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내 장애인시설 완전 폐쇄, 어떻게 해야 할까?

탈시설 지원법 ② ‘시설격리’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돌아온다면

21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정부 세종청사 앞에서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며 보건복지부를 향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된 '탈시설'용어를 부정하지 말라"라고 지적했다.ⓒ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최근 장애인 탈시설 지원법이 발의됐다. 거주시설에 격리됐던 장애인들이 지역사회로 돌아와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 수 있는 내용이 담겼다. 10년 내 모든 시설을 폐쇄한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신체적 학대가 발생한 일부 시설만 문을 닫는 게 아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잊게 만든, 시설의 집단성 자체가 인권침해며, 이는 모든 시설의 공통점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좋은 시설은 없다.” 탈시설 운동의 핵심이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탈시설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가능한지 짚어본다. “장애인은 왜 시설에서 살아야 하는가?” 지난 15~16일 만난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변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 임소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사무총장은 이 질문부터 했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동등한 시민으로 대했는지, ‘존재의 투쟁’부터 시작이다. 장애인의 날이 시민사회에서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불리는 이유다.

‘좋은’ 장애인시설은 없다
② 10년 내 장애인시설 완전 폐쇄, 어떻게 해야 할까?

탈시설 한 발달장애인 아들 A 씨의 변화를 지켜본 80대 노모는 ‘탈시설 전도사’가 됐다.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던 아들이었다. 항상 안쓰럽고 속상한 마음이 컸다. A 씨가 탈시설 하겠다고 했을 때 장가보내는 심정으로 노모는 냉장고도 사주고 이불도 한 채 해줬다. 이젠 서울에서 자립 생활을 시작한 A 씨가 어머니 집을 찾는다. 예전엔 노모가 김포 외곽의 시설까지 찾아가야 했다. 탈시설 이후 일하며 번 돈으로 용돈도 주고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십일조도 내는 A 씨를 보며 노모는 사과했다.

“이렇게 살 줄 알았으면 시설로 안 보냈을 거다.”

A 씨는 노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어떻게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었을까. 바로 지원주택이다. 장애인, 고령자, 노숙인 등 주거 생활이 곤란한 취약계층을 위해 공공임대주택에 사회복지서비스를 결합한 주거형태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매입임대주택 정책에서 소유하고 있던 물량 중 장애인이 입주할 수 있는 주택을 제공하면, 서울시가 운영사업자에게 사회복지서비스를 위탁한다. 일상생활에 대한 활동 지원서비스는 사회복지사들이 연결해준다.

입주인이 개별 공간에서 일대일 맞춤형 서비스를 받으며 자신의 ‘색깔’을 찾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입주인은 자신의 이름으로 집을 계약하고 일정 부분 월세를 낸다. 최장 20년간 살면서 퇴거나 인권침해 위험 없이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 김정하 활동가는 “자신의 공간을 꾸리는 과정에서 입주인들이 안정감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이어 “발달장애인도 마찬가지다. 표정이 달라지고 적극적인 의사 표현이 늘어난다. 언어도 발달하더라. 음성어만 하던 사람이 단어를 말하고, 단어를 말하던 사람이 문장을 말한다. 무표정하던 사람이 눈도 마주치고 스킨십도 한다. 가장 큰 변화는 욕구를 표현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과 정문자 상임위원이 4일 서울 목동 소재 장애인 지원주택을 방문, 탈시설 후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시작한 장애인 당사자 및 지원주택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국가인권위원회

탈시설 이후 공공임대주택이나 자립생활주택에 들어가는 사례도 있다. 주로 사회 경험이 있는 신체장애인들이 일반 공공임대주택으로 입주해 별도로 사회복지서비스를 신청한다. 개인 능력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선택지다. 자립생활주택의 경우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서울시의 경우 4년간 머물며 자립훈련을 한 뒤 임대주택으로 나가는 방식이다. 다만 주택에 적응할 때쯤 이사 가야 해서 발달장애인 특성상 맞지 않는다.

이런 점을 보완한 것이 지원주택이다. 2013년부터 탈시설 정책을 세운 서울시의 경우 현재 자립생활주택 65개, 지원주택 166개가 있다. 서울시는 2018년 지원주택 조례를 제정한 상황이다. 지원주택의 전국적 확산을 위해 19일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주거약자 지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같은 당 장혜영 의원은 주거유지지원 서비스법을 대표발의 했다.

현재 서울지역 정신장애인을 제외한 장애인 지원주택 운영사업기관은 총 5곳으로 그중 거주시설을 보유한 운영사는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인강재단, 엔젤스헤이븐이다.

프리웰과 인강재단은 과거 인권침해와 각종 비리로 이사회가 해체된 이후 꾸려진 공익이사회가 시설폐지를 의결했다. 인강재단은 서울시 장애인 거주시설 변환사업의 대표 사례다. 변환사업은 거주시설 운영 재단이 지원주택 운영사로 전환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인강재단 산하 인강원에는 50명의 장애인이 살았는데 일부는 자립생활주택으로, 일부는 지원주택으로 이사했고, 본원에 남은 32명도 곧 지원주택으로 이주할 예정이다.

