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다’ ‘하고 싶다’를 잊어버린 삶은 어떨까?

탈시설 지원법 ① ‘좋은’ 장애인시설은 없다

최근 장애인 탈시설 지원법이 발의됐다. 거주시설에 격리됐던 장애인들이 지역사회로 돌아와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 수 있는 내용이 담겼다. 10년 내 모든 시설을 폐쇄한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신체적 학대가 발생한 일부 시설만 문을 닫는 게 아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잊게 만든, 시설의 집단성 자체가 인권침해며, 이는 모든 시설의 공통점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좋은 시설은 없다.” 탈시설 운동의 핵심이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탈시설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가능한지 짚어본다. “장애인은 왜 시설에서 살아야 하는가?” 지난 15~16일 만난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변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 임소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사무총장은 이 질문부터 했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동등한 시민으로 대했는지, ‘존재의 투쟁’부터 시작이다. 장애인의 날이 시민사회에서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불리는 이유다.

① ‘좋은’ 장애인시설은 없다
10년 내 장애인시설 완전 폐쇄, 어떻게 해야 할까?

21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정부 세종청사 앞에서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며 보건복지부를 향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된 '탈시설' 용어를 부정하지 말라"라고 지적했다.ⓒ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탈시설 지원법부터 살펴보자.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에 정의당 장혜영 의원 등 동료 의원 67명이 동의했다.

최 의원 등은 “2017년 기준 장애인 거주시설은 1천500여 개소고, 입주 장애인은 3만여 명에 달했다. 장애인에 대한 시설 보호는 장애인을 지역사회로부터 분리된 채 획일화되고 집단적인 생활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고, 상당수 장애인 거주시설, 정신요양시설 등에서 인권침해 행위가 발생하고 있다”라고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일부 국가는 장애인의 탈시설화를 추진해왔으나, 우리나라는 장애인 탈시설을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미비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법안은 ‘탈시설’을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거주하는 장애인이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통합돼 개인별 주택에서 자립을 위한 서비스를 받으며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주요 내용으로 ▲탈시설 지원체계 구성 ▲인권침해시설 조사 후 제재 등이 담겼는데, 가장 눈에 띄는 조항은 ▲장애인 거주시설·정신요양시설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법 시행일로부터 10년 내 폐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설 폐쇄 기한을 못 박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좋은 시설은 없다”

장애인 거주시설을 왜 폐쇄해야 할까. 물리적 폭력 등 인권침해가 없는 ‘좋은 시설’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혼자 생활하기 어려운 장애인을 ‘보호’하려면 시설이 필요하지 않을까.

입소와 퇴소가 자발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좋은 시설’의 모순이 시작된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중증·정신장애인 시설생활인에 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비자발적으로 입소한 비율이 67.9%였다. 중증 장애인 거주시설의 경우 90%가 비자의적 입소였다. 퇴소는 기약이 없었다. 퇴소 가능성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18%), 퇴소 의사 표시를 해도 퇴소가 불가능할 것(25.9%)이라고 인식했다. 10년 이상 거주한 사람은 58%가 넘었다.

시설은 사회복지서비스가 아니라고 김정하 활동가는 지적했다. 그는 “자의에 의해 신청하고 입소하면 지역사회 소속된 시민으로서 서비스를 받는다고 상상한다. 하지만 대다수가 강제 입소다. 특히 거주자 80%가 발달장애인이다. 전원 동의 없이 입소했다는 뜻이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일정 공간에 가둬버렸다. 인문학자들은 이를 사회적으로 ‘처리했다’라고 표현한다”라고 말했다.

시설의 역사적 출발은 격리와 징벌이라고 김 활동가는 설명했다. 그는 “집단수용격리시설의 역사는 1200년대부터 시작됐다.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파리 시민의 10%는 항상 감금상태였다고 말한다”라며 우리나라 역시 일제강점기 선감학원, 군부독재 시절 형제복지원 등의 역사가 있다고 짚었다.

시설 장애인에 대한 신체적 폭력은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장수 벧엘의집·가평 루디아의집 등 최근에도 학대 행위로 법인이 취소되거나 이사장·원장 등이 재판에 넘겨지는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

장수벧엘장애인의집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은 28일 전북 전주시 전북도청 브리핑룸에서 장수 군수실 점거 농성 철수 기자회견을 하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10.28.ⓒ뉴시스

그러나 신체적 폭력이 시설 내 인권침해의 전부는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자기결정권을 보장받을 수 없는 집단생활 역시 인권침해라는 지적이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같은 시간에 잠을 자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는 시간이 계속되면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린 장애인들의 삶을 활동가들은 ‘색깔을 잃었다’라고 표현했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허용됐던 폭력이다.

