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자라는 아빠] 놀림 받았다고 너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야

편견으로 이뤄진 커트 라인 안에 들기 위해 애쓸 필요가 전혀 없다

한가로운 토요일 아침. 모처럼 이발 하러 다녀오겠다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이가 "아빠, 나도 머리 자를래. 나 데리고 가!"라며 어디선가 나타납니다. 이전엔 미용실 가기 싫다고 울었던 아이에게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나:수현아, 너 미용실 가는 거 무섭다고 하지 않았어?
수현:이젠 아니야. 미용실 가면 아픈 줄 알았는데, 지난 번에 가봤더니 하나도 안 아팠거든.
그런데 어째서 미용실에 가려고 하는 거야?
어제 어떤 형아 두 명이 나한테 여자냐고 놀리더라? 머리가 길다고.

이럴 수가! 길게 찰랑거리는 바가지 머리가 놀림감이 될 줄은 몰랐네요. 아이 역시 마찬가지였겠죠. '너 여자냐'는 질문에 마음이 꽤 흔들렸나 봅니다. 그 초등학생 아이들이 정말 수현이의 성별이 궁금해서 묻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남자라면 당연히 머리가 짧아야 한다'는 자신만의 생각을 놀림의 형식으로 전했던 것이겠지요. 나는 이 사랑스러운 헤어스타일을 언제까지나 보고 싶었는데, 아이는 놀림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머리를 짧게 자르려는 모양입니다.

수현이의 장발 모습ⓒ사진 = 오창열

평소 아이와 그림책이나 애니메이션을 볼 때 성별에 대해 고정된 생각을 가지지 않도록 알려주곤 했습니다. 여전히 너무 많은 만화가 성별 고정관념을 계승하고 있었습니다. 파란색 남자 캐릭터는 도전적이거나 사고뭉치이고, 분홍색 여자 캐릭터는 정서적이고 보조와 돌봄의 역할을 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런 콘텐츠를 접했을 때 그걸 교재 삼아 아이에게 틈틈이 일러주었기에, 아이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색깔이나 성격, 역할, 겉모습이 그 사람의 성별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요.

하지만 동네 아이들이 던진 질문의 파장은 꽤 컸나 봅니다. "OO는 똥 밟았대요~ 얼레리 꼴레리~" 같은 단순한 놀림이 아닌 어떤 '기준 미달'을 가리키는 지적이었으니까요.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어른들 세계의 고정관념이 아이들에게 수직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고, 아이들 세계로 수평으로 번져 나가는 것 같아 속상했습니다.

7살이 되어 '동네 또래' 사회를 경험하기 시작한 수현이도 이제 막 그 영향권 안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려니 넘어가고 싶었지만 내 마음은 이미 편치 않았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그 초등학생들이 얄미웠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습니다.

속상했어?
속상했지.
그래서 넌 뭐라고 대답했는데?
그냥……. 엄마가 잘라줘서 이렇다고 대답했지.
수현아, 잘 들어. 놀림 받았다고 네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야. 절대.

아이가 놀림을 당해 속상했다고 하니, 내 마음도 무거워졌습니다. '엄마 때문'이라는 사실 그대로의 대답이 귀여워 아내와 나는 웃었지만, 아이 표정엔 변화가 없습니다. 타인의 지적이나 문제 제기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님에도, 그것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이라고 다를까요. 아이는 자신의 긴 머리가 문제라고 받아들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해결책으로 머리를 자르겠다는 큰 결단을 한 것이고요. 제 딴에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 또는 유일한 선택이었겠지요.

하지만 문제가 틀렸는데 올바른 답이 있을 리 가요. 문제라고 여길 필요도 없는 것을 자신의 문제라고 안아 들면, 불필요한 고민이 아이 마음속에서 자라날 것입니다. 옳지도 않은 채점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쫓기듯이 머리를 자르고 말과 행동을 다듬다 보면, 앞으로 끝도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무게 중심이 남에게 있으니, 남의 반응에 얼마나 쉽게 흔들릴까요. 아이가 남들과 다른 면이 있어 어쩌다 '미운 오리 새끼' 처럼 놀림을 받게 될 때, "왜 나는, 왜 나만 저들과 다르지?"라는 꼬리를 무는 물음의 함정에 빠지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이 상황은 '머리를 자르냐, 마느냐'의 양자택일 객관식 문제가 아니므로, 보기에 없는 주관식 답을 찾아야 합니다. 편견으로 이뤄진 커트라인 안에 들기 위해 애쓸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걸, '남자다운 머리'를 만드는 것보다 더 나은 답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편견이란 다양성과 예외적 측면을 받아들이지 못해 생기는 문제입니다. 좋은 답은 언제나 그 예외적인 것에 있고요.

