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옥의 수북통신] 푸르고 짱짱한 멜랑꼴리

아아, 오늘 군민회관에서 코로나백신 예방주사를 맞을 분들은 마을 회관 앞으로 나와서 대절버스에 탑승해주시기 바랍니다. 75세 이상 되시는 분들은 주민등록증을 필히 지참하시고... 이장의 방송이다. 75세가 안 되어서 접종대상자는 아니지만 왠지 백신접종 현장에 가보고 싶어서 한나도 나갔다. 과연 마을회관 앞에 빨간 대형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고 한국 노인들 특유의 붉고 푸른 원색 나들이옷을 입은 노인들이 실로 오랜만에 집을 나서 버스에 오르고 있다. 기사양반, 그냥 이대로 아조 먼디로다 우릴 좀 델다주쇼. 오도 못허고 가도 못허는 시상이 먼 옳은 시상이다요. 가벼운 농담 몇마디가 오갔지만, 이장의 주의에 금방 마스크 속의 입을 꼭 다문다. 기사가 틀어놓은 텔레비전 화면에서 춤추는 가수는 혼자 즐겁다.

군민회관 마당에 각 면에서 온 노인들을 싣고 온 대형 버스가 가득하다. 노인들은 주민증, 문진표, 번호표를 들고 대기하다가 접종을 하고 30분을 기다렸다가 나와 일점 오차도 없이, 일인의 낙오자도 없이, 왔던 그대로 버스에 올라 귀가해야 한다. 대기하던 도중에 동의서를 쓰지 않고 나온 한 할머니한테 책임자급 사람이 인정사정없이 ‘할머니 빠꾸, 빠꾸’. 할머니가 어린애처럼 운다. 동이서가 뭐다요, 그것이 머시여어. 젊은 양반, 내가 다리도 아프고 갱신을 못해, 지발적신, 주사 한방만 놔주씨요. 이것은 그런 주사가 아니란 말이요, 이것은 백씬이여어, 백씨인. 나라가 놔주는 주사여어. 우리 맘대로 헐 수가 없는 주사란 말이요오. 아흔 넘은 할머니는 도대체 이 판국을 이해할 수 없어 자꾸만 운다. 누집 자식인지 인정이라곤 씨알만큼도 없느니라고, 에라이, 아이고오... 할머니의 울음이 군민회관 마당으로 울려 퍼지는 한편으로 주민증을 안 가져온 할머니는 접종을 반대하는 아들 몰래 나오느라고 그랬다며 사정사정. 푸른 비닐 방호복 속의 간호사가 할머니 아들에게 전화. 엄마, 내가 아들한테 전화해서 물어볼게, 주민증 엇따가 뒀어? 이잉, 그것이 말여여, 내가 어따가 둔중을 몰러. 쌀독아지 옆에 괘짝 안에 뻘건 주먼치가 있는디 하매도 거다 뒀을랑가? 아들 좀 바까봐바. 아이, 쌀독아지 옆에.....엄마, 어디 가셨어? 내가 그렇게도 나다니지 말랑게, 기언씨 나가부렀네이. 나 여기 주사 맞을라고... 머시여? 내가 그렇게도 그 주사 맞지 마시라고 했건만, 먼 존거라고이. 할머니와 아들 간에 어쩌고 저쩌고 옥신각신. 결국은 마을 이장이 신원을 보증하는 절차를 밟아 접종을 받는데 성공하였다.