인권위는 2017년 실태조사에서 시설의 공통점으로 집단성, 격리성, 권력 불평등성, 비선택성을 꼽으며 이는 거주인에 대한 인권침해의 주요 원인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뉴질랜드 국가인권위원회는 시설 자체가 학대의 공간이라는 보고서를 2010년 작성하기도 했다.

“좋은 시설은 없다”라는 핵심 구호가 탄생한 건 2005년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개별 시설의 인권침해 사례에 집중됐다. 제보를 받은 활동가들이 국회의원, 경찰, 언론 등과 함께 시설의 실태를 고발하는 식이었다. 탈시설 운동이 본격화된 건 활동가들이 시설 전수조사에서 시설의 유사성을 발견하면서부터다. 2005년 정부의 미신고시설양성화정책 과정에서 민관이 함께 인권위의 연구용역사업인 ‘장애인 생활시설 생활인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전수조사에 참여했던 임소연 활동가는 당시 질문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원하는 시간에 밥을 먹을 수 있는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밖에 나가고 싶을 때 나갈 수 있는지, 염색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지 등이다.

‘할 수 있다’라는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 하는 장애인들에 임 활동가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거주인들은 한 번도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집단생활에서 감히 생각도 못 했던 부분이다. 하고 싶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모두 혼났다”라며 “이때 특정 시설에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희망적 미래도 없이 전부 무채색으로 먹고 자기만 한다. 설령 자기가 결정하지 못한다고 해도 사람은 외부적 자극을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석암재단생활인비상재택위원회,탈시설공투단이 1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탈시설 자립생활' 권리보장을 요구하며 오세훈 서울시장 면담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시스

권력의 불평등성에서 발생한 결과였다. 시설 장애인은 을 중의 을 중의 을이다. 원장-사무국장-직원-장애인, 그중에서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장애인 밑에 발달장애인이 있다.

임 활동가는 “본인이 기초생활 수급권자란 사실도 모르더라. 대부분 거주자는 수급권자라서 입소하는데, 시설에 있으니 수급비가 본인 통장이 아니라 시설로 들어갔다. 사실상 돈 내고 이용하는 이용자인데, 먹여주고 입혀준다고 생각하니 시설 직원들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상하관계에서 언제든 인권침해가 벌어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시설과 학교·병원·군대·감옥의 공통점으로 임 활동가는 “일대 다의 구조”를 꼽았다. 그는 “선생과 학생, 의료진과 환자, 지휘관과 일반 병사, 간수와 죄수 등 계급 구조에서 관리자나 서비스 공급자의 수는 적다. 일대 다 구조는 통제 기제를 가질 수밖에 없다”라며 “가장 심한 곳이 시설이다. 일반의 공동체는 다수가 토론하면서 규칙을 만들어가는데, 일대 다 구조는 소수가 다수를 잘 관리하기 위해 규칙이 만들어진다. 다수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거주인 대다수를 차지하는 발달장애인에게 집단생활은 가장 맞지 않는 생활방식이었다. 김정하 활동가는 “시설의 집단성이 있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집단은 규율을 동반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때 제재를 가한다.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때까지 규율을 설명할 건가. 강압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라고 꼬집었다.

인권위는 2017년 보고서에서 “거주시설이 거주인 보호를 이유로 거주인에 대한 통제 행위를 정당화하고 거주시설의 통제 행위가 강할수록, 거주인은 점점 수동적·의존적 존재가 될 수 있다”라며 “인적·물적 자원의 확대를 통한 거주시설의 인프라 확충 문제와 거주인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문제는 별개의 것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시설을 리모델링 하고, 거주 인원을 줄인다고 해서 인권침해가 해소될 수 없는 이유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 20일 세종시 일대 보건복지부 앞에서 420 장애인차별철폐폐투쟁결의대회를 열었다.ⓒ전장연

탈시설이 자기결정권 침해라는 주장도 일각에서 나온다. 탈시설 반대 진영은 장애인단체가 시설 장애인들의 의사에 반해 탈시설을 추진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변재원 활동가는 “강제 입소부터 자기결정권 침해”라고 반박했다.

