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노동이야기] 죽을 때까지 일하길 원하는 사람은 없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의 주인공 바흠은 가난한 소작농이다. 그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악마도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이를 우연히 들은 악마는 바흠을 바시키르인의 땅으로 이끈다. 그곳의 촌장은 바흠에게 하루 동안 돌아본 땅 전부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바흠은 하루 종일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땅을 돌아보다 가까스로 해가 지기 전 출발선에 도착하지만, 탈진으로 목숨을 잃게 된다. 악마와 바시키르인들은 죽어가는 바흠을 비웃는다.

톨스토이는 이 이야기에서 인간의 욕심을 꼬집었지만, 내가 본 바흠의 삶은 참 슬펐다. 평생을 못된 지주에게 시달린 탓에 절실하게 자신의 땅을 갖고 싶어 했던 마음이 이해가 됐다. 또 가족을 돌보기 위해 끼니를 거르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채 한 뼘이라도 더 넓은 땅을 갖기 위해 달린 상황도 공감이 간다. 그래서 욕심을 내다 죽음에 이른 바흠보다, 땅을 미끼로 바흠을 죽음에 이르게 한 바시키르인들이 더 밉다.

1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마트산업노동조합 택배기사님들을 응원하는 시민모임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故김원종·故장덕준·故김동휘님 추모 및 대기업택배사 규탄과 택배노동자 과로사 예방 호소 택배 소비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10.19ⓒ김철수 기자

소설 속 바흠의 슬픈 이야기가 오늘날 일터에 가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하는 노동자의 삶과 겹쳐진다. 과로로 죽음에 이르는 노동자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에만 4명의 택배 노동자가 또 사망했다. 2020년부터 지금까지 24명의 택배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는데, 대부분이 주5일 동안 고된 노동을 반복했고 하루 평균 14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선 택배노동자들이 일 욕심을 내서 사고가 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진짜 원인은 죽음에 이를 정도로 일하도록 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무엇보다 과도한 분류 작업이 장시간 노동의 원인이다. 보통 7시부터 시작하는 분류작업은 12시에나 끝나, 배송이 점심 이후부터 시작된다. 늦게 일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으니, 배송을 마치려면 저녁 10시나 되어야 한다. 터미널에 사고라도 있는 날에는 오후에 배송을 시작해야 하고 그럴 경우 10시도 훌쩍 넘는다.

택배 회사들이 올해 초 사회적 합의를 통해 오후 10시 이후 배송을 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막아 놓았으나, 필요 시엔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어 조치가 유명무실해졌다. 여기에 더해 택배노동자들은 ‘자영업자’란 이유로 근로시간, 휴게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어 장시간 노동을 막을 길도 없다. 업무 특성 상 대체도 사실상 불가능해, 움직일 수만 있으면 일을 하도록 되어 있는 셈이다.

죽음에 이르는 비인간적인 시스템은 ‘특수고용’ 신분인 택배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근로계약’ 관계속 노동자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쿠팡이 대표적인데, 지난해부터 쿠팡 물류 배송 관련 노동자 9명이 과로사로 추정되는 사망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과로하게 된 원인을 야간배송, 로켓배송으로 지목하고 있다. 쿠팡 측은 지난달 사망한 쿠팡 노동자의 사인에 대해 예단을 삼가 달라고 했으나, 이전 사례들에 과로사가 있어 이번에도 업무 관련성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지난해 사망한 한 쿠팡노동자는 오후 7시부터 새벽 4시까지 5만 보를 움직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근로복지공단도 쿠팡의 배송 자회사 쿠팡풀필먼트서비스 관련 239건의 산재신청 중 224건을 승인했다. 94%를 산재로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보았을 때 회사측 입장과 달리 쿠팡 택배노동자의 사망은 업무관련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쿠팡노동자가 죽음에 이르는 또 다른 원인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힘든 노동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처지’이다. 사망 노동자의 다수가 임시직, 계약직 등 대부분 비정규직이었는데, 회사의 눈 밖에 나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없는 처지였기에 과도한 새벽 배송 물량을 감당하고 있었다.

21일 서울 서초구 CJ대한통운 강남2지사 터미널 택배분류 작업장에서 택배기사들이 택배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2020.10.21ⓒ국회사진취재단

택배에 대한 사회적 의존이 높아진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시스템이 유지된다면 노동자는 죽음을 피할 방법이 거의 없다. 어떤 노동자는 당장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어떤 노동자는 회사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워 장시간 야간 노동을 해야만 한다. 그러면 그 중 누군가는 버티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흠처럼 말이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소박한 욕심을 이용하거나, 거절할 수 없는 처지를 악용해 이익을 취하는 잘못된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이유다.

비인간적 택배 현장을 바꾸기 위해 다음을 제안한다. 첫째, 고용 형태와 관계없이 택배 배송 작업을 마친 후 11시간 연속 휴게시간을 보장하는 방안을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야간 배송 시 작업 물량을 재조정하여 주간 대비 70% 수준으로 줄이는 등 야간노동에 대한 규율이 필요하다. 셋째, 고용형태와 관계없이 택배노동자가 사망하는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관계 규정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택배회사에 공동사용자성을 부과하여 노동조합의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자율적으로 노동조건을 논의, 개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월은 노동자 건강권 쟁취의 달이다. 이맘때면 일터에서 다치거나 죽지 않을 방법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윤을 조금만 줄이고 사람을 보면 된다. 답을 몰라서 노동자가 다치고 죽는 것이 아니라 제도 탓, 재원 탓, 여론 탓을 하며 애써 할 일을 외면해 왔기 때문이다.

다시 택배 노동을 돌아보자. 죽을 때까지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자발적인 선택으로 말이다. 아마 없을 것이다. 현재 대책으로는 죽을지도 모르는 시스템에 사람을 밀어 넣고 알아서 죽지 말고 일하라는 택배 회사의 이기심을 바꾸기 어렵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택배 회사에 선의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죽지 않고 일할 택배 산업 시스템을 새로 만드는 것이다. ‘탓’ 좀 하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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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흥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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