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정영은 남의 자식 때문에 자기 자식을 죽였나,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원 초기 작가 기군상 원작을 각색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국립극단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펼쳐졌다. 조씨 집안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이 집안의 문객이었던 시골 의사 정영은 자신의 아들을 죽인다. 그리고 정영은 20년 동안 조씨 집안의 아들을 자신의 아들이라고 속인 후 양육한다. 복수를 위해서다. 기군상이 쓴 원작을 고선웅 연출가가 각색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내용이다.

12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 상연되자 관객들은 웃고 울었다. 극이 절정을 향해 달려갈수록 객석 곳곳에선 울음 삼킨 훌쩍임 소리가 났다. 특히 막이 내린 후, 관객들은 객석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긴 커튼콜이었다.

그럴 만한 무대였다. 2019년 국립극단이 실시한 '국립극단에서 가장 보고 싶은 연극' 설문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1위를 차지한 이 연극은 2021년 무대에서 그 입김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앞서 2015년 초연 직후 동아연극상, 대한민국연극대상 등 각종 상을 휩쓸기도 했었다.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복수라는 뻔하고 흔한, 심지어 불편하고 무거운 소재를 담은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어떻게 관객을 동(動)하게 만든 것일까. 복수를 표현하는 말, 상징, 은유 등 모든 것들을 재밌게, 탁월하게 풀어낸 덕이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국립극단

물론 재밌다는 말이 코미디나 웃음에 한정해서 말한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과 개연성도 포함된 것이다. 특히 극이 복수의 방향으로 나가는 부분에 있어서 그렇다. 조씨 집안의 아기를 도와주게 되면 자신의 가족이 위험에 빠지게 된다. 사정은 딱하지만 우리 가족을 위험에 빠뜨릴 수 없으니 도와주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되면서도, 상황은 복수의 활시위를 당기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죽음이 발생하게 된다. 도미노처럼 죽음의 방향으로 쓰러지는 사람들은 정영에게 말한다. 꼭 복수를 하라고 말이다.

무려 20년이다. 마음속에 복수의 칼날을 갈던 정영은 장성한 조씨고아에게 그간 벌어진 일을 설명해준다. 도안고로 인해서 조씨 일가 300명이 죽었다는 말을 들은 조씨고아가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정영은 답한다. "복수. 네가 마지막 남은 복수의 씨앗이니까. 도안고를 죽여!"

관객을 슬프게 만든 것은 마지막 무대 때문일 것이다. 복수가 남긴 것은 후련한 해결이나 해소가 아니었다. 복수 후에 오는 것은, 거대한 구멍이었다.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상태였다. 그 구덩이 속엔 긴 줄처럼 지루하게 이어지는 죽음만 있을 뿐이다.

정영은 "난 그때 기억 속에 멈춰 살았다"고 말한다. 정영은 조씨고아를 살린 후 20년을 더 살았지만, 복수를 위해 살아온 20년은 없는 세월이나 마찬가지다. 무대에 놓인 거대한 붉은 커튼을 수없이 치면서 비밀을 숨기고, 복수를 삭혀온 '없는' 세월일 뿐이다. 무대를 채우는 치열한 허무함과 쓸쓸함에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뻔한 이야기를 멋진 무대 언어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표현해 낸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내달 9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볼 수 있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국립극단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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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운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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