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이건희 일가의 사회환원이 대단하다는 헛소리에 대하여

지난주 삼성이 고 이건희 회장의 유산 상속세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발표했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심각하게 절망했다. 언론은 온통 삼성 일가를 칭송하기 바빴고, 그 칭송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나는 정말 궁금하다. 도대체 이 나라 언론들은 삼성으로부터 뭘 받아 드셨기에 이토록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삼성을 칭송한단 말인가?

많은 언론사들이 통신사인 연합뉴스의 1보를 참고한다. 그런데 삼성의 발표 직후 연합뉴스의 기사 제목은 “이건희 13년 전 사재출연 약속 지켰다…1조 원 ‘의료공헌’”이었다. 나는 이 제목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는데, 다음날 수많은 언론들이 “13년 만에 약속을 지켰다”고 떠드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그래서 웃음기 빼고 진지하게 살펴보려고 한다. 과연 이건희는 13년 전 약속을 지켰는가? 조금만 이성을 갖고 바라보면 이 이야기가 얼마나 심각한 헛소리인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그 돈은 범죄수익이다

삼성은 이건희의 가족들이 12조 원의 상속세를 내고, 1조 원 정도를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첫째, 이 사태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그 기부한다는 돈 1조 원의 기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기부 이야기가 언제, 어떻게, 왜 나왔을까? 2008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삼성 비자금 사태라는 것이 있었다. 이건희는 당시 비리 백화점이라 불릴 만큼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는데 그 중 하나가 비자금이었다.

당시 조준웅 특별검사팀의 발표에 따르면 이건희는 무려 4조 5,000억 원대의 엄청난 비자금을 957개의 계좌에 분산해 관리했다. 즉 이 돈은 근본적으로 범죄를 저질러 모은 범죄수익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조준웅 특검이 이건희를 풀어주자 이건희는 여론 악화가 두려웠는지 황급히 이 비자금의 사회환원을 약속했다. 이번에 기부하겠다고 한 1조 원은 바로 이때 이건희가 한 이 약속을 실천한 것이다. 즉 기부했다는 돈 자체가 범죄수익이었다는 이야기다.

둘째, 연합뉴스의 제목처럼 과연 이건희가 약속을 지켰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런데 13년 전에 사회환원을 약속한 당사자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면 세상을 떠난 사람이 무슨 수로 약속을 지켰단 말인가? 이건희가 “2008년에 내가 약속한 사회환원 꼭 지켜라”라고 유서라도 남겼단 말인가?

고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자료사진)ⓒ제공 : 뉴시스

이건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지킬 요량이었으면 지금보다 훨씬 오래 전에 지켰어야 했다. 그 13년 동안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그 약속 언제 지킬 겁니까?”라고 물었는데 그때마다 삼성과 이건희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런데 세상을 떠난 고인이 약속을 지켰다고 난리다. 죽은 제갈공명이 살아있는 사마중달을 이긴다, 뭐 이런 취지인가?

셋째, 액수를 잘 봐야 한다. 2008년 특검이 적발한 이건희의 비자금은 무려 4조 5,000억 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한 돈은 1조 원이다. 당시 이건희가 ‘누락된 세금 등을 모두 납부한 후 남는 돈’을 사회환원 하겠다고 했으니 삼성은 아마 3조 5,000억 원을 세금 등으로 썼다고 해명할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웃긴 이야기냐면, 차명계좌는 당연히 금융실명제법 위반이다. 실명제법 위반에는 과징금 50%가 따른다. 즉 비자금 4조 5,000억 중 절반은 무조건 과징금으로 걷어야 했던 돈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번에 기부한 액수(1조 원)는 원래 내야 했던 2조 2,250억 원가량의 과징금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벌금 낼 돈을 기부했다는 이야기인데, 심지어 기부액이 벌금의 반도 안 된다. 이게 칭송받을 일이냐? 욕을 바가지로 먹을 일이지.

넷째, 언론이 “13년 만에 약속을 지켰다”고 감격해하던데, 13년이라는 긴 세월이 “헤어진 어머니를 13년 만에 만났어요” 뭐 이런 감동적 기간이 아니지 않나? 범죄수익을 환원한다고 했으면 빨리 하는 게 정상이지 뭘 하다가 13년을 질질 끌었는지 나는 이해가 안 된다.

