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세상읽기] 세상의 어버이들을 생각하며

5월은 기념일이 많은 달입니다. 가족과 사회에 걸쳐 우리가 늘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대상들을 위한 날들이지요. 그 중에서도 생각할 때마다 늘 가슴 한 켠을 뜨겁게 하는 어버이를 위한 날이 있습니다. 어버이들의 신산(辛酸)한 삶, 그렇지만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그림은 어떻게 담았을까요?

모성애 Motherhood 1897 oil on canvas 87.6cm x 66.7cmⓒ개인소장

미국 화가 엘리자베스 너스(Elizabeth Nourse/1859 ~ 1938)의 그림입니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의 모습을 담은 작품은 잠시 숨을 멎게 합니다. 어머니의 젖을 먹었던 기억은 당연히 남아있지 않지만, 아이를 키울 때 보니 아이들이 엄마 젖을 먹을 때는 항상 엄마와 눈을 맞추더군요. 저는 그것이 엄마와 아이의 영혼이 서로 교감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 생각을 하면 늘 가슴이 뭉클한 까닭도 거기에 있는 것이겠지요. 젖을 쥐고 있는 엄마의 동작이나 아기의 손과 발의 모습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이 모자 앞에 제가 앉아 있는 느낌입니다. 뽀얀 젖가슴과 대비되는 엄마의 검붉게 탄 손, 세상에서 가장 강한 손이지만 가정 부드러운 손이기도 합니다.

19세기 후반까지도 여성이 전업 화가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살롱전의 모든 심사위원과 대부분의 미술 평론가들은 남자였습니다. 당시 파리에서는 카페에서의 교류도 예술 생활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었는데, 여성 화가들에게는 카페도 폐쇄적이었습니다. 결국 결혼을 하거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림을 그리는 소위 ‘일요일 화가’가 되는 것이 대부분의 여성 화가에게 주어진 길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뚫고 엘리자베스 너스는 국제적 명성을 얻으며 전업 화가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새 신발 The New Shoe c.1910 oil on canvas 62.2cm x 51.4cmⓒ개인소장

새 신발을 신기는 엄마의 표정도 좋지만 만져 보고 싶은 손을 억지로 참고 있는 듯한 아이의 표정도 참 곱습니다. 그림을 보다가 같은 사물을 함께 보고 있는 장면을 만나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신발을 신는다는 것은 이제 밖으로 나갈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여는 것입니다. 자, 이제 새 신발을 신고 열심히 걸어 봐야지? 알아 듣지는 못하겠지만 아이에게 꼭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너스는 일하는 여인들의 모습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모성애의 중요성과 아주 단순한 일상, 그리고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지요. 이런 주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녀의 작품을 구입하는 ‘팬클럽’ 같은 것이 만들어졌습니다. 너스는 1895년 프랑스 미술가 협회 준회원이 되었고 1901년엔 정회원이 되었습니다. 미국 여성 화가로는 그녀가 처음이었습니다. 평생 작품을 판매하면서 생활해 나간 그녀를 촛불에 비유한다면, 그녀는 단 한 번도 사윈 적이 없는 늠름한 불꽃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아이 Mother and Child 1883 oil on canvas 53cm x 48cmⓒ오슬로 국립미술관

노르웨이 화가 크리스티안 크로그(Christian Krohg/1852~1925)의 그림입니다. 아이와 엄마의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요람을 흔들다 엄마는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요람 속 잠든 아이의 표정은 한없이 평화로운데 반쯤 입을 벌리고 골아 떨어진 엄마의 얼굴은 피곤해 보입니다. 요람을 흔들던 손은 그대로 있고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든 것인지 고개는 침대 모서리에 닿았습니다. 보는 제 마음이 안타까울 지경입니다. 일을 하다가 아이의 우는 소리에 허겁지겁 달려왔겠지요.

아이의 표정과 엄마의 표정이 대조적이어서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잠에 빠진 엄마의 모습은 아이를 위해 애쓰는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게 두 사람을 지켜보는 동안엔 숨도 크게 쉬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크리스티안 크로그는 ‘크리스티아나 보헤미안’이라는 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하는데 ‘예술은 개인이 자유로운 사회를 개발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화가이자 소설가였고 언론인과 교수로도 활동했습니다. 그의 활동 영역은 놀랍기만 합니다.

숲에서 돌아오는 길 Return from the Woods 1890 oil on canvas 64.5cm x 95.5cmⓒ세간티니 미술관, 생모리츠

이탈리아 출신 화가 조반니 세간티니(Giovanni Segantini/1858 ~ 1899)의 그림입니다. 한 여인이 땔감을 싣고 숲에서 돌아 오는 길, 벌서 해가 지고 작은 창에는 노란 불빛이 별처럼 달려 있습니다. 한눈에 봐도 무게가 꽤 나갈 것 같은 커다란 나무 덩어리를 여인은 어떻게 혼자서 끌고 왔을까요? 앞서 간 썰매 자국이 선명하지만 길 옆에 쌓인 눈에는 사람이 지나간 흔적 하나 없습니다.

겨울의 차가움이 움직이는 듯한 산의 묘사 때문에 피부 속으로 스미는 것 같습니다. 적막하고 차가운 겨울의 한 가운데를 지나가는 여인의 모습, 삶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집을 향해 조금씩 걷고 있는 여인의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지는 듯 합니다. 우리 어머니들에게 계절이, 시간이 걸림돌이었던 적이 있었을까요?

조반니 세간티니는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의부, 누나와 함께 어려운 생활을 합니다. 그는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해 오스트리아 시민권을 포기하고 이탈리아 시민권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하는 바람에 죽을 때까지 무국적자로 지냅니다. 그렇지만 그는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이라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어버이들은 대부분 우리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어느새 부모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지금 이 시간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마다, 앞서 그 길을 가셨을 부모님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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