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바로 진보] 인간의 존엄성이 가지는 무게

일본국 상대 손해배상소송 각하 판결에 대하여

올해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가 일본국을 상대로 한 소송에 대한 재판이 2번 진행되었다. 1월 4일, 한국 사법부는 처음으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었으나 3개월이 지난 4월 26일, 판결을 뒤집어 소송을 각하시켰다. 1월 4일의 판결에서는 피해자의 존엄과 권리는 지켜져야 한다고, 이 판결이 아니라면 피해자의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반인도적 범죄에 대하여 ‘국가면제원칙’을 적용시킬 수 없다고 했던 1차 판결과 상이하게, 2차 판결에서 소송을 각하시킨 법의 근거가 바로 국제관습법에 속해있던 ‘국가면제원칙’이다. 국가면제원칙은 한마디로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재판 대상에서 면제되는 것이다. 이 원칙은 국가가 함부로 타국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도록 하는, 주권국가를 존중하는 원칙이다. 한 나라의 자주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원칙이지만, 악용되면 인간의 존엄성을 크게 훼손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국가면제 이론 뒤에 숨어 배상과 보상을 회피할 수 있게 된다. 국가면제원칙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법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판결이 축적되어 변화 발전하는 관습법이며, 재판을 진행하기 위한 절차적 요건이며, 실체법상의 권리와 상태를 잘 구현하도록 해석하는데 도움을 주는 법이다. 실제로 국가면제원칙은 역사적으로 변해왔다.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이번 소송에 대하여 ‘국제법상 주권국가는 타국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마치 국가면제원칙이 모든 법을 앞서는 절대적 가치인 것 마냥 주장하지만 스가 총리가 말하는 절대면제주의는 19세기에 머무른, 국가이익에 비중을 둔 관습법이다. 19세기 이후, 국제사회에서는 예외사항을 두는 제한면제주의를 적용하기 시작했으며 점차 인권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국제법을 형성해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 소송 선고공판을 마친 뒤 입장을 밝히고 이마를 만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는 이날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와 이용수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2021.04.21ⓒ김철수 기자

국가면제주의 절대적 가치 아니야
‘일본군 성노예’ 해결 안 되고, ‘전쟁할 수 있는 일본’으로 변모하는데
왜 우리 법 해석만 과거에 머물러 있나

이번 재판에는 여러 가치들이 얽혀 있다. 국가의 주권, 피해자의 생존과 명예, 외교적 관계와 같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얽혀있는 가치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분명 피해자의 존엄성을 고려하는 판결은 아니었다. ‘피해 회복 등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은 외교적 포섭을 포함한 노력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사법부의 판결은 피해자를 고립시켰다. 외교적 충돌을 우려한 재판부는 이 소송이 국가면제원칙에 벗어났으며 2015한일합의와 같이 문제 해결과 관련된 조치들이 있었다는 이유로 소송을 각하시켰다. 외교적 충돌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는 재판부는 책임을 방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만한’ 한일관계를 위하여 피해자는 침묵 당해왔다. 모든 외교적 문제에서 피해를 입은 개인이 사법부의 재판을 통해 국가면제원칙을 적용해야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1991년 최초의 증언 이후, 피해자와 활동가들은 30년간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며 피해와 배상, 되풀이 되지 않는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외쳐왔다. 여전히 매주 수요일 오후 12시마다 일본 대사관 앞 평화로에서는 수요시위 및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가 언급했던 ‘외교적 포섭’의 결과는 무엇이었나. 2015 한일합의에서 일본은 불가역적인 해결, 즉 영구적으로 국제사회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언급하지 말 것을 요구했으며 한국정부는 동의했다. 이에 힘입은 역사수정주의 세력은 피해 사실을 왜곡하는 발언들에 거침이 없었고, 소송 각하 판결이 났을 때는 환호성을 터뜨렸다. 반인권적 판결들과 협정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통용되었으니 이번 판결 또한 가해국이 또다시 전쟁을 일으키고, 같은 범죄를 저질렀을 때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완벽한 매뉴얼과 사례가 된 셈이다. 이러한 피해자의 재판 받을 권리를 박탈한 사법부는 책임을 방기한 것이며,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의 권리 요구가 외교적 충돌을 일으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법부와 일본정부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피해에 대한 조치가 있었다고 말하는 외교적 조치들이야말로 문제를 악화시켜왔다. 한국의 서명 한줄 없는 샌프란시스코 조약과 피해의 존재도 거의 모르고 있었던 당시 이루어진 한일청구권협정, 피해자의 권리 위임 없이 졸속적으로 치러진 2015 한일합의를 들먹이며 진실과 책임주체를 숨기는 시도들이 근본적인 충돌 원인이 된 것이다.

대법원 조형물 '정의의 여신상'ⓒ뉴시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지만 일본은 전쟁도 일으키지 않고, 군대도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이 담긴 평화헌법을 개헌하고자 노력해왔고 결실을 맺었다. 2019년 아베정권은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조치를 통해 일본 자국민의 마음을 모았고 참의원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의석수를 확보하지 못했지만 법을 새로이 해석하며 결국 전쟁 가능한 국가를 손에 쥐었다.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현 소송이 각하된 이 상황에, 어떤 피해를 줄지 아무도 모르는 오염수가 전 세계가 공유하는 바다에 방류되고, 미일 회담에서 한미일 관계를 강화시키며 동북아시아의 대결구도를 심화시키자는 논의는 평화의 가능성보다는 전쟁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쟁의 가능성은 또 다른 인간 존엄성 훼손을 의미한다.

국제관습법의 추세도 인권 중심적으로 변화하고,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에 대한 전세계 시민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전쟁 위기 코앞에 닥쳐 문제 해결이 시급한 지금, 4월 21일 한국 재판부의 판결만 왜 과거에 머물렀던 것일까?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온 문제에 대하여 현재 판결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 피해사실들과 변화되는 국제관계 사이 수많은 가치들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화의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본다면 답은 명쾌하다. 인간의 존엄성은 어떠한 가치들과 비교했을 때 무겁고 가벼운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저울이 되어야 하며, 한일 간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평등한 관계에서 소통하기 위해서는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할 역사를 인정하고, 책임지고, 기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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