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패배하고 돌아간 제국들, 이번에는 미국 차례다

파키스탄 시위대가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의 무덤이 될 것이다"라는 플랭카드를 들고 미국의 침공을 규탄하고 있다. (2001년 9월)ⓒ사진=인터넷 캡쳐

캐나다 밴쿠버에서 한 아프가니스탄 택시 운전사가 카운터펀치 기자에게 이날이 올 것이라고 10년 전에 이미 말했었다. “우리는 18세기에 페르시아 제국, 19세기에 대영제국, 20세기에는 소련을 물리쳤다. 지금 21세기에 NATO와 붙었으니 28개국에 맞서 싸우고 있지만, 우리는 그들도 물리칠 것이다.” 제국들을 하나하나 꺾었던 자기 나라 역사가 자랑스럽지만 탈레반 소속이 아닌 것은 분명한 택시 운전사가 조용히 말했었다.

이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과거 제국들의 침공과 점령만큼이나 피비린내 나고 헛됐던 20년간의 전쟁을 마치고, 아프가니스탄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3500명의 미군과 NATO 동맹군이 퇴각한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마치 미국이 목표했던 바를 달성해서, 그러니까 911테러를 자행했던 자들을 처단하고 아프가니스탄이 이후 미국에 대한 공격 기지로 활용되지 못하도록 하는데 성공해서 미군이 귀향하는 것처럼 미국의 퇴각을 묘사하려 한다. 바이든이 자기 입으로 “우리는 목표를 달성했다. 빈라덴은 죽었고 알카에다는 무용지물이 됐다. ‘끝나지 않는 전쟁’을 끝낼 때가 됐다”고 떠들어댄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바이든이 인정하지 않을 뿐, 미국과 그 동맹 세력은 그 많은 돈과 그 강력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의 뿌리를 뽑지 못했다. 탈레반은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의 절반 가량을 장악하고 있고, 휴전 합의가 없는 한 몇 달이면 더 많은 지역을 장악할 것이다. 또, 바이든이 인정하지 않을 뿐, 미국과 그 동맹 세력은 20년 동안 노력했지만 아프가니스탄에 유능한 군대도, 안정적이고 민주적이며 대중적인 정부를 세우지 못했다.

과거 소련이 그랬듯, 미국은 패배하고 퇴각하는 것이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아프가니스탄 국민과 2,488명의 미군에게 헛된 죽음을 안겨주고, 수조 달러를 낭비한 채 패배하고 퇴각하는 것이다.

게다가 더 황당한 점이 있다. 바이든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수를 선언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탈레반과 협상 끝에 올해 5월 1일까지 철수하겠다고 합의한 것은 작년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그런데 바이든이 5월 1일부터 9월 11일까지 미군을 철수시키겠다며 이를 4개월이나 늦춘 것이다. 다시 말해 바이든이 발표한 것은, 미국이 탈레반과의 약속을 깨겠다는 것뿐이다. 바이든이 호들갑을 떨며 자신이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방해하고 있는 일에 대해 칭찬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트럼프가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정책에 따라 겨우겨우 회복되는 경제를 자기 공인 양 포장하려 했던 것과 마찬가지의 일일 뿐이다. 정치인들이 매일 하는 짓이다.

그리고 이게 중요한 일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정말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손을 뗄 것인가 하는 문제다. 바이든의 미군 철수 연기 발표는 축하할 일이 아니다. 최악의 경우, 바이든은 자신이 부통령으로 있었던 오바마 정권을 포함해 미국의 수많은 과거 정권들이 했던 꼼수를 또 부릴 것이다. 정치적으로 점수를 따기 위해 겉으로는 전쟁을 끝낸다고 크게 떠들면서 뒤로는 어떻게 하면 이를 지속시킬까를 고민할거란 얘기다. (과거 정권들은 약속한 바의 실행을 계속 연기해서 이를 해냈다).

동남부 아프가니스탄의 칸다하르주에서 어떤 사람이 미군에게 학살 당한 마을 이웃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미군은 며칠 전 알코자이 마을에 와서 민간인을 향해 발포해 최소한 수십 명의 주민을 죽였다. 이날은 미군들이 다시 마을을 찾아 아직 수습되지 않은 시신 11구를 모아 불을 붙였다. 훼손된 시신 중에는 6세도 안 된 아이들이 4명 있었다고 한다. (2012년 3월 11일)ⓒ사진=인터넷 캡쳐

최악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걱정스럽다. 바이든은 당선 후 트럼프가 약속했던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수를 질서정연하게 진행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최선의 경우, 바이든은 당선 후 밍기적거리며 잃어버렸던 3개월을 만회하기 위한 시간을 벌어놓고는,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미군 철수가 무산될 가능성을 높이게 될 것이다.

괜히 하는 얘기가 아니다. 미군 철수를 연기하는 것은 엄연히 미국이 탈레반과 했던 약속을 깨는 것이다. 탈레반은 이미 이에 항의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탈레반은 유엔의 중재로 4월 24일부터 터키에서 진행하기로 했던 평화 협상 테이블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며, 약속했던 5월 1일이 지나면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있는 미군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게다가 탈레반은 미군이 완전히 철수하기 전까지는 어떤 협상에도 응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아프가니스탄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던 요즘이다. 또, 탈레반이 전통적으로 대대적인 공세를 벌이는 봄이 왔다. 몇 주 후 5월이 되면 군사적 충돌이 증가하고 미군의 인적 피해도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이는 트럼프와 탈레반의 합의를 깰 충분한 명분도 되고, 실제적으로 충분히 정당한 이유가 될 것이다.

바이든은 5월 1일부터 9월 11일 사이에 미군이 공격당하면 보복을 할 것이라고 이번에 분명하게 밝혔다. 바이든이 현재 최선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양측의 보복이 이어지면서 상황이 다시 전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얘기다.

게다가 별일 없이 9월 11일까지 미군 철수가 완료돼도 문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의 ‘전현직 고위 관료들’이 이미 기자들에게 ‘바이든이 미군을 정보요원, 특수부대, 그리고 민간 용병들로 대체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른 관계자들은 기자들에게 바이든 정권이 그후 아프가니스탄 주변국의 미군을 증강해 지금껏 북부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그랬듯 폭격과 드론을 통해 테러리스트들을 암살하는 게 계획이라고 했다고 한다. 미군이 철수는 했지만 계속 아프가니스탄을 공습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비밀공작을 벌인다면 그게 정말 전쟁을 끝내는 것인가?

지난 20년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8만 여개의 폭탄을 투하해 공개적인 전쟁도 벌였고, 특수부대와 CIA 요원들, 용병들과 아프가니스탄 내의 준군사조직을 동원해 비밀 전쟁도 벌였다. 이를 멈추는 것은 미군 철수 만큼이나 중요한 일일게다.

수십 년간의 전쟁과 지독한 고통을 겪은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다. 이들에게는 종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들에게는 평화를 누릴 자격이 충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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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연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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