김정하 활동가가 이사장으로 있는 프리웰의 경우 변환사업 전부터 지원주택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에 법인 산하 3개 시설 중 하나를 오는 30일 자로 폐쇄할 예정이고 나머지도 규모를 축소하고 있다.

다만 엔젤스헤이븐의 경우 지난해 12월 이사회에서 시설폐지를 결의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아 압박을 받고 있다. 김정하 활동가는 “거주시설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지원주택을 운영하려는 경우가 있다. 과거 시설 정책을 폐기하기 위해 새 운영권을 주는 건데 사업만 늘리려는 속셈”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 인권단체 회원들이 12일 서울시청 앞에서 '인강재단 산하 장애인거주시설 송전원 시설폐쇄, 거주인 전원 탈시설지원계획 수립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참가자들은 사회복지법인 인강재단 산하의 장애인거주시설 송전원에서 2014년 이후 거주인 간의 성폭력, 노동착취, 외출 금지 등 인권유린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며 서울시가 송전원 시설폐쇄를 이행하고 거주인에 대한 대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했다. 2016.1.12ⓒ뉴스1

시설 폐쇄되면 직원들은 어디로 갈까

지원주택 사업과 시설변환사업의 가장 큰 차이는 시설 직원 고용 승계 여부다. 탈시설 과정에서 시설 노동자의 고용 문제는 중요한 쟁점으로 꼽힌다. 변환사업의 경우 서울시가 고용 승계를 책임지지만, 법인의 개별적 지원주택 사업일 경우 고용 승계율이 떨어진다. 변환사업이 시작하기 전부터 지원주택 시범사업을 해 온 프리웰의 경우 오는 30일 폐쇄 예정인 시설의 고용 승계율은 38%다.

김정하 활동가는 “시설 노동자의 문제도 중요하다”라며 서울시에 고용 승계 방안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문제 삼은 건 시설 직원들이 민간기업 소속이라는 점이라고 김 활동가는 전했다. 시험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공공기관 승계는 어렵다는 취지다.

그는 “외국은 거주시설이 공공시설이라서 직원들이 공무원이나 공기업 소속이다. 시설을 폐지하면 직원들을 재교육해 관련 복지 기관에 전환 재배치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민간 위탁 형태라서 직원들이 사기업 소속과 같다. 하지만 국고보조금으로 월급을 받으니 사실상 공기업 직원 아닌가. 그래서 서울시에 고용 승계를 요구했는데, 공공기관은 시험 봐서 들어간다는 이유로 안 된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당장 전환 재배치가 불가능하다면 서울시 지원주택 등 위탁사업에서 관련 직종을 뽑을 때 우선 채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해 지원주택 운영사업자 신청을 받을 때 폐지시설 직원들의 고용 승계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운영사업자 측에서 전원 승계를 부담스러워해 일부만 채용하는 데 그쳤다.

중간 과정에서 고용 문제가 발생했지만, 결국 탈시설을 통해 공공일자리가 증가할 거라고 변재원 정책국장은 말했다. 그는 “지역사회 주거형태로 전환되면 맞춤형 서비스를 지원하기 때문에 일자리가 훨씬 늘어날 것이다. 이는 장애인 복지 비용이 아니라 노동자에게 일자리 형태로 가는 돈이다. 탈시설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기회”라고 말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 20일 세종시 일대 보건복지부 앞에서 420 장애인차별철폐폐투쟁결의대회를 열었다.ⓒ전장연

“탈시설 삶, 성공과 실패로 규정 말자”

장기간 시설에 거주했던 장애인이 자립 생활을 시작하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한 사회복지사는 남성 장애인이 성 관련 콘텐츠를 구매해 몇백만 원이 결제됐다며 난감해하기도 했다고 임소연 활동가는 전했다.

그러나 탈시설의 삶을 성공과 실패로 쉽게 규정해선 안 된다며 그는 “비장애인의 삶도 성공, 실패로 말할 수 없다. 그냥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탈시설 장애인의 경우 금전 사고가 잦다. 한 번도 돈을 써본 적 없는 사람이 수급비를 받고 카드도 긁어보니 막 사고 싶은 건 당연하다”라면서도 “비장애인은 안 그런가. 열심히 모았던 돈을 홀라당 주식으로 날리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이어 “장애인들은 사생활이 100% 노출되기 때문에 문제가 잘 보인다. 휴대전화를 못 드는 사람의 경우 지원사가 모든 통화 내용을 듣는다. 비밀이 없다. (장애인이 갖는 생활) 정보는 적은데 노출은 많다. 제가 그 지원사에 유난 떨 일 아니라고 말했다. 삶의 진통은 누구에게나 있다”라고 말했다.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에 필요한 지원체계는 여전히 부족하다. 노동권, 이동권, 교육권 등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장애인이 자립할 환경을 갖춘 뒤에 탈시설 하자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변재원 국장은 “탈시설 예산이 적은 이유는 탈시설 장애인 수가 적기 때문이다. (올해 장애인시설 운영지원비는 약 5천500억 원이지만, 탈시설 예산은 2억여 원에 그쳤다) 소수의 장애인을 위해 많은 예산을 잡을 수 없다. 탈시설이 가속화돼야 탈시설 예산도 늘어난다. 예산을 늘리고 탈시설 하자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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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영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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