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여전히 사무치는 정차식의 신파

독보적인 성인가요 음반, 정차식의 [야간주행]

어딘가 이런 사내가 있을 것 같다. 젊음은 한참 전에 지나간 중년의 사내. 하지만 여전히 사랑에 목숨 거는 사내. 사랑을 잃고 “모조리 태워져 버린 길을 저 바람과 함께 하”는 사내. 코트 깃을 올려도 막을 수 없을 만큼 추운 날, “고개를 처박고 질질질 걸”어 가는 사내. 그럼에도 눈물은 감추고 “품위 있게 살아주시오”라고 순정을 잃지 않는 사내 말이다.

사실 이런 남자는 예전 영화나 드라마에만 존재한다. 세상에 로맨티스트를 자처하는 남자들은 넘쳐나지만 지금 로맨티스트에게 중요한 것은 후까시(?)가 아니다. 세상 고독해 보이는 표정과 뭐든 다 해줄 것 같은 허세가 아니다. 성평등한 태도이거나, 구체적인 동산과 부동산 자산이다. 그래서 정차식의 새 음반 [야간주행]을 들으면 고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체 언제적 사내의 표상인가 싶다.

가수 정차식 앨범 '야간 주행' 커버 이미지ⓒ사진 = 정차식

그러나 예술은 정답을 제출하는 시험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거나 트렌디한 인간형만이 예술의 보살핌을 받는 시대는 얄팍하다. 세상 누군가는 구태의연하게 살고, 예술은 그 구태의연한 삶이 최선임을 옹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좋은 예술 작품은 예술 언어와 태도로 수용자를 설득하고 설복한다. 이런 삶도 있다고, 이런 삶도 소중하고 가치 있으며 심지어 아름답다고. 좋아할 수 없는 삶, 동의할 수 없는 삶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 예술의 마력이다.

밴드 레이니썬 시절의 정차식을 까맣게 잊어버리게 한 2011년부터의 정차식 솔로 음반들은 찌질한 사내의 고백이라는 태도를 고수했다. 트로트나 장르 영화에서 선보였을 태도였지만, 정차식의 음악을 빌어 노랫말이 비틀거리는 순간마다 노래는 절창이었다. 그리고 음악은 탐미적이었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회한 같은 노래들은 뼈 시리게 엄습했다.

귀곡 메탈의 록커 정차식이 2000년대 이후 드물어져버린 성인 가요의 맥을 이을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그는 그 일을 해내고 있었다. 알아주는 사람은 적었다. 하지만 정차식은 정미조나 최백호 같은 성인가요 뮤지션들이 표현해내지 못하는 격정을 대변하며 한국 대중음악에서 어른의 노래라는 일가를 이루었다. 그 노래들 중에는 백현진과 선우정아도 함께 있다.

6년 만에 내놓은 음반 [야간주행]에서도 정차식스러운 태도와 사운드는 여전하다. 신파라고도 할 수 있고, 과잉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좋게 말하면 우수에 차 있다고 하겠지만, 쓸데없이 비감하고 비장하다고, 아니 찌질하다고, 왜 이렇게 징징대냐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번째 날’부터 ‘서약’까지 여섯 곡의 노래가 흐르는 동안 어떠한 이견도 불가능하다. 정차식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노래를 여전히 잘 뽑아냈다. 울림 가득한 사운드로 짐짓 고뇌 어린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 쿵짝쿵짝 맞아 떨어지는 리듬 위에서 매끈하게 노래할 때, “나는 지금 생명이 없어/사랑 따윈 이젠 덧없어”라고 비관적인 태도를 과시할 때, 쩍쩍 붙는 멜로디와 연극적으로 센티멘탈한 보이스 컬러는 모든 순간을 고혹적으로 장악한다.

“우리는 이렇게 끝나네”라는 쓸쓸한 노랫말을 향해 리듬을 밟으며 걸어가는 후회와 탄식의 노래 ‘빛나네’는 풋사랑과 완전히 다른 질감의 이별을 소환한다. 그만큼 테마는 찐득거리고 보컬은 농염해 가슴이 아리다. 듣는 이들에게 그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뛰어난 노래는 가상의 체험을 주입하고 추억하게 만들어버린다. 정차식의 노래가 흐르는 동안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이유이다.

‘품위있게’ 같은 노래는 과거의 어법을 반복하기도 한다. 기타 연주에 맞춰 정차식이 팔세토(falsetto) 창법으로 노래할 때는 다른 노래의 기억이 겹쳐진다. “비바람아 거세어져라/매정했던 그 사람에게/아무 데도 갈 곳이 없네/모든 것아 얼어버려라”라고 절망을 전시하는 노랫말은 전작의 다른 노래들을 계속 소환한다. 그럼에도 노래 자체의 완성도는 어떤 비판도 멈추게 한다. 물론 이것은 나의 취향 때문일지 모른다. 정차식과 별로 다르지 않은 나이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 향유하는 이의 정체성과 무관한 감상과 판단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눈사람’에서 처연한 정차식의 보컬이 묵직한 건반과 드러밍,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몰고 흘러갈 때, 마음이 찌르르 해지는 사람이 단지 나이든 이들 몇몇만은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록커다운 샤우팅을 더하고, 사운드를 폭발시켰다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던지며 사라짐을 받아들일 때, “해가 비춰도 함께 할게요”라거나 “사랑해”라는 고백의 비장미는 극대화된다. 이 사무치는 신파 앞에서는 마른 눈물이라도 뽑아내야 할 것 같다.

화려한 미장센으로 치장한 1인극 같은 정차식의 노래는 ‘아래로 갔다’로 이어진다. 이 곡에서는 고수가 등장해 다른 리듬을 더하고, 하오체의 비감한 노랫말은 잔뜩 부풀린 건반과 호응하며 음악을 한껏 치장한다. 반면 마지막 곡 ‘서약’은 정나리가 연주한 피아노와 자신의 코러스만으로 목소리 낮춰 애절하게 노래하며 야간주행의 종지부를 찍는다.

“잠들지 않길/바라질 않길 원”하는 사내는 이제 안식을 찾았을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소셜미디어에도 털어놓을 수 없는 삶의 무게로 버거운 이들에게 정차식의 노래가 독주처럼 적셔지기를 바란다. 못 다한 방랑과 체념과 그리움은 정념의 노래에 묻고, 실컷 울어 맑아진 눈망울로 오늘을 버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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