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보] 아빠 성 물려주는 게 원칙? ‘부성 우선주의’에 어퍼컷 날린 이 사람

‘부성 우선주의’ 민법 781조 1항 헌법소원 청구한 이설아

지난 3월 18일, 90년대생 부부 이설아 씨와 장동현 씨가 헌법재판소 앞에 섰다. 혼인신고를 마친 지 이제 갓 3개월이 된 시점이었다. 이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미리 준비한 기자회견문을 읽어 내려갔다.

"저희 이설아·장동현 부부는 오늘 수많은 소수자들을 괴롭혀 온 견고한 정상 가족 프레임에 조금이나마 균열을 내기 위해 우선적으로 '부성 우선주의'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합니다."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어야 할 시기, 부부가 헌법소원까지 진행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민중의소리와 만난 설아(28) 씨는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다는 듯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2020년 12월 3일,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구청을 찾은 날이었다.

"저희 부부는 (아이를 낳으면) 엄마 성을 따르기로 합의했었어요. 굳이 내 성을 남기겠다는 건 아니었고요. 보통 사람들은 '아빠 성'을 따르는 걸 자연스럽게 여기니까 조금 반대로 하고 싶었던 거죠. 청개구리처럼요. 그런데 혼인신고서를 작성할 때 따로 체크하라고 하고, 협의서까지 쓰라는 거에요. 이거 너무 부조리한 거 아닌가요."

시민단체 '세계시민선언' 이설아 공동대표가 20일 서울 영등포구 선유도역 근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대표는 아버지의 성을 우선적으로 따르게 한 민법 조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2021.04.21ⓒ김철수 기자

혼인신고서를 보면,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는 질문에 '예' 혹은 '아니오'를 선택하게 돼 있다. '예'를 체크하면 앞으로 태어날 자녀의 성은 엄마의 성을 따를 수 있다. 이게 끝이 아니다. 혼인신고서에 표기했더라도, 부부가 서로 협의했다는 협의서도 따로 내야 한다. 협의서에는 "부와 모 사이에서 태어날 모든 자녀의 성과 본을 모의 성과 본으로 정하기로 협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설아 씨는 이 모든 게 이상했다. 왜 출생 신고도 아닌 혼인 신고에서부터 아이의 성을 정해야 하는지, 왜 아빠와 엄마의 성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하지 못하게 한 것인지, 왜 아빠의 성을 따를 땐 요구하지 않는 협의서를 엄마의 성을 따를 때에는 요구하는지 등등.

이 모든 의구심은 민법 781조 1항에서 출발한다. '자녀는 부의 성을 따른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혼인 신고 시 협의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엄마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한 부성 우선주의 원칙.

설아 씨는 이 같은 민법 조항이 헌법 36조 1항 '혼인과 가족생활 보장권'과 헌법 10조 '인격권'을 침해하고, 자기 결정권, 부모가 자녀의 성명을 지을 자유 등을 침해한다고 봤다. 부부의 헌법소원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이것저것 찾아봤죠. 이미 개정안도 나와 있고, 법무부에서도 부성 우선주의 폐지를 권고했던 사항이더라고요. 그런데 아직도 바뀌지 않고 있다면 거기에 대해 목소리 내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고 방법을 찾던 중에 당사자로서 헌법소원을 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진행하게 됐습니다."

이설아-장동현 부부가 지난 3월 18일, 서울시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민법 781조 1항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했다.ⓒ이설아 씨 제공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헌법소원을 맡아 줄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몇몇 변호사들을 찾아갔지만 헌법소원을 해본 적이 없다거나, 헌법소원을 전문으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곤 했다. 다행히 설아 씨 부부의 뜻에 공감해주는 변호사를 찾았다. 수임료는 결혼자금으로 모아둔 500만원으로 충당했다. 어려운 결정이었을 테다. 하지만 설아 씨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부가세는 별도더라고요"라며 깔깔 웃었다.

물론 설아 씨도 알고 있었다. 이미 정부도 권고한 사안이고, 개정안도 발의된 상태라는 것을. 더디긴 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여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설아 씨는 가만히 있으면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고 단호히 말했다. 법 하나 바꾸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똑똑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 내에 인권센터 설립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법안은 두 번의 국회에서 무산되다가 이번에 겨우 처리됐어요. 계속 압박을 하지 않으면 국회에서 법안 하나 처리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죠. 가만히 있다가는 (부성 우선주의 원칙 폐지도)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직접 나서게 됐습니다."

