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러피언 슈퍼리그의 반란, 봉기부터 진압까지

유러피언 슈퍼리그 출범 소식이 전해지자 여러 전현직 선수들도 분노를 표현했다. 사진은 리버풀과의 경기를 앞두고 슈퍼리그에 항의하는 티셔츠를 입고 몸을 풀고 있는 리즈 선수들의 모습이다.ⓒ사진=인터넷 캡쳐

편집자주:유럽 축구의 인기팀만 모아 슈퍼리그를 만들겠다는 오래된 쿠데타가 마침내 봉기했으나 48시간 만에 진압됐다. 유럽의 축구는 단지 구단만의 것은 아니었다. 현역 선수들부터 레전드 스타까지, 축구팬부터 정치인까지, 유럽을 넘어 전 지구에 걸쳐 축구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자는 물결이 넘쳤다. 반란이 진압되기까지 막전막후를 자세히 전해드린다.
원문: How the Super League Fell Apart

48시간 동안 축구가 벼랑 끝에 서 있었다. 팬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선수들은 공개적으로 반항했다. 그리고 축구계의 핵심 권력층도 혼돈에 빠지면서 맨체스터부터 마닐라, 바르셀로나부터 베이징, 그리고 리버풀부터 로스앤젤레스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충격파가 전 세계 축구계를 강타했다.

유럽 축구가 지난 30년 동안 세계 사람들이 집착하는 스포츠로 발전하게 된 것은 바로 유럽 축구의 이런 국제주의 덕분이었다. 서유럽의 엘리트 팀에 아프리카와 남미,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곳에서 온 스타가 가득하다. 유럽 축구 팬들이 잉글랜드나 이탈리아, 스페인에만 있는 게 아니다. 전 세계의 방송사들이 수억 달러를 내면서까지 방영권을 따려고 할 정도로 중국이나 인도, 호주에도 유럽 축구 팬들이 많다.

그러나 스포츠에서 가장 큰 ‘사업 부문’이 된 축구는 여전히 팬들에게 지극히 ‘지역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동네나 작은 마을에 기반을 둔 팀들이 100년 넘게 이어져온 국내 축구 리그에, 그리고 대단한 팀들이 약체인 팀들과 같은 대회에 참여해 필드를 함께 뛰고, 거기서 나온 수익도 조금이나마 함께 나눠 가진다.

이렇게 국제적인 면과 지역적인 면이 지난 수 십 년간 세계 축구계에 위태롭게 공존해 왔다. 그러다가 그것이 지난 일요일 밤에 깨졌다. 서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미국 헤지펀드, 러시아 집권층, 유럽 산업계 거물들, 그리고 걸프만의 왕족들이 힘을 합쳐 ‘자기들만의 리그’인 유러피언 슈퍼리그를 만들겠다고 한 것이다. 세계 최고 인기 스포츠인 축구의 수익을 장악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계획이 어떻게 세워졌는지, 또 어떻게 폭삭 무너졌는지를 보면 인간의 자만심과 음모, 탐욕과 야망의 얘기가 펼쳐진다. 비밀회의와 은밀한 식사 자리, 국제금융과 내분의 얘기가 펼쳐진다.

48시간에 불과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는 세상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비밀

지난 목요일이었다. 자비에 테바스와 주안 라포르타가 화기애애한 축하 오찬을 하기로 돼 있었다. 라포르타가 며칠 전 F.C.바르셀로나 회장에 재선됐는데,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테바스 스페인 프로축구 리그 회장이 그를 하루빨리 축하해 주고 싶어서 잡은 자리였다.

하지만 오찬 분위기는 그렇지 못했다. 라포르타가 테바스에게 바르셀로나가 유럽의 가장 유명하고 성공적인 12개 정도의 팀과 함께 새로운 리그를 만들기로 거의 확정했다고 밝힌 것이다. 바르셀로나 선수들을 축구의 전통적인 리그로부터, 더 결정적으로는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리그의 경제로부터 빼내겠다는 얘기였다.

폭망한 유러피언 슈퍼리그에 합류하기로 했던 영국 6개 팀의 셔츠가 93% 할인된 3100원에 팔리고 있다고 한다.ⓒ사진=인터넷 캡쳐

이게 뭐, 새로운 위협은 아니었다. (적어도 자기들끼리는) 돈 많고 강력한 축구팀들이 팬이 가장 많으니 축구계 수입의 대부분을 창출한다는 인식이 오랫동안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자기들끼리는) 그들이 다른 팀들보다 더 많은 수입을 가져가야 한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들은 몇 년에 한 번씩 자기네만의 리그를 따로 만들자는 얘기를 나누곤 했다. 그리고 그런 계획은 늘 무산됐다. FIFA에 남아있기만 하면 더 많은 힘과 돈을 주겠다는 약속에 계획을 항상 접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라포르타가 테바스에게 6개 팀이 이미 결정을 내렸고, 몇개 팀은 주말까지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고 했다.

