단체들이 바이든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이 계획은 중미의 빈곤과 불평등, 폭력을 악화시킨 정책들을 오히려 강화하려 한다”며 깊은 우려를 표하고 정책을 상당 정도 개혁할 것을 호소했다.

바이든의 외교팀은 대부분 오바마 시대 인물들로 채워졌다. 하지만 마음을 열어 수십 년간 미국의 외교 정책을 만들어 온 주류 제도권 인사들의 말만 듣지 않고 중남 지역을 잘 알고 있는 비주류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면 바이든 정권도 예전보다 진일보할 수 있다는 희망은 가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좌파 에보 모랄레스 콜롬비아 대통령을 몰아낸 군사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위에서 한 여성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미국은 쿠데타 이전부터 계속 모랄레스 정권을 전복하고자 했다.ⓒ사진=인터넷 캡쳐

바이든 정권이 진일보하려면 우선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는 증거가 전혀 없는 정책을 재도입하려는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 바이든이 고안한 오바마 정권의 중미정책 같은 것들 말이다.

둘째, 바이든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플로리다의 표를 얻기 위해 중남미 좌파를 타겟으로 하는 개입주의적인 정책을 들여오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건 이길 수 없는 게임이다. 바이든은 제재처럼 공격적인 조치들을 취하지 말고 플로리다 쿠바계의 삶을 향상시키는 국내정책으로 그들의 표를 얻을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셋째, 바이든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짓밟아도 중남미의 우파 친미정권과 손을 잡는 미국의 오랜 전통을 깨야 한다.

마지막으로 바이든은 먼로주의를 폐기하고 중남미 국가들을 외세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개입하는 정책을 없애야 한다. 미국의 헤게모니가 약화된 것이 중남미에게는 좋은 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가 됐다. 역사는 사람들이 외세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주적으로 국가 정책을 결정할 때 외국이 개입했을 때보다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꾸준히 보여줬다.

중남미에게 자주적인 정치적, 경제적 아젠다를 선택하게 해주면 바이든과 그의 전임자들이 그토록 중남미에서 보고 싶다고 주장했던 ‘번영과 안보’를 실제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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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연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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