탈시설은 욕구가 아니라 권리를 기반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김정하 활동가는 강조했다. 탈시설을 하고 싶다고 표현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설 거주를 눈감아선 안 된다는 취지다. 그는 “거주인들이 표현하지 않아도 시설이 학대 공간이고 인권침해 공간이라면 인간으로서 그곳에서 벗어날 권리가 있다. 말하지 못한다고 권리가 없는 게 아니다. 아동, 치매 노인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부모의 반대가 탈시설을 할 수 없는 이유가 돼선 안 된다. 김 활동가는 “심각한 경우 부모가 자녀의 신체적 학대를 보고도 시설에 있어야 한다고 한다. 서울시·인권위 등에서 루디아의 집 인권침해 조사를 한 뒤 부모 20명과 간담회에서 어떤 폭행 행위가 CCTV에 찍혔는지 설명하는데, 피해자 부모가 우리 애는 장애가 있으니 맞아도 된다고 했다. 자격상실이다. 학대 공간에 있어도 된다는 보호자의 말을 사회가 수용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탈시설은 가족에게 부양 부담을 지우는 게 아니다. 다른 사회복지서비스로 해결하자는 것”이라며 “인권 기준으로 침해적인데 아니라고 주장하며 시설 생활을 강요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변재원 활동가 역시 “장애인과 부모, 시설 이용자와 시민단체 간 싸움으로 바뀌었지만, 명백한 가해자는 보건복지부”라고 꼬집었다.

“3만 명이 나오면 한국사회가 바뀐다”

‘10년 내 시설폐지’ 조항은 어떤 의미일까. 스웨덴의 시설폐지법이 모델이 됐다. 스웨덴은 ‘2000년까지 시설을 폐쇄한다’라고 명시한 ‘특정한 기능장애인에 대한 지원 및 서비스 관련 법률’(LSS)을 1994년에 제정했다. 다만 스웨덴은 1960년대부터 탈시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시설을 폐쇄하기 위해 해당 법을 만들었다.

반면 한국은 목표를 정하고 탈시설계획을 수립하자는 성격이 강하다. 김정하 활동가는 “기한이 없으면 준비를 안 한다. 시설 측은 20년째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 공공임대주택이 필요한 사람은 몇 명이고, 어느 정도로 지역에 분산해야 하는지 등 예산을 짜서 계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라며 “뉴질랜드는 1940년대부터, 영국은 1960년대부터, 미국은 1970년대부터 탈시설이 시작됐다. 늦어도 너무 늦은 이야기”라고 꼬집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주관으로 장애인 단체들은 지난달 29일 서울시청 정문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 장애인수용시설 신아원 '긴급탈시설' 이행 촉구 천막 농성" 기자회견을 열었다.ⓒ장애여성공감

탈시설과 함께 시설폐지가 진행돼야 한다고 임소연 활동가는 말했다. 그는 “탈시설은 용어부터 논쟁이다. 지역사회 전환·자립 생활·거주시설 혁신 등 다른 용어를 쓰려는 움직임이 계속 있다”라며 “시설을 끊어내지 않으면 계속 끌려다닌다. 한국전쟁 이후 몇십 년 동안 장애인 정책은 시설 정책이었다. 탈시설 운동은 시설사회와 명확히 선을 긋는 일”이라고 말했다.

올해 탈시설 지원법이 제정되면 2031년 모든 시설이 폐지된다. 김정하 활동가는 “10년 후면 장애와 장애 아님의 경계가 허물어질 거다. 생각이 언어로 표현되는 시스템이 개발될 수 있지 않나. 이처럼 변화한 사회에서 후진적이면서 인권 침해적인 시설 수용을 우리 사회는 계속 허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탈시설은 단지 장애인 3만여 명의 복지정책이 아니라고 변재원 활동가는 강조했다. 그는 “장애인이 목소리를 내니 청소년, 노숙인, 미혼모, 노인도 탈시설을 말한다. 장애인이 선봉대다. 장애인을 수동적으로 대하는 국가 정책 보면 나머지 소수자 정책이 보인다”라며 “탈시설은 한국사회 복지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모든 국민의 권리를 인정하는 첫 발자국”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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