테바스는 비상에 걸렸다. 유럽 각국의 축구리그 간부들에게 전화했다. 유력한 팀들의 간부들에게도 전화했다. 그리고 잃을 것이 가장 많은 유럽 축구 연맹(UEFA)의 알렉산데르 체페린 회장에게 연락했다.

호리호리하고 솔직담백한 슬로베니아 변호사 출신의 체페린(53)은 어안이 벙벙했다. 불과 몇 주 전, 자기편이라 생각했던 가까운 친구 안드레아 아넬리 유벤투스 회장을 만났는데, 유럽 산업계의 대표적인 집안 출신으로 유럽클럽협회를 이끌고 있는 아넬리가 새로운 리그 얘기가 소문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바로 하루 전에 유럽 클럽 협회가 유럽최고의 보석으로 가장 큰 돈을 벌어다 주는 챔피언스리그의 개혁에 다시 동의해 준 것이다. 월요일에 공식화될 개혁에 말이다.

그런데 ‘소문’이 계속 들려왔다. 상황을 확인하기로 마음먹은 체페린은 토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 아우디 Q8을 타고 8시간 거리에 있는 스위스의 사무실로 운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넬리에게 전화를 했다. 아넬리는 받지 않았다.

아넬리 막내 아이의 대부이기도 한 체페린은 아넬리의 아내에게 문자를 보내 급한 일이니 전화를 부탁한다고 전했다. 3시간이 지나서야 전화가 왔다. 그리고 아넬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별일 아니라고 그를 다시 안심시켰다.

체페린은 이 소문을 부인하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자고 제안했다. 아넬리가 동의했다. 체페린은 운전하면서 공동 성명서 초안을 마련해 아넬리에게 보냈다. 1시간 후 아넬리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정안을 보낼 테니 시간을 좀 달라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나서야 아넬리가 다시 연락했다. 그리고 전화 통화가 몇 번 더 이뤄졌다. 그러다가 아넬리가 30분만 더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아넬리가 핸드폰을 꺼버렸다.

반란

슈퍼리그가 위협적인 것은 엄청난 규모의 축구 경제가 너무나 취약한 유대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나 스페인의 라리가 같은 리그들과 챔피언스리그 같은 유럽 대회 모두 엘리트 팀들이 있어야 팬과 방송사 및 스폰서를 확보한다. 이들 없이는 아래로 흘러내릴 수익도 없고, 작은 팀들을 유지할 수도 없다. 이 모델이 지난 수십 년간 겨우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딱 축구계에 대한 충성심을 지닐 정도로만 부자 팀들을 달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신뢰가 갑자기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스위스에 도착한 체페린은 이 위협이 현실화 직전이라는 것을 확인해주는 전화 통화를 2통 더 했다. 잉글랜드의 한 팀과 스페인의 한 팀이 슈퍼리그에 참여하라는 압력을 받아 합류를 결정했는데, UEFA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한 것이다.

체페린의 답변은 정중했지만 직설적이었다. 체페린은 반란세력과 함께 하면 전면적인 공격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측근들과 함께 반격을 준비했다.

체페린은 250개 정도의 유럽 팀들로 구성된 유럽 클럽 협회의 몇몇 간부에게 상황을 얘기했다. 협회장인 아넬리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에드 우드워드 같은 다른 협회 간부들이 챔피언스리그 개편안을 지지하는 체 했지만 다른 계획이 있었다고 말이다.

체페린은 축구팀들에게 유러피언 슈퍼리그에 합류하려는 팀들이 국내 리그에는 잔류하려 하지만, 일단 슈퍼리그가 만들어지면 방송사들이 국내 리그에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스폰서들도 사라질 것이라고, 그러면 유러피안 슈퍼리그를 제외한 축구계의 돈줄은 마를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격분했다.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마피아 조직에도 상도는 있는 법이다.