그런데 이 의아함을 해소해 줄 작은 힌트가 몇 개 있다. 2016년 이건희의 ‘성매매 의심 동영상’ 사건이 유포됐을 때, 성매매가 이뤄진 곳으로 의심받았던 장소가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한 빌라였다. 이곳 전세자금은 13억 원이었고 전세 계약자는 삼성SDS 김인 사장 명의로 돼 있었다. 이때 삼성에 따르면 이 전세계약금 13억 원이 바로 2008년 적발된 비자금 계좌에서 나온 돈이었다. 실로 황당하지 않은가?

또 한 가지, 2017년 경찰이 이건희 일가의 자택 인테리어 공사에 회사 자금이 투입된 혐의를 잡고 한남동 이건희 자택을 압수수색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삼성 관계자가 한겨레신문에 밝힌 바에 따르면 “공사 대금으로 준 수표는 이전에 특검으로 밝혀진 계좌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단다.

무슨 말이냐 하면, 13년 동안 그 비자금 묵혀 놓으면서 그 돈으로 성매매 장소 전세금 내고 자기 집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이건희가 정말 이 비자금을 사회에 공헌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인가? 그런 사람이 그 돈을 중간에 빼서 성매매 장소 전세금을 내고 자기 집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게 말이 되냔 말이다.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언론이 퍼뜨리는 더 황당한 헛소리들

이뿐이 아니다. 언론이 퍼뜨리는 황당한 헛소리 중 압권은 이건희가 재산의 60%를 사회에 환원했고, 이 규모가 세계 최대라는 것이다. 기사 제목들을 보라. 매일경제는 ‘이건희 재산 60% 국민에게…의료·예술 통큰 기부’, 한국경제는 ‘15.5조 통큰 나눔…故 이건희 진짜 기업가정신 남겼다’, 뉴시스는 ‘이건희 유산 60% 사회로…“통큰 기부, 역사에 남을 모범”’, 세계일보는 ‘초일류 경영 발맞춰 기부도 세계 최고…이건희 회장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등을 제목으로 뽑았다.

이건 마치 예수님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 천 명을 먹이시고도 음식이 남았다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 같은 거다. 모르는 사람이 이 기사들 제목을 보면 이건희가 재산의 60%, 15.5조 원을 기부한 줄 알겠지만 그 중 12조 원은 상속세를 낸 것이다. 세금이 기부냐? 세금이 사회환원이냐고? 기부액에 세금이 더해지는 놀라운 계산법으로 이건희는 단번에 오병이어에 버금가는 기적을 행한 ‘세계적인 기부자’가 됐다. 진짜 할렐루야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역대 최고 규모의 상속세 납부액’ 운운도 웃긴 이야기다. 12조 원의 상속세가 세계적으로 큰 규모의 상속세인 것은 맞다. 하지만 서양 사회에서 이건희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모은 부자들은 그 돈을 그렇게 많이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았다. 그러니 상속세나 증여세가 그렇게 많이 안 나온 것이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은 이미 재산 중 40조 원이 넘는 돈을 기부했다. 이 돈은 순수한 기부금 총액으로 한국 언론들의 표현처럼 ‘상속세(혹은 증여세) 포함 40조 원’이 절대 아니다. 게이츠는 세 자녀에게 각각 1,000만 달러씩만 물려주겠다고 공언했다.

주식으로 세계 최대 부자 중 한 명에 오른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도 이미 40조 원이 넘는 돈을 기부했다. 20세기 초반 석유왕으로 불렸던 록펠러는 요즘 돈으로 150조 원을 기부했다. “부자로 죽는 것은 수치”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철강왕 카네기도 재산의 90%를 기부했다.

이건희나 한국의 재벌들에게 “서양 부자들처럼 기부를 하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 기부는 자발적인 마음으로 하는 것이지, 누가 강요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기부를 하지 않는다고 그들을 나쁜 사람으로 몰 생각도 전혀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서양 부자들의 저런 사례를 모를 리가 없는 기자들이 이건희의 상속세를 ‘역사상 세계 최대’라고 떠드는 그 심보가 가증스럽다는 거다. 록펠러나 카네기, 버핏이나 게이츠가 작심하고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줬다면 이건희보다 상속세 혹은 증여세를 덜 냈겠나?

도대체 삼성이 뭔데, 이쪽 이야기만 나오면 한국 언론들이 죄다 이성을 잃는지 나는 당최 이해를 못 하겠다. 그리고 반복되는 이런 몰이성적 보도야말로 삼성이 아직도 돈의 힘으로 언론과 여론을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시민사회가 이 추악한 삼성-언론 커넥션에 대항해 결연히 싸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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