이제 아이 스스로 답을 알아내도록 이끌어 줄 차례입니다. 그럴 땐 퀴즈만큼 좋은 형식이 없지요.

수현아, 퀴~즈 타임~! 이 세상엔 머리가 긴 남자가 있다? 없다?
있다!
빡빡머리인 여자가?
있다!
머리카락 길이와 성별은 상관이?
없다!
좋아! 제대로 알고 있네! (하이파이브 짝!) 정말인지 확인해볼까?

바로 스마트폰을 켰습니다. '장발 남자'를 키워드로 한 구글 이미지 검색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원빈, 박보검, 강동원의 장발을 보니 너무 멋집니다. '아~장발 어울려서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는 국내외 장발 미남들의 사진을 주의 깊게, 실로 진지하게 들여다보았습니다. 옆에서 보던 아내가 "누구나 알 만한 사람을 찾아주면 어때?" 라며 한 마디 거듭니다. 근데 그런 사람이 누가 있던가요.

아, 맞다! 지구상에서 역대급으로 멋졌던 사람도 머리가 길었어. 예수님이라고 알지?
들어봤어.
여기 좀 봐. 너보다 머리가 훨씬 길지?
맞네. 그런데 왜 사진은 없고 다 그림 뿐이야?
그땐 카메라가 없었으니까. 자, 이제 앞으로 누가 '너 여자냐'하고 놀리면 뭐라고 대답할래?
엄마 때문에 내 머리가 이렇다고 대답할 거야.

예상 밖의 대답에 나는 또 한 번 웃었습니다. 대답하는 표정을 보아하니, 아이 자신도 이 문제가 해소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쑥스러워 괜히 장난스럽게 대답한 것입니다. 아이는 이제 괜찮다고 하며 미용실에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엄마, 베개 솜 내가 넣어볼게!" 수현이 머리가 찰랑찰랑하다ⓒ사진 = 오창열

그날의 대화를 며칠 간 잊고 지냈는데, 어느 날 저녁 식탁 화제로 다시 올라왔습니다. 아이는 낮에 있었던 일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꺼냈습니다.

아빠, 아빠. 그때 그 아이들이 오늘도 나를 놀리더라?
그 아이들?
나한테 여자냐고 했던 아이들 말이야.
오늘은 뭐라고 했는데?
"너는 남자인데 왜 이렇게 머리가 길어? 도대체 여자야 남자야?"라고 또 그러더라.
아잇! 그래서 뭐라고 말했어?
"너희들 세상을 잘 모르는구나? 세상에 머리 긴 남자가 얼마나 많은데. 예수님 모르니? 너희 그러다가 엉뚱한 사람으로 자란다?"라고 했지.

디스 랩을 쏟아내는 래퍼 같은 아이의 모습이 상상되었습니다. '엉뚱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게 너무 웃겼습니다. "엄마 때문에 머리가 이렇다"고 대답할 거라더니,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 말을 하고 왔군요. 마음 한구석이 통쾌했습니다. 그 초등학생들에 대한 얄미운 마음이 쑤우욱~ 내려갔습니다. 한편으론 그 마음이 여태 있었다는 것에 슬쩍 찔리기도 했지만요.

그랬더니?
그랬더니 아이들이 아무 말 안 하고 그냥 가던데? 그래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게? 맞혀봐.
글쎄, 무슨 생각을 했어?
'아이들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하고 용서의 마음을 가졌어.
(양손 따봉) 우와~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했지?
아빠, 나한테 '용서의 별' 줘야지? 두 명을 용서했으니까 별 두 개 줘야지?

심지어 용서까지 했다니 이렇게 기특할 수가 있나요. 밥 먹다 말고 '용서의 별'을 요란하게 던져줍니다. 휴……. 유아기 끝자락에 선 7살의 삶이란 6살 때 보다 훨씬 입체적이어서, 이번처럼 아무 짓 하지 않아도 놀림 받아 속상한 일이 생기는군요. 어쩌면 앞으로 아무도 공격하지 않더라도 상처받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생각하는 힘을 길러줄 때인가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엔 나와 비슷한 사람도, 다른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그건 잘못도, 문제도 아니다'하는 생각의 씨앗을 아이 마음속 깊이 심어주려고 합니다. '다름'을 이유로 수현이가 놀림 받지도, 누군가를 놀리지도 않기를 바라면서요. 남들과의 차이점을 수용하고 그저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 아이 스스로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고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되겠지요.

저녁 식사를 마칠 무렵, 나는 상황이 끝난 마당에 뒷북을 쳤습니다. 유명한 장발 남자들이 뒤늦게 생각 나 아이에게 신나게 알려주었습니다.

아, 맞다! 수현아! 옛날 조선 시대엔 모두 다 머리가 길었어. 돈에 그려진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 대왕도 말이야! 필요하면 나중에 이것도 꼭 써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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