슈퍼리그 반란의 진압을 진두지휘한 알렉산데르 체페린 UEFA 회장의 모습이다.ⓒ사진=인터넷 캡쳐

일요일 점심때가 되자 반란 팀의 목록이 완성됐다. 체페린은 이들을 ‘더티 더즌(Dirty Dozen)’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스페인에서는 바르셀로나 외에도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있었고 잉글랜드에서는 6개 팀(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 첼시, 아스널, 토트넘 훗스퍼),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는 유벤투스 외에 A.C. 밀란과 인터 밀란이 있었다.

모든 이탈 예정 팀이 동등한 파트너인 건 아니었다. 맨체스터 시티와 첼시의 임원들은 금요일이 돼서야 슈퍼리그 계획을 들었다. 그리고 합류 여부를 결정할 시간이 하루나 이틀밖에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들이 어떻게 결정하든, 시간이 되면 버스를 떠날 것이라고 했다.

맨체스터 시티는 금방 굴복해 합류하기로 했다. 하지만 저항하는 팀들도 있었다. 독일과 프랑스의 대표팀인 파리 생제르맹과 바이에른 뮌헨도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었다. (최소한 당분간은 FIFA에 잔류하기로 한 것이다)

이 두 팀은 UEFA와 스페인, 이탈리아, 잉글랜드 리그에게 반격에 필요한 정보를 일부 제공했다. 그 중에는 슈퍼리그 결성 소식이 일요일 늦게 발표될 것이라는 정보도 있었다. 그래서 이에 반박할 성명서도 준비 됐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공식 발표를 하기 전에 슈퍼리그 결성 소식이 유출됐다. 대중의 분노는 즉각적이었다. 팬들은 자기 팀 경기장 밖에 플랜카드를 걸었고, 국회의원들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출연해 축구의 전통을 무시하는 탐욕적인 반란 세력을 비난했다. 맨유 레전드 출신의 축구 전문가 개리 네빌도 방송에 출연해 잉글랜드 축구의 가장 인기 있는 두 팀, 맨유와 리버풀을 맹비난했는데, 이 동영상은 급속히 확산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슈퍼리그를 준비하던 이들 중 일부가 가장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된 것이다. 초기의 강력한 반발을 이겨낼 준비가 돼 있는지를 의심하며 슈퍼리그의 출범을 늦추려고 했던 사람도 꽤 있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며 여름으로 발표를 늦추자던 임원도 있었다.

그때 정도면 슈퍼리그의 ‘얼굴’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사실 슈퍼리그를 가장 강력하게 추진해온 사람은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마드리드 회장이었다. 어찌 보면 슈퍼리그를 그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를 함께 준비한 동료들은 그를 내세워서는 축구 팬들, 특히 잉글랜드의 축구팬들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대안들을 물색하고 있던 중이었다.

유러피언 슈퍼리그 창단 소식이 유출되자 유럽의 주요 언론이 일제히 격분하며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사진=

그러나 슈퍼볼 우승도 했었던 미식축구팀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를 소유한 글레이저 가문의 조엘 글레이저 맨유 공동회장, 러시아 억만장자인 첼시의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 그리고 아스날의 스탠 크랑키 회장은 공식석상에 서 본 적이 거의 없던 사람들이라 곤란했다. 맨체스터 시티의 구단주 셰이크 만수르는 아랍에미리트 왕족으로 기자들과 말조차 섞지 않는다. 또, 존 헨리 리버풀 구단주을 포함해 물망에 올랐던 다른 이들은 그 역할을 사양했다.

슈퍼리그 준비 세력 중에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가까운 정계 인사 케이티 페리어가 이끄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팬들보다 정부 인사들을 설득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팬과 선수, 코치들과 논의하거나 이들을 참여시키고 설득할 노력이 하나도 없었다. 정부를 로비하기도 전에 이들이 들고 일어나면 새로운 리그의 출범이 와해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꽤 있었다.

하지만 그런 우려는 무시됐다. 유럽 클럽 협회장으로서 공식적으로는 유럽의 모든 축구팀을 대표해야 하며 체페린 유럽 축구 연맹 회장과도 절친인 아넬리는 이중 스파이라는 부담감이 컸다. 그는 수 주간 거짓말을 해 가며 반란파의 비밀을 유지했다. 친구들과 동료들 사이에서 말이다. 게다가 월요일 아침이면 새로이 탄생할 슈퍼리그로 인해 생존 자체가 흔들릴 UEFA의 이사회와 함께 챔피언스리그 개편안을 놓고 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넬리도 슈퍼리그의 출범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첼시와 멘체스터 시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찬성하면서 창립 멤버도 모두 결정됐다. 슈퍼리그 출범 자금은 스페인의 투자자문사 키캐피탈파트너스가 제공하고 미국 금융기업 제이피모건 체이스가 지원하기로 했으니 수십억 달러의 돈이 축구계에 새로 들어올 예정이었다.

