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원준의 경제비평] 기술 전환의 과도기, 노동의 대안은?

문재인 정부 고용 정책 4년을 돌아본다

필자가 사는 대구에서는 롯데마트 칠성점이 작년 연말에 문을 닫았다. 홈플러스도 칠성점에 이어 스타디움점을 폐점한다. 비대면 소비의 확산으로 대형마트들이 인력 감축과 매장 폐쇄, 부동산 매각에 나서면서 마트 노동자들을 옥죄는 구조조정의 칼끝이 무섭다. 최저임금만 받고 힘겹게 일해 온 ‘필수노동자’들은 현재 일터에서 멀리 떨어진 문경으로, 영주로 강제 전환 배치되고 있다. 최근에는 경주의 금속노조 사업장인 자동차 부품 업체들에서도 구조조정을 둘러싼 갈등이 터져 나왔다. 결국 특별단체교섭 등을 통해 상여금 유보, 전환 배치, 순환휴직 등이 합의되었다. 어디 대구경북뿐이겠는가. 코로나 경제위기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기술 전환이 겹치면서 구조조정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4년 일자리 정책을 되돌아보며, 다가오는 고용위기에 한국경제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점검할 때이다.

실적이 약속에 못 미치는 정부 공공일자리 확충 계획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국가적 과제이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 가운데 고용 유연화 기조를 벗어나 공공일자리 확충을 국정과제로 제시한 첫 정부였다. 그것만으로도 큰 진전이긴 했다. 하지만 정부의 공공일자리 정책에는 아쉬운 점도 있었다. 정부는 소방, 생활안전, 경찰 등 현장 민생 공무원을 대폭 충원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2020년까지 실제 충원 규모는 전체 임기 동안 약속한 수준의 절반을 겨우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서비스 분야 공공일자리 확충 계획도 진전이 미약하다. 사회서비스원이 사실상 표류하면서 돌봄 일자리는 여전히 민간 위탁에 의존하고 있다. 필수노동자인 돌봄 노동자들의 진짜 사장은 정부일 텐데도, 그들이 마주하는 열악한 노동조건은 참 바뀌기 어렵다. 당장 정부부터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제대로 지고 있는지 묻게 된다. 그런 가운데 40%까지 늘리겠다던 국공립 보육시설 이용 아동의 비율은 2017년 14%에서 2019년 17%로 소폭 상승에 그쳤다. 요양보호사는 아직도 야간에 혼자 10명의 입소자를 돌본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공공부문 일자리 통계에 따르면, 2015년에 세계 각국 공공일자리 비중이 OECD 평균 18%를 넘었고 미국조차 15%를 넘었던 것과 비교해 현 정부 들어 한국의 공공일자리 비중은 2017년 9%에서 2019년 9.5%로 답보 상태에 가깝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대한민국 일자리 상황판을 보며 추진상황을 점검하고 있다.ⓒ뉴시스

독일의 아우토 5000과 광주형 일자리

문재인 정부는 상생형 지역 일자리 계획으로 2019년부터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전국적 확산을 추진해 왔다. 원래 광주형 일자리는 독일의 ‘아우토 5000’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아 적정임금, 적정 노동시간, 노사책임경영, 원하청 관계 개선이라는 4대 의제에 대한 지역사회의 합의를 기초로 제안되었다. 하지만 이후 현대기아차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이 4대 의제가 희석되었다는 시각이 제기되었다. 대기업 자본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저임금을 용인했고 노조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양보했다는 비판이었다. 올해부터 경차 생산을 개시할 이 광주형 일자리는 과연 정부의 약속대로 지역별 노사정 합의에 기초한 포용적이고 선진적인 일자리가 될 수 있을까?

2001년 8월에 개시된 독일의 아우토 5000은 폭스바겐이 자회사를 설립해 5천 명의 실업자를 월 5천 마르크의 단일임금에 고용하려는 계획이었다.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동유럽 나라들로 자동차 생산기지가 옮겨가면서 폭스바겐 본사가 위치한 니더작센 주의 고용위기가 심각해진 상황이 그 배경이었다. 광주형 일자리에서처럼 아우토 5000에서도 사용자가 내건 요구사항은 기존 노조와의 단체협약에 비해 낮은 임금과 더 유연한 노동조건이었다. 이에 대해 노조는 지역 내 실업자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별도의 단체협약 체결에 동의했다. 자회사의 임금 수준은 모회사의 80%로 책정되었다. 이는 니더작센 주의 금속노조 협약 임금 수준이었다.