예방접종센터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는 울릉군 노인ⓒ뉴시스

오랜만에 차려입은 나들이옷이 무색하게 나들이는 금세 끝났다. 하늘은 푸르고 나뭇잎의 때깔은 가장 싱싱한 색으로 남실거리고 햇빛은 찰랑거리는데 마스크를 쓰고 말도 크게 나누지 못하고 주사 맞고 각자 집으로, 들로 흩어지는 노인들의 굽은 등이 적막하다. 코로나 오기 전 노인들은 해마다 봄철에 꽃놀이를 했다. 한나가 기억하는 아주 오래전에는 화전놀이를 했다. 본격적인 농사철이 오기 직전에 어느 산천경개 좋은 곳에 자리잡고 화전을 부쳐 먹으며 노래하고 춤추고 놀았다. 오늘 백신을 맞은 ‘75세 이상’은 거개가 화전놀이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새마을바람이 불면서 화전놀이는 관광버스 타고 여행을 가는 것으로 변했다. 봄이면 꽃놀이, 가을이면 단풍놀이. 한나가 살고 있는 동네 노인들 중 구십 이상이 열두명. 75세에서 100세까지 평균을 내보면 80 중반. 딱 한나의 부모님 나이. 1935년생인 한나 아버지는 1970년에 서른여섯. 1939년생인 어머니는 서른둘. 한나는 여덟살. 한나는 30대의 팔팔한 청춘이었던 아버지 어머니를 기억한다. 서른여섯의 아버지가 우리도 이제부터 문화생활을 하자고 철근을 구부려 세면대를 만들었다. 어느 여름날 철근 세면대에 세수 대야를 앉히고 세수를 한 아버지가 목에 수건을 두르고 밥상이 차려진 평상에 앉았을 때 나던 다이알 비누 냄새. 돼지털같이 뻣뻣할 정도로 숱 많은 머리칼에서 뚝뚝 떨어지던 물방울. 문화생활을 해야 하므로 광목 앞치마가 아니라 ‘에이프런’을 착용하고 머리에 수건이 아니라 스카프를 쓴 어머니의 붉은 뺨. 붉은 뺨에 아른거리는 감나무이파리 무늬. 평상 위로 똑또구르 떨어져 내리던 풋감 같은 젊은 어머니의 미소. 그리고 오늘 한나는 코로나 백신주사를 맞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대절버스를 탄 노인들을 본다. 1970년에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던 그 팔팔했던 청춘들이, 그 싱싱한 젊음들이 이제 검버섯 가득한 노인이 되어 짧은 나들이의 아쉬움을 못 견디고 조심조심 나누는 대화.

아이고 늙으면 죽어야 혀. 그래야 자식들이 편해.
누가 그것을 몰라? 알아도 안 죽는걸 어떡혀.

숨죽여 쿡쿡쿡들 웃는다. 20년쯤 후면 나도 저렇게 늙겠지. 지금 저렇게 웃고 있는 노인들중 상당수가 저세상에 가 있겠지. 지금 오십대인 내가 팔십이 가까운 70대 후반이 되고 지금 30대 중반인 내 아이들이 50대 중반이 되고... 그리고 저 노인들 중 상당수는.... 하늘은 푸르고 나무들은 점점 짙어지는 싱싱한 녹색으로 남실거리고 햇빛은 찰랑거리는데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안나는 역병균은 저 푸른 하늘 아래 떠돌고, 저 찬란한 햇빛 따위 나하고는 아무 상관없다는 태도로 창궐하고... 이것이 생명인지, 죽음인지, 생명이 죽음이고 죽음이 생명인가. 아닐 것이다. 결단코 아닐 것이다. 죽음은 죽음이고 생명은 생명일 테다.

만개한 벚꽃이 30일 서울 여의도 윤중로 일대에 피어 있다. 2021.03.30ⓒ정의철 기자

먹고 살 걱정이야 늘 상시적이긴 했지만 내일 먹을 것만 있어도 우선은 살아있어서 누릴 수 있는 ‘멋’을 구가하는 여유를 아주 잃지는 않았던 어머니, 아버지 세대. 풀빵으로 하루를 지탱했던 전태일이 그다지도 고달픈 생의 어느 한 시점에서는 머리에 포마드 바르고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고 독사진 찍기를 즐겼다지. 아버지는 어땠던가. 달이 휘영청 밝은 가을밤이면 달빛의 흥을 못 견디고 뒷동산 소나무 아래서 퉁소를 불었지. 당장 내일 끼니를 걱정하는 삶이라 해도 내일 걱정은 내일 일, 오늘 달이 밝으니 나는 퉁소를 불리라, 달빛에 소리를 실어 보냈던 그 청춘이 오늘 코로나 백신 맞으러 가는 노인이 되었구나, 그렇구나... 한나는 까닭모를 멜랑꼴리에 휩싸인다. 2021년의 30대에게 2030년쯤엔 통일이 되어 있을까, 물으면, 그때까지도 지구가 살아있을지 모르겠네요. 모골이 송연한, 전혀 낯선 대답 아닌 대꾸를 듣기 십상. 그 말처럼, 지구의 내일을 알 수 없어 그럴까. 아무려나, 하늘은 푸르고 나뭇잎은 날로 푸르러지는데, 정체모를(모르지만은 않다) 멜랑꼴리는 그보다 더 짱짱하게 한나의 의식을 옥죄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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