아넬리는 더 이상 부담감을 이길 수 없었다. 빨리 새로운 리그 출범 소식을 터뜨려야 했다. 글레이저 맨유 공동회장도 이제는 시작 버튼을 누를 때라고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그리하여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슈퍼리그 출범 소식이 일요일 밤 11시를 갓 넘어 세상에 나왔다. 창립 멤버 12개 팀이 각자의 웹사이트에 이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슈퍼리그가 몇몇 부자 팀들과 구단주들의 탐욕의 산물이라는 반론이 확립된 후였다.

“슈퍼리그는 밤 11:10에 이미 성공가능성이 없는 계획이 돼 버렸다. 하지만 천하에 자기 입장을 알렸으니, 그 누구도 물러설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반란에 참여했던 한 임원이 한 한 얘기다.

진흙탕이 돼 버린 내전

월요일 새벽. 이미 전선이 그어졌다. 그리고 12개 반란 팀을 지지하는 사람이 거의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금방 드러났다. 하지만 이들은 치명적인 실수를 한다. 축구팬과 대중을 설득하기 위한 대대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슈퍼리그가 비참가팀과 FIFA에 수백만 달러를 주겠다고 주장하면서 슈퍼리그가 축구 전체를 위해서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대신, 이들은 UEFA와 FIFA에 서한을 전달했다. 이미 여러 유럽 국가의 법원에 유러피안 슈퍼리그의 창단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게 하는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말이다.

한편 체페른도 전화를 붙잡고 반격을 준비했다. 뭐든 동의하는 게 별로 없던 지아니인판티노 FIFA 회장에게 지지를 호소했고, 올리버 다우덴 영국 문화체육부 장관과도 통화를 길게 했다. 다우덴은 단호했다. 영국 정부가 12개 팀이 축구를 “훔쳐가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하겠다고 했다. 곧 존슨 영국 총리까지 텔레비전에 등장해 이를 정치적 기회로 이용하며 슈퍼리그 계획을 맹비난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그 뒤를 따랐고, 윌리엄 영국 왕세자마저 “우려스럽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체페린이 월요일에 드디어 공식석상에 나타났을 때는 이미 UAFA 집행위원회 회의를 한 이후였다. 그런데 눈에 띄는 일이 있었다. 아넬리가 참석하지 않았다. 일요일 늦은 밤, 슈퍼리그 출범 소식이 처음 나오자마자 아넬리가 유럽 클럽 협회장 자리에서 사퇴한 것이다. 나머지 집행위원들은 챔피언스리그 개편안을 통과시킨 후 바로 슈퍼리그 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체페른이 기자회견을 통해 이탈 팀들을 비난했다. 최악의 비난은 맨유의 우드워드와 아넬리에게 돌아갔다. 체페른은 자신을 속인 두 사람에 대해 “비열한 놈,” “거짓말쟁이”라고 맹비난하며 그들이 챔피언스리그 개편안을 지지하는 체하며 자기를 호도한 과정을 세세히 얘기했다. “아넬리에 대한 실망이 제일 크다. 그렇게 많은 거짓말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면서 말이다.

20일 영국 런던의 스탬포드 브리지 경기장 밖에서 첼시 팬들이 첼시의 슈퍼리그 참가 계획에 항의하며 시위하고 있다. 축구 팬과 영국 정부의 강력한 반대로 슈퍼리그 참가 의사를 밝혔던 영국 6개 구단이 참가를 철회하고 FC 바르셀로나도 철회 의사를 전하면서 슈퍼리그 사무국은 "리그 출범을 재검토하겠다"라고 밝혀 사실상 출범이 어려움을 시사했다.ⓒ사진=AP/뉴시스

새로운 리그에 대한 반발이 유럽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반란에 참여한 6개 팀을 제외한 프리미어 리그의 14개 팀이 모여 그들에 대한 징계 조치를 논의했다. 반란 가담 팀인 토트넘의 다니엘 레비 회장의 부탁으로 브라이튼의 구단주 폴 바버가 레비의 유감을 전했지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더 열띤 긴급회의가 열렸다. 이탈리아 1부 리그인 세리에 A 소속 구단주들과 임원들이 유벤투스, A.C. 밀란, 인터 밀란 측 참석자들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이미 국내 축구팀들 간의 긴장이 고조된 상태였다. 안 그래도 형편이 어렵던 팀들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위기에 빠지면서 부자 팀들과 텔레비전 방영권, 그리고 사모펀드 회사 컨소시엄의 투자를 받아들일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유러피언 리그에 대한 비난을 한 몸에 받기 시작한 아넬리는 우르바노 카이로 토리노 회장으로부터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었고, 성격대로 욕으로 화답하며 유벤투스가 세리에 A에 남아있든 말든 상관없다고 했다고 한다. 카이로는 기자들에게 “이건 배신이다. 유다가 하는 짓이다”라며 격분했다.