한편 폭스바겐의 일부 젊은 경영진의 주도로 자회사에서는 혁신을 위한 실험이 집중 시도되었다. 미숙련 인력을 위해 작업 과정에 직무교육을 결합시키는 학습공장 개념이 도입되었다. 현장 중심 직무교육을 위해 주당 노동시간을 늘렸다. 노동시간과 휴식시간의 경계를 신축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 임금’ 제도로 생산량 책임을 강화했다. 모회사 노조가 채용, 노동과정, 성과급 체계까지 공동결정자로서 참여하게 했다. 나중에는 자회사 노동자들이 금속노조에 대거 가입하면서 모회사 노조의 결정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갔다. 관리계층 축소로 조직을 수평적으로 운영하고 팀제 작업방식을 통해 노동자들이 작업 분배나 숙련 계획 등을 자율적으로 관리하도록 하는 혁신도 있었다. 정부도, 채용이 결정된 신규 취업자에게 3개월간 지역고용센터 직무교육을 제공하는 등의 지원 역할을 맡았다. 오늘 광주형 일자리는 산업 혁신에 대한 어떤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광주형 일자리가 성공하려면?

그런데 알려진 것처럼 정부의 복지 지원을 별도로 하면 사용자가 부담할 광주형 일자리의 협약임금은 공장 가동이 시작되는 2021년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는 아우토 5000과는 달리, 적용할 지역 산별협약이 없는 광주형 일자리의 경우 임금이 하향 조정되는 객관적인 한계선이 최저임금 기준 외에는 없는 탓일지도 모른다.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5년 무분규 선언’과 같이 노동권을 제한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짚어볼 만하다. 폭스바겐 노조의 참여 속에 모든 결정이 이루어진 아우토 5000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광주형 일자리라는 것이, 현대기아차의 또 하나의 외주 위탁 공장으로 무분규 저임금 사업장을 만드는 결과가 되지는 않을지 우려하게 된다.

올해까지 총 16개 지역으로 확산될 것이 유력한 이 지역 일자리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지금 예단하기는 이르다. 다만 아우토 5000이 광주형 일자리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상생형 지역 일자리 사업이 그 이름에 걸맞게 성공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교섭 대표로서 조직 노동이 의사결정에서 배제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노조로서도 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를 막고 노조 바깥의 미조직 노동과 연대하기 위해 관련 산별연맹이나 지회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현대기아차의 신규 투자를 지자체마다 유치하려고 나서는 과정이 자칫 중복과잉투자와 함께 저임금 경쟁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지역별 일자리 사업이라도 총연맹이 중앙 차원에서 개입해 사업 계획과 노동조건을 전체적으로 조율하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이다.

민중당 김종훈 의원이 6일 국회 정론관에서 금속노조 현대·기아자동차지부와 함께 ‘광주형 일자리’ 일방적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기술 전환이 몰고 올 노동의 위기에 대비해야

디지털과 친환경으로의 기술 전환은 부분적으로는 이미 우리 사회 일자리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 영향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은 이와 관련해 고용안전망 강화를 해법으로 제시하지만 한계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조직 노동의 참여를 이끌어낼 의지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 전환 과정에서 신규 일자리는 주로 비정규직과 불안정 플랫폼 일자리 중심으로 창출되고 있다. 이는 일자리의 질 저하와 양극화 심화로 이어지기 쉽다. 기술 전환은 대량의 일자리 파괴 위험을 내포하기도 한다. 반면에 우리 사회에서 노동시장의 조절 기능을 담당할 주체들에게 주어지는 권한과 역할은 지나칠 정도로 비대칭적이다. 사용자에게 편향된 논의 구조는 사회적 대화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일자리 위기에 대한 종합적인 대응은 점점 더 어려운 과제가 되고 만다. 그 빈틈이 결국 대기업 자본의 영향력으로 메워질 것이라는 점에서 일자리의 위기는 또한 노동의 정치적 위기이기도 하다.