대학 시절 경험한 부조리함이 바꾼 삶
정당 당직자에서 시민단체 활동가까지
"항상 메시지 내는 삶 살고파"

시민단체 '세계시민선언' 이설아 공동대표가 20일 서울 영등포구 선유도역 근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대표는 아버지의 성을 우선적으로 따르게 한 민법 조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2021.04.21ⓒ김철수 기자

헌법소원 청구가 그러했듯 설아 씨는 주변의 부조리함을 가만히 두고 보지 못했다. 이상하다 싶으면 주저 없이 나섰고, 그래서인지 활동 반경이 무척 넓었다. "항상 메시지를 내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게 설아 씨의 바람이었다. 대학 시절 한 경험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한다.

"다니던 대학교에 성희롱 문구가 쓰인 현수막이 걸려서 논란이 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현수막을 건 당사자가 아무런 징계도 안 받고, 제가 속한 단과대학 선거에 출마한다는 거죠. 이런 사람이 나를 대의한다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 학생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는 청원 운동을 벌였어요. 200명이 넘는 학생들의 동의도 받고, 선거 보이콧도 했죠. 200명이면 굉장히 큰 숫자라고 생각했는데 학교는 깡그리 무시했어요. 되려 가해 학생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으니 고소당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설아 씨는 분노했다. 당연한 문제를 제기하는 데도 묵살당하고, 오히려 협박까지 당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는 그 이유를 "권력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봤다. 아무리 사람을 모아도 권력의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는 부당한 것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을 절감했다. 자연스럽게 향한 곳은 한 정당이었다. "평범하게 뉴스를 보면서 정치인 욕하던" 대학생의 삶이 바뀐 순간이었다.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이 학교 내 부조리함에 관심 갖고 얘기해주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정당 활동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당시 바른미래당에서 '청년 정치학교'라는 걸 했는데, 거기서 국회의원을 만날 기회가 있다고 해서 들어가게 된 거죠. 그런데 '윗분'들이 다투는 바람에 당이 공중분해가 됐고, 정치의 속성이란 이런 것이구나 빠르게 교육하고 나오게 됐습니다(웃음)."

2020년 11월17일,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이설아 세계시민선언 공동대표가 '태국항쟁 연대 청년·학생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이설아 씨 제공

설아 씨는 바른미래당에서 당직자로도 활동했다. '따뜻한 보수'라는 개념도 좋았지만 청년에게 문턱을 낮춘 정당은 많지 않았던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중앙당 차원에서 청년 정치인들에 대한 지원과 관심은 전무했지만 의미 있는 활동도 여럿 있었다.

그중 하나가 국회 토론회에 이어 캠프까지 개최했던 '홍콩 민주항쟁에서 5.18정신을 만나다'였다. 5.18 광주 정신이 세계로 이어지고 있다는 취지의 행사였는데, 여기서 만난 이들과 국가 폭력에 저항하는 세계 시민들과 연대하는 '세계시민선언'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을 비판하면서 시작한 활동은 영화 '뮬란' 보이콧,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를 규탄하는 활동으로 이어졌다. 단체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설아 씨의 당면한 과제도 세계시민선언을 통한 국제 연대 활동을 집중하는 것이다.

"당에서 마지막으로 한 활동이 5.18 정신을 국제 연대로 이어가자는 취지여서 계속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그래서 국가 폭력에 저항하는 세계 각국의 시민들과 연대하는 활동을 하는 단체인 '세계시민선언'을 만들었는데, 당시 뮬란이라는 영화 자체가 문제가 많아서 이 영화에 대해 보이콧 운동을 했고, 홍콩인들에 대한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는 활동을 해왔어요. 지금은 미얀마 군부와 결탁한 포스코에 사업 철회 요구 등도 지속해 나가고 있고요. 앞으로도 계속 국제 연대 활동을 열심히 할 계획입니다."

현재 대학원에서 다문화를 전공하고 있는 설아 씨는 언젠가 다시 정치인으로서의 도전도 꿈꾸고 있다. 이전 정당에서 호되게 당한 뒤 마음에 꼭 맞는 정당을 찾진 못했지만, 다양한 경험을 쌓은 뒤 정당 정치에 뛰어들겠다는 계획이다.

"제가 하는 말 중에 '보통 정치'라는 말이 있어요. '보통선거'가 1인 1표로 모든 사람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처럼, 정치도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죠. 그런데 돈이 많고, 여유가 있어야만 정치를 참여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돈을 버느라 정치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단 말이에요. 그런 것들을 극복하고, 그 사람에게 마이크를 쥐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과대 대표되는 사람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여론에서 반영되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정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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