영국 팀들, 특히 리버풀과 첼시는 다른 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팬데믹 때문에 금지됐음에도 불구하고 팬들이 축구 경기장으로 몰려와 유러피언 슈퍼리그를 비난하는 플랜카드로 벽과 입구를 도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월요일 오후 늦게 리즈 유나이티드의 엘런드 로드 경기장으로 들어가던 리버풀의 선수 버스는 수백 명의 성난 팬들에게 둘러싸였고, 리즈 선수들은 몸을 푸는 동안 FIFA를 지지한다는 티셔츠를 입었다. 리즈는 경기 후반 막바지에 1:1 동점골을 터뜨린 후 공식 트위터로 리버풀을 조롱하기까지 했다.

선수들의 입장 표명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격분한 맨유 선수단은 뉴스를 통해 소식을 듣게 된 것에 항의하고 반대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우드워드와의 면담을 요청했고, 새로운 리그에 참석하지 않는 팀의 스타 선수들도 SNS를 통해 분노를 표출했다.

월요일 저녁이 되자 리즈와의 경기를 마친 리버풀의 최고령 선수 제임스 밀너는 선수들은 이번 계획과 무관하며 “유러피안 슈퍼리그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것이 실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남성이 유러피언 슈퍼리그에 항의하는 플랜카드가 걸린 영국 리버풀의 안필드 축구 경기장을 지나가고 있다.ⓒ사진=AP/뉴시스

각 팀의 내부적인 문제도 있었다. 슈퍼리그의 출범은 팀 고위 임원들에게도 비밀에 부쳐졌다. 기본적으로 구단주들끼리의 문제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비밀이 너무 오래 유지됐다. 공식적인 발표가 있기 직전에서야 소식을 듣고, 그마저도 전 직원에게 보내는 이메일로 소식을 들은 임원이 너무 많았다. 심지어 SNS를 통해 소식을 접한 축구계 인사도 많았다. 역대 최고의 측면 수비수로도 불리는 밀란의 기술 이사 파올로 말디니와 리버풀의 스포팅 디렉터인 마이클 에드워즈도 공식 발표 전까지는 아무것도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팬들의 분노가 너무 커지자 가족의 안전을 걱정하는 관계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편 스위스에서는 체페린이 호텔에서 다음날 있을 UEFA의 연례 회의에 쓸 연설문을 고치고 또 고치고 있었다. 점점 커지는 비난, 자기 팀과 선수들이 인가되지 않은 리그에 참여하면 직면하게 될 후과가 두려워, 유러피언 슈퍼리그에 합류하기로 했던 팀들, 주로 영국 팀들이 연락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FIFA는 각 팀과 선수들에게 다른 리그에 참여하면 월드컵 같은 행사로부터 배제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이를 월요일 오전에 체페린이 재확인한 바 있었다. 하지만 체페린은 연설문의 말투를 더 부드럽게 고치기 시작했다. 체페린은 “슈퍼리그에 참여하기로 한 팀들이 후회하면서 잘못을 바로잡고 싶지만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화해의 제스처를 준비했다.

이때 체페린에게 크나큰 호재가 생겼다. 페레스 레알 마드리드 회장이 스페인의 레이트 나이트 쇼에 등장해 슈퍼리그 계획을 변호하는 (되돌아 생각해 보면 치명적이지만 당시에는) 대단히 용감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진행자로부터 거의 자유발언 기회를 얻은 페레스는 슈퍼리그가 수십억 달러를 몇몇의 부자 팀들에게 안겨주는 계획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타적’인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슈퍼리그의 부회장으로 내정된 아넬리가 불과 몇 주 전에 “아름답다”고 칭송했던 챔피언스리그의 개편안을 맹비난했다.

