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환욱의 뚝딱뚝딱 학교] 쉬라고 해도 쉬지 않는 아이들

“저희가 준비한 목공교육 과정을 찾아주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앉아 계신 의자와 책상, 짚라인, 공방 안의 모든 것, 그리고 공방 자체도 지난 과정을 통해 아이들과 함께 만든 것들입니다. 우리는 격하된 손의 쓰임을 적극 격려하기 위해 마을에서 목공 중심의 노작교육을 시작했습니다. 18년도에 선생님들을 모아 목공연수를 했고 19년부터는 그 초점을 아이들에게 두기로 했습니다. 다행스럽게 올해도 문화재단의 사업에 선정이 되어 이렇게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놀이터를 짓고 놀거리를 만들며 자신만의 작은 집도 건축해보는 등 흥미롭고 자유로운 과정에서 참가자들이 손을 부지런히 사용하길 바랍니다. 그것이 자립에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나누어드린 교육계획은 가변적입니다. 항상 참가자들의 반응과 의사를 살필 것이고 그에 따라 변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과정을 함께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보호자께서도 자유롭게 참여해보세요.”

이렇게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이 어느덧 3년째입니다. 사람들은 매번 귀한 토요일을 우리와 함께했습니다. 익숙한 곳을 떠나 생소한 행위를 하고 맛있는 간식이 있으니 색다른 쉼을 찾아서 온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생소한 행위는 목공 중심의 노작교육이고 이는 잔디 마당이 펼쳐진 시골의 소박한 공간에서 이뤄집니다. 꽤 많은 예산이 필요한 과정이기에 지역의 문화재단에서 심사하는 문화예술교육 지원 사업에 도전을 했고, 감사하게도 올해도 선정이 되었습니다. 초등 5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두 20명 정도가 함께하죠. 노작교육은 말 그대로 일을 하거나 무언가 만드는 육체적 작업을 통해 깨우치는 교육활동입니다. 저는 이를 손과 머리, 마음이 함께 동작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토요목공교실, 짚라인 하우스를 만드는 중인 학생들ⓒ필자 제공
토요목공교실, 완성된 놀이터ⓒ필자 제공

참가했던 아이들은 그간 다양한 것들을 만들었습니다. 망치, 수저, 탁자, 자동차, 킥보드, 트리 하우스, 작은 집, 놀이터까지 말이죠. 그러면서 확인하게 된 아주 기본적인 사실은 흥미로운 주제에 주도성이 주어질 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몰입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좀 쉬자고 해도 아이들은 어느새 나가서 작업을 이어가곤 했습니다. 놀이터 만들기를 예로 들자면, 어른들이 제공한 기둥에 살을 붙이고 미끄럼틀이나 흔들다리를 만드는 것이 모두 그들의 마음대로였으니 신나는 일이었겠죠. 그리고 그런 작업에는 수학도, 도덕도, 국어도, 실과도, 명상도, 미술도 들어갑니다. 계산이 필요하고 자신만이 아닌 여러 주체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다양한 공구들을 사용하고 잡념이 사라진 채 미적인 것을 추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정신과 몸이 서로 얽혀 유기적 역동성을 가지는 시간이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 과정은 협업이 기반입니다.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강사들도, 아이들도 협업을 하니 모두가 발전합니다.

원하는 학교에 강사님들이 찾아가서 목공교육을 제공하는 일도 했습니다. 작년에는 8개 학교를 찾아갔는데, 이는 나름 학교에 노작교육의 씨앗을 뿌리는 작업이었습니다. 애초에 ‘12년이나 학교를 다녔는데 할 줄 아는 것이 문제 풀이뿐이다.’라는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로 시작한 일이었죠. 우리 자신 또한 그런 시절을 지나왔으며, 할 줄 아는 것이 없으니 의존적이고 소비적인 삶을 살게 되었고 이는 결국 기후위기의 한 축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비판만 하지 말고 마을에서 당장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실천하자며 모인 사람들은 교육협동조합을 꾸렸고, 목공이라는 노작은 생활기술을 익히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영혼의 충만감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여 토요일 목공교실과 학교로 찾아가는 목공교실을 운영했습니다. 몇 학교는 이후 자체적인 공방도 갖추기 시작했죠.

손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솜씨와 유연함을 갖게 합니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손으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그들의 지문은 스마트폰으로 인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손으로 할 수 있는 것들도 사라져가면서 손의 중요성이 무척이나 격하되었습니다. 손을 사용하면서 능숙함을 경험하고 의지의 싹을 심는다고 하는데 말이죠. 누군가가 어른의 것을 어린 아이에게 쥐어주고 방치하는 오류를 범했는데 이것이 너무 당연한 유행이 되었고, 이를 해결하려 하는 흐름은 원활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정말 아이들은 자연에서 더욱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로부터도 멀어졌습니다. 무언가를 만들 때 사회 전체가 함께 작용하는데 그런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개인주의는 늘어났을 수 있죠.

토요목공교실, 개인집을 짓는 모습ⓒ필자 제공
학교로 찾아가는 목공교실, 한 초등학교에서도 짚라인을 원했어요ⓒ필자 제공

어른들의 역할은 ‘아이들의 동심을 최대한 오래도록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심이 있다면 자연스레 호기심이 넘치고 창조적이며 그 자체로 예술가입니다. 그러면 천국에 있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아이들의 손에 쥐어진 네모지고 현란한 물체는 귀한 동심을 파괴합니다. 천사는 날개를 잃습니다.

노작교육 과정의 끝자락에 아이들은 이런 말들을 남기곤 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움직이는 걸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더 많이 수업하면 좋겠습니다.’ ‘과정 안에 개선이 들어있습니다.’ ‘커서 제가 살 집을 스스로 지을 것입니다.’

저희가 하는 일에 대한 자화자찬이 아니라, 실은 아이들 또한 내면의 예술성을 발휘할 수 있는 순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손의 능숙함을, 자립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본래 예술가지 중독자가 아니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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