기술 전환은 공동체 구성원 상당수에게 직간접적으로 폭넓은 영향을 미친다. 독일에서 인더스트리 4.0이나 노동 4.0이 이야기된 맥락도 그런 것이었다. 정부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두고 있고 ‘BIG3’라는 이름으로 미래차를 포함한 신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기술 전환의 사회적 영향을 검토하고 서로 상충하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사회적 협력을 끌어내는 역할에 충분히 적극적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대기업의 사업 계획을 홍보하는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으려는 것도 같다. 독일의 ‘국가 전기차 플랫폼’처럼 금속노조가 제도적으로 전기차 정책의 방향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틀이 보장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인 노동자들이 기술 전환을 둘러싼 의사결정에서 어떤 이유로든 빠져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자연스러울 수 있는가?

기술 전환은 노동에 위협 요인이 될 전망이다. 다시 노동에 적지 않은 희생을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 전기차로의 전환 과정에서는 자동화가 더 용이해지고 부품을 부분장치로 결합하는 모듈화가 촉진됨으로써 조립 공정이 단순해지기 쉽다. 이는 인력 소요를 줄인다. 현대차의 경우 2030년까지 인원의 60%를 줄일 수 있다는 진단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완성차 업체의 정규직 일자리가 무노조 모듈 공장의 비정규직 일자리로 대체되어갈 것이다. 테슬라의 상하이 공장과 같은 하청 노동자들의 ‘스웻샵’(열악한 노동환경의 저임금 작업장)이 미래차 산업의 전형적인 일자리가 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노동의 지위는 지금보다 얼마든지 후퇴할 수 있다.

독일 폭스바겐 자동차 공장의 모습ⓒ뉴시스/AP

노동조합의 역할

이와 관련해 독일 금속노조는 국가 산업정책에 직접 개입하는 ‘공정한 변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전략의 성패는, 산업 재편 과정에서 총고용을 지켜내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금속노조는 세 가지를 주장한다. 첫 번째 주장은, 노동자들에 대한 직무 전환 교육이 대폭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주장은 자국 내 생산기지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속노조는 이를 위해 노조의 공동결정 참여 확대를 요구한다. 마지막 주장은 복지안전망 확충이다. 사회적으로 조율되고 통제되는 기술 전환은 노동과정을 보다 인간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기술 변화가 노동에 기회 요인도 함께 제공한다고 볼 일이다. 다만 이는 노조에게는 전통적인 조직 과제에 더해 새로운 임무를 부과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술 전환이 개별 사업장부터 시작해 국민경제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조직 노동에게 새롭고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조직 노동은 노조가 기술 전환의 과정에서 어떤 참여권한과 결정권을 확보할 수 있으며 작업의 새로운 조직에 있어 노조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노조는 사용자 측이 주도하는 기술 전환에 대응해 제품 라인업과 공정의 혁신 대안들이 노동과정에 미칠 영향을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사용자로 하여금 보다 노동 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혁신 대안을 선택하도록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노동의 대안은 ①노동시간 단축, ② 직무 전환 교육 강화,
③ 정부 고용유지 지원의 세 가지를 포함해야

필자는 노사 간 힘의 불균형이 심하고 자본이 강제하는 일방적인 구조조정이 일상이 된 한국 현실에서 과연 노동이 참여하는 조율된 고용조정을 꿈꿀 수는 있을지 한편으로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우리도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조 운동은 광주형 일자리가 아닌 새로운 대안 모델이 필요하다. 결국 기술 전환의 과도기에 고용 충격을 관리하려면, 기존 내연기관 제품 생산에서 분리되는 노동자들을 새로운 공정에 전환 배치하기 위해 필수적인 조치들에 집중해야 한다. 방법은 새로울 것이 없다. 그것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그리고 직무 전환을 위한 재교육이다. 정부와 사용자는 새로운 기술을 현장에서 운용할 노동자들의 인적 자원에 투자해야 한다. 노동시간과 함께 줄어드는 임금은 정부가 고용유지 지원으로 보전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술 전환이 공정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기술 전환의 과정에서 유효수요가 위축되어 경제가 위기에 봉착하는 부작용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금속노조가 주장하는 ‘전환을 위한 단축노동임금’의 의미 역시 그렇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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