슈퍼리그 참여 팀 본부들에서는 임원들이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페레스가 “축구를 살리기 위한” 계획이라고 했던 슈퍼리그를 변호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나서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완전히 무너진 반란 계획

화요일 오전. 체페린이 연설을 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 등 몇몇 팀이 슈퍼리그 합류를 재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모든 방송사와 언론, 스폰서들이 슈퍼리그 계획을 반대하고, 영국은 정부 차원에서 이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협박하고 있었다.

슈퍼리그 합류 팀들 중에서 합류 취소를 생각지 않았던 팀도 FIFA의 인판티노가 자신이 속으로는 슈퍼리그를 지지한다는 소문에 대응하면서 합류를 재검토하게 됐다. 그가 “자신의 길을 가기로 결정하는 팀이 있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면서 이를 불식했기 때문이다. 그는 확고했다. “양자택일을 해라.”

그리고 체페린이 나설 차례가 왔다. 그는 이기심과 탐욕, 그리고 유럽 문화와 수 백 만에 이르는 유럽 팬들에게 축구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는 잉글랜드 구단들에게 직접 호소했다. 그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얘기했다. “신사 여러분, 여러분은 큰 실수를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욕심 때문이었다고, 다른 이들은 우월감과 오만 혹은 잉글랜드 축구 문화에 대한 무지 때문이었다고 얘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직 마음을 바꿀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든 실수는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후 몇 시간 만에 슈퍼리그 계획이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존슨 영국 총리는 리처드 마스터스 프리미어리그 사무총장과 영국의 6개 이탈 팀의 팬 대표들과 만나 이번 폭동을 진압할 “입법 폭탄”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고, 슈퍼리그를 반대하고 나서는 선수들도 점점 늘어났다.

맨유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선수인 마커스 래시포드는 트위터에 “축구는 팬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이미지를 올렸고, 리버풀 선수단은 슈퍼리그를 비난하는 메시지를 동시에 발표하기도 했다. 리버풀의 주장 조던 헨더슨은 프리미어 리그의 모든 주장들을 모아 공동 대응을 결의했다. 존경받는 맨체스터 시티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스타 팀들만의 리그라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다며 “이미 성공이 보장돼 패배할 수 없다면, 그건 스포츠가 아니”라고 반발했다. 전세가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유러피언 슈퍼리그 합류를 결정했던 팀들의 구단주들이 대부분 공식적으로 사과했음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분노는 아직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았다. 사진은 "가난한 사람들이 만들고 부자들이 훔쳐가는구나"라는 플랭카드 앞에서 셀카를 찍고 있는 남성의 모습이다.ⓒ사진=인터넷 캡쳐

화요일 저녁이 다가오자, 수백 명의 팬들이 브라이튼과의 경기 전에 첼시의 스탬포드 브리지 구장 밖에 모여 슈퍼리그 반대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이들을 차도를 점령하고 첼시 선수들의 버스를 에워쌌다. 첼시의 전설적인 골키퍼 페트르 체흐가 버스에서 내려 시위대와 대화했고, 첼시 임원들이 언론에 첼시가 슈퍼리그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정보를 흘렸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슈퍼리그에서 공식적으로 합류를 취소한다는 팀이 나왔다. 바로 맨체스터 시티였다. 슈퍼리그 간부들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상태로 큰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화요일 저녁, 불과 몇 분 사이에 아스널과 토트넘이 합류 취소를 발표했다. 맨유는 슈퍼리그의 고안자 중 하나로 글레이저 가문으로부터 사실상 전권을 위임받아 구단의 모든 정책을 관리해 온 우드워드 부회장이 연말에 맨유를 떠날 것이라고 발표했고, 곧이어 맨유가 슈퍼리그 합류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리버풀도 거의 동시에 합류 취소를 발표했다.

이로써 슈퍼리그는 탄생하기도 전에 끝나버렸다. 창단 멤버의 절반에 해당하는 잉글랜드 팀 6개를 모두 놓쳐버린 것이다. 몇 시간 후 인터 밀란이 합류 취소를 발표했고, 출범 공식 발표가 이뤄진지 48시간도 채 되지 않아 슈퍼리그는 리그 창단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비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이는 체페린이 8시간을 다시 운전해서 슬로베니아에 돌아온 후였다. 그는 새벽 2시까지 그동안 있었던 일을 곱씹으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면서 유럽의 품으로 돌아온 잉글랜드 팀들을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지난 이틀간 핸드폰에 쇄도했던 수천 개의 메시지에 응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노트북을 덮었다. 그리고 위스키 한잔을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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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연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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