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80세의 박정자가 선사하는 연극 ‘해롤드와 모드’

19세 해롤드와 80세 모드의 삶과 죽음에 대한 흔하지만 뻔하지 않은 이야기

생일인 모드와 축하하는 해롤드ⓒ신시컴퍼니

74세 배우 윤여정이 오스카에서 여우조연상을 탔다. 모든 매체는 배우 윤여정의 족적을 재조명하며 그가 얼마나 대단한 배우였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76세 배우 박인환은 드라마 ‘나빌레라’에서 일흔의 나이에 발레를 통해 꿈과 자아를 실현하는 덕출을 연기해 젊은 세대들의 ‘입덕’을 이끌어 냈다.

고령화 시대에 ‘시니어’들의 반란은 갑자기 일어난 현상이 아니다. 어쩌면 백 세 혹은 그 이상의 세월을 살아나가야 하는 우리에게 육십이나 칠십 대는 제 2의 청춘과 다름없을지 모른다. 사람들이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환호하는 것은 한 가지 일을 반세기 가까이 해 온 장인의 노련함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보여준 성실과 도전, 그리고 소통의 힘은 사람들에게 삶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연극 무대에 서 있는 배우 박정자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다. <해롤드와 모드>는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 초연이 됐다. 하지만 배우 박정자는 2003년 <해롤드와 모드(19 그리고 80)>부터 18년 간 모드로 관객과 함께 했다. 그녀는 올해 여든 살이 되었다. 작품 속 모드와 같은 나이다. 우리의 영원한 모드 박정자는 이번 공연을 마지막으로 모드 역을 떠난다고 밝혔다.

2021 연극 해롤드와 모드_포스터_오승훈verⓒ신시컴퍼니

“떨어지면 어떻게 해요?”
“몰라, 그런 생각 안 해봤어”

연극 <해롤드와 모드>에는 시종일관 ‘죽음’을 이야기하는 19세 청년 해롤드가 있다. 등장부터 자살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해롤드는 삶에 의미가 없다. 학교 화학실에 실수로 불을 낸 후 집에만 있는 해롤드가 즐겨찾는 곳은 자동차 폐차장과 장례식장 두 군데다. 여느 날처럼 찾은 장례식장에서 해롤드는, 엉뚱하면서도 유쾌한 매력의 할머니 모드를 만나게 된다.

모드는 신부님의 차를 공유차처럼 이용하고 동물원의 바다사자를 진짜 바다로 돌려 보내주며, 새장 속의 새를 하늘로 날려 보낸다. 소유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삶의 의미를 시처럼 노래하는 모드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해롤드는 모드와 함께한 시간을 통해 삶의 가치를 찾아가게 된다.

“죽는 게 그렇게 이상해?
그냥 삶으로부터 한 발 내딛는 일이야”

숲 속 자신의 아지트로 해롤드를 데려간 모드는 커다란 나무 위를 올라간다. 해롤드는 모드가 다칠까 걱정이지만 모드는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몰라, 그런 생각 안 해봤어”라고. 우리가 나이란 무게에 눌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재는 동안, 사라져버리는 삶의 놀라운 기적들이 모드의 이야기 하나하나에서 발견되는 순간이다.

춤추는 모드와 해롤드ⓒⓒ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해롤드와 모드>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다. 더욱이 모드는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노년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경험하게 한다. 그래서 일까? 동화같으면서도 진지한 철학서같은 이 이야기에서 19세 해롤드가 모드를 사랑하게 된 것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삶의 정점을 향해 성장하는 청춘과 죽음이란 삶의 마침표를 향해 걸어가는 노인의 이야기는 삶과 죽음이 결국 하나의 길 위에 있음을. 그래서 우리는 지금을 열심히 살아내야 한다는, 흔하지만 뻔하지 않은 메시지를 전해준다.

연극<해롤드와 모드>

공연장소: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 (삼성역)
공연날짜:2021년 5월 1일(토) – 5월 23일(일)
공연시간:화,목,금 19시30분/수 15시, 19시 30분/토 14시, 18시30분/일 14시/월 공연 없음
(단, 5/5(수), 5/19(수) 2시, 6시30분 2회 공연)
관람연령:중학생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130분(인터미션 15분)
티켓 가격:전석 65,000원
원작:Collin Higgins
제작진:연출 윤석화/드라마투르기 이충걸/음악감독 김태근/무대디자인 황지영/의상디자인 최윤정/조명디자인 민경수/소품디자인 김상희/분장디자인 김유선/음향디자인 지승준/영상디자인 김혜경/무대기술감독 김재홍/조연출 이지영
출연진:박정자, 오승훈, 임준혁, 홍지영, 오세준, 최명경, 이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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